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화차와 신기전은 세종시기부터
여진족때려잡는데 쓴 아주 위력적인 무기였으나
임진왜란 당시엔 행주대첩 등
아주 희귀하게 몇번 못나오는데 이유가 있다.
소수의 여진족 상대론 압도적인 전력적 우위에있어
화력을 화약 뒷생각안하고 마구 퍼부을수있었지만
십수만에 달하는 왜군상대론
화약 뒷생각까지 해야해서
현자총통으로 수십 수백발 더 쏘는게 훨씬 가성비가 나았다고 한다.
문종화차와 신기전은 세종시기부터
여진족때려잡는데 쓴 아주 위력적인 무기였으나
임진왜란 당시엔 행주대첩 등
아주 희귀하게 몇번 못나오는데 이유가 있다.
소수의 여진족 상대론 압도적인 전력적 우위에있어
화력을 화약 뒷생각안하고 마구 퍼부을수있었지만
십수만에 달하는 왜군상대론
화약 뒷생각까지 해야해서
현자총통으로 수십 수백발 더 쏘는게 훨씬 가성비가 나았다고 한다.
게다가 염초 비축하기도 빡세서리....
먼저 신기전(神機箭)을 발하여 처음 1차 교전하니 적이 약간 물러갔으나 중국군의 숫자가 적다는 것을 안 뒤에는 좌우로 흩어져서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하며 곧바로 중앙을 향해 공격해 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벽제관 전투 기록에서도 등장함.
근데 이 기록을 두고 신기전의 사용 빈도가 적은 게 일본군이 산개해서 그런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