(출처: https://www.pixiv.net/artworks/90587379)
※사투리 주의
중앙 트레센 학원은 언제나 트레이너 구인난에 시달린다.
그도 그럴 게 우마무스메의 머릿수는 많은데, 교직원이라 할 수 있는 트레이너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합격하는 수준이니 매년 인력난에 고통받는 게 일상이지. 그러기에 종종 외국인들도 트레이너로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가끔가다 특이한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타마 이 문디 가스나야 니 몸 생각해서 트레이닝 하라고 캔나 안 캔나!”
“아이 쓰벌, 이 아저씨 또 일본어랑 한국어 섞어 쓰고 앉았네! 하나만 해라 좀!”
“다 알아 먹으믄서 툴툴거리고 자빠짓네, 그리고 내가 거 우동 정식인지 뭔지 하는 괴랄한 건 조금 자중하라고도 캤재. 니 그러다 또 당 훅 빠져서 진 빠져 뻗으면 우얄라 그 카노. 내가 하나 같이 챙겨줘야 카갯나!”
“아오, 진짜 잔소리는! 알긋다 알긋어, 좀 자중할게!”
간사이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가 섞인 한-일 하이브리드 사투리의 기관총 난사가 그러했다.
올해로 3년 차.
언어는 ‘조금’ 달라도 서로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도 남는 타마모 크로스와 그녀의 트레이너 사이의 대화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이랬냐, 하면 오구리 캡이나 이나리 원, 슈퍼 크릭은 전부 하나 같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기억을 짚어보면 더욱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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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덩치는 작달막한데 잘 뛰네.”
“내가 좀 잘 뛰…. 거, 지금 내보고 땅꼬마라 캔나!”
“이야 귀는 밝구먼.”
“팔로 막는 다꼬?! 걍 곱게 처맞아라!”
선발 레이스 당시 실력에 대한 감상 대신 타마모 크로스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키 얘기를 해버린 것이 시작이었다. 그걸 또 귀신같이 듣는 바람에 저 먼 곳에서 잔디를 흩날리며 내달려와 냅다 발차기를 날리자, 그는 또 그걸 능숙하게 팔을 들어서 막아냈다.
“그렇게 방방 뛰다가 다칠걸? 다리도 짧구먼.”
“크으윽. 진짜 말 한마디를 치명타로 긁구마. 좋아 기분이다. 너, 내 또레나 할 생각 읎나?”
“글쎄다, 난 너무 유망주는 받을 생각이 없는데. 게다가.”
“게다가?”
“일단 난 꼬마는 맡을 생각 없어.”
말 하나하나가 날아올 때마다 비수처럼 찔려 드는 기분을 받은 타마모는 잠시 부들거리다가 이내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선언했다.
“와따, 이거 자존심 윽수로 상하네, 생각을 바꿨데이. 니 반드시 나 담당해래이.”
“이야, 이거 독종에게 잘못 물렸구먼.”
“무덤은 그쪽이 판기라. 서류 내놓그라.”
“에베벱 싫은-.”
‘퍽-.’
“와, 발 더럽게 맵네.”
“이제야 한 방 제대로 먹였네, 속이 시원하구마. 퍼뜩 내놔라, 사인하게.”
그렇게 바로 계약서에 서명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모두에게 목격되었고 다들 머릿속에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저런 식으로 막 나가는 기분파 계약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
그들은 틀렸다.
생각보다 매우 제대로 된 계약이었다.
가끔 트레이너가 타마모의 트레이닝에 태클을 걸고, 타마모가 트레이너가 머리 아프게 짠 일정에 태클을 걸고 서로가 물고 물면서 으르렁거릴 때가 있지만 아무튼 제대로 돌아갔다.
‘에베벱 꼬맹이가 알아봤자 뭘 안다고 그러남’하고 긁으면 응징의 타마모 킥이 날아들었고, 트레이너가 그걸 팔을 들어서 막아서는 공방이 오가는 일상. 대체 저게 어디가 제대로 된 거냐고 하면 아리송 하지만, 서로가 의외로 잘 맞물려 돌아간다고 판단해서 계약 파기가 안 이루어졌으니 아무튼 대성공한 계약의 예시다.
계약한 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 그의 어조에서 무언가 일본인에게서 느껴지기 힘든 걸 느낀 타마모 크로스는 물었다.
“또레나, 일본인 아이제?”
“어떻게 알았냐.”
“말투가 묘하게 달라. 억지로 운율 딱딱 맞추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한 후, 타마노는 그의 행적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물었다.
“혹시 트레이너 거 옆 나라에서 왔나?”
“오, 스무고개 시작하는 거야?”
“아니, 뭐 이 트레센에서 외국인 이래봐야 미국, 프랑스, 한국 정도인데 앞에 둘은 대놓고 양놈이니 패스하고 마지막 조건에 딱 또레나가 걸치지 않나. 맞제?”
능청스레 넘기려다가 의외로 논리적인 답이 돌아오자, 말문이 턱 막힌 트레이너는 잠시 무어라 대답을 못 했다.
“재미없구먼. 한 번에 맞혔네.”
“국적 가꼬 그러면 재미없는 게 아니라 나중에 큰일 난대이.”
“에헤이, 큰일 나봤자 타즈나 씨한테 소리 듣는 거지 큰일 나겠냐.”
대충 가볍게 넘기는 모습을 보던 하얀 번개는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고럼 이야기 좀 풀어봐라. 한국 어디서 왔노.”
“이야기가 그리 흘러가네?”
“아니 뭐, 내가 간사이 출신인건 이미 다 안다 아이가. 그럼 역으로 또레나 출신이 좀 궁금해질 수도 있는 기제.”
왠지 논리적인 흐름에 ‘그럴싸한데?’하고 고민하던 트레이너는 이내 휴대전화에서 지도앱을 켰다. 그리고 항시 표시되던 일본 지도에서 서쪽으로 죽 당긴 후 보여줬다.
“여기다.”
“허, 의외로 서울이 아이네?”
“넌 일본인보고 다 도쿄 출신이라 하니.”
“아, 그건 아이제. 흠, 부산이라.”
한국 동남쪽에 자리한 부산, 그중에서도 또 끄트머리에 가까운 동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타마모는 순간 무언가를 느꼈다.
“여기 왠지 사투리 드릅게 심할 거 같은 동넨데, 함 들려줄 수 있나?”
“부산 사투리? 일본에서? 들어도 못 알아먹을걸?”
“아이고, 한국어 배운다 치지 뭐. 뭘 그래쌋노. 또레나도 실전 일본어 내한테서 배운 거 많다 아이가.”
“씁, 할 말이 없는데.”
머리를 긁적인 트레이너는 이내 동영상 몇 개를 검색해서 재생했다.
“잘 들어봐. 이게 표준적인 한국어, 그러니까 서울말이고 이게 부산의….”
“오오….”
귀를 쫑긋거리면서 집중해서 들어보던 타마모는 짙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기냥 한국판 간사이 사투리 아이가?”
“그런가?”
“그런 거 같은디? 함 찾아보께 잠만.”
자그마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켜서 검색해 본 그녀는 짐작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구마,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대응하는 구석이 있는 지역 사투리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거 보면 빼도 박도 못하지.”
“오, 그래서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묘하게 들던 거였나.”
“그건 기냥 내 말을 오래 들어서 그런 거 아니겠나. 뭐 아무튼.”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번뜩거린 자그마한 우마무스메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또레나는 내게 이 부산 말을 알려주고 내는 간사이 말을 알려주면 딱 좋지 않긋나?”
“오, 솔깃한걸.”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꽤 그럴싸한 제안에 귀가 팔랑거리는 걸 느낀 트레이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대신 어디가서 ‘어디서 한국말 배웠냐’는 말 들어도 난 책임 못 진다.”
“에헤이, 어련히 내가 알아서 하지 않긋나. 걍 알려주기나 해도. 나도 최선을 다해서 알려줄탱게,”
그렇게 사제는 의기투합했고, 트레센에 재앙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무제한으로 확대재생산 되는 두 국가 간 사투리 융합의 장이라는 재앙이.
오늘도 트레센 학원은 평화로웠다.
꼭 쓰고 싶었던 소재, 마침내 쓰게 되다
다음편이 과연 있을까
사투리 사투리 조합은 듣기만해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