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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항쟁 당시 탱크를 막아선 사나이

한 사내가 길 위에 서 있다. 무언가 담겨 있는 묵직한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쥔 채. 이 남자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탱크다. 한 대의 탱크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라는 천안문 앞의 긴 길을 따라, 족히 열대가 넘는 ‘탱크 무리’를 마주하고 있다.

 

탱크는 금세라도 사내를 짓밟을 수 있다는 듯 조금씩 앞으로 나선다. 탱크가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그는 악착같이 포신 쪽으로 몸을 옮긴다. 그렇게 사내는 물러서지 않고, 탱크를 막아선다. 그 사내는 ‘Tank Man(탱크 사나이)’이다.  

 

사내가 막고자 한 것은 시민을 짓밟으려 한 군홧발이었다. 중국의 시민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중국의 민주화를 외쳤고, 무장한 군인과 탱크는 시민을 포위했다. 그렇게 광장은 피로 얼룩졌고, 여태껏 정확한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사망자만 천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괜한 억측이 아니다. 탱크를 막아선 사내의 행방 역시 전해지지 않는다. 이른바 천안문 사태다.

 

이날 탱크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영국의 사진작가 스튜어트 프랭클린(Stuart Franklin, 1965-)은 이렇게 회상한다. “인민군 탱크가 인파를 향해 달려오자 한 청년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탱크를 가로 막았다. 탱크가 청년을 피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청년도 오른쪽으로 틀고, 다시 탱크가 방향을 잡으면 청년도 용수철처럼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주시했다. 탱크가 무자비하게 청년을 깔아뭉개고 통과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2017년 한국이다. 한 노인이 광화문 광장에 서 있다. 시민 각개의 외침이 광장에 모인 그날,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은 ‘폴리스 라인, 아름다운 질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라는 문구의 띠를 두른 채 차벽을 쳤다. 게 중 몇몇은 광장에 모인 사람을 향해 직사로 물대포를 쏘아댔고, 노인은 자신을 정조준한 물대포를 맞다 쓰러졌다. 농민 백남기 씨다.

 

의식조차 없는 그에게 더 조준할 것들이 남았는지, 차가운 말들이 날아와 꽂힌다. 한 여당 의원은 “선진국에선 총을 쏴 시민들이 죽어도 정당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언론에서는 “폭력난동과 평화시위도 분간 못하냐”고 되뇌어 말한다.

 

이제 폭력시위(불법)냐, 평화시위(합법)냐의 논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탱크맨과 농민 백남기 두 사내 모두 내 몫을 대신해 광장에 서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수많은 ‘나’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 주고, 수많은 ‘나’들의 자리를 채워 주었다. 조금이나마 나은 역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내 몫을 대신 치러주는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대신 터져 나온 희생들이 모여 4.19를 만들고, 5.18을 만들었을 게다. 따져보면 나의 공포와 두려움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무자비함은 시공간을 가른 채 존재해왔다. 어쩌면 항시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2의 탱크맨, 제2의 백남기 역시 시공간을 가른 채 존재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탱크맨과 농민 백남기는 곧 우리들의 또 다른 이름이자, 비어 있으니 앞으로 채워가야 할 이름이다.

 

밖이 소란스럽다. 탱크도 몰려오고, 최루액 섞인 물대포도 쏟아진다. 우리는 기꺼이 탱크를 막아설 수 있을 것인가. 기꺼이 물대포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겨진 우리의 도리는 분노와 저항이다. 나부터 차벽을 막아서자. 나부터 차벽을 두고 욕이라도 내뱉자.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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