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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많이 읽었다고 혼나던 시절의 기억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때문에 독서에 관한 기사들이 넘쳐나는데

"책을 읽지 않는 사회"라는 기사를 보니

고등학교 때 일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고등학교 1학년말이었습니다. 11월이었던거 같네요.

어느날 갑자기 아침조회 때 담임이 상장 하나를 던져주더라구요.

다독왕인지, 독서왕인지 정확히는 기억 안나는데 그런거 였습니다.

제가 그 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간 학생이었더라구요.

그 당시, 독서권장 어쩌고 캠페인하면서 교육청에서 대출기록에 근거해서 각 학교에 독서왕을 뽑아서 시상하라고 했었나봅니다.


보통 교육청에서 주는 상 같은건 운동장 조회 때, 앞에 나가서 교장한테 받는게 국룰인데,

저는 그냥 담임이 아침 조회 때, 던져주더라구요.

그리고 담임한테 잔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책 많이 빌려봤다고...

맞지는 않았지만, 좀 심하게 혼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1학년 남은 기간동안에는 더이상 대출을 하지 않았고,

2학년이 되어서 담임이 바뀌고 다시 책을 빌려보게 되었죠.

 

아마 교육청이 주는 상장을 받으면서 혼난 사례는 흔치 않을겁니다.

개근상 빼면 고교 3년 동안 받은 유일한 상장인데,

혼나면서 받아서 그런지 딱히 애착이 없어서 부모님한테 자랑도 못하고 어디 처박아 뒀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부모님한테 보여드려도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었다고 혼날까봐 하는 생각도 있었죠.

 

여튼, 1학년 때 담임은 3학년 때도 담임이 되었는데,

수능 끝나고 대학 원서 쓰면서 담임이랑 상담할 때, 예전에 내가 너 혼냈던거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그 때, 교장과 교감이 당시 도서관 담당이셨던 제 담임에게 대출기록 바꿔서 전교 5등 이내의 어떤 학생을 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이름을 확인하고 그런거 바꾸는거 공문서 위조가 아니냐며 교장, 교감에게 따져서 겨우 제가 받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며칠동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너 한테 상장 줄 때 나도 모르게 화를 냈는데,

그게 너무 미안했다고 울먹이시면서 말씀하시더라구요.

이미 2년 전 일이라 저는 그냥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인데 선생님은 계속 마음에 담아 두셨나 봅니다.

고교 3년 중 2년이나 담임을 했음에도 딱히 친밀도가 없는 선생님이었는데,

그 때의 모습때문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는 선생님이네요.

댓글
  • 도라온요플레 2024/10/18 19:39

    어이쿠야~~~~ 책 읽었다고 핀잔을 주다니..ㅎㅎ
    그 선생은 평생 책 한 번 안 읽은 선생일 겁니다.
    전 책 많이 읽는 사람들 부럽습니다. 한 달에 2권 아니, 한 권 다 읽기도 벅찬데...
    유년 시절 책을 많이 읽은 글쓴님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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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쉬고싶어? 2024/10/18 19:47

    제 동생 고3때 책만 읽고 공부안한다고 몇번 혼나다
    결국 성경책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순점 정리한 노트 담임샘께 걸린날 엉덩이가 터지도록 맞고왔습니다.(심지어 기독교학교임에도..)
    그 당시기준 공부않고 책읽기 나쁜짓이었죠
    결국 학려고사 망치고 지거국 갔다가
    군대 다녀오고 서울대 컴공과 들어갔어요(90년대에는 원만한 의대보다높았죠)
    동생 말이 잡다한 책들 읽었던게 수능으로 바뀌니 완전 도움 않이  되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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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살이1976 2024/10/19 00:39

    ????
    책 읽기 좋아라 하는데....
    성적은,
    전교생 300 명 중에
    70위는 유지 했었는데....
    ( 고교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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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소엄마 2024/10/19 01:43

    시험기간이면
    더 간절한 책들
    그때는 철학서들도 채미있더라
    큰아들이 중학교 다닐때까지
    가장 많이 싸운것도
    책 그만 읽어라 였는데,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있더라
    공부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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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ybrush 2024/10/19 01:55

    책을 아무리 읽어도 쌤들과 생각이 달라서 혼났는데
    친분없던 대학교수님만 인정하던..
    맞아요. 자기들 관심사만 가지고 인정하는 모습이 사회구나.
    21세기도 안바뀌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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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시모프 2024/10/19 03:00

    이 글의 주제가 '책 많이 읽어도 공부안한다고 혼내는 선생'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한 권력에 저항한 선생님이 학생한테 제대로 상을 주었지만 스트레스 받아서 화냈던 선생의 지책감과 고백'인데 댓글은 전부 책읽는 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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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고라니 2024/10/19 10:42

    참스승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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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봄달 2024/10/19 11:13

    상장 던져준 순간부터 그 일을 미안하다고 말하던 순간까지 순간순간, 님 볼 때마다 미안했었나 보네요.
    아마 교장교감 들이받은 거면
    담임샘이 교실에서 주고 싶어 준 거 아니고
    교육청장 상 왔는데 교장 교감이 운동장에서 조회시간에 안 줄 거고
    담임한테 니가 알아서 주라고 했을 거라 또 열받았을 거에요. 내 제자가 불합리하게 정당한 대우를 못 받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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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포등대 2024/10/19 12:16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에 자기가  그들과 닮아가는게 아닌가하는 자책감? 자신도 그런 감정을 겪어봤을 일들을 제자에게 했다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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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머심슨차남 2024/10/19 14:31

    자기 제자에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선생님이라니, 진심으로, 얼굴도 모르지만 존경스러운 어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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