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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괴문서] 에이신 플래시와 해변의 작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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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다.



 아니, 단순한 여름이 아니다. 한여름, 그러니까 여름이 최절정으로 치달은 시기다.



 일본의 한여름은 그야말로 불지옥, 37도를 상회하는 미쳐버린 기온에 푹푹 찌는 습기야말로 이곳이 현세의 지옥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중앙 트레센에서조차 한여름에는 트레이너들과 학생들에게 합숙이라는 이름의 피서를 보낸다.



 물론, 말은 그래도 합숙이기 때문에 매일같이 트레이닝 하는 것은 변함없는 일과다. 합숙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중앙 트레센의 연습용 트랙에서 똑같이 트레이닝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의 합숙 스케줄은 토요일 오전에 끝났지만, 중앙 트레센에서도 고생한 트레이너들과 학생들에게 당일 복귀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래, 피서지에서 주말 정도는 놀고 오라는 뜻이었다. 아키카와 야요이 이사장의 (반강제적인) 구국의 결단이 빚어낸 아름다운 통보였다.



 하지만 모든 트레이너가 해변에서의 푸른 빛 청춘의 피서를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시달리는 트레이너들이 더더욱 그러했을진대…당장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합숙이 끝나자마자 그라스 원더 몰래 자가용으로 합숙소 탈출을 시도했다.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너는 나리타 브라이언의 트레이너와 함께 버스로 탈출을 시도했으며, 다이와 스칼렛의 트레이너는 과감하게도 히치하이크로 어떻게든 합숙소를 벗어나려 시도했다.



 그 외에도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 사쿠라 로렐의 트레이너 등…여러 트레이너가 담당 우마무스메와의 주말을 피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앙 트레센으로의 복귀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세계의 의지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던 듯, 트레이너들의 발버둥은 하나같이 다 실패했다.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는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붙잡힌 채로 근처의 쇼핑몰로 끌려갔으며, 사쿠라 로렐의 트레이너와 파인 모션의 트레이너는 각각 사쿠라 군단과 SP들에게 붙잡혀 합숙소 근처 5성급 호텔의 스위트 룸으로 배달되었다.



 다이와 스칼렛의 트레이너는 히치하이크 시도 중 보드카의 오토바이를 탄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걸려 그대로 유목 민족의 납치 방법을 몸으로 배웠으며,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너와 나리타 브라이언의 트레이너는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기겁하며 버스를 뛰쳐나갔지만…소용없었다.



 그야, 그들의 옆좌석에는 에어 그루브와 나리타 브라이언이 대기하고 있었고, 두 트레이너가 그녀들에게 질질 끌려 합숙소로 되돌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차의 시동을 걸고 악셀을 밟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주말 동안 운동 좀 하고 술도 좀 마시고 분위기 좋은 바에 가서 여자도 좀 꼬시고…그런 멋들어진 날을 보내야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망상이었다. 악셀을 밟는 순간…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왜,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본능적으로 차를 버리고 달아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야, 그의 눈앞에는 나기나타를 들고 차의 타이어를 베어버린 담당 우마무스메가 웃고 있었으니까.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푸른 빛의 살기가 가득했기 때문인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트레이너가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잡히거나 먹히거나 배달되는 것을 보며,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왜 다들 담당 우마무스메를 피할까.”



 그 중얼거림에, 옆에서 사복 차림으로 나란히 걷고 있던 에이신 플래시가 후후 웃으며 입을 연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트레이너 씨도, 기숙사로 복귀해서 게임 하고 싶다는 생각 중이신 거 아닌가요?”



 “그야 당연히 풋볼매니저 하고싶…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에이신.”



 “방금 풋볼매니저라고―”



 “무슨 소리니 에이신. 너와 함께 하는 이 시간만큼 귀중하고 중요하며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은 없단다.”



 “……정말인가요?”



 살짝,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에이신 플래시를 보며, 그는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부터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답변이 삐끗하면, 곧바로 에이신 플래시의 컨디션은 절부조로 치닫고, 그 또한 다른 트레이너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엔딩으로 직행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본능적인 경고였다. 공식적으로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어찌 보면 여자친구보다 더 깊고 깊은 관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연하지. 에이신 플래시같이 예쁘고 착하고 청초하고 아름다운 우마무스메가 담당이라면, 다른 트레이너들처럼 도망갈 이유가 전혀 없잖아.”



 “…….”



 “오히려 주말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아. 응, 나도 에이신과 같은 마음이야.”



 “후후…역시, 그렇죠?”



 묘한 미소를 지으며 에이신 플래시는 트레이너 씨의 팔에 자기 팔을 휘감는다. 에이신 플래시의 88의 커다란 흉부가 그의 팔을 압박해 들어왔고, 대독일의 기상에 존경심을 표하며, 그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이신 플래시의 순간적인 공격에, 그는 방어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에이신 플래시가 듣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말했으니, 오늘은 에이신 플래시의 컨디션 다운 없이 평화로운 하루가 될 것이다.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바다에서 물놀이, 어떤가요?”



 확실히, 합숙소 바로 앞에는 바다가 있기에, 원한다면 해변에서 얼마든지 놀 수 있는 것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다른 우마무스메들이 경영 수영복을 입고 물장난을 치는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에이신 플래시의 눈치를 본다.



 “……수영복 안 가지고 왔는걸.”



 “네에―?!”



 이 트레이너 씨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바다에 오는데, 수영복 하나 안 가지고 왔다고? 에이신 플래시는 도통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야, 에이신 플래시는 이날을 위해서, 트레이너 씨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새로운 수영복을 사 왔기 때문이다.



 합숙 중에는 경영 수영복만 입는 것이 규칙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입을 기회가 없었지만, 공식적으로 합숙이 끝난 지금은 에이신 플래시가 사 온 수영복을 입는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뭐, 트레이너 씨는 수영복을 안 가지고 왔다고? 그러면 트레이너 씨와 해변에서 두근두근한 꺄꺄우후후 하는 물놀이를 하겠다는 에이신 플래시의 계획, 그 계획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에이신 플래시 본인의 계획은 완벽했지만, 트레이너 씨가 변수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애초에 에이신 플래시와 주말을 해변에서 로맨틱하게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거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에이신 플래시의 눈초리를, 트레이너 씨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에이신 플래시의 컨디션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인데,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하다.



 살아야 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릴 수는 없다. 그런 일념으로,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



 “…….”



 하지만,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없었던 수영복을 짠, 하고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어디 근처에서 하나 사 온다고 하더라도 에이신 플래시의 계획을 고려하지 않았었다는 삐짐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그는, 이판사판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기 팔을 끌어안고 있는 에이신 플래시를, 그대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해변에서 노는데, 수영복이 필요해?”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는 수영복 없어도, 에이신 너만 있으면 돼.”



 그에게 안겨 있는 에이신 플래시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에이신 플래시의 뺨이 살짝 발갛게 물드는 것이, 그의 말에 넘어가―



 “……그런 빤히 보이는 말로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



 “하, 하하, 하하하.”



 ―기는 무슨, 입을 비쭉 내밀며 그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는다. 그래도 딱히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닌지, 꼬집는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휴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에이신 플래시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그녀의 귀가 쫑긋쫑긋 파닥파닥 움직이는 것이, 기분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에이신 네 말대로, 오늘은 해변에서 조금 놀까?”



 “수영복도 안 챙겨오셨으면서요?”



 “갈아입을 옷은 있거든. 그리고 나는 수영복보다 티셔츠에 반바지가 편해.”



 “……뭐어, 트레이너 씨가 그러시다면요.”



 비쭉 내밀어져 있던 입술이 점점 원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귀는 여전히 팔랑쫑긋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녀석, 꽤 기대하고 있었구나. 그 감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 에이신 너는 수영복도 갈아입어야 하니까…20분 뒤에 저쪽 해변에서 볼까? 나는 파라솔이라도 준비하고 있을게.”



 “알겠습니다. 10분 뒤, 저쪽 해변에서 봐요.”



 “그래그래, 갈아입고 와~”



 가슴팍에 안겨 있던 에이신 플래시가 순식간에 홱 사라진다. 합숙소 쪽으로 달려가는 속도가 역시나 우마무스메는 우마무스메다.



 눈 깜짝할 새에 합숙소 근처까지 가버린 에이신 플래시를 잠시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파라솔 대여소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  *  *  *  *  *  *  *  *  *




 10분 뒤, 그는 해변 한쪽에 파라솔을 설치하고 얇은 은박 돗자리를 깔아두었다. 에이신 플래시가 오기까지 정확하게 1분 12초 남았기 때문에,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돗자리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하늘이 보일 리가 없다. 푸른색 파라솔만 보인다. 쓴웃음을 지으며 하늘색 반소매 남방을 벗는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처럼 근육아 탄탄하게 보이는 몸은 아니지만,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 또한 최근에 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 어디 가서 꿀릴 신체는 아니다. 하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어도, 그 노력의 결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듯했다.



 그런 그의 얼굴 위로 검은색의 꼬리가 살랑, 그의 뺨을 간질인다. 에이신 플래시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물리적으로도 간지럽다. 피식 웃으며 꼬리를 확 잡는다.



 “꺅……!”



 “장난치지 마. 간지러워.”



 “꼬리 갑자기 잡지 마세요. 그…꼬리는 민감한 곳이라서요.”



 “…….”



 그렇게 말하며 에이신 플래시의 꼬리가 휙휙 움직인다. 그러다가 이내 찰싹찰싹 트레이너 씨의 얼굴을 때린다. 아마도 항의의 표시겠지, 아프지는 않다.



 에이신 플래시가 그의 옆에 앉는다. 청색 무늬가 들어간 하얀 가운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온다고 하더니, 왠 가운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에이신 플래시에게 묻는다.



 “갈아입었어?”



 “후후, 기대라도 하셨나요?”



 “……뭐, 조금은.”



 “조금은, 이 아니잖아요. 바보 트레이너 씨!”



 괜스레 관심 없는 척하자, 에이신 플래시가 뺨을 볼록 부풀리며 다시금 꼬리로 얼굴을 찰싹 가격한다. 그런 담당 우마무스메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에이신 이라면 뭘 입어도 다 어울리니까.”



 “확실히…제 외모는 뛰어나니까요.”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냐.”



 “에, 트레이너 씨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나요?”



 찌릿, 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에이신 플래시의 눈빛에, 그는 여심이란 갈대와도 같음을 다시금 상기한다.



 “외모만 뛰어난 게 아니니까. 착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잖아.”



 “어머♡”



 너무 나갔나, 에이신 플래시의 눈길이 살짝 끈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우마뾰이 그런 거 없이 마음 편하게 해변에서 쉬고 싶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에이신 플래시에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선크림은 발랐어? 태양이 강해서 필요할 것 같은데.”



 “그렇네요, 선크림. 가져왔어요.”



 “응?”



 “선크림, 가져왔다고요.”



 “…….”



 트레이너 씨의 머릿속에 라젠카 S에이브이e Us의 가사가 울려 퍼진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당근 됐다. 에이신 플래시는 트레이너 씨가 선크림을 발라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미 에이신 플래시는 발갛게 물은 뺨과 요염하리만치 사람을 홀리는 눈짓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안 돼,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가 선크림을 발라준다면 분명, 에이신 플래시의 스위치가 들어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뭐, 야외에서 갑자기 우마뾰이 전설 라이브를 하진 않겠지만, 해변이고 나발이고 간에 곧바로 호텔로 납치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어서요, 트레이너 씨.”



 하지만, 여기에서 에이신 플래시의 부탁을 거부할 수도 없다. 그가 안 된다고 하는 순간, 에이신 플래시의 컨디션이 절부조로 급락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알겠어.”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던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신 플래시가 작은 핸드백에서 꺼내는 선크림을 받아든다. 에이신 플래시는 하얀 가운을 벗는다.



 “어떤가요, 트레이너 씨.”



 그러면서 엎드리기 전, 에이신 플래시의 수영복 차림을 트레이너 씨에게 보여준다. 그 절경에,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굉장히 굉장해서 굉장하게 아름다워.”



 언어능력이 나리타 탑 로드 수준으로 퇴화해버린 것처럼 말한다. 그의 시선은 에이신 플래시의 살결과 후후, 하고 요염하게 웃고 있는 입술, 그리고 살짝 내려간 눈매를 훑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려, 에이신 플래시가 자랑하는 수영복을 감상한다.



 바다처럼 파란 비키니 수영복 천이 에이신 플래시의 가슴을 감싸고 있었고, 그 위로 푸른 보석이 박힌 금색의 목걸이가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색깔 맞춤으로 프릴이 달린 수영복 하의, 그리고 금으로 된 체인을 왼쪽 다리에 감아 포인트를 주고 있다.



 에이신 플래시가 이런 어른스러운 수영복을 가지고 있었던가? 고등부 학생이라는 사실을 망각해버릴 것만 같았다. 누가 보더라도 성숙한 어른의 느낌이 나는, 그런 수영복이었다.



 호텔, 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남자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이신 플래시가 천천히 그의 옆에 엎드린다. 등 쪽부터 선크림을 발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얼굴이 헤실헤실 풀릴 것만 같은 것을 어떻게든 참으며, 선크림의 뚜껑을 열고 손에 조금 짜려고 했으나,



 “어라.”



 “왜 그러세요?”



 “선크림이 다 떨어졌네.”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요.”



 선크림이 다 떨어져서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았다. 에이신 플래시가 곤란한 얼굴로 이쪽을 본다. 하는 수 없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트레이너 씨?”



 “아까 보니까 저쪽에 마트가 있었거든. 가서 하나 사 올게.”



 “그러면 같이 갈까요?”



 에이신 플래시의 제안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 혼자서 충분해. 금방 다녀올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마음은…이런 차림의 에이신 플래시를 도로변으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는 잠시…해변 산책이라도 하고 있을게요.”



 하지만 에이신 플래시는 트레이너 씨 없는 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좀이 쑤셨는지, 조금 걷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너 씨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해변 산책 정도라면 괜찮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에이신 플래시가 벗어 둔 가운을 주워서 내밀었다.



 “자, 이거.”



 “……?”



 “아직 선크림 안 발랐으니까, 입어둬.”



 “후후, 감사합니다, 트레이너 씨.”



 그것이 트레이너 씨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에이신 플래시의 입꼬리가 하늘로 승천한다. 평소에는 애정 표현을 하면 살짝 밀어내는 느낌의 트레이너 씨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이것저것 다 챙겨준다.



 그래서 얌전히 가운을 받아들고, 수영복 위에 입는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그녀의 계획을 수정한다. 10분 22초 후면 트레이너 씨가 충분히 마트에 다녀오실 테고…한 5분 산책을 하고 되돌아오면 약간의 시간이 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이신 플래시는 해변으로, 트레이너 씨는 마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  *  *  *  *  *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마트, 그곳에서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의외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합숙 스케줄 끝나자마자 담당 우마무스메를 남겨놓고 차로 달려가던 사람이 아니던가.



 “왜 여기 계세요, 형?”



 “아…뭐야, 너도 복귀 실패했냐.”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뚱한 얼굴로 장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중앙 트레센으로 복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해서 에이신 플래시와 같이 남은 거니까. 아무튼 그렇다.



 “담당 애랑 해변에서 쉬고 있어요.”



 “……그랬지, 넌 담당 없으면 죽고 못 사는 놈이었지.”



 “그 정돈 아닙니다.”



 “아 그래그래, 어련하시겠어.”



 투덜거리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옆에 놓인 마스크 팩을 하나 집어 든다.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 또한 자신의 목적을 상기하곤, 맞은편 선반의 선크림을 하나 집어 들었다.



 “팩은 왜 사세요?”



 “그러는 너는 선크림을 왜 사는…아니, 알 것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한숨을 내쉰다. 뭔가 심부름 가기 싫은데 아내의 압력에 못 이겨 억지로 심부름을 나온, 이 시대 불쌍한 가장의 느낌이었다.



 “담당한테 선크림 발라주려고 그러지? 어이구, 좋을 때다.”



 “……그래서 팩은 왜 사시는데요.”



 “담당이 부탁해서 사 가는 거지, 내가 이런 거 쓰겠니.”



 “그러네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빈정거리거나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였다. 그것을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도 느꼈는지, 다시금 한숨을 푹 내쉬며 에이신 플래시 트레이너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서로 고생이 많아.”



 “저는 딱히…좋아서 하는 거라.”



 “그래그래. 한창 뜨거울 때지.”



 “그런데 형은, 이 틈에 도망 안 가세요?”



 당연한 의문이었다. 평소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하는 행실로 미루어 보건대, 이렇게 그라스 원더와 떨어져 있으면 이 틈에 중앙 트레센으로 복귀하려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씁쓸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차 키를 그라스 원더가 가지고 있어.”



 “아.”



 “그리고 기숙사 열쇠도 그라스 원더가 가지고 있어.”



 “…….”



 그러니까, 지금 그라스 원더로부터 도망쳐 봐야…집에 못 돌아간다는 뜻이다. 차와 집 열쇠가 그라스 원더의 손에 있는 이상, 그는 고분고분히 그라스 원더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한숨을 땅이 꺼질 듯 푹 내쉬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계산대로 걸어간다. 그리고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 또한 선크림을 손에 든 채로 계산대로 걸어간다.



 “팩은 왜 비싼 거야 도대체.”



 “하하…….”



 계산하면서도 투덜투덜, 계산대의 직원이 외국어는 못하겠지, 걱정하며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계산대를 나선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팩 이외에도 이것저것 사는 것이 있는지, 아직도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 조금 기다려 줄까. 마트 바깥에 나가서 문 옆에 기댄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한 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마트 안쪽에서 걸어 나온다. 확실히,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비닐봉지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안 기다려도 되는데. 네 담당이 기다리잖아.”



 “뭐, 동향 사람의 정이 있지, 그냥 휙 가긴 좀 그렇잖아요?”



 “그래, 인사는 하고 가야지.”



 피식 웃으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손을 흔든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시선이 해변 쪽으로 향한다. 그러더니 쓴웃음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야, 저거…네 담당 아니야?”



 그러면서, 비닐봉지를 들지 않은 손으로 해변의 한쪽을 가리킨다.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그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그곳에는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말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에이신 플래시가 있었다.



 다만, 에이신 플래시의 주변으로 그가 모르는 다른 사람, 세 명의 남자가 같이 있었다.



 “보아하니 중앙 트레센 소속 트레이너는 아닌 거 같은데, 빨리 가봐.”



 “…….”



 하지만 그의 귀에는 그라스 원더 트레이너의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에이신 플래시만이 보였고, 머릿속으로 저 새끼들은 뭔데, 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꽤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담당 우마무스메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빤히 보였다.



 우마무스메는 겁이 많은 생물이다. 인간보다 강인한 신체를 떠나서, 그 본성은 순하고 겁이 많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변화나 새로운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녀들의 본능이다.



 에이신 플래시도, 지금, 그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트레이너 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당연히, 에이신 플래시의 주변에 있는 저 사람들이겠지.



 그의 발걸음은 이미 담당 우마무스메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천히 걷던 걸음은 빠른 걸음이 되었고, 어느새인가 그는 달리고 있었다.



 “……쯧.”



 그 뒤에서,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혀를 한번 찼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비닐봉지를 들고 마트로 돌아간다. 그리곤 잠시 계산대에 봉지를 맡겨둔다.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피기를 반복한다.



 “뭐, 조금 늦어도 이해해 주겠지.”



 중얼거리며, 그는 천천히 마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  *  *  *




 에이신 플래시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르는 남자 세 명이 자신을 둘러싸듯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라고는 아버지와 담당 트레이너 씨 정도만 만나본 에이신 플래시에게는, 모르는 남자가 이렇게 가까이 들이댄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운 상황이었다.



 물론, 우마무스메의 힘이라면 히토미미 세 명쯤 대충 손 몇 번 내지르면 나가떨어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우마무스메의 힘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손찌검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 조절 잘못하면, 대형 사고니까. 그리고 대형 사고를 쳐버리면, 최악의 상황에는 중앙 트레센에서 퇴학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을 떠나서 모르는 사람이 접근해 오는 상황 자체가 에이신 플래시에게는 썩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세 명 모두 경박해 보이는 차림에 머리도 염색한 듯, 일본인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색이었다. 한 명은 입에 피어싱까지 있고, 한 명은 구릿빛으로 태닝한 몸에 알 수 없는 문양의 문신까지…누가 보아도 나 양아치에요, 광고하는 듯한 행색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세 명, 에이신 플래시를 둘러싸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물론, 에이신 플래시는 점잖게 길을 막고 있으니 비켜달라고 요청했지만…돌아온 것은 불쾌한 수준의 플러팅이었다.



 “너 중앙의 우마무스메지? 우리랑 놀지 않을래?”



 “……비켜주세요.”



 “그렇게 튕기지 말고~ 우리가 좋은 거 알려줄게.”



 그렇게 말하며 낄낄낄 웃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에이신 플래시의 몸을 훑고 있었다. 얼굴, 가슴, 배, 다리, 온몸 구석구석을 핥듯이 보는 그들의 시선에, 에이신 플래시는 반사적으로 가운을 여민다.



 “뭐야-아, 수영복 예쁜데 가리기는 왜 가려~.”



 말만 놓고 보면 칭찬이었지만, 에이신 플래시는 그것을 결코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캣콜링이다. 유럽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자신을 지켜 줄 든든한 아버지가 옆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에이신 플래시 혼자다. 트레이너 씨는 선크림을 사러 마트에 갔고, 그가 돌아오려면 아직 3분 하고도 21초가 남은 상황이다.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에이신 플래시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온다. 그러면서 에이신 플래시의 얼굴을 탐하듯이 바라본다. 그 얼굴에서 이성에 대한 욕망, 에이신 플래시에 대한 욕망이 엿보인다.



 역겹다.



 트레이너 씨가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지 않았는데, 트레이너 씨가 에이신 플래시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기분이 고양되고 에이신 플래시 본인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기분이었는데.



 하지만 저들의 시선은 같은 욕망이라 해도 추악하게 느껴졌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그런 시선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이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에이신 플래시를 지레 겁먹게 했다.



 하지만 에이신 플래시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경고하듯이 한 번 더 말한다.



 “비켜주세요.”



 “아, 왜 이렇게 튕겨~? 우리가 좋은 스팟 많이 알고 있다니까? 기분 좋게 즐기도록 해 줄 테니까, 같이 놀자, 응~?”



 “관심 없으니까, 비켜주세요.”



 하지만 남자들은 끈질겼고, 에이신 플래시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 발짝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그러지 말고, 일단 우리한테 몸을 맡겨 보면 기분 좋을 거야, 이쪽으로―”



 오히려 입에 피어싱한 남자가 에이신 플래시의 팔을 잡아끌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걸 쳐내야 할까, 힘 조절을 할 수 있을까, 팔을 꺾어버리진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더러운데, 손끝 하나 닿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들 사이에 에이신 플래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자의 손이 에이신 플래시의 팔을 잡―



 “너 뭐야.”



 ―기 직전에, 남자의 뒤에서 손이 하나 나와, 그의 팔목을 붙잡아 뒤로 당겼다.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손에 에이신 플래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씨는 뭐야, 방해하지 말고 꺼져.”



 “얘가 싫어하잖아. 비키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까 당신 뭔데! 방해하지, 말라고―!!”



 “얘 담당 트레이너다. 내 애마한테 손대지 마.”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가 으르렁거리듯 말했고, 남자는 그의 손을 뿌리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힘이 약한 편이 아니다. 손을 뿌리치기는커녕,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에게 이끌려 모래사장 위로 나뒹구는 신세가 된다.



 그런 남자를 본 나머지 두 명의 남자가,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에게 달려들어 팔을 잡는다. 아무리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다지만 그는 프로 선수가 아니다. 비슷한 체격의 남성 두 명을, 그리고 눈앞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는 한 명까지, 세 명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물러나면 에이신 플래시가 어떤 꼴을 당할지 빤히 보인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듯 분출된다. 교감 신경이 흥분되며 입에 침이 바싹 마른다. 동공이 확장되며 평소보다 더, 시간이 천천히 가는 느낌이 들었다.



 모래사장에서 일어난 남자가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에게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굉장히 천천히 날아오는 느려터진 주먹일 뿐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팔을 움직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



 양팔을 잡은 다른 남자들이 무릎으로 그의 옆구리를 찬다. 격통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입에서 고향의 욕이 나온다. 눈앞에 주먹이 보인다. 가까스로 몸을 뒤로 움직여 주먹을 피한다. 하지만 다시금 주먹이 날아온다. 피하기는 어려운 거리다. 눈을 부릅뜨며, 찾아올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주먹은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에게 닿지 않았다. 남자의 뒤에서 커다란 형체가 불쑥 나타나더니,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이놈은 뭔데 왜 사람을 치실까?”



 그는 한 손으로 남자를 들어 올리더니, 대충 뒤로 던져 내팽개친다. 그리고선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를 붙잡고 있는 두 남자에게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러더니, 두 남자의 머리를 붙잡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쾅! 두 머리를 서로에게 박아버린다. 그 압도적인 힘에, 남자 두 명은 별다른 저항 한번 못 해보고 그대로 기절한다.



 “순애를 방해하는 분충은 용서하지 않아요.”



 “너, 너는…또 뭐야…내가 누군 줄 알고―”



 내팽개쳐진 남자가 간신히 일어나며 거구의 형체를 향해 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흥, 하고 코웃음을 한번 치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남자에게 걸어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는다.



 “너 새끼가 누군지 알 게 뭐야. 지금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으아아아악―?!”



 그리곤 천천히, 남자를 들어 올린다. 얼굴이 붙잡혔기 때문에 남자는 팔과 다리를 휘둘러 그에게 반격하려 했지만, 그는 남자의 타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그를 다시 모래사장에 내동댕이친다.



 “아이고~아파라. 너도 나 쳤네? 지금부터는 쌍방이다?”



 “히, 히익…?!”



 자신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 앞에서는, 원초적인 공포에 잡아먹히는 것이 본능이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움직이려 하지만, 그것보다 상대가 더 빠르게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짓누른다.



 “왜 그래, 웃어. 맞기만 하고 끝나는 게 얼마나 운이 좋은 건데, 웃어야지.”



 그러면서 그는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에게 손짓한다. 가 보라는 표시다. 그 뒷모습이 오랜만에 듬직한 선배다워서, 그는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에게 꾸벅, 감사를 표한다. 그런 후배에게 대충 손을 흔들며,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그의 아래에서 기어가고 있는 남자의 다리를 잡으며 말한다.



 “아, 그래도 혹시나 신고할 생각은 말고. 그땐 중앙 트레센이 자랑하는 법무팀 총출동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남자 셋을 질질 끌고 가는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를 보며, 중앙 트레센의 탈 히토미미는 키류인 아오이 트레이너 말고도 있었던가, 그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담당 우마무스메, 에이신 플래시였다.



 “트레이너 씨…….”



 “에이신, 괜찮아?”



 재빨리 에이신 플래시에게 다가간다. 몸이 살짝 떨고 있는 것이, 우마무스메는 겁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이런 상황에서 해변을 즐기는 것은 조금 무리일 것이다. 게다가 다른 놈들에게 에이신 플래시를 더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 에이신 플래시를 바라보던 그 역겨운 시선들을 생각하노라면,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른다.



 그래서, 그는 에이신 플래시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다행히, 에이신 플래시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천천히 팔을 끌어당겨 에이신 플래시를 부드럽게 안아준다. 에이신 플래시도 천천히 그의 품속에 안겨든다.



 “에이신.”



 “네…트레이너 씨.”



 “호텔, 가자.”



 “…….”



 에이신 플래시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닌데, 아드레날린 때문에 언어능력이 굳어버린 것이리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오늘은 호텔에서 쉬자는 말이었어.”



 “트레이너 씨……”



 에이신 플래시가 말끝을 흐린다. 무슨 말이 나올지 감도 안 잡힌다. 아무리 담당 트레이너라고 해도, 갑작스러운 일을 겪은 에이신 플래시에게 배려가 너무 없었다. 차라리 합숙소에서 쉬거나, 중앙 트레센으로 복귀하자고 하는 편이 좋았으리라.



 하지만, 시설이 조금 불편한 합숙소보다는 시설도 좋고 편안한 호텔에서 쉬도록 해 주고 싶다, 그런 마음에 뱉어버린 것이었을 뿐이다. 에이신 플래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침을 꿀꺽 삼킨다. 에이신 플래시의 입이 움직인다. 트레이너 씨에게, 배려심 없는 트레이너 씨에게 한 마디, 조심스레 말한다.



 “저…불쾌하고, 두려웠어요.”



 “…….”



 “욕망에 가득 찬 시선이라는 게, 그렇게 두렵고 역겹고 더러운 것인 줄, 처음 알았어요. 손가락 하나조차 닿고 싶지 않았어요.”



 그야,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경험일 수도 있으니까. 에이신 플래시의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된다. 트레이너 씨도 남자고, 우마무스메는 섬세하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에이신 플래시로부터 살짝 떨어지려 했지만,



 “하지만 동시에…트레이너 씨는 다르다고, 트레이너 씨에게 안겨 있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에이신?”



 트레이너 씨의 가슴팍에서 에이신 플래시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린다. 말이 뭔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을 무렵은 이미 늦었다. 에이신 플래시는 떨어지려는 트레이너 씨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그런데, 트레이너 씨가 호텔에 가자고 말씀하시니…저, 너무 안심되어서―”



 그렇게 말하며, 에이신 플래시는 트레이너 씨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보는 눈이 없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있었더라면 커플이 야외에서 주책이네~ 라고 했을 법한 모양새다.



 에이신 플래시의 커다랗고 탱글탱글한 가슴이 그의 피부에 닿는다. 가슴이 눌리는 그 모양이 촉감을 통해 느껴지자, 참고 있었던 그의 이성이 퇴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만지고 싶었지만, 에이신 플래시의 유혹에 넘어갔다간 오늘 하루 그대로 끝나는 것이다. 로맨틱한 해변의 데이트 어쩌고는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에이신 플래시를 호텔에서 쉬게 하려는 시점에서 이미 날아가 버린 것이지만.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게 될 미래뿐이었지만.



 “―그러니까 오늘, 안 재울 거에요.”



 “……네?”



 잘못 들었습니다? 그는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의 품속에서 느껴지는 빠르고 뜨거운 심장의 고동에, 그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보통 그 말은 남자가 하는 거…아니야?”



 “남자다운 트레이너 씨에게 드리는 상이니까요♪”



 “그, 그러지 말고 우리 선크림 바르고 해변 산책이라도 할―”



 황급히 말을 다른 제안을 해보지만, 에이신 플래시의 웃음에서 그는 미래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호텔 가자고 하신 건 트레이너 씨였잖아요?”



 “그, 그렇긴…한데.”



 “다른 남자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저의 몸…트레이너 씨라면 구석구석까지 확인해 보실 수 있으니까요♡”



 “…….”



 이성은 거기까지였다.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는 담당 우마무스메의 허리에 팔을 감은 채, 그대로 호텔로 직행한다. 에이신 플래시도 꼬리로 트레이너 씨의 다리를 휘감는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이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지켜본다. 그의 발밑에는 예의 남자 세 명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모래사장에 폭격 자세로 대가리를 박고 있었다.



 주말의 태양은 뜨거웠고, 여름은 끝나간다.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의, 평화로운 날이었다.

 

 

 

 ==========

 

 

 

 NTR보다는 오글거리는 억지 순애가 낫긴 한데 새벽감성으로 글쓰면 안됩니다.

댓글
  • KaidoHKS 2024/08/03 18:12

    역시 순애 최고!!!......근데 에이신 또레나는 호텔서 이하생략.....

  • 메에에여고생쟝下 2024/08/03 18:22

    결국은 우마뾰이 우마뾰이

  • 린성신관알타 2024/08/03 19:01

    뾰이촌

  • 지나가던 정상인 2024/08/03 18:58

    순애 로맨틱스! 순애 로맨틱스!


  • KaidoHKS
    2024/08/03 18:12

    역시 순애 최고!!!......근데 에이신 또레나는 호텔서 이하생략.....

    (SIg8D2)


  • 메에에여고생쟝下
    2024/08/03 18:22

    결국은 우마뾰이 우마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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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던 정상인
    2024/08/03 18:58

    순애 로맨틱스! 순애 로맨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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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성신관알타
    2024/08/03 19:01

    뾰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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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샐맨불도마뱀
    2024/08/03 20:07

    순애 뾰이는 언젠나 환영이야!!

    (SIg8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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