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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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는거 오늘편임?
ㅋㅋㅋㅋㅋ 저거 무도 달력사진이네요 ㅋㅋㅋㅋ
에?? ㅎㅎ
무도 맴버를 순국시키다니 ㄷㄷ
순국... 그래서 종영?
김태호 : 이거닷! 다음 특집은 무도 사나이!
박명수는 숨길수가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무모한 도전이야.…
무도 아직 안망했다! 아직은...
R Point 일줄 알았는데 ;;;;;
근대 진짜 리얼함.. 후보정의 힘
아 진짜 저때가 무도 레전드인데 요즘 무도 안 본지 오래됬어ㅠㅠㅠㅠ
아 제발... 방송국도 그렇고 관공서나 기업도 그렇고...
저런 자료 이미지를 대충 구글링 때려서 대충 눈에띄는거 막 갖다 쓰는건 제발 좀 ㅠ,.ㅠ
뭐 일부러 알고서 쓴거라면 컨셉인거겠지만...
왼쪽부터
박명수 정형돈 정준하 유재석 노홍철 하하 길
맞나요...?
근데 말해주기 전에는 무도인줄 몰랐음. 지금도 그런가...? 싶긴 함 ㅎㅎ
혹시
얼핏 보면 전북도청에서 아무 사진이나 막 갖다 썼다고 착각하기 쉬운 사진
인지.. 혼란스럽다
마봉춘 사단 제 1연대 태호 대대 양아치 소대의 속칭 전설의 메뚜기 분대원들 사진이군요.
저게 아마 그 유명한 달력고지 3차 전투 이후에 찍은 사진일 겁니다.
1951년 기습적이고 대대적인 중공군들의 참전으로 유엔군과 한국군은 압록강에서 대동강까지 후퇴해야 했습니다.
당시 미8군을 비롯해 영국군 제 5사단과 케나다 7연대까지 포위되었고 미 해병대는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서 필사의 포위전을 벌이고 있었죠.
전쟁 중에 급조된 한국군은 무능한 지휘관과 사병들의 훈련 부족으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발목만 잡고 있는 형국이라서 여러모로 미움을 받는 처지여습니다. 중공군 팽덕회 사령관은 연합군의 약점은 한국군이란 것을 간파하고 한국군이 지키고 있는 전선을 돌파해서 미군을 포위하는 전술을 구사함으로서 연합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며 전선을 점차로 남쪽으로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대표적인 전투가 현리 전투입니다. 한국군은 군단 규모가 단지 연대 규모의 중공군의 공세에 녹아 사라졌고 많은 장비와 물자또한 중공군에게 그대로 헌납한 꼴이었습니다.
한국군 장병들은 연합군 병사들에게 혐오의 대상이거나 조롱의 대상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중공군은 3차 대공세를 펼져 전선을 한강 이남으로 구축하고 서울을 재탈환하며 유엔군을 다시 부산쪽으로 내몰 전략을 추진합니다.
이미 평양은 물론 개성까지 내준 유엔군은 임진강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결사적으로 서울을 사수함으로서 중공군의 공세를 막고자 합니다.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는 역시 이번에도 한국군이 지키고 있던 쪽을 노립니다
당시 마봉춘 사단은 지금의 일산과 고양을 뒤로 하는 임진강 서북쪽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는데 그 뒤로는 미 공수101 사단과 영국 4대대 그리고 야전병원이 자리잡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만약 마봉춘 사단의 방어가 무너지면 속수무책으로 유엔군은 서울 시내로 후퇴해야 했고 끔찍한 시가전이 벌어져 서울 시내는 불바다가 되고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될 처지였죠. 물론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워커 중장은 못미더운 한국군 마봉춘 사단의 예비대로 터키 부대와 호주 부대를 배치해 대비하려고 했습니다만 무전 미비로 그 명령이 미처 전달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터키군의 무전기와 미군의 무전기 코드가 서로 맞지 않아 그 전부터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공군은 마봉춘 사단의 가장 취약점인 9연대와 8연대 쪽으로 집중 포격과 함께 야간 공세를 펼칩니다.
중공군의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 일시에 방어선이 붕괴되고 사단본부까지 박격포탄이 날아오자 사단장은 지프를 타고 미군 주둔지로 달아나 버렸고 지휘관이 사라진 사단은 일시에 붕괴되고 2천명의 병사가 포로가 되고 500명의 병사와 초급 간부들이 전사하고 맙니다.
워커 중장은 불같이 화를 냈으나 이미 붕괴되고 있는 방어선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번처럼 장진호에서 필사의 포위전을 해야만 하거나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가 다시 전략을 짜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이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중공군들이 갑자기 공세를 중단한 겁니다.
단 몇시간만 더 중공군들이 공세를 펼쳤다면 미군은 종말적인 포위전에 휘말리거나 막대한 보급품을 놔둔채 후퇴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중공군들이 공세를 멈추고 일시적으로 후퇴까지 합니다.
한 미국인 종군기자는 이 사건을 "신의 기적"이라고 썼더군요.
하지만 그것은 전지전능하고 변덕스런 신의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전쟁 전에는 단지 하찮은
나이트 죽돌이였고
돈가스집 아들이었으며
술집 웨이터였고
노란 수염난 여행 가이드였고
메뚜기 탈을 쓰고 호객행위 하던 점원이었고
호텔 자메이카에서 서빙하던 뽀이였던
아주 평범하고 보잘것 없던 이들이 일으킨 기적이었습니다.
당시 마봉춘 사단이 방어선에는 임진강을 끼고 북쪽으로 돌출된 250m 높이의 고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생긴 모양이 가파르고 삼각형으로 양 옆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어서 꼭 세워놓는 달력을 닮았다고 해서 달력고지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사단장은 이 고지의 중요성을 별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2연대장이 이 곳에 박격포와 중기관총을 설치해 임진강 서북쪽을 견제하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만 사단장은 일본 육사 출신이 아니라 전쟁 중에 진급한 학군 출신인 연대장의 의견을 묵살했다고 합니다.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사단장은 달력고지에 사단의 골치덩이 오합지졸로 불리던 메뚜기 분대를 배치함으로서 학군출신 연대장을 모욕하는 조치를 합니다.
음주 사고와 각종 폭행 사고 그리고 도박 사고까지 치던 사단 내에서 아주 유명했던 문제아들만 골라서 만든 메뚜기 분대는 이리저리 부대를 옮겨 다니며 궂은 일만 도맡는다고 해서 메뚜기 분대라는 멸칭으로 불렸습니다.
이 분대가 기적과 같은 일을 벌입니다.
단 7명의 분대원들이 지키고 있는 달력 고지 때문에 5만의 중공군들의 공세가 멈춰선 것입니다.
실로 달력 고지의 위치가 진군하고 있던 중공군의 심장을 노리고 있는 아주 절묘한 곳이었습니다.
중공군 사령관은 일단 고지를 지키고 있는 것이 소수의 한국군이며 무장 상태 또한 열악하다는 걸 파악하고 간단하게 고지를 점령 한 뒤에 공세를 이어갈 계획이었습니다.
1차 고지 쟁탈전에서 고립된 7인의 분대원들은 초인같은 전투력을 보이며 중공군 1개 중대를 분쇄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열받는 중공군 사령관은 군단 포병대를 동원해 어마어마한 포격을 가한 뒤 2개 대대를 동원해 달력 고지를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중공군의 포화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고지 전체의 나무와 풀이 사라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총과 수류탄 그리고 지뢰 몇십개가 전부였던 메뚜기 분대의 처절한 항전에 고지 점령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미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 중단이 몇시간이나 지체되자 초조해진 중공군 사령관은 연대급 부대를 동원하고 박격포에서 105mm 대구경 포까지 동원하면서 고지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했습니다만
결국 단 7인의 필사적인 방어에 모두 격퇴되고 맙니다.
3차 달력고지 전투가 막 끝났을 때 워커 중장이 보낸 호주 사단 3연대 병사들이 달력고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중공군 시체와 포탄 자국 그리고 산송장처럼 지쳐있는 메뚜기 분대원들을 발견하고는 엄청나게 경악합니다.
호주군들은 중공군의 공세 중단이 신의 기적이 아니라 평소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했던 한국군 그것도 단 7인의 분대가 만들어 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호주 남동부 퍼스 출신인 웨이스 H 터거 일병은 자신이 늘 휴대하고 있던 4mm 코닥 카메라로 이 이름없는 작은 영웅들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그가 찍은 단 한장의 사진이 7인의 분대원들이 남긴 유일한 사진입니다.
호주군이 달력고지에 진입한 뒤에 곧 이어 미군들을 비롯한 연합군들이 고지 방어 구축을 시작했고 중공군은 곧 공세가 실패했음을 깨닫고 지금의 휴전선 이북쪽으로 후퇴해 개성을 사수하며 전선을 고착화시키는 전략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고 훈장 하나 받지 못했던 이름없는 용사들에게 경의를.....
이거 포스터 저희 집에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ㅋㅋ 저 사진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