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1]
사진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냥 카메라가 좋았고, 사진이 좋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사진관에 이력서를 넣고, 현재 몇달간 근무중에 있습니다.
[2]
사진이 좋았던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인간이란 시간과 공간에 배태된 존재로서,
제한된 시간동안 제한된 생명력만을 잠시 보존하며 살아가다가,
채 100년이 되지 못하는 시간동안 로병사(老病死)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제한된 시간동안의 제한된 생명력.
어쩔 수 없는 그 숙명을 아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사진과 영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3]
주로 증명/여권 사진을 촬영합니다.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고,
가족사진을 촬영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참 어렵고 낯선 일이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곤 합니다.
제 주변의 어떤 분들은
겨우 증명사진이나 촬영하려고 그동안 교육을 받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손가락 두 마디 남짓의 초상사진에는
자신을 증명하는 것 외에 더 큰 의미가 담겨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4]
어떤 젊은 고객님께서 세피아 톤의 낡고 구겨지고 심지어 찢어진 사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복원을 의뢰하셨습니다.
사진 속의 인물은 20대 초반의 앳되보이는 여성이
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약간 어색하면서도 낯선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증조할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간직하던 사진이었는데,
사진이 너무 낡아서 방법을 좀 찾아보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선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낡고 구겨지고 찢어진 사진을 복원하고 싶으셨겠지요.
그리고 다시 사진으로 인화하여 간직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자 이것이 너희의 뿌리이다.'
'너의 삶에 충실히 살되, 뿌리를 잊지 말거라.'
'힘든 일을 겪더라도, 선조들을 기억하며 힘을 내길 바란다'
[5]
그렇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은,
먼 훗날, 선조와 후손을 이어주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품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
그 오온(五蘊)의 생멸을 다양한 작법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활동에
큰 의미가 담기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에 비하면 참으로 일상적이고,
때로는 별 것 아니라고 여겨질지도 모르는 이 증명사진 한 장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통로로써 기능한다면,
이미 떠난 이를 기억하는 매개로써 기능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겠지요.
제가 하는 작업의 가치는,
지금 당장에는 그저 흔하디 흔한 사진 한 장에 불과한 것이고,
빛을 발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충분히 흘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그때에도, 기록가의 노고는 애초에 고려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제가하는 작업들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행위로써 가치를 갖는다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기억하고 상기하는 매개가 된다면,
사진 한 장, 한 장에 힘을 쏟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6]
그래서 내일은 작업용 모니터 아래에 글귀를 붙여두려 합니다.
"지금 내가 찍는 이 사진이,
먼훗날의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선조를 기억하는 매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