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339214

[단편] 오디션 우승자를 바꾸는 방법

[ 대국민 오디션 슈퍼 케이팝! 대망의 결승전 마지막 진출자는~~~~~ 홍혜화 양입니다! ]
[ 와아아아~~! ]

중년의 사내는 언제나 상황을 정확히 관조할 수 있는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딸이 오디션 프로의 결승에 올라갔음에도, 우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딸의 결승 상대인 김남우가 우승할 것이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단순히 팬카페 회원 수로만 비교해도 2배가 넘는 차이가 있었다. 거기에 이 프로그램의 문자 투표 비율은 여성이 높았고, 실력으로 친다 해도 냉정하게 김남우가 윗선이었다. 쇼맨십도 김남우가 더 좋았다. 자신의 딸처럼 착하기만 해서는 될 게 아니었다.

사내의 판단에, 자신의 딸은 오디션 프로의 2등 타이틀로는 성공할 수 없는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나마 1등을 해야지 어떻게든 성공 길이 열린다는 게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자신의 딸이 1등이 될 수 있을까?
결승전 생방송까지는 겨우 1주일. 딸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겠지만, 딸의 노력 같은 것으로는 불가능했다. 

김남우다. 김남우가 답이었다.
이 일주일 안에 김남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야 했다. 그것도 동정을 받을만한 사고가 아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말이다.
딸이 우승할 가능성은 그나마 그 방법뿐이었고, 사내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볼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설 순 없었다. 역풍을 맞았다가는 모든 게 끝장이다.

그래서 사내는 완벽하게 얼굴을 가린 채로 흥신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구구절절하게 연기했다.

" 슈퍼 케이팝에 나오는 김남우를 아십니까?! 저는 그 애새끼가 잘되는 꼴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습니다. 그 새끼가 내 아들을 왕따시킨 바람에 내 아들은 자살시도까지 했었습니다! 지금도 내 아들은 집 밖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새끼를 망가뜨릴 겁니다! "
" 음.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
"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사장님은 도움만 조금 주시면 됩니다. 그 계획은-. . . "

몇 번을 설명한 사내의 계획은 대충 이러했다. 

'ㅁㅁ빌딩'에서 합숙하고 있는 오디션 참가자들은 8~9시쯤에 구내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김남우는 밥을 먹고 나면 항상 비상계단 쪽에서 담배를 피운다. 당신은 식당에서 대기하다가 김남우가 나타나면, 비상계단으로 따라가서 시비를 붙이고, 할리우드 액션으로 넘어져라. 그러면 숨어있던 내가 그 모습을 찍은 뒤 악의적으로 날조된 사실을 퍼트리겠다.

" 그 빌딩의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것 정도는 하실 수 있겠지요? "
" 그건 가능합니다만...흠. "
"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소문을 내는 것도 제가 할 것이니, 사장님은 위험부담도 없고 말입니다. "
" 흠... "

흥신소 사장은 고민하는 얼굴을 가장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군요. 그런데 혹시, 수고비는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
" 딱 100만 드리겠습니다. "
" 100만이요? 음~ 글쎄요...? 백만이라. 백만.. "

사장은 뜸을 들이며 모호한 표정을 지었고, 사내는 그가 하는 양을 눈치채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 시세는 다 알아보고 왔습니다. 이런 단발에 100만 원은 많은 금액 아닙니까? 만약 거절하신다면, 저는 그냥 포기하겠습니다. "
" 아~ 포기하시라는 말씀은 아니고..하하하. 뭐, 아버님의 심정을 생각해서 100만에 해드리겠습니다. 그런 양아치는 벌을 받아야지요! 하하 "

황급히 태세를 바꾼 사장은 웃으며 악수를 내밀었다.
계약 후에도 사내는 끝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빌린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는 식으로 주의했다. 그리고 말하는 도중에 일부러 '홍혜화 년'이라는 표현을 섞으며,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를 욕하기도 했다.
그의 기준으로 지금까지는 아주 완벽했다.

한데 실행 당일, 사내는 속으로 쌍욕을 내뱉어야 했다.

' 이 빌어먹을 새끼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

사내는 비상계단의 상부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김남우를 훔쳐보고 있었다.  
답답한 일은, 분명히 아까 확인 문자를 보냈던 흥신소 사장이 도대체가 나타나질 않는단 것이었다.

김남우의 담배가 점점 타들어 갈수록 사내의 가슴도 타들어 갔다. 오늘을 놓치면 또 기회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끝내, 

' 이 빌어먹을 새끼가 진짜!! '

김남우가 담배를 모두 태우고 떠날 때까지 흥신소 사장은 나타나질 않았다.

사내는 당장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

한데? 돌아오는 것은 능글맞은 목소리였다. 

[ 아~ 이거 참, 제가 중요한 일을 하느라 말입니다. 오래 계셨나? 미리 연락을 드릴 걸 그랬네~ ]

" 뭐요?! "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사내가 폭발하기 직전, 사장이 말했다.

[ 김남우가 핸드폰을 식당에 두고 갔더군요? 잠금장치도 없이 말입니다. 하하하하. ]

" ?! "

[ 긴말 않겠습니다. 300으로 합시다. 300으로 해주시면, 김남우를 완벽하게 매장해드리겠습니다. ]

사내의 눈이 커졌다. 김남우를 완벽하게 매장할 수 있다고?

[ 자세한 말씀을 드리진 못하겠지만, 이 친구 아주 묘한 취미가 있더군요. 흐흐흐. ]

" ... "

사내는 고민했다. 안 그래도 이 조작만으로는 파급력이 약할지도 모른단 불안함이 있었다. 루머를 만든다 해도 김남우 팬들이 투표로 밀어붙이면 역전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
하지만 갑자기 300만? 그건 괘씸했다. 뭘 하든 합리적인 사내의 성격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 사장의 다음 말이 사내의 고민을 결정지었다.

[ 장담하는데, 김남우는 앞으로 대한민국 땅에서 못 살 겁니다. ]

" ...알겠습니다. 300만 드리겠습니다. "

지금 사내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김남우의 확실한 파멸이었다.

[ 아이고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 후. "

사내는 제발 그 말대로 이기만을 바랐다.
한데?

[ 그럼,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이만! 아는 기자분과 통화를 좀.. ]

" 예? 아니 뭣- "

사내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졌다.
머리 좋은 사내는 단번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 이 새끼 김남우 기사를 팔아넘길 생각이구나! 300만이든 뭐든, 어차피 처음부터 폭로할 생각이었어! "

사내는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뉴스로 팔 정도의 일이라면 엄청난 약점일 테니, 김남우는 확실하게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면 300만 정도는 싸다.

사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기분이 좋아진 사내는 여기까지 온 김에 딸의 얼굴을 보고 가기로 했다. 
혹시 아직 식사 중일까 싶어 일부러 구내식당 쪽을 지나쳐가던 사내는, 식당의 대형 TV 앞에서 굳어버렸다.

[ 긴급속보입니다! 오디션 프로 슈퍼 케이팝의 결승 진출자 김남우 군과 홍혜화 양의 'O스 동영상'이 유출되었단 소식이 지금 막-. . . ]

" ...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8/18 21:57

    조~금 아쉽게, 한발짝 더 나가진 못했네요. 예전에 쓴 이야기들을 보다보니, 한발짝 더 나가는 묘미가 있던데 말입니다. 흐하하하. 좀 더 궁리해볼게요!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저도요!

    (M7a5b3)

  • 데비왈츠 2017/08/18 22:2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M7a5b3)

  • Dementist 2017/08/18 23:03

    우웩 잘읽었어요 ㅎㅎ

    (M7a5b3)

  • 쿠겡쿠겡[정학] 2017/08/18 23:29

    우승자가 사라진 오디션이네요 ㄷㄷ;;

    (M7a5b3)

  • 굿타임팅500 2017/08/18 23:37

    꼬릿말의 여운이 좋네요

    (M7a5b3)

  • 가담항설 2017/08/19 00:32

    가족간의 이야기의 중요성ㄷㄷㄷㄷ
    연애할땐 알리는게 중요하네요...ㅋㅋㅋ
    근데 그 동영상이 합의하에 한건지 합의없는 김남우의 몰카였는지에 따라 어쩌면 홍혜화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고 모르겠네요!

    (M7a5b3)

  • 라리랑 2017/08/19 02:37

    아.. 아부지 ㄷㄷ

    (M7a5b3)

  • 무지개솔로처 2017/08/19 13:44

    축베오베 ㅎㅎ
    짧고 강렬하네요. 일타이피! (아부지여 ㅜㅠ

    (M7a5b3)

  • 매일오유 2017/08/19 14:29

    와 존내 잼있다!!

    (M7a5b3)

(M7a5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