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대...를 뜻하는 고대라는 말은 좀 범위가 넒긴 하겠습니다만, 아마도 동아시아의 경우 한나라가 멸망하고 서진의 깜짝 통일 이후 끝없는 혼란이 이어지다 수나라의 등장으로 통일된 무렵 정도를 최대한 넒게 보면 '고대' 라고 할 수 있겠고, 유럽으로 보면 서로마 제국 멸망, 좀 더 보면 카롤루스 대제가 대략의 난장판 혼란상을 수습한 정도로까지도 볼 수 있을듯 합니다.
그 아득한 고대에 유럽과 동아시아에 거대한 두 개의 제국이 있었으니, 바로 로마와 한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고대 제국은 주위 문명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서구 문명에 있어 로마의 존재감은 실로 거대하고, 한나라는 다름 아닌 '하나의 중국' 을 자리잡게 한 나라인 동시에 유교의 국교화, 율령제 정비, 군현제도 정비 등 그야말로 동아시아 세계관의 초석을 닦았고, 이후 한반도나 일본 등에서도 이런 유교와 율령제를 앞다퉈 수입해 가는 등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때문에 종종 로마 vs 한이라는 식의 부질없는 떡밥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데 그 와중에 잊혀진, 그리고 로마와 한이 그토록 강력해지기도 전에 존재했던 고대의 패권국가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인도에 말입니다.
고대 인도는 이른바 '십육대국'으로 나뉘어 각지의 소왕국들이 난립했습니다. 이른바 인도판 전국시대(인도는 전국시대 아닌적이 더 드물지만) 정도로 볼 수 있는 시기로, 대략 BC 600 년 ~ BC 300년 경까지 이런 형세가 지속 되었습니다. 로마로 치면 '왕' 이 있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공화정 로마가 아직 포에니 전쟁을 시작하기 전 시기고, 중국으로 치면 주나라의 권위가 아직 살아있던 시절부터 해서 전국시대 절정기에 접어든 무렵입니다.
이 시기의 세계 최강국은 로마나 한이라기보다 오히려 B.C. 559년부터 B.C. 330년까지 존속했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일테고, 그리스 문명이 꽃을 피운 시기기도 합니다.
십육대국 중 가장 강력하고 발전된 국가가 인도 동북방의 마가다 왕국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석가모니의 주활동지 였던 것만 봐도 뭐... 라이벌 국가였던 코살라 왕국을 물리친 마가다 왕국은 전국시대 진나라 비슷한 패권국으로 떠오르며 당시 시대를 고려하면 상당한 판도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이후 기존 왕족이 쫒겨나면서 판도는 그대로 유지된 채 난다 왕조로 바뀌었고, 난다 왕조가 되면서도 기존의 강력함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 난다 왕조는 또다른 측면에서 유명한데, 끝이 없을것 같았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이 종료 된 시점이 난다 왕조를 만난 순간이었기 떄문입니다. 인도의 서북 방면까지 진군해 왔던 알렉산드로스는 "난다 왕조는 20만 보병, 6만 기병, 8천 전차대, 6천 코끼리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는 충격적인 정보를 전해 들었고, 겁에 질린 부하들이 미쳤느냐며 파업을 벌이자 결국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저 20만 보병 6천 코끼리... 이야기는 물론 과장이 있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난다 왕조의 힘이 강성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것 같습니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한편 이 난다 왕조에 찬드라굽타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찬드라굽타는 어머니의 신분이 천했기 때문에 기존의 난다 왕조에서는 크게 쓰이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불만이 가득차 있는 차에, 마침 알렉산드로스가 돌아가며 힘의 공백지가 된 인도 서북 펀자브 지역이 눈에 보였습니다.
찬드라굽타는 차나키아(인도의 네루가 자기 필명으로 쓰기도 함)라는 지식인을 참모 겸 재상으로 삼아 이 지역에 근거지를 잡고, 그리스인의 세력을 몰아내고 장악해서 힘을 기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힘을 기르고 사람을 모으고 인재를 키우며 때를 노리다가..
어찌어찌 힘내서 난다 왕조를 무찌릅니다.
BC 320년 경.
아마 좀 흔들리고 있긴 했겠지만 강력한 패권국가였던 난다 왕조를 찬드라굽타가 어떻게 무찌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고대 인도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 남아시아에서 가장 강성했던 국가를 어떻게 무찔렀는지 드라마틱한 부분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어찌어찌 일단 그 정도로 만으로도 최강의 패권국이 되었는데..
그 무렵, 알렉산드로스 사후 헬레니즘 제국이 붕괴하며 각지의 왕들이 난립하는 시대가 되었고, 마침 근방에 있었던 '셀레우코스 왕조' 가 지금은 사라진 펀자브 지역의 과거 그리스 점령지를 되찾겠다며 전쟁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찬드라굽타는 이깁니다.
역시 자세한 상황은 알수 없으나... 셀레우코스 왕조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땅을 뺏으러 갔다가 오히려 땅을 빼앗기고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때주고, 딸까지 찬드라굽타에게 시집 보낸 후 체면상 전투코끼리 500마리를 받고 정전 협상을 맺습니다. 이 때가 BC 302년경.
대략 서북으로의 위협이 사라진 찬드라굽타는 기록을 믿는다면 60만 대군(...) 대군을 이끌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인도의 여타 왕국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역시 어찌어찌 인도를 거의 다 통일합니다.
bc 300년 경.
대체 뭔수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찬드라굽타의 마우리와 왕조는 너무나도 스무스하게 그 거대한 인도를 거진 다 통일하고, 다만 갑자기 제국에 든 엄청난 기근에 충격받은 찬드라굽타가 왕자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종교 수행을 하다 굶어죽고(....) 다시 찬드라굽타의 손자 대에 이르러 새로운 왕이 즉위하는데, 이 사람의 이름만은 꽤 유명할것 같습니다.
아소카 왕
다름 아닌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모델인 아소카 왕은 아직 남아있는 칼링가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공격에 나섭니다. 거의 대부분의 판도는 찬드라굽타 시절에 점령 되었지만, 남아있는 지역을 모두 통합하려고 한 셈입니다.
동쪽에 휑한 지역이 칼링가
역시 기록을 믿는다면 아소카 왕은 7만이라는 막대한 병력을 동원하여 전투를 벌였고, 이겼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너무나도 엄청난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갔던 최악의 살육전이 전개된 탓에, 승리하고도 아소카 왕은 "아! 전쟁이라는게 진짜 사람 할 짓이 아니구나!" 라고 큰 깨달음을 얻어서 더 이상의 전쟁을 그만했고, 이후부터는 내정에 전념했고 백성들의 삶을 좋게 만들기 위한 여러 선진적인 공공사업에 전념해 성과를 거둡니다.
어찌어찌(...) 인도를 통일한 시점의 마우리아 왕조. 남방에 뭔가 좀 남아 있지만 신경쓰지 말자. 점령 할 수 없어서 점령 안한게 아니라서...
헬레니즘 왕국들과의 비교
그렇게 되어서 아소카 왕 무렵에 마우리아 왕조는 고대 인도 거의 전역에,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지역까지 포함하여 엄청난 대제국을 이룩하게 됩니다. 비록 아소카 왕 사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해서 패망하게 되지만...
앞서 말했듯 찬드라굽타가 인도 전역을 거의 다 통일한 시점이 bc 300년 경. 아직 국운이 기울기 전인 아소카 왕이 bc 232년까지 즉위했는데 이 당시는 아직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아 로마가 지중해 세계에서 카르타고를 압도하지도 못했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bc 211년) 하는 시기도 아소카 왕의 죽음 이후 20년은 지난 시점입니다. 즉 대략 bc 300년에서 bc 230 ~ 220년 경까지, 70년에서 80년에 가까운 시간 인도는 세계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군사 점수는 진작에 만렙 찍었고 남아 도는 포인트로 문화 사업에 투자하는 수준.
그 이후의 인도는 사실상 통일된 적이 없습니다. 무굴 제국이 강성하긴 했으나 통일하진 못했고, 영국이 들어와서야 겨우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마우리아 왕조는 우리나라 환빠들이 물고 까는 '환국' 같은 존재로, 인도는 bc 230년 이전에 나라 최고 전성기 한번 찍어놓고 풍선 쪼르라들듯 줄어든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정복 활동을 했던 마우리아 왕조 지만, 고대 인도에 대한 기록이 워낙 간략한 탓에 자세한 모습을 알기 힘듭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기록이 적다보니 저것도 다 주작 아닌가? 대충 북인도 지역에 적당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걸 살 부풀려서 남인도 지역을 왕창 집어넣은것 아닌가?
그러나 '증거' 로 말하자면 문헌 기록보다도 더 확실한, '유물기록' 이 있습니다. 인도 전역에는 총 33개의 이른바 '아소카 비문' 이 있는데, 이 아소카 비문은 당시 마우리아 제국 판도 아래 있었던 광대한 영역에 걸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남쪽 방면으로는 최대 해발 1,500미터가 넘는 데칸 고원 너머에도 존재하고 있어서 마우리아 왕조의 힘이 1,000미터 이상의 산맥 너머에도 닿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서쪽으로는 파키스탄, 동쪽으로는 네팔까지 이어져 당시 마우리아 왕조의 영향력이 그렇게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데칸 드랩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보인 마우리아 왕조
그런데 이 아소카 비문의 내용은 "내가 이렇게 땅을 넒히고 적을 쳐죽였다" 는 내용이 아니라, 칼링가 전투 이후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불교를 믿은 아소카 왕의 모습이 나오며 삶의 가르침 및 사회 복지와 동물의 복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다음은 남아있는 마우리아 왕조 시대의 벽조와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보고 복원한 도시 추정도.
상상도긴 하지만 충공그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대략 마우리아 왕조 설립 시기 이전인 bc 500년 경부터 발전을 시작해서 제국의 전성기 판도에 저랬을거라고 하더군요.
고대 세계에 나타나 뭐 이렇다 저렇다 하는것도 아닌 식으로 스무스하게, 이후 인도인들이 1900년이 넘도록 불가능했던 통일을 이루고, 거의 백여년 가까이 아득하게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다, 별다른 기록도 없이 그대로 사라져 많은 시간 동안 잊혀진 마우리아 제국.
정말 무슨 소설에 나오는 환상의 서방 고대 제국도 아니고...
크 정성 봐...
마우리아의 인도 통일이 로마나 중국의 통일같은 통일과는 약간 거리가 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아소카 왕이 죽자마자 각 지방의 토후국들이 잇따라 독립해서 분열되기 시작했다고 하죠. 무굴제국당시 아우랑제브도
그렇고, 당나라 말기 각 절도사들이 일제히 독립한 것처럼 완전히 지방을 병합시켰다기보다는 각 지방 토후국들이 마우리아의 패권을 인정해주었던 그런 형태의 통일일 가능성이 높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M.Owen// 그럴수도 있지만..진시황도 나름 통일같은 통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각지방에서 군벌,제후들이 독립해서 잠깐 분열되잖아요? 모르는거 아닐런지요
신불해님 글은 추천하고 읽습니다. 이번엔 제목만 보고 설마 환.....인가 했네요ㅋㅋㅋㅋ
군사력이라는 게, 단지 쪽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에, 당시 마우리아 왕조가 가장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강역과 지배인구가 최대였다는 것은 확실하겠네요.
[리플수정]M.Owen// 그런 지방의 반란조차 막을 정도의 행정력은 어차피 근대 이전에는 어떤 정치 단위에도 없었습니다.
근대 이후에 민족국가가 성립하고 왕 밑에서 직업공무원 제도가 자리잡아야, 지방에 대한 행정력이 미치고 지배가 확실해져서, 강력한 왕이 죽어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게 되죠. (단, 동양은 공무원 관료제도가 좀 더 일찍 자리잡아서 대제국 운영의 기술이 좀 더 발달한 측면은 있음)
오 새로운 이야기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소카 왕의 강역에 대해서 비문... 우리나라에서 진흥왕이 세운 비를 보고 신라가 서울과 함경도까지 갔다...라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잘봤습니다..
아소카왕도 참 드라마틱 한 거 같아요
왕위 오를때부터 엄청 죽이고 올랐고, 정복전쟁 활발히 하다 어느순간 180도 반전으로...
깨알같은 석가모니와 불교
키루스 2세의 판도 확대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강력한 통치구조 확립보다는 호족들의 자치를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우위를 확인받는 흐름이 아니었을지 ..
어찌저찌해서 최강국가가 됐다는게 인상깊네요.
잘 읽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 다 깨부셨군요 ㅋㅋ
정성들인 짤방;
[리플수정]아쇼카왕 대단했죠
가족들 죽이고 인도통일하고
근데 목표를 이룬 탓인가
곧 바로 살생한게 죄책감이 커서
불교에 귀의해서
이웃나라 소국들에 침략안겠다 약조하고
불교경전통일시키고 문화적으로
노력많이하구
유럽 중동 동남아 중국등으로
스님들 포교사절단 보내고
그래서 200여년 뒤에 나타난 예수가
불교적가르침을 받은것이라고
내세우는 학장도 많쥬
암튼 아쇼카왕 대단하죠ㅎ
정성스럽구 좋은 글 추드려요 ^^
아이고.. 제목 보고 뭔 환빠 글인가 했는데.
좋은 글 잘봤습니다.
신불해님 역사글 ㅜㅜㅜㅜㅜ너무좋다
너무 감사합니다
뭐하시는 분이신지 궁금 하네요
자주 좋은글 부탁드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중간에 왕좌를 아들에게 넘거준거 같은데... 왕자를 아들에게 넘겨준다 되어있습니다. 아들이랑 싸워서 다른 왕자를 볼모로 맡겼나 싶어, 잠시 이해가 안되었습니다.ㅎ
이걸보니까 알렉산드로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네요.. 서쪽으론 발칸반도 동쪽으로 인도 동부 대단하네요
와 역시 대단하신...
사료가 없어 어찌어찌로 표현될 수 밖에 없어 안타깝네요
역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추천을 받칩니다 ㄷㄷㄷㄷ
일단 추천하고 봤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ㄷㄷㄷ
햐 정말 잘봤습니다!!
오 재밌습니다 역시 역사는 재밌어 잘 읽었어요~~
불해님은 닥추야!
6만 기병, 8천 전차대, 6천 코끼리 부대
사실이면 ㄷㄷㄷ 하네요.
M.Owen//
고대의 영토확장이 다 그런거지요.
교통-통신의 미비로 그럴 수밖에 없지요.
철기가 보급되니, 갠지즈강 중하류로 진출해서 삼림을 개간할 수가 있었지요.
중국도 철기의 보급으로 양자강유역의 삼림을 개간할 수가 있었지요.
초-오-월의 흥기도 그런 면으로 볼수가 있지요.
열대-아열대의 삼림을 청동기 농기구로 개간하는 건 무리였으니
청동기 시대에는 건조지대 혹은 반건조지대에만 농사를 지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