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빠는 당연히 거르는게 맞지만 일본놈들이 축소시킨것도 과거 역사학계가 친일로가득찼던겄도 현실
플로지2017/06/23 20:17
백제가 산동지방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요즘 문헌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어요.
로쥬앙2017/06/23 20:19
논란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증명된 건 아닐 겁니다
액화질소2017/06/23 20:22
그게......그런식으로치면 일본도 한반도에영토를가지고있었다고볼수도있죠.....
미국에 한국대사관있으니 미국에 한국영토가있다는식이되는......
붕붕붕12017/06/23 20:23
멕시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랑 뉴멕시코주에 멕시칸 많이 진출했으니까 멕시코 영토라고 표시하면 비슷한 논리되려나
둥둥둥둥2017/06/23 20:24
신라원 신라방 같은거 말하는거임?
이건 일종의 지금말로하면 차이나타운(신라타운?) 같은 외국인 많이사는 동네지 영토가 아님
차이나타운을 중국땅이라고 안하잖아요
술푼보리2017/06/23 20:27
액화질소// 요서경략설은 그런 백제촌 설치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 논제는 조선후기때 사학자들간에도 치열한 논쟁거리중 하나 였어요. 일제강점기 이후 사학계 자체가 식민사관 위주로 흐르면서 배제되고 있기는 한데 다른 "환빠" 같은 사이비 것들과는 명백히 다른 논쟁거리입니다. 실제 중국 남북조 시절의 사서들에서도 어느정도 근거를 찾을 수 있는 학설이에요.
야상화2017/06/23 20:31
영토인지 군사 혹은 상업적 거점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걸로... 단지 백제가 어느정도 영향력을 갖고있었던 것은 교차검증이 되어있다 합니다.
Murasaki2017/06/23 20:31
한국은 고고학과 검증 위주로 갔습니다.
그걸 "식민사관" 으로 부르는 것이 위험하다고 봅니다.
부엉느엉2017/06/23 20:34
고구려가 요동먹고 백제가 요서 먹었다 라고 중국 역사책에 나와있긴한데
고구려가 요동먹은건 광개토대왕때고
그때 백제 일본 겁나 뚜드려패고
다음 장수왕때는 수도도 털었는데
그 시절에 해외진출했다니까 믿기 어려움
플로지2017/06/23 20:53
북위의 군사들이 말을 몰고 백제를 수차례 공격했다는 내용이 남제서(중국 양나라 537년에 소자현 편찬)에 적혀있는데, 대륙에 백제 영토가 없다면 북위의 군사들이 어떻게 말을 몰고 백제를 치겠습니까.
송서 이만열전에는 [백제국은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 동쪽 1천여리 밖에 있는데, 고구려가 요동을,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라고 적혀있으며,
양서 동이열전 백제편에 보면 [진晋나라 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평 2군을 점거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양나라 시절에 그려진 양직공도(현재 베이징 중국역사박물관 소장)에 적힌 문장을 살펴보면, 백제국사(백제의 사절) 그림과 함께 [서진西晉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의 낙랑을, 백제가 요서와 진평을 다스렸다]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역사서와 그림을 쓰고 그린 사람들이 백제 사람이라서 이렇게 적었겠습니까?
고대 중국인들도 백제가 요서와 산동지방 일부를 차지하여 다스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던거지요.
달가람2017/06/23 20:54
당시의 영토관은 지금보다 러프하기 때문에 당대 관점에서는 백제땅이라고 할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관점에서는 글쎄요...
온캐릭2017/06/23 21:02
문헌으로 증명되고 있죠. 문제는 문헌으로만 증명이 되고 있다는거지만..
그래서 지금 국사책에서도 요서쪽으로 진출 했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거구요.
1.신빙성이라는것은매우중요합니다.
예를들자면일본서기를그대로역사로하는경우역사가안드로메다로가겠죠.
그렇기에일본서기의고대사에대해서는신빙성을낮게봅니다.
문제는
중국의역사를그대로말하는것도한국에서는부정적인반면
중국에남아있는한국에대한역사의경우대단히중요하고사실로간주하는사람들이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러한 판단의 경우 편향성 맞습니다.
2.출처복사
A서적내용->A내용을B서적에씀->B서적내용을C서적에씀
이럴경우출처는오직A하나라봐야합니다,
이걸A에도쓰였고B에도쓰였고C에도쓰였으니사실임.
으로해석하면안됩니다.
여러책에서쓰였다고하는것이아니라근거가중요합니다.
만약해당서적이정말"해당시기"에쓰인것이라면신빙성이높겠지만
해당시기에서천년,이천년후에쓴책이라면근거가필요합니다.
플로지2017/06/23 21:26
백제의 대륙 영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중국 역사서 2종류를 다뤄보자면...
"남제서" : 편찬년도가 537년이라 백제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던 시기(백제멸망 660년)입니다. 당연히 사료도 풍부했고 그 당시 백제와의 관계를 실시간으로 겪었던 증언들이 포함되어있을 확률이 높죠. 북위와 백제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슈가 되는 문장은 [북위가 수만의 기병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였다] 부분입니다. 고구려가 멀쩡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북위가 길을 빌려 백제를 쳤을리는 만무한데다가, 수만의 기병을 배로 태워 황해를 도하하여 한반도 백제 땅에 상륙 후 공격하였다는 것도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죠. 차라리 백제가 대륙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입니다.
"송서" : 편찬년도 487년, 저자 심약. 이만열전 편에서 고구려가 요동을,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여 영토로 삼았다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당연히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멀쩡히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억지로 주변국의 위상을 꺾으려고 내용을 날조했다면 차라리 이런 내용을 축소 혹은 삭제했어야 옳습니다. (그만큼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죠. 차라리 이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외 양서(편찬년도 629년), 자치통감(편찬년도 1084년) 등에도 백제의 요서-산동 지방 지배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아마도 송서나 남제서의 내용을 옮겨적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배제하도록 하죠.
Detpo2017/06/23 21:27
지랄이 짜다
Murasaki2017/06/23 21:40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위키쪽으로 일단 검색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기록에 가까운 양직공도가 요서점거의 주체를 백제가 아닌 낙랑으로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란 말도 있군요.
사실 중국과 한국간에서 명칭 혼동은 자주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Murasaki2017/06/23 21:40
구당서 고려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高麗者, 出自扶餘之別種也. 其國都於平壤城, 即漢樂浪郡之故地, 在京師東五千一百裏. 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於營州, 南渡海至於百濟, 北至靺鞨.
구당서 백제전에는 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百濟國, 本亦扶餘之別種, 嘗爲馬韓故地, 在京師東六千二百裏, 處大海之北, 小海之南. 東北至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
고구려의 백제의 위치 관계는 서로 渡海하여 至하도록 되어 있군요. 西渡海至越州를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영토를 보유하여 그 영토는 월주와 접경한다." 또는 "서쪽으로 월주를 영토로 삼아 땅이 여기까지 이른다."라고 해석한다면,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인천 앞바다를 건너 상대편 쪽에 영토를 보유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
Murasaki2017/06/23 21:42
이러한 것들은 전형적으로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교차검증시 내용이 이상해지는 경우
라고 보입니다.
유리한 주장만을 끌어온다면 당연한 사실로 보일지 몰라도
불리한 주장과 같이 보면 신빙성에서 문제가 생기지요.
플로지2017/06/23 22:10
Murasaki // 저에겐 해당시기보다 훨씬 지난 시대의 역사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니 고대 사료에 기초해야 한다, 나중에 나온 자료는 이전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일 수 있어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시고는, 정작 구당서를 인용하시네요. 구당서는 940~945년에 편찬된 내용이라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건재하던 시절에 적힌 남제서나 송서에 비하면 사료의 진실성이 부족하죠.
남제서나 송서에 대한 내용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슷한 시기에 적힌 내용 중에서 위 역사서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중국 역사서 내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Murasaki2017/06/23 22:14
"그것이 맞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서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A 는 부정적이다
만약 A 가 맞다면 같은 방식인 B 도 맞아야 한다
라는 구조입니다.
경복궁해태2017/06/23 20:18
국뽕가득
Cenci2017/06/23 20:35
병신같지만 실제로 저랬음 좋겠드아..
쥬엔류2017/06/23 20:38
요샌 우주 삼국설이 대센데
정모내꺼2017/06/23 20:41
ㅋㅋㅋㅋㅋㅋㅋㅋ
게이트웨이2017/06/23 20:46
저거 아니더라도 환빠는 병신이지만
일본은 사실상 백제 속국이엇던건 맞음
나당 연합 공격으로 백제 망해갈때도 계속 지원온게 일본이엇으니...
Kres2017/06/23 21:09
임나일본부 일본에서 박살낸 주장이 외교관설임. 왜가 인력을, 백제나 가야가 기술이나 물건을 서로 교환한거라 볼 수도 있음.
속국이면 통치기구가 있어야하지만 일본 내에 그런 흔적 없음. 일본 지도층 중 도래인의 비중이 컸긴하지만 그건 걔들 고향이 백제였다는거지, 백제가 통치했다는게 아님.
일본을 통치했다고 주장하면 반대로 조선은 명, 청의 속국이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임. 한중관계처럼 당시 한일관계가 조성된거죠.
딱 중2병 때 일뽕 맞은 오덕 보는거 같다
저 정도면 신라랑 가야는 살아남았다는게 신기할 지경
친일보단 환빠가 낫지않을까 싶긴한데
홍준표보단 원유철이 나은 것처럼요?
비유한번 찰지네
ㅋㅋㄴ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홍그리와 유처리는 아님...
그런가 .
이러면 백제는 뭐가 아쉬워서 반도에 목숨걸며 싸움? 그냥 중국대륙서 놀지
ㄹㅇ 저정도면 중원을 거의 장악하겠는데
환빠는 당연히 거르는게 맞지만 일본놈들이 축소시킨것도 과거 역사학계가 친일로가득찼던겄도 현실
백제가 산동지방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요즘 문헌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어요.
논란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증명된 건 아닐 겁니다
그게......그런식으로치면 일본도 한반도에영토를가지고있었다고볼수도있죠.....
미국에 한국대사관있으니 미국에 한국영토가있다는식이되는......
멕시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랑 뉴멕시코주에 멕시칸 많이 진출했으니까 멕시코 영토라고 표시하면 비슷한 논리되려나
신라원 신라방 같은거 말하는거임?
이건 일종의 지금말로하면 차이나타운(신라타운?) 같은 외국인 많이사는 동네지 영토가 아님
차이나타운을 중국땅이라고 안하잖아요
액화질소// 요서경략설은 그런 백제촌 설치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 논제는 조선후기때 사학자들간에도 치열한 논쟁거리중 하나 였어요. 일제강점기 이후 사학계 자체가 식민사관 위주로 흐르면서 배제되고 있기는 한데 다른 "환빠" 같은 사이비 것들과는 명백히 다른 논쟁거리입니다. 실제 중국 남북조 시절의 사서들에서도 어느정도 근거를 찾을 수 있는 학설이에요.
영토인지 군사 혹은 상업적 거점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걸로... 단지 백제가 어느정도 영향력을 갖고있었던 것은 교차검증이 되어있다 합니다.
한국은 고고학과 검증 위주로 갔습니다.
그걸 "식민사관" 으로 부르는 것이 위험하다고 봅니다.
고구려가 요동먹고 백제가 요서 먹었다 라고 중국 역사책에 나와있긴한데
고구려가 요동먹은건 광개토대왕때고
그때 백제 일본 겁나 뚜드려패고
다음 장수왕때는 수도도 털었는데
그 시절에 해외진출했다니까 믿기 어려움
북위의 군사들이 말을 몰고 백제를 수차례 공격했다는 내용이 남제서(중국 양나라 537년에 소자현 편찬)에 적혀있는데, 대륙에 백제 영토가 없다면 북위의 군사들이 어떻게 말을 몰고 백제를 치겠습니까.
송서 이만열전에는 [백제국은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 동쪽 1천여리 밖에 있는데, 고구려가 요동을,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라고 적혀있으며,
양서 동이열전 백제편에 보면 [진晋나라 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평 2군을 점거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양나라 시절에 그려진 양직공도(현재 베이징 중국역사박물관 소장)에 적힌 문장을 살펴보면, 백제국사(백제의 사절) 그림과 함께 [서진西晉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의 낙랑을, 백제가 요서와 진평을 다스렸다]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역사서와 그림을 쓰고 그린 사람들이 백제 사람이라서 이렇게 적었겠습니까?
고대 중국인들도 백제가 요서와 산동지방 일부를 차지하여 다스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던거지요.
당시의 영토관은 지금보다 러프하기 때문에 당대 관점에서는 백제땅이라고 할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관점에서는 글쎄요...
문헌으로 증명되고 있죠. 문제는 문헌으로만 증명이 되고 있다는거지만..
그래서 지금 국사책에서도 요서쪽으로 진출 했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거구요.
식민사관?
헛소리하지 마세요.
식민사관드립치는거 볼때마다 어이가 없네.
진짜 논문은 읽어봤어요? 발굴현장에 나와보긴 했어요? 어디서 되도않는 소리에 선동되서 헛소리 퍼트리지마세요.
1.신빙성이라는것은매우중요합니다.
예를들자면일본서기를그대로역사로하는경우역사가안드로메다로가겠죠.
그렇기에일본서기의고대사에대해서는신빙성을낮게봅니다.
문제는
중국의역사를그대로말하는것도한국에서는부정적인반면
중국에남아있는한국에대한역사의경우대단히중요하고사실로간주하는사람들이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러한 판단의 경우 편향성 맞습니다.
2.출처복사
A서적내용->A내용을B서적에씀->B서적내용을C서적에씀
이럴경우출처는오직A하나라봐야합니다,
이걸A에도쓰였고B에도쓰였고C에도쓰였으니사실임.
으로해석하면안됩니다.
여러책에서쓰였다고하는것이아니라근거가중요합니다.
만약해당서적이정말"해당시기"에쓰인것이라면신빙성이높겠지만
해당시기에서천년,이천년후에쓴책이라면근거가필요합니다.
백제의 대륙 영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중국 역사서 2종류를 다뤄보자면...
"남제서" : 편찬년도가 537년이라 백제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던 시기(백제멸망 660년)입니다. 당연히 사료도 풍부했고 그 당시 백제와의 관계를 실시간으로 겪었던 증언들이 포함되어있을 확률이 높죠. 북위와 백제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슈가 되는 문장은 [북위가 수만의 기병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였다] 부분입니다. 고구려가 멀쩡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북위가 길을 빌려 백제를 쳤을리는 만무한데다가, 수만의 기병을 배로 태워 황해를 도하하여 한반도 백제 땅에 상륙 후 공격하였다는 것도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죠. 차라리 백제가 대륙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입니다.
"송서" : 편찬년도 487년, 저자 심약. 이만열전 편에서 고구려가 요동을,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여 영토로 삼았다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당연히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멀쩡히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억지로 주변국의 위상을 꺾으려고 내용을 날조했다면 차라리 이런 내용을 축소 혹은 삭제했어야 옳습니다. (그만큼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죠. 차라리 이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외 양서(편찬년도 629년), 자치통감(편찬년도 1084년) 등에도 백제의 요서-산동 지방 지배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아마도 송서나 남제서의 내용을 옮겨적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배제하도록 하죠.
지랄이 짜다
흥미로운 이야기라서 위키쪽으로 일단 검색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기록에 가까운 양직공도가 요서점거의 주체를 백제가 아닌 낙랑으로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란 말도 있군요.
사실 중국과 한국간에서 명칭 혼동은 자주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구당서 고려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高麗者, 出自扶餘之別種也. 其國都於平壤城, 即漢樂浪郡之故地, 在京師東五千一百裏. 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於營州, 南渡海至於百濟, 北至靺鞨.
구당서 백제전에는 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百濟國, 本亦扶餘之別種, 嘗爲馬韓故地, 在京師東六千二百裏, 處大海之北, 小海之南. 東北至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
고구려의 백제의 위치 관계는 서로 渡海하여 至하도록 되어 있군요. 西渡海至越州를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영토를 보유하여 그 영토는 월주와 접경한다." 또는 "서쪽으로 월주를 영토로 삼아 땅이 여기까지 이른다."라고 해석한다면,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인천 앞바다를 건너 상대편 쪽에 영토를 보유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
이러한 것들은 전형적으로
고고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교차검증시 내용이 이상해지는 경우
라고 보입니다.
유리한 주장만을 끌어온다면 당연한 사실로 보일지 몰라도
불리한 주장과 같이 보면 신빙성에서 문제가 생기지요.
Murasaki // 저에겐 해당시기보다 훨씬 지난 시대의 역사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니 고대 사료에 기초해야 한다, 나중에 나온 자료는 이전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일 수 있어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시고는, 정작 구당서를 인용하시네요. 구당서는 940~945년에 편찬된 내용이라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건재하던 시절에 적힌 남제서나 송서에 비하면 사료의 진실성이 부족하죠.
남제서나 송서에 대한 내용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슷한 시기에 적힌 내용 중에서 위 역사서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중국 역사서 내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맞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서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A 는 부정적이다
만약 A 가 맞다면 같은 방식인 B 도 맞아야 한다
라는 구조입니다.
국뽕가득
병신같지만 실제로 저랬음 좋겠드아..
요샌 우주 삼국설이 대센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아니더라도 환빠는 병신이지만
일본은 사실상 백제 속국이엇던건 맞음
나당 연합 공격으로 백제 망해갈때도 계속 지원온게 일본이엇으니...
임나일본부 일본에서 박살낸 주장이 외교관설임. 왜가 인력을, 백제나 가야가 기술이나 물건을 서로 교환한거라 볼 수도 있음.
속국이면 통치기구가 있어야하지만 일본 내에 그런 흔적 없음. 일본 지도층 중 도래인의 비중이 컸긴하지만 그건 걔들 고향이 백제였다는거지, 백제가 통치했다는게 아님.
일본을 통치했다고 주장하면 반대로 조선은 명, 청의 속국이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임. 한중관계처럼 당시 한일관계가 조성된거죠.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내성 흑용성? 까지가 고구려가 지배했던 땅같음 그이상 확장하면 군사력이 ...
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북한이 미국 까는 소리하고있네
정당성이건 논문이건 우리 유리한대로 하면되는거지 저의의사도 들이 왤케 많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