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이썬 일가의 농민 봉기로 인해서 1771년에 '응우옌 씨 정권'이 멸망하고 곧이어 세워진 떠이썬 왕조에 의해서 왕족 대부분이 멸족 당하고나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왕자인 '응우옌 푹 아인'은 이웃 국가이자 베트남의 라이벌 국가였던 시암(지금의 태국)으로 망명하게 되었음.
그곳에서 떠이썬 왕조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고 떠이썬 왕조를 멸망시킬 생각에 골몰해 있던 왕자 응우옌 푹 아인은
베트남의 떠이썬 왕조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시암에게 군사 원조를 두 번이나 받고 떠이썬 왕조를 침공했지만 두 번 다 패배했을 뿐이었고.
심지어 그 와중에 2만여명의 시암 군대를 잃어버리게 된 응우옌 푹 아인은 근성 가이인지라 여기에 주눅 들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음.
그러던 중 시암에 망명해 있던 응우옌 푹 아인은 시암에 와 있던 프랑스의 카톨릭 선교사인 '피에르 피뇨 드 베엔'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 나라 잃은 알거지 신세로 다른 나라에 망명해 있고, 그래서 왕자의 신분임에도 왕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내 왕조를 멸망시킨
떠이썬 일가 이놈들한테 꼭 복수를 하고 왕조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도와주십시오. 사례는 꼭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것 참 안타깝게 됐군요. 저한테 도와달라고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요. 제가 당신을 도와준다면 당신은 저한테 어떤 걸 댓가로 주실겁니까?"
"당신이 날 도와만 준다면 꼰도르 섬(지금의 꼰 다오 섬)의 영유권 및 주권을 양도하고 베트남 전역에서 프랑스가 상업권을 독점하도록
특혜를 주고 최혜국 대우를 해주겠습니다. 어때요? 이러면 꽤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닙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오케이 콜! 그렇게 합시다. 꽤나 현명하신 양반이시군. 제가 어떻게든 군사적인 원조를 해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계약을 맺은 이후에 피에르 피뇨 드 베엔은 1787년에 모국인 프랑스로 돌아가서 당시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루이 16세'를 알현했음.
"오, 주교. 시암까지 선교를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더위에 별고 없으셨습니까?"
"폐하, 제가 베트남에서 시암으로 망명한 베트남의 망국의 왕자로부터 아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폐하께서도 제 얘기를 들어보시면 프랑스에 매우 큰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아,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 왕자가 자신의 원수인 베트남의 떠이썬 왕조를 멸망시키는 것을 도와주고 자신의 왕조를 개창할 수 있도로 도와주면 꼰도르 섬의
영유권 및 주권을 양도하고 베트남 전역에서 프랑스가 상업권을 독점하도록 특혜를 주고 최혜국 대우를 해주겠답니다."
"폐하, 어떻습니까? 아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닙니까?"
"아니, 그런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오케이 콜! 그렇게 합시다. 내가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도록 손을 써보겠습니다."
이후에 시암으로 다시 돌아간 피에르 피뇨 드 베엔은 응우옌 푹 아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음.
"왕자.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프랑스군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내 인맥을 총동원해서 포르투갈과 영국에 원조도 요청하고
캄보디아 병력도 징병할테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쳐들어갑시다. 대신에 일이 성공하면 저한테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아 그럼요. 얼마든지 그러셔도 되지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걸요. 약속은 꼭 지킬테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십시오."
이후에 여러 다국적군의 군사적인 원조를 받아서 원수같은 떠이썬 왕조를 멸망시키고 떠이썬 왕족들을 모조리 멸족시킨
응우옌 푹 아인은 드디어 1802년에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를 개창하고 수도를 베트남 중부의 '후에'로 정하였음.
사후에 그는 '세조'로 추증 받았고 그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는 아주 막강한 군사력으로 1840년에 캄보디아까지 정복하며
베트남의 최대 강역을 이루는데 성공했음. 하지만 애초부터 외세의 군사적인 원조에 힘입어 개창된 왕조인 '응우옌 왕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음.
이미 건국부터 외세인 프랑스에게 군사 원조를 받고 그 도움을 빌린지라 프랑스의 내정 간섭을 피할 수가 없었다는 태생적이고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거든. 19세기 중엽부터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프랑스에 의해 그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거임.
결국 1885년에 청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가 베트남에 대한 식민 지배의 권리를 청나라에게서 인정 받게 되면서 베트남은
1887년에 프랑스의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하게 되고 말았음. 애초에 외세인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서 건국된 나라였으니 어쩌겠어.
선교사라는 새끼가 저딴 짓이나 하고 앉아있고
왕가교체 후 뒷처리를 확실히 해야하는 이유
조선말에도 프랑스군 불러서 어찌해보려던 천주교 세력이 있었지. 들켜서 학살당했지만...
왹져
2022/07/23 04:52
왕가교체 후 뒷처리를 확실히 해야하는 이유
루리웹-4950397832
2022/07/23 04:52
선교사라는 새끼가 저딴 짓이나 하고 앉아있고
Ireneo
2022/07/23 04:58
2차 대전 이전의 종교들은 대개 제국주의의 선봉장이었지
감자맛불알
2022/07/23 04:54
응우옌 헌터 : 비긴즈
нормапьно
2022/07/23 04:56
조선말에도 프랑스군 불러서 어찌해보려던 천주교 세력이 있었지. 들켜서 학살당했지만...
29250095088
2022/07/23 04:59
그래도 원수는 갚았네
오스트리아-헝가리
2022/07/23 04:59
최혜국 대우가 뭔가 싶겠지만 제일 중요한 부분임
예를 들어 광산을 3년정도 임대하고 30퍼를 때간다 치자
갑자기 금발영국양아치가 3년 임대에 40퍼를 때가는 계약과 동시에 철도부설권을 따냄
그럼 최혜국으로써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서 처음 계약 조건을 뒤바꿀 수 있음
싫다고? 수도에 군대들가서 왕한테 총구겨누면 해결됨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