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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괴문서] 어느 트레이너들의 소개팅 - 2회차

전작 :  어느 트레이너들의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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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처럼 흘러가는 말인 줄만 알았다.



 “주말에 시간 비워놔라.”



 하루의 일과가 거의 다 끝난 저녁 시간, 트레이너 전용 식당에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우쭐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기며 말한다.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에, 옆에서 밥을 우물거리던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조금은 퉁명스러운 소리로 반문한다.



 “왜요?”



 “왜요?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왜요?”



 “와…꼰대 아저씨…….”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의 중얼거림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묘하게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한마디 내뱉는다.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이 꼰대냐!”



 “어휴 꼰대…….”



 하지만 Young하고 MZ한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곤 젓가락을 마저 놀린다. 애초에 그와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 사이에는 제법 많은 나이 차이가 있지만, 그의 꼰대력은 이와 별개이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보다 나이가 많은 트레이너들 가운데에도, 꼰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아니, 애초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어떤 의미에서는 독보적인 꼰대일지도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본질적으로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의 수많은 기행과 사고를 감내하면서까지 중앙 트레센이 그를 트레이너로 묶어 둘 이유도, 많은 트레이너가 그를 동료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의 투덜거림과는 별개로, 옆자리의 다른 두 트레이너가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뭔데요, 무슨 일인데요.”



 “뭐 또 이상한 거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죠?”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와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대답했고,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그런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형이 시간 내라고 하면 불안하단 말이지.”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중앙 트레센에서 기행 우마무스메 하면 골드 십, 기행 트레이너는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게다가 담당 우마무스메가 휘두르는 나기나타의 칼끝이 무섭지도 않은지, 매번 칼날이 날아올 것을 알면서도 그라스 원더를 도발하질 않나, 담당 우마무스메와 마라톤을 하질 않나, 아무래 생각해도 상식 밖의 일을 벌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시간을 내라는데,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래, 눈앞의 저 바보 같은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와 카렌짱의 트레이너 같은 녀석들 말이다.



 “불안해 할 것 없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좋은 소식을 하나 가져왔으니까.”



 “이 아저씨가 좋은 소식이라고 하면, 진짜 불안해지는데…….”



 “아, 이 자식 이거 속고만 살았냐? 왜 이렇게 비관적이야?”



 “속고 자시고를 떠나서 형을 어떻게 믿냐고요.”



 “믿음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주도록 하지.”



 낄낄 웃으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우마톡을 열어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를 비롯한 세 사람을 초대하여 톡방을 만든다.



 “자자, 믿음을 보여주기에 앞서서, 말해 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귀를 가까이 대 보라는, 그런 의미이리라.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곤란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귀는 그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 트레이너의 귀가 모이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흐흐 웃음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소개팅이다.”



 “헉.”



 “뭣?!”



 “이뻐요?”



 그의 한 마디에 불신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무래도 중앙 트레센의 남성 트레이너라면 중앙 트레센 외부의 여성, 히토미미 여성과의 로맨스에 목말라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트레이너들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씩 웃으며 고개를 까딱까딱 흔든다. 그리곤 톡방에 사진을 올린다.



 “보아라, 이것이 나의 기적이요, 믿음의 증명이니라.”



 마치 선지자와 같은 말을 하는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말에, 다른 세 트레이너는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어 톡방을 확인한다. 그리곤―



 “예쁘잖아!”



 “이쪽 분은 귀염상이네.”



 “오…이분은 조금 새침하게 생기셨네요.”



 곧바로 소개팅 상대의 미모를 확인한다. 소개팅이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분위기가 고조되었는데, 상대의 사진이 예쁘고 귀여웠기 때문에 더더욱 불타오른다.



 “이 형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소개팅에…뭐 협박, 강요…그런 건 아니죠?”



 “나를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아니면, 최면 어플?”



 “후배님, 그러다 맞으면 안 아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관대한 마음으로 이번만은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 명함만 내밀어도 거의 일등 신랑신붓감 취급인데, 소개팅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지.”



 “……뭐 그렇긴 하네요. 중앙 트레센 외부의 분들은 형의 그 기행을 모를 테니까.”



 “기행이라니. 아름다운 성리학적 가치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해 주지 않으련?”



 “남자 화장실 환풍구 배관에서 포복으로 나오는 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건 생존의 문제였고.”



 담당 우마무스메인 그라스 원더가 나기나타의 칼날을 휘두르며 쫓아오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이미 그의 몸은 허리를 기준으로 위아래가 따로 놀고 있었으리라.



 “아무튼, 너희랑 나까지 해서 네 명으로, 소개팅…하는 거다?”



 “좀 걱정스럽긴 한데, 저는 좋아요.”



 의외로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도 한번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에게 소개팅 제안을 받았지만, 골드 시티와의 선약이 있어서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 기회마저 놓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로서도,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참여해줘야 한다. 인원수도 인원수이지만,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잘생겼기 때문이다.



 단체 소개팅에 잘생긴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그에게 득이 될 것은 딱히 없었지만, 사실 이미 그는 골드 시티 트레이너의 사진을 팔아 이 소개팅을 성사했기 때문이었다.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겠고, 영원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야~그래, 잘 생각했어. 너희는 어때, 참여하는 거지?”



 “아, 당연한 말씀을. 이런 기회를 어떻게 놓치냐고요.”



 “저도 찬성. 솔직히 최근에 카렌짱한테 시달려서 그런지, 힐링이 필요하다니까요.”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말에,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와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트레이너의 긍정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 다들 잘 생각했어. 이번에야말로 소개팅에 성공해서 여자친구 만들어 보자고. 그라스처럼 칼 휘두르고 그러지 않는…그런 천사 같은 여자친구를 말이야.”



 “시티같이 주말 짐꾼으로 부려 먹지 않는, 그런 여자친구를…!”



 “파인처럼 하루 세끼 라멘만 먹거나 하지 않는, 정상적인 여자친구를 반드시!”



 “카렌처럼 IYAGI…하지 않는, 그런 착한 여자친구를, 꼭!”



 네 트레이너의 결의가 한데 모인다. 그런 트레이너들을, 조금 떨어진 식탁에서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내 샐러드를 한입 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그의 옆에 있던 마루젠스키의 트레이너 또한 피식 웃으며 연어를 한 조각 입에 넣는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알 수 있었다. 그야,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인걸. 저 아저씨를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그의 수작질을 모를 리가 없다. 어차피 이번에도 여자 만나는 일을 꾸미고 있겠지.



 지난번에는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를 비롯한 세이운 스카이의 트레이너와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너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해버린 관계로 딱히 관심도 없었던 소개팅에 강제로 참여해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담당 우마무스메인 에이신 플래시한테 걸려서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날의 에이신 플래시는 서큐버스가 따로 없었다.



 아무튼, 저 형도 그날 한번 된통 당해놓고선, 그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렸나.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참견은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철저한 중립을 지킬 것이니까. 가라아게를 입에 넣으며,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누구든지 저 트레이너들의 상기된 얼굴만 봐도, 뭔가 작당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  *  *  *  *  *  *  *  *




 그리고 나흘 뒤 토요일.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싱그러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만끽하며, 그답지 않은 단정한 옷차림으로 차의 문을 닫았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면 사 둔 옷을 또 언제 입어보겠는가. 마침 가을이기도 하고, 베이지색의 얇은 트렌치코트로 한껏 멋을 내 보는 것이 청춘이라면 청춘이리라. 그의 나이는 청춘이라기엔 조금 많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장신에 탄탄한 신체를 가진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와 살짝 짧다고 할 수 있는 트렌치코트의 조합은 가을의 낭만이라고 해도 제법 어울릴 정도였다.



 “일찍 오셨네요?”



 “어, 왔어?”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히죽히죽 웃으며 걸어온다. 말은 불안하다 수상하다 어쩐다 했지만, 결국 그 또한 수컷이라고 나름대로 기대했는지, 평소보다 더 꾸미고 온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폴로 티에 카디건, 정석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조합이다. 게다가 이 녀석, 머리도 스타일링 받고 왔다. 이 후배답지 않게 엄청 기합을 넣은 것이다.



 심지어 여유롭게 웃으며 낄낄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 녀석, 확실히 얼굴이 잘생긴 축에 속해서 그런지, 여자에 대한 긴장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알파메일이라는 것인가,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 모르게 혀를 쯧, 하고 찬다.



 뭐 그래도 이 녀석의 얼굴을 판 덕분에 좋은 여성분들과 소개팅을 쉽고 빠르게 성사할 수 있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도쿄에 이런 한적하고 경치 좋은 카페가 있었어요?”



 “뭐, 이런 곳을 찾으려고 노력 좀 했지. 괜히 교외까지 나온 게 아니야.”



 물론 도쿄 교외까지 온 것은 단순히 경관이 좋은 장소를 찾고자 함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하, 시티가 알면 분명 짜증 낼 테니까요. 애들이 오기 힘든 곳이 아무래도 조금 더 마음 편하죠.”



 “네 담당도 속박…독점력…뭐 그런 거 있니?”



 물어보지 않아도 백이면 백 있겠지만 말이다.



 “아뇨. 보통 자기는 실컷 일하고 트레이닝 하고 있는데, 너만 놀러 나간다고 짜증 내는 편에 가깝죠.”



 “…….”



 둔탱이 새끼.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속으로 인상을 찌푸린다. 이런 놈들이 나중에 결혼한답시고 청첩장을 빙자한 축의금 청구서를 내민단 말이야. 자신의 통장에 하등 이득이 되지 않는 녀석이다.



 “그래, 아무튼 네 담당은 오늘 일정이 있는 거지?”



 “네네. 화보 촬영 있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형 담당 귀에는 안 들어갈 테니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절대로 그라스 원더의 귀에 소개팅이라는 이야기가 들어가서는 안 돼.”



 그렇게 말하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일전에 당한 것에 대한 충격이 제법 컸나 보다. 하기야, 할복하기와 혼인신고서에 지장 찍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던 담당 우마무스메의 박력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저기 두 명은 같이 오네요.”



 그렇게 말하며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이쪽이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손짓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던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와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확인하고 같이 손을 흔들어 준다.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막내의 의무를 다한다.



 “오, 왔구나.”



 “일찍 오셨네요, 다들.”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한다.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이, 오늘의 소개팅을 꽤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너희 둘도, 담당 애들 모르게 온 거지? 담당 애들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하는 일은…없는 거 맞지?”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방금 온 두 트레이너에게 재차 물어본다. 아무래도 이쯤 되면 PTSD가 아닐까 싶지만, 담당 우마무스메가 그라스 원더이니만큼 정말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하겠지.



 그런 아저씨이자 형이자 선배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두 트레이너였기 때문에,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카렌은 오늘 친구들이랑 우마스타에 올릴 맛집 찾아간다고 해서 바쁠 거고요.”



 “파인은 에어 샤커와 라멘 맛집 투어 간다고 했으니 모를 겁니다.”



 그들의 말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근엄하고 엄숙한 얼굴로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좋아. 그라스도 오늘 스페셜 위크, 사일런스 스즈카와 함께 시내로 옷 사러 간다고 했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내가 세 명이 트레센 정문 나가서 택시 타는 것까지 보고 왔단 말이다.”



 “그 정도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네요, 확실히.”



 “없어야 해.”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겨서 이 일이 그라스 원더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간, 또다시 나기나타의 칼날과 그의 목덜미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여야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은 꿈과 희망이 가득 찬 소개팅이나 즐기자고요.”



 그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에게,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등을 두드려준다. 이 새낀 얼굴도 잘생긴 놈이 성격까지 착하고 배려심 있잖아. 그는 작게 혀를 쯧, 찬다.



 “하여간…있는 놈들이 더 해.”



 “네? 무슨 말인가요.”



 “아니, 너 좋은 녀석이라고. 일단, 들어가자.”



 그런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에게 어깨동무하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카페의 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간다. 딸랑딸랑, 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방울이 울렸고, 세련된 정장을 입은 종업원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아, 예약했는데요.”



 그러면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골드 시티 트레이너의 이름을 말한다. 왜 그의 이름으로 예약하지 않았지, 라고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표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기야, 평소에 카페 같은 곳에 거의 안 가는 이 선배님의 이름으로 예약했다가, 만에 하나 정보가 새어 나갔을 때 발뺌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뭐, 예쁜 여성분들이랑 소개팅도 물어왔으니까, 이 정도 명의도용은 즐겁게 넘어가 줄 수 있다. 생글생글 웃으며 그와 다른 트레이너들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2층 창가 쪽 다인용 방으로 안내를 받는다.



 4인용 소파 두 개와 그 사이의 정갈하면서도 살짝 낮은 탁자, 그리고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계절 꽃들, 환하게 트여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유리 창문. 이런 곳에서 아리따운 여성들과 소개팅이라니, 꿈같이 행복한 일이다.



 다만,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창밖의 뷰가 카페의 입구 쪽 뷰라는 것이다. 맞은편 방을 예약했더라면 카페 뒤쪽의 정원을 보며 다과를 즐길 수 있을 텐데, 살짝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유가 궁금해?”



 그런 골드 시티 트레이너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히죽 웃으며 물어본다. 아직 약속 시간까진 몇 분 시간도 남았고, 자잘한 담소를 즐기기에 딱 좋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맞은편 방이 비어 있는 거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바꿔 달라고 할까요?”



 “좋은 생각은 아닌걸. 생각해 봐, 정말로 만에 하나 담당 애들이 알아차리고 여기 온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시발…아니,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그만…….”



 한 자리 건너서 듣고 있던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반사적으로 모국어 욕설을 내뱉다가,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하지만 어쨌건 걔들도 무슨 공수부대가 낙하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입구로 들어오겠지?”



 “아.”



 “역시 겪어 보신 분은 다르네.”



 “이게 짬이구나, 이야―”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다들 깨닫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면, 지금부터 비상 탈출 계획을 브리핑한다.”



 그러면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잘 들어. 만에 하나, 담당 애들이 입구 쪽에서 오는 것이 보이면, 그 즉시 소개팅은 끝이다. 사정은 설명 안 해도 돼. 이미 다 이야기해놨으니까, 우린 바로 여기, 2.5층 다락방으로 달려간다. 다락방 창문은 사장님께서 영업 중에는 보통 열어 둔다고 했으니, 여길 통해서 테라스로 나간다.”



 “아니, 그보다 이 건물 설계도는 어디서 난 건데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아니, 엄청 중요하잖아.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내뿜는 엄청난 박력에 더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무튼, 테라스로 나가면 입구 반대편으로 나올 텐데, 그 아래에 있는 쓰레기더미로 뛰어내려 충격을 완화한다.”



 “옷 버리잖아요.”



 “너희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너희 조금만 어리바리하다가 담당 우마무스메 애들한테 잡히기라도 하면 옷 버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될걸?”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조금 투덜거렸지만, 담당 우마무스메의 무서움―특히 그녀의 IYAGI―을 익히 알고 있는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전 뜁니다, 무조건.”



 “그래, 이런 자세가 중요한 거야. 그리고 쓰레기더미 위로 뛰어내리면, 그 쓰레기의 냄새가 우리 체취도 지워 줄 테니 걔들의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후각으로 탐지당하는 일도 없을 거야.”



 “이 아저씨는 도대체 뭐랑 싸우고 계신 겁니까. 왜 이렇게…철저해요?”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비장한 표정으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골드 시티 트레이너의 말을 일축한다. 이 후배들은 우마무스메의 무서움을 모른다. 게다가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인 그라스 원더는 다른 우마무스메보다 조금 더 무섭다. 리볼버 갈기는 타이키 셔틀보단 조금 덜, 나머지보다는 더.



 “아무튼, 내가 차를 쓰레기장 바로 앞에 주차해 뒀으니까, 곧바로 차에 타. 그러면 그때쯤 담당 애들이 카페에 들어갈 텐데, 몇 초 기다려서 애들이 2층까지 올라갈 시점에 운전해서 나온다.”



 “하지만 애들이 형 차를 알아보면요?”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아주 당연한 질문을 했지만,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손가락을 흔들며 고개를 내젓는다.



 “미숙하긴. 당연히 렌터카지.”



 “이런 잔머리를 성실하게 쓰면 얼마나 좋아요.”



 “어 우리 그라스 현재까지 7승에 G1만 3개에 그중 하나는 아리마 기념 그랑프리야. 나 진짜 성실하게 우리 그라스 원더 관리하고 있어.”



 “맞긴 해서 더 어이가 없네요.”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피식 웃으며 수긍한다. 그야, 눈앞의 이 사람은 분명 술과 여자와 풍류를 즐기는 한량이지만, 일할 때는 눈빛부터 달라지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실적으로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의 온갖 기행과 품위 없는 행보에도 불구하고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베테랑 트레이너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리라.



 “아무튼, 만에 하나 걔네가 눈치채고 차를 따라 올 경우를 대비해서, 렌터카 반납장소까지는 우마무스메 전용 도로가 없는 곳으로만 갈 거야. 이미 근처 길은 다 외워놨고, 아무리 우마무스메라도 못 달리면 차를 따라올 수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계획은 그럴듯하네요. 성공만 한다면.”



 “한다면, 이 아니라 해야 해. 나머지는 렌터카 샵에 있는 내 차로 중앙 트레센으로 재빨리 복귀한 뒤, 씻고 옷 갈아입고 담당 애들이 부르거나 찾아오면 모른 척하는 거지.”



 “……역시 가장 좋은 건, 담당 애들이 안 나타나는 거네요.”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리고 그 말에 다른 트레이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것보다야.”



 “평화롭게 일이 흘러가게 되는 게.”



 “그게 가장 좋은 길이지.”



 그렇게 말한 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쉰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절대, 우마무스메를 상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고.”



 “우리…애들이랑 전쟁하는 건 아니거든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 또한 같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아무튼, 이제 슬슬 시간도 다 되어 가겠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종이를 구겨서 그의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럼, 해피엔딩을 기다려 볼까?”



 그렇게 말하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소파에 기대어 창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햇살을 만끽하려는 찰나―



 “저게 뭐지?”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카페를 둘러싼 울타리 입구에서 들어오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여기를 전세 낸 것은 아니지만, 십수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와르르 들어오는 것은 조금 소란스러울 수 있어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 또한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촬영 기자재 같은데, 여기 뭐 촬영이라도 있나 본데?”



 “시끄러워지는 건 조금, 별로인데요.”



 “그래도 여긴 단체실이니까, 1층에서만 촬영하면 오히려 구경거리 생기고 좋겠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



 그러더니, 급속도로 얼굴이 굳는다. 그 모습을 본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그의 팔을 툭툭 치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너 표정이 왜 그래, 괜찮아?”



 하지만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나라 잃은 듯한 얼굴로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사람…나, 알고 있어. 시티가 화보를 내는 잡지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야.”



 “뭐?!”



 “아니, 네 담당 화보 촬영 장소가 여기야?”



 “장소 확인 안 했어?!”



 곧바로 옆에서 세 트레이너의 성토가 이어졌지만, 이는 곧이어 나온 골드 시티 트레이너의 말에 침묵으로 둔갑했다.



 “당연히 확인했지.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는데, 왜 갑자기…….”



 그 말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갑자기 촬영 장소가 바뀌는 것도 이상한데, 그게 한참 떨어진 곳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연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너, 골드 시티에게 속은 거다. 네 담당은 이미 알고 있는 거야.”



 “아니, 아직 골드 시티의 촬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입구 쪽에서 골드 시티가 천천히 걸어오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닝 유리라서 이쪽을 쳐다본다고 보일 리는 없지만,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담당 우마무스메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위축되어 창문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봤지? 끝났다. 내 말 기억하지?”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하게 말하자, 다른 세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도 한번 고개를 끄덕여 준 뒤, 한 마디를 덧붙인다.



 “튀어.”



 그 말과 동시에, 네 트레이너는 소파에서 일어나 번개처럼 다락방으로 달려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열어젖히고 테라스로 나간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말했던 대로, 그 아래에는 쓰레기더미가 있었고, 가장 먼저 도착한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뛰어내리려는 순간,



 “……?!”



 뒤에서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그런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그가 먼저 카렌짱 트레이너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쉬잇, 하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



 왜 그러느냐는 듯한 눈빛의 친구에게,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는 손가락으로 차가 있는 쪽을 가리킨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나서야,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작게 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그곳에는 양복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우마무스메 두 명이 차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인 모션의 SP들이야. 카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아. 제길, 완전히 들켰잖아.”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지? 아니야…일단, 다른 탈출 루트를 생각해야…….”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그럴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젠, 방법이…없는 것…같아요.”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런 사사로운 일에 일국의 왕녀님이 자신의 SP들까지 동원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갈 떄 가더라도 발악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것도…증거는 없어. 제자리로 돌아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거야. 우린 오늘 여기에 놀러 나온 거고, 카페에서 다과 좀 즐기다가 드라이브 가려고 했던 거야. 무조건 그렇게 잡아떼자고.”



 “그게 통할까요?”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지만,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결연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물론 이상하겠지. 그런데 뭐, 명분이 없잖아. 우리가 소개팅하기라도 했냐, 여자를 만나기를 했냐,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당당해지자고.”



 “아니, 솔직히 저는 상관없는데, 그…형이랑 카렌짱네 쟤는…괜찮겠어요?”



 옆에서 턱을 덜덜덜 떨고 있는 카렌짱의 트레이너를 보며,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해버린다.



 “네가 뭘 상관이 없어. 너도 살아서 나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야.”



 “무슨 소리세요, 시티랑 제가 얼마나 건전한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 사이인데요.”



 “그렇게 생각하면…그럼 죽어.”



 이 불쌍한 친구야, 해맑게 웃는 후배의 어깨를 잡고,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다시 단체실로 되돌아간다. 그 뒤로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가 카렌짱 트레이너의 등을 두드려주며 같이 되돌아간다.



 어느 틈엔가 종업원이 음료와 다과를 가져다 두었는지, 탁자 위에는 네 잔의 차와 쿠키와 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다. 네 잔만 우선 주문해두길 잘했다. 여덟 잔이었다면 변명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이내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로 바뀐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두 명, 그리고 두 명 더. 누구일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야 당연히 골드 시티, 파인 모션, 카렌짱, 그리고…그라스 원더겠지.



 하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다른 세 명이 모두 돌발행동이나 돌발발언만 하지 않으면 네 명 모두 무사히 복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후배님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충분히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믿는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단체실의 문이 열린다. 네 쌍의 귀가 뒤로 누운 채 들어온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안쪽부터 그라스 원더, 골드 시티, 파인 모션, 카렌짱의 순서대로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그라스? 옷 사러 갔던 거 아니었어? 게다가 너희들이 여기엔 어쩐 일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놀라는 척을 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정도는 쉽게 탈 수 있을 것만 같은 혼신의 연기에, 다른 트레이너들도 제정신을 차린다. 짧게 숨을 내뱉어 정신을 가다듬고,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도,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도 뒤이어 말한다.



 “파인, 여기는 라멘 가게가 아닌데.”



 “시티, 촬영 장소가 바뀐 거야?”



 하지만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쉽사리 담당 우마무스메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옆에 있던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가 아래쪽에서 발로 그의 발을 툭 찬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은 돌아온 듯,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우물쭈물하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카렌…네가 여기 올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 있어?”



 하지만 네 우마무스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늘게 뜬 눈으로 각자의 담당 트레이너를 지긋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침묵과 공포, 우마무스메의 따끔거리는 살기가 그들의 피부를 점점 침식해 오자, 그 무거운 분위기를 참다못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온다고 말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살짝 나무라는 듯한 말투, 스토킹이라도 했느냐는 듯이 질책하는 말투였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당당하게 나가야 이 카페를 살아나갈 수 있―



 “트레이너 씨.”



 “네 이놈.”



 “트레이너.”



 그라스 원더가 무표정한 얼굴로 으르렁거리듯 조용히 말한다. 이를 시작으로 파인 모션도, 골드 시티도 각각 자기 트레이너를 조용히 부른다. 마지막으로 카렌짱 또한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를,



 “트레이너~”



 “……?!”



 라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불렀다.



 평소처럼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다. 카렌짱의 트레이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트레이너라고 부를 때는, 그에게 무진장 화가 났을 때뿐이니까.



 카렌이 매우, 매우, 매우, 화가 나 있다는 뜻이니까.



 그 사실을 깨닫자, 그의 다리가 덜덜덜 떨려온다. 카렌짱의 IYAGI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무섭다, 두렵다, 공포와 경외가 밀려온다. 카렌짱이다. 도망쳐야 한다. 화가 났다. IYAGI 당한다. 카렌짱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이야기. IYAGI. 이야기. 카렌짱.



 순식간에 방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계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린다. 어느새인가 카페 건물을 빠져나왔다. 출입구를 향해 달린다. 카렌은 단거리 선수다. 지구력이라면 히토미미쪽이 위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일단 달린다. 담당 우마무스메가 뒤쫓아 오는 기색은 없다.



 소파에 앉아 있던 카렌짱이 작은 한숨을 쉰다. 생글생글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하게 굳는다. 쯧, 하고 우마스타 인플루언서답지 않게 혀를 찬다.



 “……트레이너랑 IYAGI를 좀 나누어야겠네.”



 소름 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카렌짱은 단거리 선수다. 하지만 우마무스메의 단거리는 1200m까지다. 이제 막 카페의 출입구를 통과하는 히토미미 트레이너 오빠 따위를 잡는 데에는 일 분이면 떡을 친다.



 “하아…….”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카렌짱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 카페 문이 열리는 방울 소리. 그리고 그녀의 달리기가 시작된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담당 트레이너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비명이 들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오히려, 이젠 이쪽이 걱정해야 할 처지다. 카렌짱의 트레이너가 도망가버림으로써, 더는 변명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파인 모션이었다.



 “너…잘도 이런 곳에서 나 말고 다른 여자와 어떻게든 우마뾰이 한번 불러 보려고…이렇게 옷까지 빼입고 작당하고 있었구나?”



 “그게 무슨 소리니 파인. 너 말고 다른 여자라니…마치 내가 너와 우마뾰이 전설을 불러야 한다는 듯이.”



 “그야, 너는 내 트레이너니까 당연히 나와―”



 “아니, 애초에 너와는 우마뾰이 어쩌고 부를 생각도 없는걸.”



 “뭐……?”



 파인 모션이 충격을 받은 눈으로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를 보았고, 그런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그는 한숨을 내쉬며 결정타를 꽂아 넣는다.



 “항상 말하잖아. 파인 너는 여동생 같아서 그런 눈으로는 전혀 볼 수 없다고. 나는 조금 더 누나 같은 느낌의―”



 하지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파인 모션이, 어느 틈엔가 그의 뒤로 이동하여 손날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시켰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와 골드 시티 트레이너의 눈동자에 당혹감과 공포가 깃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관심 없다는 듯, 파인 모션은 천천히 그의 담당 트레이너를 어깨에 짊어진다.



 “후후…트레이너는, 그런 취향이었구나, 후후…후후후.”



 여동생 같다, 그렇다면 여동생으로 안 보이게 하여 주면 되는 것이다. 다른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필요도 없다. 파인 모션의 혈관에 흐르는 아일랜드 왕가의 피, 왕족의 피에 물어보면 되니까.



 “그렇다면 내가…공주님이 아니라 여왕님이 되어줘야겠네. 그렇지, 트레이너?”



 당연하지만 파인 모션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깃든 독점력의 붉은 질척임은 그런 것쯤 아무래도 좋다. 아일랜드의 여왕님은 SP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트레이너를 맨 채로, 천천히 카페를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퇴장…아니, 끌려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중앙 트레센이 이런 질척질척한 독점력이 판치는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인가. 카렌짱도, 파인 모션도, 그리고 골드 시티의 옆에 있는 그라스 원더도 고작해야 학생들이 아닌가.



 자신과 골드 시티처럼 건전한 관계를 형성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자신도 골드 시티 몰래 소개팅에 오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골드 시티는 일과 레이스를 병행하느라 힘든데, 담당 트레이너는 놀고 온다는 인식을 피하기 위함이다.



 본인은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놀고 있으면, 아무래도 컨디션이 절부조로 곤두박질쳐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걸, 하필 촬영 장소가 바뀌었는지, 우연히 직접적으로 봐버렸으니 더더욱.



 그리고 선한 의도였긴 하지만, 담당 우마무스메를 속이는 것 같은 짓을 했으니, 사과 정도는 해야 골드 시티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



 “있잖아, 시티.”



 “…….”



 “저기…시티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미안해.”



 그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던 골드 시티의 귀가 쫑긋 흔들린다. 그래도 트레이너가 그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면, 골드 시티로서는 이런 것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



 그야, 이 사람의 첫 담당 우마무스메이자 마지막 담당 우마무스메이며 정실이자 조강지처인 골드 시티인걸. 이 정도는 여유롭다. 옆에서 본다면 전혀 여유가 있는 표정이 아니지만, 아무튼 골드 시티는 여유로웠다.



 “뭐가, 미안한데?”



 여유로운 자의 말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골드 시티 본인은 여유롭다고 느꼈으니 아무튼 좋은 것이다.



 “내가 너무 경솔하게 행동한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여자친구도 이러면 자칫 한바탕 싸울 수도 있겠지만, 골드 시티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그저, 쫑긋거리는 귀를 기울여 트레이너의 말에 집중할 뿐이었다.



 “시티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 혼자 청춘을 즐기러 갔다니, 시티가 부러워할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배려가 없었―”



 “하아―?!”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헛소리에, 골드 시티의 분노 게이지가 순식간에 한계를 돌파해버린다. 이, 이게 아니야…? 라는 듯한 트레이너의 표정을 보니 한계 돌파에서 조금 많이 더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골드 시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촬영 장소를 바꾸었을 뿐이지 여전히 화보 촬영도 남아있고, 그러니 일은 해야 하고, 그래도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고, 그렇다고 머리 아프게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면, 행동뿐이다.



 “주절주절 변명하는 건 됐어. 어차피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데, 몰라.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골드 시티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당 트레이너의 팔을 잡았다.



 “시, 시티야…골드 시티…?!”



 팔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일까, 그는 조금은 새파래진 얼굴로 담당 우마무스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골드 시티는 날카로운 눈매로 그를 노려보며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 오늘 여기서 촬영 있는데, 트레이너도 같이 촬영하는 거야. 당장 따라와.”



 “아니, 무슨 촬영이길래 아마추어인 내가 촬영을 같이하는데? 그리고 내 의사는―”



 “트레이너, 내가 지금 부탁하는 것 같아?”



 “…….”



 골드 시티가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담당 우마무스메가 화가 많이 난 상태라서, 조금만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오늘 팔 한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촬영은, 웨딩 컨셉의 촬영이야. 트레이너는 신랑 역할을 해.”



 “뭐?! 자, 잠깐만…그런 건 조금 너와 나 사이에 조금, 그렇지.”



 “하? 트레이너와 나 사이가 어때서.”



 “우린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이 달려가는, 건전하고 건강한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 사이잖아.”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이 싱긋 웃으며 진심으로 말하는 담당 트레이너의 말에, 골드 시티는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 둔 마지막 이성의 끈마저 놓아버리고야 말았다.



 “트레이너는 그랬구나. 그런데 난 아니거든? 그리고 트레이너도, 이제부턴 아니게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아, 야야! 팔, 팔 아파! 알겠으니까 일단 팔 놓고! 시티! 야, 시티! 으아아아악―!!”



 소중한 오른팔을 지키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골드 시티를 따라가는 후배의 뒷모습을 보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 애도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일지니, 눈앞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무슨 말을 해야 이곳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라스 원더였다.



 “트레이너 씨가 허구한 날 저 말고 다른 암컷을 만나러 가는 거, 솔직히 이젠 지쳤어요.”



 “…….”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라스 원더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드디어 자신을 포기하고 놔 줄 결심이 선 것인가. 진정한 의미로 건전한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런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그라스 원더가 무슨 말을 할지 계속 들어보았지만,



 “그러니, 오늘만큼은 반드시 결착을 지어야겠어요.”



 “……?”



 그라스 원더는 후후, 옅은 미소와 함께 품 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담당 우마무스메의 돌발행동―아니, 솔직히 예상은 했지만―에, 그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그라스 원더의 몸 주변에서는 푸른색의 오라가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으리라.



 “배를 가르세요, 트레이너 씨.”



 “그, 그건 조금…….”



 “그렇지 않으시면, 제가 할복하겠습니다.”



 그가 주저하자, 그라스 원더는 순식간에 단도를 쥐어, 그 칼날을 그녀의 가슴께로 가져간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누가 보아도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그라스 원더의 손목을 잡아버린 것은, 본능적이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라스 원더에게, 담당 트레이너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격체로서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뜨거워진 머리로, 그라스 원더에게 조용히 말한다.



 “그라스 원더, 이게 지금 뭐 하는 행동이야.”



 하지만 그런 트레이너 씨의 분노에도, 그라스 원더는 차분하게 단도를 탁자 위에 되돌려 놓으며 푸른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왜 말리시나요? 제가 사라지면, 트레이너 씨를 속박하는 우마무스메도 사라지는 거잖아요.”



 “…….”



 그 말에,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라스 원더에게 내장된 붉은 색 독점력은, 이미 그라스 원더의 구석구석에 퍼져, 그녀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독점력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자신뿐임을.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일 뿐이니까, 나이 차이도 꽤 많이 나기도 하니까, 그라스 원더가 취향이 아니니까. 그런 이유 등을 덧붙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이상, 싫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가 눈을 돌리고 외면하면, 한 명의 우마무스메가 최악의 형태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그라스 원더에게 말했다.



 “나는, 그라스 네가 없으면―”



 “……?!”



 그라스 원더의 귀가 쫑긋거린다. 트레이너 씨의 말에 기대감이 들었을까, 손에 힘을 푼다. 프러포즈와도 같은 말이 나오기 일보 직전의 분위기다.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는 도쿄 교외의 아름다운 카페에서 아빠에게 진심 어린 프러포즈를 받았단다,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미래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심장을 잠시 진정시키며, 그라스 원더는 트레이너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사는 데 스릴이 너무 없어져서 안 돼.”



 “…….”



 그라스 원더의 머리에 실핏줄이 돋는다. 트레이너 역시 그것을 확인하곤 재빨리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려 했지만, 그라스 원더가 한발 빨랐다.



 오른손으로 탁자 위의 단도를 다시 역수로 움켜쥐고, 왼손으론 트레이너 씨의 멱을 잡는다. 그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단도를 트레이너 씨의 명치로 가져가, 정확하게 꽂아 넣는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고통이 느껴지고, 붉은 피가 터져나…왔어야 했지만, 그라스 원더가 찔러넣은 단도는 그의 몸에 박히지 않았다.



 “어떠신가요, 트레이너 씨. 스릴…충분히 느끼셨나요?”



 그러면서 단도를 그의 가슴께에 꾸욱꾸욱 몇 번 누른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멍하니 그라스 원더를 바라본다. 단도의 날 부분이 그라스 원더가 힘을 줄 때마다 손잡이 부분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날이 선 것처럼 도색되어 있었지만, 부드러운 플라스틱이다.



 장난감 칼이다. 아무리 우마무스메라도 이런 것으론 누군가를 해칠 수 없는, 그런 장난감.



 “장난치고는…과하잖아.”



 그것을 깨닫자마자 몸에서 힘이 주르르 빠진다. 소파에 눕듯이 기대어 한숨을 푹 내쉰다. 그라스 원더가 장난감 단도를 거두어 품에 집어넣는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우후후 웃으며 말한다.



 “반쯤은 진심이었지만요.”



 “살려만 다오…….”



 아하하 웃으며 언젠가 그라스 원더의 나기나타에 목이 달아나는 미래를 떠올린다.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찔리는 엔딩이라니, 한량의 인생 마지막 길치고는 너무 씁쓸하잖은가.



 “그래도 트레이너 씨, 소개팅하려고 하신 거, 이번에는 눈감아 드리도록 하겠어요.”



 “어라.”



 그라스 원더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믿을 수 없는 말에,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싶어 뺨을 주욱 잡아당겨 보았다. 응, 아프다. 꿈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라스 원더 답지 않은 말을 한 것일까.



 트레이너 씨가 아는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라면 분명 ‘이 장난감 단도가 진짜로 바뀌는 것이 싫으면 처신 잘하세요’ 정도는 말해야 하지 않던가.



 그런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라스 원더는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처음, 마루젠 씨에게 트레이너 씨가 또다시 소개팅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트레이너 씨 데리고 미국…그러니까,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나 지을까 고민을 했지만요.”



 “…….”



 하지만 역시,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니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가 맞다.



 “그래도, 제가 할복하려 했을 때 트레이너 씨가 제지하시고, 어떤 이유건 제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그건―”



 “그러니까 저는, 트레이너 씨의 소중한 사람…인 거네요.”



 “……뭐, 어떤 의미에서는.”



 소중한 담당 우마무스메라는 의미에선 맞을 것이다. 한숨을 내쉬며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긍정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을까, 그라스 원더의 꼬리가 붕붕 흔들린다. 알기 쉬운 망아지다.



 “그러면…트레센에 복귀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 어떠신가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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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섭섭하다섭섭 2025/03/05 22:16

    왔다 내 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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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섭섭하다섭섭 2025/03/05 22:42

    설문조사 5.전 에어 샤커 이야기가 보고싶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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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에에여고생쟝下 2025/03/05 22:33

    제목부터 예상된 결말.. 그래서 미노루 트레이너는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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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om335 2025/03/05 22:37

    후랏슈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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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성신관알타 2025/03/05 22:42

    또레나에게 소개팅이 있다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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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성신관알타 2025/03/05 22:46

    그래서 그라스 원더T는 모가지 or 동정이 댕겅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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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로사 2025/03/05 22:45

    이게 후속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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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doHKS 2025/03/05 23:03

    1번부터 5번까지 전부 다......는 안되겠죠?
    근데 저러고도 다른 트레이너 꼬셔서 소개팅 나갈 그라스네 또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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