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ohabe.com/sisa/3286650
M8.2 CCD 열병
제가 고3이던 2008년.
저는 사진학과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카메라 상식 관련 구술 시험이 있었기에
여러 카메라 기초 상식들을 달달 외웠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게 CCD와 CMOS에 관한 항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CCD는 고급, CMOS는 저급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던 때 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야말로 옛 이야기죠)
그때부터 였을까요.
제가 CCD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이.
2008년은 카메라 계에서도 대단한 일이 있던 해였죠.
바로 캐논 5D Mark2가 등장한 해였으니까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풀프레임 디지털 카메라라니!
게다가 영상도 찍힌다니!!
저는 그저 그런 형편의 집안이었기에
저의 EOS 5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부잣집 입시생들의 5d mark2를
옆에서 가끔 만지작거리기나 했습니다.
그런 5d mark2가 CMOS 센서였는데..
그래도 아직은 CCD가 발색은
더 좋다는 평이 있을 때 였습니다.
심지어 그때는 아직까지
디지털은 필름을 못 이긴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래도 마지막 낭만의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도 그 생각에
크게 동조하여 20장의 포트폴리오 전부를
흑백 아날로그 사진으로 준비해갔습니다.
암실에서 살다시피 해서
헛것이 보이고 몸에서는 독한 약품 냄새가 났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참으로 낭만적이고 그리운 순간입니다.)
사진학과에 무사히 진학하고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그때는 군대에
DCM(디지털카메라매거진)이 보급됐었습니다.
과월호를 쌓아 놓고 열심히 보던 저에게
눈에 띄는 카메라가 있었죠.
'라이카 M8'
사진학도였던 저에게 라이카는
꿈의 카메라 였습니다.
5d mark2도 비싸다 생각했는데
몇 배 더 비싼 카메라 였으니까요.
그리고 기술은 역시 독일이라는 이미지도 강했고요.
그리고 CCD 센서라니.
그 대단하다는 라이카의 첫 디지털 카메라에
CCD 센서를 쓴다니
역시 CCD란 대단한 것이구나!
그때의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천하의 코닥이 망하고
필름값이 한롤에 2만원이 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CCD는 옛 유물이 되어버린 시대.
그럼에도 제 가슴 한 켠에는
'CCD란 대단한 것'이라는 씨앗이
여전히 남아있었나 봅니다.
얼마 전 M10-p와 주미룩스 35mm 베츨라 에디션까지 구했습니다.
(https://www.slrclub.com/bbs/vx2.php?id=leica_forum&no=181245%29
'와 이대로 완성이다!'하는 강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뿌듯했죠.
그런데 역시나 인간은 욕망과 망각의 동물 아니겠습니까.
며칠이 지나니 무언가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고가의 장비이다 보니
'데일리'로 쓰기에는 심적 부담이 컸던 것이죠.
'아 역시 데일리 카메라를 구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호화롭게도 취미 사진의 영역으로 라이카를 쓰고 있지만,
취미의 취미 카메라일까요.
소총을 구했으니 권총이 필요한 느낌이랄까요..
(라이카 포럼 여러분들은 크게 공감하실거라 믿습니다 ^^)
그동안 신경 쓰였던,
아주 거슬렸던 M8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카 빨간 딱지를 싫어하는 저이기에
자연스레 M8.2 블랙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했습니다.
라이카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M8.2 블랙의 매물이 참으로 없더군요 ㅠㅠ
몇날 며칠의 잠복기였습니다.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M8.2를 검색했습니다.
ebay와 국내의 한 샵에도 매물이 있긴 했습니다만
터무니없는 가격이었죠.
긴 잠복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매물이 떴습니다.
SLR클럽 회원장터가 아닌
중고나라에 매물이 떠있어서 당황했습니다.
매물이 올라온 날짜가 며칠 지나있더군요.
덥썩! 물기 전에 다시 자기합리화의 시간을 거쳐야 했습니다.
'왜 지금 M8.2인가?'
'벌써 15년이 지난 디지털 카메라를 2백 넘게 주고 사는 것이 맞나?'가
구체적인 의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을 더 확장하면
'왜 라이카인가?'
로 이어지죠.
라이카에 입문할 때도 같은 질문을 던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돈이면 정말 최신, 최상의 카메라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라이카일까요.
정말 수많은 이유(와 변명)이 있겠지만
명품을 사는 이유는 크게 2가지 인 거 같아요.
첫째는 헤리티지, 둘째는 자기만족 이죠.
'라이카의 헤리티지'야 제가 풀어내지 않아도
수많은 곳에서 글로 영상으로 나와있으니 굳이 말하진 않겠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족인 듯합니다.
저는 사진을 전공했지만 현재 영상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쥐고 있지만
참 하면 할수록 사진과 영상은 다른 분야로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저에게 라이카는 '내가 사진을 전공했었다'의 훈장 같은 의미 입니다.
사진 예술가를 꿈꿨던 저에게,
직장인이 되어 사진 예술과 거리가 생긴 저에게
'한 때 인생을 사진에 걸어보려 했었다'는 훈장 같은 것이죠.
그래서 제일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떠나서 라이카만큼 이쁜 카메라가 없더군요.
영상 일을 하면서도 소니, 캐논 카메라를 제일 많이 씁니다.
결과물 확실합니다.
(심지어 초점을 자동으로 잡아준다니!!)
그런데도 저에게 있어서 소니, 캐논은
일을 위한 카메라라는 이미지가 큽니다.
그리고 기계가 알아서 다 해주는 느낌이 큽니다.
결과물에 '제'가 크게 끼어들 일이 없습니다.
굳이 내가 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이 좋은 기계로 이 정도 결과물은 당연히 뽑아내야 하죠.
라이카는 다르죠.
완전히 취미 영역의 카메라 입니다.
일단 손이 많이 갑니다.
초점, 노출, 감도 등등 직접 설정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갑니다.
한 장면 얻으려고 그 자리에서 버벅대며 여러 장을 찍어야 합니다.
근데 그 불편함 덕분에 '손맛'이라는 개념이 있는 카메라인 거 같아요.
그리고 불편함을 거친 결과물은 더 인상 깊죠.
왜냐면 제 '경험'이 좀 더 들어가니까요.
그야말로 주관적인 시선이기에 쉽게 공감을 얻긴 힘들 겁니다.
하지만 라이카에 빠지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죠.
취미의 영역은 그런 겁니다.
못 해도 되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도 됩니다.
왜냐면 취미란 그런 거니까요.
순전히 자기만족의 영역이니까요.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이런 생각까지 오니까 뭐 M8.2 안 살 이유가 없어졌죠. 질렀습니다.
아 사고 손에 넣으니 후련합니다.
그 애매한, 찝찝함이 사라집니다.
역시나 15년 된 디지털 카메라는 터무니 없습니다.
매우 느리고, 종종 다이얼 인식도 안 됩니다.
(m10 시리즈가 얼마나 훌륭한지 다시 한 번 느낍니다.)
그럼에도 재밌습니다.
아예 클래식으로 가자 해서 엘마도 구했습니다.
아 일단 너무 이쁩니다.
근데 올드 디카 + 올드 렌즈라
야생마 2마리로 모는 마차에 탄 느낌이랄까요.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그렇지만 색감도 그렇고
순광, 사광, 역광에 따라 아주 휙휙 달라집니다.
그래도 재밌습니다. 그리고 데일리 카메라로 산만큼
m10-p보다 더 많이 가지고 놀 듯합니다.
(상대적으로도 저렴하니
좀 더 마음 편하게 가지고 놀 수 있을 거 같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m8.2에 대한 글을 쓸 거 같습니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다음에 봬요!
(M8.2와 엘마를 결합해서 찍은 사진들을 글 마지막에 올려봅니다.
순광, 역광, 사광에서 색감 차이가 꽤 심하네요!
이 또한 재미라 생각하고 적응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IR 컷 필터를 못 구해서 그런 걸까요.
다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생겼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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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은 추천 !!
추천 감사합니다! 여러 렌즈 작례들 잘 보고 있습니다 ^^
M8.2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어떤 카메라는 손이 가지 않아 일년 동안 50컷 정도 찍고 처분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M8.2를 다시 구매하고는 두달 동안 5천컷을 찍을 정도로 재미있게 즐기다가 어제 M8.2를 판매했습니다.
예상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적고, 훨씬 안나오거나 훨씬 잘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단점이 많아 불편했는데 재미 있었습니다.
IR필터가 필수는 아니고, 유/무에 따른 컬러나 흑백에서의 장단점이 있어 IR필터 사용해도 매력있고 사용하지 않아도 매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