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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대한민국 적폐 가문, 혼맥도 (스압주의)

미리 간단한 결론을 내리면,

1. 박정희아래의 중앙정보부장 하던이가 이후락이다.

2. 명언을 남겼다.(떡을 나르다가 보니 떡고물이 묻었다.)

3. 졸 해쳐먹었다.(요즘돈으로 한 2조) 떡고물이 2조면 떡은 대체 얼마냐?

4. 이회창까지 연결되어있다.

 

 

# 한국의 명문가문 - 01편 이후락家

대한민국에 수많은 명문가문 가운데 왜 하필 맨 첫번째로 후라이 이후락의 집을 들먹이는가?

대머리 까진 놈도 있고, 귀 늘어진 놈들도 있는데 왜 하필 이후락이냐?

그 이유는 길이길이 남아야 할 이후락의 업적이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후락은 수많은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있다.


대머리 까진 놈은 그래도 국회에 출석하기도 하고, 절에 좀 가 있기도 했다.귀 늘어진 놈은 추징금이나 많이 냈다.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민중들이 대머리 까진 놈하고 귀 늘어진 놈은 때려죽이라고 난리다.그런데 여기에 반해 박정희정권을 사실상 세우고 지탱해 온 부정축재자 이후락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내가 친구들을 붙잡고 무작정 물었다.

"혹시 이후락을 아느뇨??"

역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설령 이름 석자는 어디서 들어봤더라도 구체적으로 이후락이 어떤 인물이며, 그 인물이 어떤 업적을 통해서 오늘날 자신의 가문을 한국의 명문가문 반열에 올려놓고 지금도 대한민국 주류로서 떵떵거리고 사는 건지 잘 모르고 있었다.

울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울산시민들이 선정하기도 하는 등 아주 가관이다.


우선 이후락이라는 사람은 박정희 밑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호가호위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사람으로써 대한민국에 "떡값"이라는 말이 처음 회자되게 만든 사람이다.

"떡을 들고 다니다 보니 떡고물이 묻었다..."

이 천인공노할 말을 스스럼없이 한 분이다.
그런데 이 분이 받아쳐드신 떡고물이 무려 194억원이다.70년대 초에 194억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시 서울에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집 한칸을 마련하신 나의 모친에게 물었다.

"당시 얼마 주고 집을 사셨나요?" "200만원." 요즘 서울의 웬만한 집값이 2-3억 간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후락은 떡고물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조원에 가까울 만큼 쳐 잡수신 것이다.


이것은 대머리와 귀 큰 놈의 수준에 거의 근접하는 것이다.

당시 김종필, 이후락을 비롯해 전두환 신군부에게 박정희정권 하 부정축재자로 몰린 사람들이 해먹은 돈이 밝혀진 것만 총 887억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치면 10조원이다.


이후락 이분은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신 분인가? 우리는 이런 배짱을 배워야 한다.혼자서 2조원을 쳐 잡수시고도 떡고물이라고 말하는 저 배짱...다들 알다시피 이후락은 박정희 시절 공무원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공직자가 떡고물을 직무 중에 2조원씩이나 쳐 잡수신 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명예인가?

그것이 대가성있는 뇌물이든, 어떤 덜떨어진 놈들이 그냥 갖다 쳐 바친 것이든 이후락같은 공무원 10명만 있으면 대한민국은 거덜난다.


또 상식적으로 어떤 미친.놈이 대가없이 이익을 수수하게 해 주겠는가도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한다.그 이익과 대가성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수사 기법상의 어려움일 뿐 공무원 이후락에 대한 민중들의 도덕적 평가는 그와는 별개다.


미국 의회의 보고서에도 이후락은 스위스에 비밀정치자금을 예치하고 관리하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락 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가 스위스에 예치한 비밀자금이 60억달러.

당시 수출 100억 달러 달성 어쩌구 떠든 것과 비교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후락이 관리한 박정희의 스위스계좌는 박근혜로 명의가 바뀌었다고 한다.전두환이 10, 26 이후 박근혜를 스위스로 보내 돈을 찾아와서 민정당 창당 자금으로 썼다는 설도 있다.

그 때 따라갔던 보안요원이 수고비로 5만달러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


어쨌든 이후락이 검은돈을 얼마나 많이 받아먹었는지 이후락의 부인과 자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쳤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집에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이 하도 많다 보니 집주인이 내방객으로부터 받은 봉투를 소파 밑에 밀어 넣어 두었다가 깜빡 잊어 버려 청소하던 식모가 당시 돈 수백, 수천만원짜리 수표가 든 돈 봉투를 주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코흘리개이던 이후락의 셋째 아들 이동욱이 모씨의 집에 놀러왔다가 모씨의 어린 딸에게 돈 세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폐를 한 장씩 넘기면서)"돈은 1억, 2억, 3억... 이렇게 세는 거야"

박정희가 뒈지고 나서 전두환이 껍죽거리면서 조사 좀 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유야무야 다 처리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종결지어졌다.
큰 깡패들이 나타나면 동네 양아치들이 숨을 좀 죽이고 사는 그 정도였을 뿐이다.

공무원이 2조원이나 처먹은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단죄도 없이 그 불법적인 이익을 그대로 인정한 채 대중의 망각을 틈 타서 도리어 그 막강한 금력과 배경으로 명문가문 행세까지 하게 됐다.

그 엄청난 돈으로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초월읍 도평리, 기가 막힌 명당터에 대저택을 지어놓고 왕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아닌가?
별장과 그 부지가 무려 9000평이다.경상남도 남해군 상주해수욕장에도 붉은 지붕과 크림색 외관, 1층의 고급스러운 테라스와 2층의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무지하게 예쁜 별장을 지어놓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 되느냐 이 말이다.

김재규의 옥중수양록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엇으로 시정할 것인가.


지금도 천하를 활보하고 있는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정렴, 오정건, 장동운, 길재호 등 수많은 부정치부자의 재산을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슨 방법으로 환수하겠는가.

지금 참여정부의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이후락의 1000분의 1이라도 뇌물을 먹었다면 과연 조중동은 가만히 있겠는가?왜 이후락이 뇌물 처 잡수신 건 용서가 되고, 이병완실장이나 김승규원장은 안되는 거지?

조중동이 그 이후라도 이후락의 비리나 부정에 대해 무섭게 질타하고 심층취재한 적 있나?


천문학적인 돈만 받아먹은 게 아니라 한승헌 사법개혁위원장에 의하면 "김대중 납치사건"도 이후락의 작품이라고 한다.

야당의 대통령후보이자 정치지도자인 김대중 씨를 일본 동경에서 백주대낮에 납치하여 국내로 끌고오는 황당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것이다.


김대중납치사건은 박정희에 대한 이후락의 과도한 충성이 빚은 참극이었다.

물론 박정희의 암묵적인 동조 내지는 방관이 있었겠지.

그 뿐이 아니다. 71년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패배하고 김대중 후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박정희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이후락에게 졌다."


당시 이후락은 관권, 금권선거의 총 책임자였다.

이런 짓거리까지 하고도 그 패거리들이 뚫린 입이라고 민주주의 운운하는 거 보면 기가 차다.최종길 교수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가 활발하지만, 나는 불만이다.당시 이후락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진 부도덕한 인간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어디 최종길 교수 뿐이겠는가?
최종길 교수는 서울 법대 교수이고, 그 가족들도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가 있으니 이나마 진상규명의 노력이 있는 것이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 정점에 박정희가 있고, 그 밑에 HR이라고 불리던 이후락이 있는 거 아닌가?

그 끔찍한 국가적 폭력 "실미도 사건"의 책임도 이후락에게 있다.

경향신문을 강탈한 것도 이후락이다.


평생을 남 뒤나 캐고, 약점이나 잡아서 공작하고, 대한민국을 우간다같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국가의 녹을 먹는 민주공화국의 공직자가 국민은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박정희 눈에만 들면 된다는 식으로 온갖 아부를 하였다.

이후락은 교활한 인물로 매우 유명하다. 그의 교활한 삶을 자세히 보면 기가 차다.


김정렬은 이런 말을 했다.

"이후락이는 말이오, 국군 창건 당시에 대위로 시작한 놈이오. 그 보다 나이도 위고 계급도 위였던 박정희가 소위로 시작했는데 말이요. 해방 직후 귀국한 일본군 장교 출신들은 모두 군사영어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거기를 수료하면 일본군 시절의 계급을 참작해서 국군 장교로 임관시켰거든. 그런데 이후락이는 끝까지 자기가 일본군 대위였다고 우긴 거야. 하도 우기니까 미군 측에서도 사실을 뻔히 알면서 대위로 임관시켰지. 사실상 그 때부터 이후락이는 미군 측과 거래가 있었겠지"


박준규는 이후락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5.16 후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 이후락이가 내 옆방에 있었는데 이 자가 얼마나 약던지 삽살개처럼 굴더니 먼저 빠져나가더구먼."


물론 박정희라는 사악한 인물이 부하들을 그렇게 만들어 이용한 측면이 많다.또 사람을 써먹고는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식으로 용도폐기하는 것도 물론 박정희의 특기다.어떻게 보면 이후락은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정을 해 주기에는 죄악이 너무 크다.

또 이후락은 미국 CIA가 박정희 주변에 심어놓은 첩자라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이후락은 박정희의 반민주적 행각을 앞장서서 도와준 악질 앞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민중의 인권을 짓밟았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욕하면 중앙정보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다가 죽여버리기도 하고, 각종 죄목을 붙여서 간첩으로 만들기도 하는 그런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노동조합 만들려고 하는 사람을 잡아다가 가두어 버리는 그런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국가정보기관이 정치인들을 시도 때도 없이 도청하고,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그런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지성인이라는 대학교수나 대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담은 글 한 줄 발표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체제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긴급조치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긴급조치를 위반한 사례를 허락없이 발표하거나 신문에 보도하면 다시 긴급조치 위반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체제였다.


이것이 박정희가 제시한 국가비전이었고, 이후락은 이 국가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충직한 개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자였던 것이다.물론 개노릇을 하면서도 한눈을 팔면서 열심히 떡고물을 주워먹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좋다. 개노릇도 좋고 떡고물 주워먹었던 것도 좋다.

그러나 이 대명천지에 뻔뻔스럽게 한국의 명문가문 행세를 하는 꼴만은 제발 보고 싶지가 않다.이후락과 형님 동생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신진자동차의 김창원, 극동건설의 김용산, 대농의 박용학, 한국화약의 김종희, 호남정유의 서정귀 등이 소위 말하는 이후락 5인방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화그룹의 창업자 일명 "다이너마이트 김" 김종희다.SK 창업자 최종건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이들은 모두 이후락과 사돈을 맺게 됐다.


이후락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큰 아들 이동익은 박정희의 고교동창이자 당시 끗발 좀 날리던 호남정유 사장 서정귀의 딸과 결혼했다.

작은 아들 이동훈은 한화 창업자 김종희의 딸 김영혜와 결혼했다. 그러니까 현 한화회장 김승연과 처남 매부지간이다.

막내 아들 이동욱은 SK그룹 창업자 최종건의 딸 최예원과 결혼했다.


이렇게 보니까 무지하게 그럴싸하지 않은가?

박정희치하의 최대 이권이 무엇이었는가?

미국 석유회사 칼텍스와 유니언 오닐사의 한국 내 합작선 선정이 가장 큰 이권이었다.결국 이 엄청난 이권은 이후락 큰 아들의 처갓집인 호남정유와 이후락 둘째 아들의 처갓집인 한화그룹 계열사 경인에너지가 먹었다.


게다가 막내아들의 처갓집인 SK는 유공을 먹었으니...

헐 요즘 종이신문들이 이후락에게 치매기가 있다는 둥 말년이 불행하다는 둥 하면서 연막작전을 펴고 있다. 좆을 까라, 씹쌔들아...

이후락이는 젊을 때부터 바둑을 많이 두고, 비상한 두뇌를 지닌 인물이라서 내가 보기엔 절대 치매 안 걸린다. 이제 겨우 여든인데 벌써 엄살은...요즘 교통사고만 안나면 90세까지는 다 살 수 있다.그리고 젊을 때부터 그렇게 잘 쳐먹고 살았는데 뭘 죽는 시늉을 하나?

그 죄값을 다 치루고 가야지, 그냥 편안하게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후락에게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이후락의 사돈인 SK그룹 창업자 최종건과 조선일보 방일영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물론 이후락도 방일영과 깊은 관계였다.

방일영만?? 동아일보 김상만과도 깊은 관계였다.

"형님의 형님은 형님이다"라는 공식이 있지 않은가?

설마 그런 깊은 관계를 가진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 이후락 아직도 잘 먹고 잘 사니까 얼른 조지라는 칼럼을 쓰지는 못할 거 아닌가?


이후락 둘째 아들의 처남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인데 굶어죽게 내버려두기야 하겠는가?게다가 이후락 둘째 아들의 처남 김승연의 장인어른이 얼마 전까지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있던 5선 의원 서정화다.지금도 한나라당 고문으로 있다.서정화가 중정 차장 출신이니 이후락을 모를 리 없다.이후락에 대한 진상조사라도 하겠다고 하면 아마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 것이다.게다가 이후락의 사돈인 서정귀가 서정화의 6촌형이다.

게다가 김승연의 동생 김호연을 통해서 대한민국 모든 재벌이 또 다 얽히게 된다.

또 이후락 아들의 처남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의 큰아버지 김종철이 국회의원을 여섯 번이나 해먹은 사람이다.

김승연의 작은 아버지 김종식도 국회의원이었다.


내가 요즘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정화를 왜 이렇게 특별대우하는가를 의심스러워서 알아봤더니 얼마전에 죽은 윤덕주가 숙명학원 이사로서 자랑스런 숙명인상을 비롯해서 숙명학원에서는 거의 영웅으로 취급하고 있는 인물이었다.숙명학원 발전기금도 심심하면 내고, 한국 농구계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이다. 윤덕주는 이후락의 사돈 서정귀의 마누라다.

껄껄... 신문쪼가리들, 윤덕주가 박정희의 절친한 동창 서정귀의 마누라이며 그 덕분에 끗발 좀 날렸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농구계의 대모이며 숙명의 큰 별이 떨어졌대나 뭐래나.....

헐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대한농구협회 회장이 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이라는 사실이다.이후락의 사부인 윤덕주가 죽었을 때 조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실눈을 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어쨌든 또 이후락의 막내며느리 최예원의 사촌 오빠가 SK 최태원 회장이다.

사촌 올케가 바로 그 악명 높은 노태우의 딸 노소영이다.

이 노소영의 동생 노재헌의 부인이, 그러니까 노태우의 며느리가 신동방그룹 신명수회장의 딸 신정화다.

신명수는 노태우의 비자금을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 신정화의 이모가 송원자다. 이 송원자의 남편 이봉서, 그러니까 노태우 며느리 신정화의 이모부 이봉서가 요즘 이회창 정계복귀를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우리 민주개혁세력은 보고 있다. 이봉서는 이회창의 경기고등학교 후배다.
그 주변에는 아남그룹 회장 김주진과 한국유리공업 회장 이세훈 등이 있다.이 이봉서의 딸 이원영이 이회창의 군대 안간 큰 아들 이정연과 결혼을 했다.이로써 이봉서와 이회창은 사돈지간이 되었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후락의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후락 - 전두환 - 노태우 - 이회창은 한 통속이라는 강력한 증거다.

노태우의 며느리 신정화 쪽으로 가다보면 전두환이 또 나온다.

신정화의 아버지 신명수의 동생 신영수의 아들, 그러니까 신정화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이 이희상 한국제분 회장의 딸 이유경과 결혼을 했다.

이유경의 형부가 전재만이다.재만이 아버지가 바로 전두환이다.전두환 아들 전재만의 마누라 이윤혜의 동생 76년생 이미경의 시어머니가 송광자다.송광자의 조카가 이원영이다.

이원영의 시아버지가 이회창이다.

이회창의 구기동 자택이 전두환의 며느리 이윤혜의 명의로 되어있던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듯 이후락가는 여전히 막강하게 대한민국 명문가문 행세를 하며 여전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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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가문

 

두번째 

대충 요약하면

 

1. 홍진기가 누군가 하면 이승만 정권때 4.19당시에 양민들에게 발포명령을 하여 사형선고까지 받은 놈이다.

2. 경성제대 법대를 나와서 일제때 법관을 했다.

3. 삼성 이건희 회장(이병철 회장의 3남)의 마눌인 홍라희(장녀)의 아버지가 바로 홍진기다.

4. 홍라희의 남동생인 홍석현(중앙일보 회장)은 신직수의 딸 신연균과 결혼하는데 신직수가 박정희 시절의 중앙정보부장을 지냈으며,

   여동생인 홍라영이 전두환정권 실세인 노신영(3년 안기부장, 2년국무총리)의 아들과 결혼시켰다.

5. 신직수가 지금의 정수장학회, 옛날에 부일장학회를 뺏아와 박통에서 상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6. 홍라희(삼성), 홍석현(박통), 홍라영(전통)

7. 정략결혼의 최정상이며, 자식장사계의 그랜드 슬램을 이룬 사람이다.

 

 

 

# 한국의 명문가문 - 02편 홍진기家

 

언제건 어디서건 명문가문은 있었다. 그걸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명문가문은 과거에 위세나 부리고 행세나 하던 세도가와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그 위치도 존귀(?)한 것이어야 하지만 고결한 자격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공동체를 위해 사리사욕을 마다하고 헌신 하지 않고는 현대적 의미의 명문가문이 결코 될 수 없다. 하물며 이 공동체의 파괴를 도모했던 자들이, 알알이 구성원으로 박혀있는 집안이 명문가문 운운하며 떵떵거리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우리같이 미천한 백성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백성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건과 배경을 갖추지 않은 채 그저 가지고 있는 금력과 권력이나 앞세워 명문가문으로 둔갑한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홍진기 가문이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3ㆍ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불행하게도 홍진기는 지식인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는커녕 일제 식민지하에서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판사로 재직하였다.

홍진기의 약력을 보면 1945년 9월에 미군정청 법제부 법제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8월 15일에 해방이 됐는데 불과 한 달도 안돼서 민중에게 돌팔매를 맞기도 전에 친미 꼭두각시로 변신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런 행적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우리 헌법에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는 부분이다.
내가 생각할 때 전두환이 5.18 때 광주에서 양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나 4.19 때 이승만이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 죄질에 있어서 조금의 차이도 없다고 생각한다.
홍진기는 4.19 혁명 당시에 내무부장관직을 수행했고, 그 직전에는 법무부장관으로서 이승만에게 강력하게 계엄령을 건의했던 인물로서 이 당시에 홍진기가 지휘하는 경찰에 의해 서울에서만 무려 100여명의 양민들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광주학살의 발포책임자를 규명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대머리까진 새끼가 광주 피바다를 일으킨 것이라는 점을 심정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그 명령체계, 지휘계통의 진상을 명백하게 아직까지 밝히지는 못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이다.
광주학살 때 대머리가 한 짓과 마찬가지로 이 홍진기는 4.19 혁명 당시 양민에게 발포명령을 한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인물이다. 물론 최종책임자는 이승만이겠지만 적어도 광주학살과 비교한다면 "정호용"쯤 되는 인물이다.
3.15 부정선거로 민중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법무부장관으로 있던 홍진기를 이승만이 내무부장관으로 발탁한 것만 봐도 그 성향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홍진기가 직접 발포명령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지휘계통에 있던 사람이었고, 그 책임을 지고 곧바로 특사로 풀려 나긴 했지만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며, 적어도 그런 역사적 모순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발포 명령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승만정권에 부역하면서 반민주적 행태를 일삼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홍진기의 마산시위 관련 망언은 유명하다. 경남 마산에서 발포사건이 일어나 여론이 들끓자 다음과 같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마산시위의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 '광주사태는 빨갱이들의 짓'이라는 대머리의 주장과 매우 닮아있다.

여론이 양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에 대해 들끓고 일어나자 당시 정권의 실세라는 자의 입에서는 이런 끔찍한 말도 나왔다. "총은 쏘라고 만든 것이다."
이기붕이 부통령 사퇴를 결심하고 성명서를 작성했으나 홍진기는 장경근, 한희석 등 몰지각한 자들과 함께 머리를 굴려 "사퇴를 고려한다."라는 문구로 바꾸기도 했다. 정권연장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이 홍진기의 머리에서 나온 "고려"라는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죽고 다쳤는지....
이런 죄를 홍진기는 쏙 빠지고 모조리 곽영주와 정치깡패들에게 뒤집어씌운 것 아닌가?
게다가 홍진기는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는 중에 경향신문을 전격폐간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국가보안법 파동... 그런 홍진기가 중앙일보를 창간해서 언론자유를 말하다니 가소롭지 않은가? 조봉암 사건도 그 즈음에 일이다.
어쨌든 대한민국 썩은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 오늘의 홍진기를 만든 것이지, 제대로 된 언로가 열려 있는 사회였더라면 오늘의 홍진기는 존재할 수가 없었고, 그 홍진기의 자손들이 지금처럼 대한민국 주류로 행세하며 살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이쯤되면 왜 4.19를 미완의 혁명이라고 말하는지 모두들 이해가 갈 것이다. 30만명의 엄청난 군중이 부정선거와 부패정치에 신물이 나서 거리에 모여 시위를 하는데 거기다 대고 무차별 사격을 가할 것을 명령한 사람이 여전히 대한민국 명문입네 하고 떵떵거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 우울한 풍경인가?
광장을 피로 물들인 사람이 광장의 주인이다.
광장을 피로 물들인 홍진기는 약 5년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당대 최고의 사업가 이병철과 결탁하게 된다. 그 사이에는 훗날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이 있었다. 홍진기가 감옥에 있을 때 이병철은 신현확을 통해 옥바라지를 지극 정성으로 하며 홍진기와 손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고급관료 + 재벌의 결탁을 통하여 "언론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머리를 쓴 것이라 보여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중앙일보가 삼성의 사보로써 곡필을 일삼았던 궤적은 너무 진부하여 반복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병철의 호암자전을 보면 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언론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병철은 언론의 힘이 정치의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어쨌든 홍진기의 큰 딸 홍라희와 이병철의 세째 아들 이건희가 결혼함으로써 고급관료 + 재벌의 결탁은 더욱 굳건한 반석 위에 올라간다.
이런 배경 속에 만들어진 언론사 중앙일보에 대해 어떤 일말의 양식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홍진기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장남 홍석현을 신직수의 딸 신연균과 결혼시킨 대목이다. 이 신직수라는 인물은 나중에 자세히 더 살펴볼 가치가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신직수는 불과 36살의 나이에 검찰총장을 꿰찬 사람이다. 그 이유는 박정희가 5사단장으로 있을 때 법무참모였기 때문이다. 홍진기보다 나이가 10살이나 어리다. 같이 놀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기는 신직수를 사돈으로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박정희정권의 실세이기 때문에... 부실한 자신의 박정희정권 인맥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신직수는 육사+법조인 즉 육법당의 초대 당수격의 인물이다. 민복기와 더불어 대한민국 검찰의 자존심을 망가뜨린 인물이다.
검찰총장을 무려 7년 6개월 동안 재임했다. 중앙정보부장도 무려 3년 동안 역임했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박근혜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이었던 부일장학회의 포기각서를 받아낸 인물도 바로 신직수다. 10만 147평의 땅과 막대한 주식을 빼앗아 박정희의 손아귀에 안겨준 것이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는데 앞장섰던 것이 중앙정보부임이 밝혀지면서 당시 중정부장 신직수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박정희가 죽기 직전에 대통령 법률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끔찍한 유신헌법을 구상한 인물로도 손꼽힌다.
이 신직수가 바로 홍진기의 장남 홍석현의 장인이다. 중앙일보가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신직수에 대해서도 한국의 언론은 대체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침묵의 카르텔이 또 작동하는 것이다.
신직수의 두 아들은 사업가라고 한다. 글쎄.. 동강기업, 광륜상사?? 이런 회사도 있나? 이거 혹시 유령회사 아닌가? 내가 아무리 찾아봐도 번듯한 사업을 하는 신창균, 신황균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경영인명록까지 뒤져봐도 없다. 뭐지?? 혹시... 갑자기 패션 70s가 떠오른다. 껄껄.. 그럴지도 모르지.
신직수는 이동원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이동원은 박정희 하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자다. 굴욕적인 한일협정 당시 외무부장관이었다. 그 때 수석대표가 정몽새의 장인 김동조다.
이동원의 저서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통령을 그리며.." 헐..
이 사람이 요새는 학원사업에 나섰다. 동원학원이라는 건데.. 문어발식으로 무섭게 확대되어 나간다. 그 확대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그의 딸 이정은이다. 44살의 나이에 학장이 되었다. 이정은의 남편은 한일투자신탁 사장 이정진이다.
이동원은 한진그룹 조중건과 사돈을 맺었다. 조중건의 딸이 이동원 집에 들어왔다. 따라서 홍진기가문과 한진그룹이 전혀 상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홍진기의 사돈 신직수의 손자들이 노는 것도 한번 쭈욱 살펴보았다. 거의 미국물을 먹기 위해 준비 중이거나 미국물을 먹고 있다. 이 아이들이 이제 미국물을 먹고 돌아와서 자랑스런 주류로서 민중들을 또 가르치려 들 것 아니겠나?
여기까지의 홍진기 가문 혼맥은 빙산의 일각이다.
홍진기는 장녀 홍라희를 통해서 대한민국 최대재벌 삼성의 엄청난 인맥을 장악했고, 장남 홍석현을 통해서 박정희정권의 인맥과 손을 맞잡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인 막내딸 홍라영을 통해서 전두환정권의 실세였던 노신영과 사돈을 맺은 점이다.

노신영은 전두환정권 초기 외무부장관을 지내다가 3년간 안기부장을 지내고 또 2년간 국무총리를 지낸 자다. 노태우와 더불어 전두환 후계자로 물망에 오르던 5공의 실세다. 장세동만 돌팔매를 받고, 노신영은 멀쩡한 거 보면 신통하다. 마치 곽영주만 뒤집어쓰고 홍진기는 멀쩡한 것과 꼭 닮았다.
노신영 또한 홍진기 못지 않게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앞으로 노신영 가문도 명문가문(?)으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노신영과 홍진기는 손을 잡는다.
노신영은 5공 실세인 것은 물론 노무현대통령과 국회에서 만나 혼이 났던 유찬우와 사돈이다. 또 현대그룹 정세영회장과도 사돈이다.
또 홍진기는 둘째 아들 홍석조를 양기식의 딸과 결혼하게 한다. 양기식은 철도청장, 서울시장을 지낸 양택식의 동생으로서 이 양씨집안도 상당한 혼맥을 자랑한다. 양택식의 큰 아들 양원용은 태광그룹 창업자 이임룡의 사위다. 양택식의 딸 양정아는 전두환에게 사랑을 받던 한일그룹 김한수회장의 며느리다. 이 김한수와 노태우의 처남, 그러니까 노태우의 마누라 김옥숙의 오빠인 김복동과 사돈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기가 찰 것이다. 김복동의 딸 김미경이 김한수의 며느리다.
홍진기가 설립한 중앙일보는 아들 홍석현으로 이어졌다. 홍석현의 누나가 삼성그룹 이건희회장과 결혼했다. 이건희회장과 홍석현의 누나 사이에 이서현을 낳았다. 이서현은 김재열과 결혼했다. 이 김재열의 아버지가 동아일보 명예회장 김병관이다.
홍진기의 외손자가 이제 대한민국 최대재벌의 후계자가 되게 생겼다.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한번 생각을 해 봐라.
이승만 치하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양민에게 발포를 명령했던 사람이 살아나서 일단 대한민국 1등 재벌과 사돈을 맺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승만정권 이후에 박정희가 등장하여 권력에서 멀어질까 염려되니까 당시 실세인 신직수와 사돈을 맺고, 또 양기식과 사돈을 맺고, 그후 신군부가 출현하니까 노신영과 사돈을 맺고.....
그 자손들은 그 힘을 계승하여 더욱 강력한 힘을 재생산하고 또 다시 당대 최고의 권력을 찾아 혼맥을 맺고 또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선조들의 죄악을 은폐하고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이런 자들이 명문가문 어쩌구 하면서 대한민국 주류로 행세할 때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명무실화되는 것이다.
3ㆍ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이건 완전히 사문화되는 것이다.
불멸의 홍진기를 보면 전두환이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항변하는 것도 전혀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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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한국의 명문가문 3편 "김동조가"를 알아봅시다.

 

 

 

 김동조家

 

세번째 

대충 요약하면

 

1. 김동조가 누군가 하면 일제시대에 일본경관(순사)이었으며 독립운동등의 밀고자로서 활약했다.

2. 이사람을 외교계의 거목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한일의 대표적인것이 한일회담 수석대표를 한 것이다.

3. 한일회담은 일본 사죄문서도 못받고, 독도 영유권도 확실하게 못했고, 피해자 통계도 제대로 안했고 사망자 유해발굴 문제도 논의 못했다.

   (이걸로 박통정부가 일본에게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 받고, 개발자금도 받았다.)

4. 위안부 및 원폭피해자 문제는 거론조차 안했다.(위안부 할머님들!! 이쇅이가 쥑일놈입니다.)

5. 차녀 김영숙이 손명원(전쌍용차사장)과 결혼했는데. 여기 아들이 헤럴드 경제신문 사장 홍정욱(77막장)과 결혼했다.

6. 3녀 김영자가 허광수와 결혼했는데 여기서 나온 딸 허유정의 남편이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의 아들 방준오(조선일보 미래기획팀장이며 일마가 14살때 2천6백평의 토지를 가졌으며 조선일보주식의 7.7%를 가지고 있다.)다.

7. 4녀 김영명은 정몽준(버스카드 달인)과 결혼했다.

8. 3녀는 좆선일보, 4녀는 현대와 결혼시켰는데. 즉 헤럴드나 조선이나 현대나 다 그나물의 그밥이며 좆선과 현대만 움직이면 대한민국 다 움직이는거지. 머..

 

 

# 한국의 명문가문 - 03편 김동조家

 

하루가 정말 후딱 지나간다. 이 허접한 글을 쓰는 것도 시간을 꽤 잡아먹긴 하지만, 틈날 때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정치적 스승인 노무현대통령, 유시민의원의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옥같은 말씀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그 진의를 곰곰이 따져보고, 가끔 날파리같은 알바들하고 댓글 투쟁도 하자면 바쁘다. 또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과 가운데 미녀사진 열람이라는 독특한 취미가 있기 때문에 이거저거 하자면 꽤 바쁘다.
그러면서도 기쁜 것은 이런 글을 보고 서프앙들이 경악을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들은 다 상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프앙들도 이런 사실을 정확히는 아닐지언정 누구나 대략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서프앙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수구떼들의 만수산 드렁칡 행각에 울화가 치미게 만드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이 초선의원 시절 말씀하시길 "분노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고, 지금도 식지 않아서 한다"고 하셨다. 이 말을 수구 떼들이 이상하게 비틀어 가난과 학력컴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몰아붙였지만, 나는 "잘못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잘못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거기서 상응하는 변혁의 에너지가 솟구쳐 나오는 거 아닌가?
이것을 마치 성격파탄자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붙였는데, 노무현대통령의 분노의 정치는 요즘 단순히 여야가 비생산적으로 정쟁하는 식의 증오의 정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본다.
이 분노는 오히려 "사회적 울분"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봐도 울분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다. 그렇게 "공적인 울분"으로 정치를 시작하고,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정치적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거 아닌가?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따라서 분노는 참여의 동인이고 에너지라는데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인제의 뻘짓으로 노풍은 더욱 거세졌다. 김민새의 뻘짓으로 노풍은 되살아났다. 정몽새의 뻘짓으로 노무현은 승리했다. 뻘짓에 분노한 대중의 참여가 아니고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분노마저 표현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변모한다. 냉소주의가 팽배하여 정치가 저급화되는 원인은 분노의 계기, 분노의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내가 쓰는 이 글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만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한국의 수구떼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히고 설켜서 유착, 결탁된 모습을 확인하면서 서프앙들이 분노하고, 그 분노로 인해 다시 각성하고, 그 각성으로 인해 또 다시 전투화 끈을 조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작업도 전혀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잡소리가 너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늘은 한국의 명문가문 제 3편 "김동조 가문"에 대해 캐 들어가보자.

 

김동조라는 사람은 부산 출신이다. 우리가 흔히 외교계의 거목이라고 알고 있다. 왜 거목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수구언론에서 그렇게 부르니 그런 거 보다 하는 거다.
그러나 고위 외교관료직을 수행했다고 해서 무조건 거목이니 뭐니 하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했으며, 살면서 무슨

 

덕을 쌓았는지 그게 중요한 판단기준이어야지 무조건 고위 외교관료직을 수행했다고 해서 외교계의 거목이라고 불러주면 어쩌자는 거냐? 한국외교의 산증인이라고 하면 그나마 이해하겠다.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본 큐슈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후생성과 내무성에서 근무하면서 일제에 충성하는 것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이다.
한국전쟁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브루스 커밍스라는 유명한 학자가 쓴 "한국현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회가 어수선한 시점에서 체계도 안 잡힌 대한민국 정부하에서 일제 고급관료 경력으로 들어와 이곳 저곳 부처를 넘나들며 일하다가 느닷없이 외무부 정무국장이 되고 이승만정권하에서 불과 서른 여덟살의 나이에 외무부 차관이 되었다.
정통 외교관료도 아니고, 내가 보기엔 단순히 일본사람들과 가깝다는 이유로 승승장구한 거 같다.
충격적인 것은 굴욕적인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수석대표였고, 주일대사였다는 점이다.
 

댓글
  • 록발라드가수 2017/09/19 12:06

    너무 길어요

    (G8Qcdj)

  • 쫌바꿔보쟈 2017/09/19 12:09

    아따 길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이후락이 재단이였음ㅜㅜ

    (G8Qcdj)

  • 메갈효수 2017/09/19 12:56

    제목을 보고 문득 이 짤이 생각났습니다.(+스압 표시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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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신 2017/09/19 14:49

    좋은 글입니다. 내용은 거의 책 한권 수준입니다. 한참읽었는데 아직도 이후락.....
    집에가서 정독해야 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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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칰칰팩폭 2017/09/19 16:35

    정독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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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문난잔치 2017/09/19 16:42

    정성에 추천! 즉, 대한민국은 조폭들이 기득권인 나라네요.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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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돌이복돌이 2017/09/19 16:48

    책이나 PDF 형식으로 배포하시는게 좋을거 같아요.  웹으로 보기엔 가독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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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플러증후군 2017/09/19 16:57

    와....
    이건 두고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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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우리 2017/09/19 17:12

    정독을 위해 스크랩해둡니다.
    한 일가씩 시리즈로 해두셨어도 좋을 뻔...
    작은 폰으로 보니까 더 읽기 힘드네여ㅠ

    (G8Qcdj)

  • 아빠만두 2017/09/19 17:15

    초반부만 읽었는데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러한 적폐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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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호감목룩보기 2017/09/19 17:33

    정말 지독하게도 엮여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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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빠염 2017/09/19 17:34

    정말 두고 두고 정독해야할 글 입니다.
    작성자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햐~ 정말 갈길이 멀고 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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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昌天列河 2017/09/19 17:43

    역사게에 써도 무방하겠네요.
    차후에 정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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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주는요정 2017/09/19 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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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뚜르 2017/09/19 18:01

    첫 문단만 읽고 일단 스크랩해두었습니다. 내용이 굉장히 길긴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써 나라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알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작성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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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하른푸 2017/09/19 18:14

    유용한 글이네요. 계속 참고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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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소의힘 2017/09/19 18:15

    오오 좋은 자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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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간다방 2017/09/19 18:16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주입받고 배워야 했던 시절에 넘어 이제 놈들의 민낯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제 뒤집어쓴 양가죽을 벗기고 매우 곤장을 치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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