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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죽음에서 다시 삶으로...영화 "히어애프터(Hereafter)"를 보고...(스포 포함 장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저평가된 수작,
히어애프터(Hereafter)(2010)를 뒤늦게 보았습니다.
여기 세 사람이 있습니다.
파리의 성공한 방송사 기자이자 앵커,
"마리"(세실 드 프랑스)...
애인과 떠난 휴가지에서 쓰나미를 당했다가
짧은 시간 임사 체험을 한 후 살아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짧고도 강렬했던 그 체험의 기억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노동자, "조지"(맷 데이먼)...
어린 시절 뇌척수염 수술 중
타인의 죽음을 투시(reading)하는 초능력을 얻었고
한 때 영매로서 자신의 능력을 생계로 이용했으나
죽음이란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환멸을 느껴 그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형은 능력을 왜 낭비하냐라고 동생을 다그치지만
스스로는 능력이 아니라 저주라 말합니다.
런던의 쌍둥이 중 동생, "마커스"(프랭키 맥라렌)...
약물과 알콜에 중독된 엄마로 인한 고통...
믿음직한 형, 제이슨이 있기에 버틸만 했지만,
형이 자신 대신에 엄마 심부름을 갔다가
자동차 사고로 죽으면서
그 버틸 힘마저 사라진 듯 합니다.
미테랑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로 하고 휴직한
마리는 죽음에 관한 연구에 빠져들고
죽음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정합니다.
삶과 현실에 집중해야 할 회사측에서
죽음에 집착하는 마리가 좋게 보일 리 없고
그녀는 점점 소외되고 배제되기만 합니다.
요리학원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 멜라니를 만난 조지는
자신의 저주같은 능력 때문에 그녀를 잃습니다.
회사의 명예 퇴직 압박에 상처 받고
형은 다시 영매 사업을 하자고 꼬드깁니다.
엄마는 약물중독 치료를 위해 요양소로 보내지고
마커스는 위탁가정에 맡겨지지만
형을 대신해 줄 침대가 있어야 잠을 자고
어디에 가든 형의 야구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마커스가 검색창에 입력하는 것은
"What happens when you die"입니다.
죽은 형과의 대화를 위해
위탁가정 부모의 돈을 훔쳐
영매들을 찾아가 상담을 받지만
돌아오는 건 실망, 배신, 더 큰 그리움일 뿐입니다.
죽음을 겪은 여자,
죽음을 읽는 남자,
죽음을 피해간 아이는
그렇게 그렇게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밀려 납니다.
여자의 책이 마침내 완성되고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생전 작업실을 보러 런던으로 떠나면서
결국 세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운명이란 자석이 세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소는
런던 도서 박람회...
그리고 이제부터 펼쳐질
세 사람의 "그 이후의(hereafter)"의 이야기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눈물이 저절로 흐르게 하고
억지로 감동을 쥐어 짜지 않아도
가슴이 뻐근해지게 합니다.
이제 비로소 세 사람은
다시 살고 웃고 사랑하게 될 겁니다...
어제 바로 이 곳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 14편을 소개했는데(이전 글 보기 참조)
이 작품을 그만 누락하는 실수를 저질렀네요.
2010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입니다.
서부영화, 전쟁영화, 스릴러, 음악영화 등
여러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장인이지만
그의 존재는 역시 드라마장르에서 가장 빛납니다.
세 주인공의 연기력은 나무랄 데 없었고
덤덤하게 힘을 뺀 맷 데이먼은 신뢰를 주며
조지가 좋아하는 여인, 멜라니로 잠시 등장하는,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연기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3 X 5, 플러스 알파로 이루어지는
시간, 공간의 구성과 편집이 완벽하고
삶과 죽음을 깊이 성찰한 노장 감독이 던져주는
화두는 그 울림이 크고 깊습니다
적재적소에 쓰이는 따뜻한 음악은 축복같은 덤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 본인의 작곡과 선곡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사랑하는 이유를
하나로 말해 보라면...
"영화가 끝난 후 찾아드는
그 쓸쓸함과 가슴저림"입니다.
다른 감독에게 맡겨졌다면
판타지나 심령영화의 소재로 쓰였을 재료들을
이렇게 진솔하고 담백하게 변주해내는 그의 내공에
새삼 감탄을 느끼게 한 수작이었습니다.
외롭고 스산한 이 가을...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거장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댓글
  • kkd1945 2017/10/02 04:52

    이 시간대에 묻히기엔 아까운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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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7/10/02 04:55

    kkd1945// 과찬이십니다...지독한 올빼미라 주로 이 시간에 글을 올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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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중기 2017/10/02 07:34

    예전에 본 기억이 있는데 혁명전야 님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ㅎㅎ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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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7/10/02 07:37

    송중기// 이 수작을 왜 놓쳤는지 땅을 치고 후회하면서 연속 두번을 보았네요. 연휴 중에 한 번 다시 보세요.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음악도 넘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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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나대로 2017/10/03 00:38

    기억해 놨다가 꼭 보겠습니다. 이전에 올리신 글도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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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7/10/03 00:57

    나는나대로// 고맙습니다...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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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플리와나 2017/10/03 01:08

    영화가 나온 한참 후 봤던 기억이 있네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사랑하는 혁명전야 님의 이유에 공감합니다. 제 기억에 영화 이후에 인도네시아였을 겁니다, 쓰나미가 크게 발생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묘한 감정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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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7/10/03 01:17

    머플리와나// "공감"을 느낄 때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4년 겨울이었죠...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현장을 나중에 갔을때 찾아왔을 상념이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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