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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게 '역대급 어마무시한 항공사'를 읽고 생각난 경험담


2014년 겨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겨울방학을 맞아 이곳저곳 여행하고 있었죠. 미국 땅덩어리가 원체 넓다보니 비행기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했는데, 저는 여유롭지 않은 유학생이기에 에어트랜이나 젯블루같은 저가 항공사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하루는 카지노에서 다음 학기 학비나 벌어보자는 마음에 룸메이트와 함께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4~5시간 짜리 비행기에 탑승했어요. 저가항공은 스케쥴이 썩 좋지 않아 밤 비행이 많았고, 그날도 역시 새벽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기내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저는 움직이는 것 안에서 잠을 못 자는 체질이라 탑승하자마자 수면제를 먹고 잠들기로 했습니다. 저는 창가에, 바로 옆에는 룸메이트, 그 옆에는 백인 아저씨가 앉았고, 저는 이륙도 하기 전에 잠들었습니다.  

한참 자고 있는데 이유 없이 잠에서 깼습니다. 밤비행에선 승객들을 재우려고 어둡게 해주곤 하는데 기내가 엄청 밝고 어수선했어요. 이상하게 손이 아파서 보니 룸메이트가 하얗게 될 정도로 제 손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약에 취해서 비몽사몽한 상태라 상황이 인지가 잘 안됐는데 나중에 룸메가 말해주기를 엉엉 울고있었다고 하네요. "언니 어떡해. 우리 떨어지는거 아냐?"고 제 손을 잡고 바들바들 떠는데 저는 약에 취해서 눈도 제대로 못뜨고 "괜찮아. 안떨어져"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순간 멀미가 나는 것 같아서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는데 옆옆자리 아저씨가 강압적인 태도로 당장 앉으라고 하더군요. 사실 아저씨가 앉으라고 하기도 전에 저는 도로 앉았어요. 터뷸런스가 너무 심해 중심을 못잡고 의자에 주저앉은 거죠. 조금씩 상황이 인지가 됐습니다. 

비행기는 무서울정도로 흔들리고 있었어요. 승무원들도 기내 앞뒤에 앉아 벨트를 메더군요. 기내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는데, 선체가 크게 흔들릴때마다 사람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 아기가 우는 소리, 수납장 가방이 흔들리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흔들림이 심한지 보려고 창문덮개를 열고 밖을 내다보는 순간 기절할 뻔 했습니다. 새까만 하늘, 흔들리는 날개, 번쩍거리는 번개에 맞춰 순간적으로 보이는 엄청난 양의 먹구름........ 완전히 아포칼립스의 현장이었어요. 번개가 코앞에서 치기도, 저 멀리에서 치기도 하는데 간간히 내리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번쩍거리고..... 눈앞에서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먹구름 바로 아래에서 비행하고 있었던 거에요.

옆에서 저보다 두 살 어린 룸메는 흐느끼고 있는데 달래줄 정신이 없었어요. 쏟아지는 번개와 먹구름 속에서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는 위 아래, 양 옆으로 수도 없이 흔들리고 있는데 졸음과 약기운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어요.

저는 머리 위에선 깜빡거리는 새빨간 터뷸런스 등을 보며 빠져들듯 잠에 들었고, 깨어났을 땐 비행기가 착륙까지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당시에 제가 본 풍경들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헷갈렸어요. 다만, 룸메가 돌아오는 비행기를 취소하고 메이저 항공사 티켓을 예약하는 것을 보고 진짜로 나는 번개폭풍 속에서 비행을 했고, 어쩌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구요. 동시에 약을 먹은 덕분에 룸메가 겪었을 공포를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그날 얘기를 하는데, 당시 무서웠던 감정을 실감나게 전달할 수 없어서 슬퍼요. 오늘 오유에서 허리케인 속 비행하는 항공사 이야기를 보고 불현듯 생각나서 저도 써 보았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그리고 항상 좋은 비행 되세요. 
댓글
  • 잉뿌잉이잉 2017/09/11 23:00

    무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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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쭈굴쭈굴 2017/09/12 00:11

    으아..아찔.... 비행기 한번이라도 타본 분들은 상상만해도 이 공포 아시지 않을까요
    저는 이착륙 or 난기류의 흔들림 속에서도 유서를 써야하나 생각하는 겁쟁인데 이 상황이라면 죽었을것같아여;;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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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넴은없어요 2017/09/12 00:16

    이글을 보고 생가나서 적습니다 중학생때 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인가 갔죠
    오래전이라 다른 상황은 기억이 안나더군요 비행기안에서 동체가 위아래로 요동치더군요
    사실 고막때문에 짜증나서 오히려 스릴나더군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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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뾰족한오징어 2017/09/12 00:19

    아 글만 읽어도 기절할 것 같아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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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ron_Man 2017/09/12 02:11

    무셔우셨겠어요ㅜㅜㅜ 근데 저가항공이어서라기보단 가끔씩 터뷸런스 엄청날 때 있는거 같아요.
    저는 대한항공이었는데 미국-한국 올 때 비행기가 엄청 흔들린 적 있었네요.
    살면서 비행기타고 멀미하기는 처음이었네요. 진짜 추락하는 줄....
    근데 추락하면 어차피 죽을 것 같아서... 다시 잠들었어요ㅋㅋㅋ 한 손엔 멀미봉투를 꽉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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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뿌잉이잉 2017/09/12 04:44

    이야... 이건 진짜 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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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프물범뀨 2017/09/12 12:24

    저도 비행공포증이 심해서 항상 우황청심환을 구비해서 탑승전 꼬박꼬박 챙겨먹는데요
    이건 저가항공이든 고가항공이든 똑같습니다.
    심지어 고가 저가 조인서비스도 하는걸요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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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칭찬합시다 2017/09/12 12:49

    멀미나시면 화장실 가지마시고 좌석에 있는 봉투 쓰세요.
    옆옆 아저씨가 강압적으로 앉으라고 했다는데..잘하신거라고  봐요.
    기체가 심하게 흔들릴때 일어서면 일어서신 분이나 앉아계신 분 모두 위험합니다.
    심하면 그냥 몸이 공중에 붕뜨고 천장 박고 떨어지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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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철대오구국 2017/09/12 12:53

    보통 육지에서 해양으로 나가는 곳이나 반대의 경우 또는 적도 근처 다도해 지역  통과시 난기류가 심한 편입니다.
    태평양 같이 넓고 잔잔한 곳은 상대적으로 난기류가 덜 발생.
    그래서 휴향지는 하와이 강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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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찮은닉넴 2017/09/12 13:07

    비행기 타면 항상 느끼는건데,
    이렇게 좌우 앞뒤 상하로 뒤틀리는 것이 좀 심하다 할정도로 뒤틀리는데,
    일부러 이렇게 만드는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도 내부 시설들이 탈락되지 않고 제대로 동작한다는거도 신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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