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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불로초

헌책방에서 우연히 찾은 오래된 책의 전설을 쫓아간 쌍둥이 형제는, 비밀스러운 동굴의 웅덩이에서 '불로초'가 든 항아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두 형제가 조심스럽게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푸르스름한 신비한 연기가 동굴 가득히 퍼졌다.
그리고 형제는 고민에 빠졌다.

" 이런! 하나뿐이야! 이걸 누가 먹어야 하지? "
" 기록에 따르면, 항아리를 연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10년 뒤에나 다시 기회가 온다고 해. 10년간 이 웅덩이에 항아리를 담가놓아야 한다고 말이야. "

어릴 적부터 서로 절대 양보가 없었던 쌍둥이는 이번에도 양보할 수 없었다. 다만 아직 스무 살이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순 있었다.

" 이렇게 하자. 10년 뒤에 다시 와서 그때까지도 혼자인 사람이 먹자. 만약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다면, 그녀만 두고 혼자 늙지 않을 순 없잖아? "
" 그래. 맞는 말이야. 그렇게 하자. "

쌍둥이는 다시 항아리를 닫아두고 헤어졌다.

한창때의 청춘인 그들에게는 10년간 무수히 많은 사랑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항상 불로초가 마음에 걸렸다.

"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대신 불로불사를 포기할 수 있을까? "
" 지금 사귀더라도 어차피 오래갈 수 없을 거야. "

그렇게 두 형제는 10년의 청춘을 혼자 보냈다. 다시 불로초 앞에 모인 형제는 후회 섞인 대화를 나눴다.

" 결국, 우리 둘 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들지 못했구나. "
" 우린 실수했어. 지난 10년간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어. 그건 분명 불행이었어. "
"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20대의 청춘을 낭비한 거야 우린. "

한숨을 내쉰 둘은 이번에도 10년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대신 조건은 바뀌었다.

" 우리도 이제 서른이야. 더 청춘을 허비하는 건 말이 안 돼. "
" 동감이야. 대신 이렇게 하는 건 어때? 10년 뒤에 돈을 더 많이 번 사람이 불로초를 먹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은 불로초를 얻는 대신, 벌어온 재산을 모두 양도하자. 그래야 불로초를 얻지 못한 사람도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될 수 있잖아? "
" 그게 좋겠다. 그래 그렇게 하자. "

쌍둥이는 다시 항아리를 닫아두고 헤어졌다.

처음에는 둘 다 경쟁적으로 열심히 돈을 벌었다.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둘 다 연애를 시작했고, 가정도 꾸렸다. 지난 10년간 억압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생겼다. 자신이 과연 모든 재산을 다 내줄 수 있을까? 아내가 허락할까?
그 생각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 일도 대충 하고, 재산도 착실히 모으지 않았다.

10년 뒤 다시 모인 쌍둥이는 둘 다 형편없이 가난했다. 둘은 다시 또 후회 섞인 대화를 나눴다.

" 우리 나이가 벌써 마흔이야. 그런데 이뤄놓은 것 하나 없이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어리석었어. "
" 맞아 우린 또 실수했어. 누가 됐든, 만약 지금 가진 재산마저 잃었다간 아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

형제는 고민했고, 어쩔 수 없이 10년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당연히 조건도 바꾸기로 했다.

" 10년 뒤에 건강이 더 좋지 않은 사람이 가지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10년 뒤면 우리도 쉰 살이니까, 건강을 장담할 수 없잖아. "

그러나 다른 형제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어. 만약 그런 조건을 내걸었다간, 우린 또 10년간 스스로 건강을 해치게 될 거야. "
" 아. "
" 이번엔 차라리 10년 뒤에 더 건강한 사람이 불로초를 먹기로 하자. 그게 맞아. "
" 듣고 보니 네 말이 맞아. 좋은 동기부여가 되겠지. 그래, 그게 맞아. "

형제는 다시 항아리를 닫아두고 헤어졌다.

쌍둥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건강관리에 들어갔다. 술담배는 모두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일도 열심히 했다. 지난 10년간 가족들에게 못 볼 꼴을 자주 보였으니 보상해야만 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쉰 살이 된 형제가 다시 모였다.
한데?

" 뭐야? 너 어떻게 된 거야? "
" 그러는 너는? "

쌍둥이의 몰골은 형편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건강하지 않았고, 스스로 건강을 해쳐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황당해하던 둘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솔직히 말해서 불로초를 너에게 양보하고 싶었어. "
" 나도 마찬가지야.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그건 축복이 아니었어. "
" 맞아.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정말 슬펐어. 그것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자신 없어. "
" 빠르게 변하는 시대는 어떻고? 정말 무서워. 나는 절대 적응하지 못할 거야. "

나이 쉰 살에 두 형제는 깨달았다. 불로불사란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상황이 이렇게 되니 문득, 두 형제는 불로초가 증오스러웠다.
그것 때문에 20대의 청춘을 사랑 없이 허비하고, 30대의 열정을 헛되이 보내고, 중요한 40대를 준비 없이 지나쳤다.

" 이것이 우리 인생을 망가뜨려 놓았어! "
" 저주받은 불로초! 이런 것 따위 태워버리자고! "

드디어 불로초를 항아리에서 꺼낸 형제는, 그 자리에서 불태웠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어어? "
" 어어어? "

불로초가 타면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퍼져나가더니, 두 형제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형제가 정신을 차렸을 땐, 스무 살의 그 날 항아리를 열었던 때로 돌아가 있었다.

" 아! "
" 아! "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환각을 겪은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형제는 어떤 깨달음을 얻은 표정 같기는 했다.

" ... "
" ... "

그리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만약, 네가 안 먹겠다면 나는 먹을 생각이 있는데... "
" 무슨 소리야? 나는 절대 양보할 생각 없어! 어떻게 할까?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0/06 23:00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거의 10일?;
    추석 휴가를 보내기도 했지만, 실은 출판될 책에 새로 넣을 이야기들을 쓰느라; 아마 10월 중순까지는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덕에 제게 행복한 일이 찾아왔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행복이 찾아가길 바랍니다!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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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뚜맞 2017/10/06 23:31

    으와 드디어 글이 올라왔네요ㅠㅠ 감격ㅠㅠ
    책 출판하시면 꼭 사서 읽고싶어요 !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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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mstern 2017/10/06 23:33

    둘이 30년간 인생 리플레이하며 마음껏 즐기다 살다 늙은 후 다시 불태우면 또 20대 리플레이 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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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라 2017/10/06 23:47

    출간 축하드려요.  제 일 처럼 기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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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향기 2017/10/07 00:46

    우엑~ 토했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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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인레인저스 2017/10/07 00:49

    새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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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한여대생 2017/10/07 01:35

    불로초란 결국 먹은 시점부터 늙지 않게 해주는 것일 뿐 더 젊게 해주지는 않기에 50대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신체가 다히 20대가 된 이상 긴 세월동안 얻은 깨달음보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욕심이 더 컸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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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리랑 2017/10/07 03:03

    이번 글도 정말 재밌습니다. 크으 저 같으면 불로초를 팔아버릴텐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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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rinus 2017/10/07 10:18

    잘 봤습니다.
    출간하시면 꼭 또 사서 볼게요.
    (출간하실때도 작가명 복날은 간다로 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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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피르 2017/10/07 10:50

    30년치 기억이 있으면...주식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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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이 2017/10/07 11:09

    한명먹고 10년뒤 또 다른하나가 먹으면 되는거지 뭣하러 사서 고생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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