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영화 내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1.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
-딸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란 전형적인 코리안식 캐릭터인 황정민과 교도소 배경 영화라면 무조건 등장할 법한-특유의 깡패적 기질로 본의 아니게 항일투사가 되는 소지섭, 산전수전 다겪고 드세진 이정현(은 후반부 가서는 수동적이다 못해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되더군요)
영화의 중심축이 되는 인물들이 기존의 서사들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니,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2. 클리셰를 벗어나려다 현실은 벗어난 인물들
-그 와중에 송중기는 말 그대로 차라리 신선(?)하기라도 합니다. 군함도란 실재적인 공간에 판타지가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니까요.
바다 위에 비밀리에 떠 있는 군함도에 혈혈단신으로 침투해, 하루도 견디기 힘든 노역을 견디며, 독립군 인사를 빼내와야한다는, 거의 람보급의 미션을 수행해야하는 이 비상식적인 인물은 심지어 총에 맞고, 전투에 선봉에 서고도 멀쩡히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이 괴상한 인물이 존재하기 위해 이경영이란 역시 비상식적인 인물이 창조되어집니다.
'송중기가 그곳에 들어가야하니'란 존재론적 목적을 가졌으며 이승만을 상징하는,
아니, 노골적으로 이승만인 윤학철(이경영) 캐릭터는 이 '군함도'란 영화의 현실성을 단숨에 앗아갑니다.
클리셰를 벗어나려다가 아예 현실에서 벗어나버린 이 둘은 영화의 결을 해치다 못해 아예 방향을 없애버리더군요.
2.5 게다가 따로 노는 인물들
-그런 이들은 심지어 따로 놀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큰 축이 되는 세 개의 서사는 세 개 입니다.
1) 황정민-딸
2) 소지섭-이정현
3) 이경영-송중기
'생존과 탈출'이란 거대한 틀 에서는 같은 궤를 달리는 듯 보이나, 이것들이 연결되는 지점은 영화의 후반부에서나 이루어지며 그마저도 2번(소지섭은 고문실에 갇혀있고, 이정현은 그냥 손뼉만 칩니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2번의 서사가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도 않습니다. 억지로 말하자면 로맨스인데, 그것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3. 우연적인 갈등과 논리적이지 못한 해소
-'예상하지 못했지만 납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야기의 최고 미덕이라면, 군함도는 확실히 미덕이 부족합니다.
영화 내에서의 갈등과 해소는 전적으로 우연과 비논리로 진행되는데,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 소장 접대 자리에서 '우연'히 딸이 부른 노래가 나온다
2) 예상치 못한 탄광 사고의 탈출 도구인 다이너마이트를 '우연'히 소지하고 있다.
3) 서사의 결정적인 동력인 이경영의 살인 장면을 '우연'히 안경 청년이 목격한다.
크게 기억나는 부분은 이정도네요. (그 뒤에 나오는 노무부 조선인들의 일본인 강O 시도 및 살인 장면 등은 제가 화장실을 가느랴 놓쳐 할 말이 없습니다)
4. 유발하지 못하는 연출
-그렇다고 연출이 시나리오의 결점을 가려주느냐? 탈출씬에서는 전혀 긴장을 느낄 수 없으며, 클라이막스인 전투씬은 정말 전형적이다못해 실소가 납니다. (이정현이 완벽한 자세로 총을 쏠 때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습니다)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가 되어 혼자 히어로물을 연기하고, 이경영의 웅얼거리는 연설은 '첨단 음향 장비로도 배우의 부족한 실력은 메울 수 없구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며, 어울리지 않는 이정현의 사투리와 가오가이거인 소지섭의 틈에서 부산행에 비해 부쩍 자란 김수안 양의 연기만이 위안이 될 뿐이었습니다.
배경으로 쓰인 서부극 음악 역시 장면과 어울리지 않은데다가, 블록버스터 식으로 처리되는 마지막 탈출은 이 영화의 결승점을 다시 한 번 의심케했으며, 황정민의 죽음은 신파도 뭣도 아닌 어정쩡한 연출의 절정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5. 역사적 사실의 왜곡
-앞서 언급한 조선인 노무부원들의 강O시도 및 살인이나 군함도의 결말 등은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아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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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주절거리긴 했지만, 사실 위의 이유들이 이 영화가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받을 명분은 되지 못합니다.
군함도는 교육 영화도, 역사 고발영화도 아닌 '재미'를 팔아 '돈'을 버는 상업영화니까요.
그리고 그 '재미'라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에 달린 주관의 영역이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가 비판을 넘어 비난을 받아야하는 건, 아시다시피 '군함도'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이며, 현대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대중 예술 장르인 영화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역사이기 때문이지요. 배경을 아우슈비츠로 바꿔,
'그 안에는 나쁜 유대인도, 착한 나치도 있었다. 비록 그곳에 강제로 끌려오긴 했지만,그 속에서 오입질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모여서 촛불 회의도 했던, 사람사는 곳이었다'
는 내용의 영화가 나온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아니 유럽으로 갈 것도 없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라면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의 부재'입니다. 군함도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택해, '비현실'로 만든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감독은 관객에게, 이 시대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단순히 '탈출기'를 만들고 싶었다면 그는 군함도를 선택해선 안되었습니다. 한낱 블록버스터로 다루기에는 목숨을 걸고 그 시간은 지나온 분들의 고통이, 우리 역사의 아픔이 너무나도 큰 공간이니까요. 알 수 없는 시간대의 가상의 공간이어도 충분했습니다. 지금의 관객들은 아바타의 나비족이 나와도 제국주의의 역사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니까요. 그런데 그는 왜 굳이 '군함도'를 택했을까요?
윤학철(이경영)이란 거물급의 독립운동 인사가 군함도에 있다는 설정을 할 때부터, 송중기가 그곳에 침투한다는 기획을 할 때부터, 이미 란 영화는 현실을 넘어선 판타지의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감독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겝니다. 그렇다면 그는 '군함도'를 써선 안되었습니다. 좋든 싫든 그 역사가, 그 배경을 소비할 수 밖에 없기에. 그런데 류감독은 왜 군함도여야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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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기까지를 상상해봅니다.
우연히 란 섬을 알게 되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만들려보니 고민이 듭니다.
"1940년, 군함도"
이것만으로도 이미 그 내용와 결말, 인물과 톤을 쉬이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고민 근심하는 중에, 생존자분들의 증언과 사료들에서 '그곳에는 같은 조선인을 착취하는 놈들도 있었고 조선인을 돕는 일본인도 있었다'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거다!' 무릎을 칩니다. 선악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환경과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다룬, 조선판 인생은 아름다워! 아니, 그것만으로는 심심하다! 소간지의 로맨스와 태양의 후예의 액션을 끼얹은 조선판 블록버스터 탈출기!
...여기까지가 제 뇌내망-상입니다. 그리고 제 망-상이 틀림없는 망-상이기를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철학없는 영화를 만든 류승완에게, 투자-제작사 대표가 아내인 류감독에게 실망밖에 할 수 없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