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습이 서로 제대로 대비되는 하륜과 이숙번.jpg

"전하. 이만 사직하겠사옵니다."

"탄핵 상소 때문에 그러시는 거요?"

"걱정 마시오. 과인이 경을 지킬 것이오."

"전하. 이미 충분히 지켜주셨사옵니다. 더 이상은 제가 부끄러워서 아니되옵니다."

"허어..."

"부원군."

"소신이 못난 놈이옵니다. 타고 나길, 제물에 욕심이 많게 태어났사옵니다. 그 천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전하께 누를 끼쳤사옵니다."

"이제라도, 벌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야 저도, 떳떳하게 저승길에 오를 것 같사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사헌부의 간관들을, 엄벌에 처해달라는 상소이옵니다."

"소신의 결백을 믿는 대신들이, 연소하여 올린 상소문이옵니다. 속히, 사헌부의 관리들을 처벌하시어, 함부로 공신을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옵소서."

"여기에 있는 대신들이 정말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가?"

"예, 전하."

"국왕에게 거짓을 고해서는 안 되네. 그거야말로 가장 큰 불충일세. 그걸 알고 있는가?"

('숙번아. 나는 너한테 분명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알아서 솔직하게 이실직고해라. 응?')

"예, 전하. 소신이 어찌 그걸 모르겠사옵니까?"

"흠... 그래, 알겠네. 그만 나가 보게."

"예, 전하."

"이보게 숙번이."

?

"예, 전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네."

('잘 가, 숙번아. 우린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아니옵니다 전하. 하하하하하하."

"앞으로도 전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겠사옵니다."

"그래, 고맙네."

 조선 사회에서는 '기군망상죄'라고 해서. 임금을 기만하고 속인 죄를 매우 무겁고 엄하게 다스렸음.

태종 이방원이 국왕을 속이는 것을 크나큰 불충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그러니까 태종 이방원은 이숙번이 자신을 가증스럽게 속이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준 거임.

하지만 오만방자하기 그지 없던 이숙번은 탐욕과 권력욕에 눈이 멀어서 태종 이방원이 말한 것의 진의를 깨닫지 못했지.

참고로 이숙번이 자신의 집 앞에 사람들이 오고가는 문을 만들면 시끄럽다고 상왕인 정종 이방과의 집 앞에 문을 만들게 해서

이방원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 장면이 빠진 게 아쉽긴 하더라. 실제로 정종 이방과와 이숙번의 대립을 암시하는 복선이 있긴 했었거든.

그 복선 회수를 못하고, 통째로 생략된 것이 아쉽더라고. 차라리 50부작이었으면 이숙번이 형인 정종 이방과를 건드려서

동생인 태종 이방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씬은 나왔을 거라고 보는데, 32부작이라 차마 이것까지 다 담아낼 시간은 못 되었을테지.

아무튼, 부패한 자신을 감싸주는 태종 이방원에게 너무 미안해서 스스로 사직하겠다고 간곡히 청하는 하륜의 마지막과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내사하고 탄핵하자고 상소를 올린 간관들을 처벌하자고 상소를 올린 이숙번의 마지막이 참 대비되더라.

실언을 하고 실수를 해도 태종이 하륜을 왜 끝내 감싸줬는지, 그리고 왜 태종이 이숙번은 다시 복권시키지 않았는지를 잘 보여주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