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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망 공동체

어느 날, 저승에서 대표가 나왔다.

[ 이승의 사망률이 너무 낮아진 것 아닙니까? 지금 저승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 

인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저승의 논리는 이러했다.

[ 한 마디로 이승의 저출산 문제와 같습니다. 저승 인구가 너무 부족하다 이 말입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수명이 낮아서 3, 40대만 되어도 곧잘 저승으로 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뭐, 평균 수명이 70살? 80살? 정말 너무하는 얘기 아닙니까?! 물론, 한때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망자가 늘어났던 건 인정합니다. 좋은 시절이었지요. 2차대전 땐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저승은 그때의 부흥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이 말입니다! 게다가 사망하는 사람들도 다 늙어서 오니, 이건 뭐 부양해야 할 짐만 늘어나는 실정입니다! 와봤자 편히 대접만 받다가 소멸하는 늙은 사람들 말고, 젊은 노동 인구가 필요하다 이 말입니다! ]

불만이 대단한 듯한 저승의 결론은, 인류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 저희 저승에서는 사망자 두 배 정책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제 이승의 모두는 무작위로 영혼의 짝을 1명 맺게 될 겁니다. 둘 중 한 명만 사망하여도 나머지 한 명이 함께 사망하는 겁니다. ]

" 뭐야?! "
" 헐? "

[ 이승에서도 저희 저승의 정책을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부터 시행되오니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

저승의 대표가 사라진 뒤, 인류는 대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설마 하던 그것은 다음 날 현실이 되었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당장 인류는 난리가 났다.

" 빌어먹을! 내 영혼의 짝이 누구야?! "
" 영혼의 짝을 어떻게 찾는 건데?! 그건 알려줘야지! "
" 이런 게 어딨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어야 하는 거야?! "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그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었다.
만약 내 영혼의 짝이 누군지 알 수나 있었으면 조금은 나았을 거다. 당장 내 주변에 있을지, 지구 반대편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란 게 문제였다.

당장 전 세계에서 사형 집행이 중지되었다. 사형수 하나를 죽이면 무고한 한 명이 죽어버리니까.
당연히 전쟁도 곧 중지되었다. 전쟁 당국만이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적극적으로 평화를 위해 개입했다. 이익을 계산하는 행동은 있을 수 없었다. 그 전쟁으로 우리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제삼 세계에 대한 지원도 엄청나게 쏟아졌다.

" 하루에 굶어 죽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 아이의 짝이 빌 게이츠일지, 워런 버핏일지 누가 압니까?! "

그동안 권력과 부를 독점한 사람들은 먹이사슬 상위권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회를 정글로 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현저하게 낮았었다.
하지만 이제 목숨의 값이 평등해졌다. 돈 한 푼 없는 노숙자 한 명이 죽는 것으로 수백억 부자가 죽을지도 모르는 세상이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가진 자들이 그러지 못한 자들보다 훨씬 더 떨었는지도 모른다.

유명인사들의 급사가 몇 번 일어나자, 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곳간을 풀었다. 그 돈은 모두 사회안전망을 위해 투자되었다. 

" 한국의 청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
" 학교폭력 빌어먹을! 그동안 왜 이렇게 손 놓고 있었던 거야?! "
" 노인 복지가 이게 뭡니까?! 언제까지 폐지를 줍고 다니시게 할 거야?! "
" 경찰은 뭐 하는 거야?! 어제도 살인 사건이 벌어졌잖아! 치안에 신경 좀 쓰라고! "

모든 인류가 한목소리로 어떻게든 사망을 줄이려고 애썼다.
결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의 사망률이 줄어들었는데, 그때 또 저승에서 대표가 나왔다.

[ 사망 두 배 정책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 저승에서는 사망 세 배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

" 뭐야 썅?! "

답도 없이 저승에서 다녀간 뒤, 인류는 더욱 바싹 협동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고, 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도 하나하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 안전 점검 좀 철저하게 합시다! "
" 음주운전은 인간으로서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
" 지금 그깟 돈 몇 푼 아끼려고 그랬단 말입니까?! 저런 기업은 가만히 놔둬선 안 됩니다! "

인류의 목표는 하나였다. 

늙어 죽는 것 외의 모든 죽음을 막자!

인류는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목표대로 늙어 죽는 것 외의 모든 죽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 우리 연구소에서 노화 억제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

인류는 감히 노화마저 정복하려 했다.
일각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 인간에게 영생이 주어져도 되는 겁니까? "
" 이러다 지구가 인간 포화 상태가 될 겁니다! "
" 지금도 충분히 세상은 좋아졌습니다. 거기까지는 가지 맙시다. "

그런 목소리들은 힘이 없었다. 
영생이란 건 어차피 언젠가는 올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었고, 그것이 좀 더 일찍 당겨졌을 뿐이라 생각했다.
인류는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드디어, 노화를 멈추는 약이 개발되었다. 게다가 과거의 예상처럼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 노인들을 중심으로 먼저 배분합시다! 그리고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만듭시다! "

인류는 늙지 않는 것에 환호했다. 인류가 기어코 죽음마저 정복했다며 들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 나는 먹기가 싫어... "
" 난 살 만큼 살았어... 내가 기다리는 건 오직 안식이야. "
" 그냥 살 수 있는 만큼 살다가, 우리 영감 묻힌 곳에 같이 묻히는 게 내 꿈이야. "

많은 노인이 노화 방지약을 거부했다. 그들은 죽음의 안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인간에게는 안식이 필요하단 걸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없어서 못 먹는 약이었고, 어떻게든 구해서 먹으려고 난리인 약이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데 왜 그걸 거부한단 말인가?

" 이걸 공짜로 드린다는데도 왜 그러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
" 어르신! 모두를 생각해서 드셔야 해요! "

결국, 노인들은 모두 반강제적으로 약을 먹어야 했다.
그 이후에는 모두가 아귀처럼 달려들어 노화 방지약을 먹었다. 좀 더 젊을 때 약이 나오지 않았다며 화내는 사람도 많았다.

노화로 인한 죽음까지 막고 나니, 인류의 사망률은 정말로 낮아졌다.
어쩔 수 없이 3인 동반 사망이 벌어지더라도, 자연재해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또다시 저승의 방문이 일어났다.

[ 어쩐지, 이승에서 노화 방지 약을 개발하셨군요. ]

사람들은 불만 섞인 얼굴로 생각했다.

" 저거 또 이번엔 4인 동반 사망으로 바꾸려고 왔구만. "
" 옘병! 인류가 노력하면 뭘 해?! 결국 이 꼴인데.. "
" 어디 바꿔 봐! 사망률 0%를 보여줄 테니까! "

하지만 저승 대표의 말투는 밝았다.

[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최근 사망한 사람들은 저승에서도 늙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승에서 노화로 소멸하던 분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

" ?? "

[ 덕분에 최근 사망한 분들은 저승에서도 영원히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안식이 없다는 건 좀 불쌍한 일이긴 하지만...어쩔 수 없지요. 앞으로 저승 인구가 너무 늘어날까 걱정이 된 저희는 이승의 사망 시스템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기로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승의 여러분. ]

" ... "

인류는 헷갈렸다. 이 기쁜 소식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죽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지.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0/16 23:42

    머리가 멍하네요 요즘! 바보가 된 기분! 초코렛이라도 사 먹어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꼭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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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뜨는땅아래 2017/10/17 00:13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 정말 대단하세요. 재밌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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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간다 2017/10/17 01:24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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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씩씩 2017/10/17 01:29

    이번 소설은 좀 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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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내꺼야 2017/10/17 01:31

    그럼 더욱 이승에서 안죽으려고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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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rp 2017/10/17 05:40

    초컬릿 마이 사드사드시고 행복하세요~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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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사람4 2017/10/17 09:26

    와 진짜 신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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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노달게 2017/10/17 10:35

    순식간에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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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개솔로처 2017/10/17 10:54

    죽음이 안식처는 아니군요...저승에서 소멸할때까지 노동착취라니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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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먹는슬라임 2017/10/17 14:42

    아~주 흥미롭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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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맛바람 2017/10/17 14:44

    개쩐다 와 베르나르베르베르 단편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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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쓰 2017/10/17 14:51

    와 이건 정말 상상력의 최종보스 정도의 상상력이네요.
    멋진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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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얀 2017/10/17 14:56

    중반까지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생각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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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겸살삼인분 2017/10/17 15:07

    매번 놀라운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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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금지 2017/10/17 15:18

    약먹고 이승에서 오래살기 vs 약 안먹고 지옥에서 빨리 소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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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e0422 2017/10/17 15:19

    미쳤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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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한글개발자 2017/10/17 15:34

    [하지만 요즘 저승은 그때의 부흥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이 말입니다!]
    부흥이 되었고, 부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올바르게 사용하신게 맞을 수도 있으나,
    [하지만 요즘 저승은 그때의 부흥은 커녕, 현 상황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이 말입니다!]
    이런 의미로 쓰신거라면,  좀 어색한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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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Runge 2017/10/17 15:34

    헬조선인 : 오 쉬벌 취업 개꿀!(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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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개 2017/10/17 15:57

    싫어하는 사람을 살해하면 영원히 저승에서 노동하게 만들수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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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톨이 2017/10/17 16:00

    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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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과출신 2017/10/17 16:10

    약을 안 먹으면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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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알꽃 2017/10/17 16:16

    잘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죽으면 가장 예뻤던 때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ㅠㅠ 죽은 나이 그대로 저승에서 살아야한다니...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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