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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쓰다보니 야자인데, 그래도 수다에 꽂히다

나영석표 예능은 
에릭 이후로 시큰둥하여졌었다. 
무슨 밥을 그리도 하루 종일 열심히도 해대는지.. 
지난 밥상에 올랐던 음식을 다시 데워 먹으면 안 되는지. 
음식은 음식일 뿐 
더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잘 생긴 남자의 근육질 어깨 아래 
달린 섬섬옥수가 좋아도 보였지만, 
나는 이미 너무도 많은 섬섬옥수의 우리 삼형제한테 
둘려 싸여 살고 있었던 탓이다. 

꽂혔던 썸남의 깨는 행동을 
우연히 발견한 날 이후처럼 
팍이나 맛이 간 나의 마음에 
다시 그의 예능이 들어왔다. 

제목도 마저 못 외운 채  보던,   
좀 배운 오빠들의 수다가 
촉촉이 마음에 들어온다. 

가는 장소도 빼어나고, 
먹는 음식도 훌륭하고, 
배운 사람의..  
바로 배운 행동에.. 
제대로 배운 시각들이  
켜켜이 꽃처럼 피었더라. 

보다 보니, 
예능임을 잊는다. 
그냥 내가 그 사람들 옆자리에 앉아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이야기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어딘가를 향해 가긴 가는 데.. 
목적지를 묻는 이도 없고, 
아는 이도 없는데.. 
왔던 길을 다시 훑는 거 같다가, 
안드로메다에다가 내다 꽂는 거 같다가.. 

그냥 돈 안 되는 모든 지식들과 경험의 이바구에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잊고, 
상대가 소설가인지, 컬럼리스트 인지도 잊고 
그냥 아는 동네 많이 배운 오빠나 형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두런두런 이바구하는 거를 들을 뿐이다. 

시청자라고 
프로그램을 보는 게  
마냥 누워서 떡은 아니다. 

혼자 살던 
엄마의 간섭 하에 살던 
술을 무척이나 퍼대든 
누군가의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에 
문득문득 비치는 언행 하나하나에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평가질을 하게 되고, 
마음을 졸이곤 한다. 

누가 그러랬냐면.. 
그것마저도 참여라면.. 
할 말은 없다만 
누워 먹다가 걸린 떡 같은  예능도 있잖남?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마구 초인종 눌러대며 
먹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을 뿐이니  
밥 한 끼 구한다는 
그런 예능의 최고봉을 보면 
뻔뻔한 제작진에 
민망한 출연진에 
대인배 동네 주민의 조합으로 
방송 날로 먹으며  
날로 먹음의 힘듦을 강조하는  
그 알찬 내용을 내 보내어서  
염치없음은 시청자의 몫인지라
나는 늘 손에 땀을 쥐곤 하였다. 

그런데, 
알쓸신잡은  
온갖 거한 주제의 현학적인 이야기만을 골라하며 
온갖 맛난 거에, 온통 좋은 장소에, 안락한 환경을 골라 다녀도 
위화감이 없다. 

수다는 수다일 뿐이고.. 
들어둬도 
알아 두어도 
별 쓰잘 떼기 없을 뿐이니, 
몰라도 편안하고 
알아도 더 잘남이 없는 
그런 세계이라며 
어서 와.. 이런 예능 처음이지.. 한다. 
조합은 부담스러운데도 
다 섞어 내어 놓는 요리는 
만드는 사람도 안 힘들어 보이고, 
그러니, 보는 사람 부담 없고,  속 편하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만 알고 
빅뱅의 붉은 노을은 몰라도, 
유시민의 붉은 노을이 기분 좋고, 
윤여정의 붉은 노을은 슬퍼도.. 
시청자들은 누구의 붉은 노을 힙한지 
누구의 붉은 노을이 더 적합한 지 판단질을 잊는다. 

나한테는 어떠한가.. 생각하느라.. 말이다. 
댓글
  • 어리굴젓만세 2017/07/10 01:35

    아..구구절절 공감했어요. 그냥 사실은 현란한 예능들은 정서가 안맞고, 단순 먹방은 집중을 못하겠고, 그렇다고 심각한 다큐나 강연영상은 머리속이 복잡해서 눈에 안들어왔는데, 이 프로는 그냥 너무나 익숙한 선배들이랑 같이 앉아 얘기 듣는거 같아서 그냥 정말 떡먹듯 편하고 재밌습니다. 주변에 소위 '백과전서파' 또는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몇 있어서 이런류의 대화가 너무 익숙하고 재밌어요. 개인적으로는 김영하라는 사람에 대한 발견이 (존재정도는 알고는 있었지만) 저의 큰 수확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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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영히영 2017/07/10 02:03

    저도 알쓴신잡 즐겨보고 요새 최고로 재미나다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재미나다고 칭찬하시면서 다른 프로그램 까는것은 좀 아니지 않을까요??^^;;;;;
    작성자님이 예시로 든 프로그램이 다른분들에겐 최애 프로그램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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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칠공 2017/07/10 02:35

    격에 맞는 시청자가 쓴 격조높은 시청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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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이방인 2017/07/10 03:37

    위화감이 없다.
    정말 공감합니다.
    진짜 그래요.
    그들이 무슨 짓거리, 어떤 노가리를 까든 위화감이 없음.
    심지어 정박사의 00하면 000 박물관이죠 란 말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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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쫑가 2017/07/10 04:35

    신서유기 진짜재밌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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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ahwithyou 2017/07/10 06:39

    글이 술술 잘 읽혀요~~~ 하고 싶은 말 대신 해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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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에눕자 2017/07/10 07:28

    마지막이 찡하네요. 우린 판단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데. 나에게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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