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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근데 한편으로 조선말부터 허례허식이 팽배해진 건 사실이긴 합니다..
형식상 양반이 철폐되고 과거제가 사라졌는데
유교적으로 상하를 나누려는 관념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양반인 걸 예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로 증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신분제가 아예 없었거나 반대로 신분제가 아주 공고했다면 있을 필요가 없었던...
다리 건너는 상여 사진
발 딛는 곳이 불안정해서 상당히 위험해 보이네요.
나는 부디 가는 길 조용하게 ..
장례식에 손님 부르지 말고
가족끼리 딱 하루( 반나절)만 빌려서
소문도 내지 말고 바로 화장해줬으면.
어디 조용한 바다에 뿌리고
우리 가족 바다 좋아하니 가끔 모여서
도시락이나 먹으면 죽어서도 뿌듯하고 행복할 듯
결혼할때 입은 한복 안버리길 잘 했네요 수의로나 써야겠다ㅋ
우리 어릴 때, 그러니까 1970~80년대엔
망자에게 정갈한 한복을 입히고 입관한 다음
관 앞에 병풍을 세우고 그 앞에 젯상을 차렸음.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고 싶냐?”는 말이 여기서 유래한 거임.
우리 전통 장례문화를 표현한 영화 중에 <축제>라고 있음.
장례를 다 치루고 기념사진 찍으면서 “어디 초상 났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임.
제가 죽으면 수퍼맨 옷입고 묻힐래요
다음생에 수퍼맨으로 태어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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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놈들이 또...
어릴때 시골 친척분이 돌아가시면 동네가 시끌시끌한 분위기 였음 영화 축제 처럼
마당에 천막 치고 아저씨들은 술마시면서 화투치고
할배들은 윳놀이하며 아이들은 늦은밤에도 뛰어다니며
술레잡기 하고 그러다 상주가 아이하나 들어 업고
대청마루에 세운다음 노래하나 불러봐라~~
노래 잘부른 조카에게 만원자리 두어장 넣어주고
남자애들은 씨름시키고
한단어로 축제였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