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한 사람을 부양하는 비용은 날이 갈수록 비싸졌다. 11세기 말에는 말 1마리가 황소 5~10마리 가격과 맞먹었다. 근데 구식 가죽조끼를 대신해 등장한 사슬갑옷은 그 말 1마리 가격의 4~10배까지 비쌌다. 그러니까 황소 20~100마리 가격이었다.
그러나 말 1마리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긴 행군을 하고나면 말이 지쳐서 전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100년에 플랑드르 백작은 500명의 기사를 소집했을때 기사 한 사람당 말 세마리, 곧 행군마, 전투마, 짐말을 배정했다.
그러므로 150헥타르 이하의 땅을 소유한 사람은 늘 전투 준비가 된 기사 한사람을 지속적으로 부양할수 없었으리란 계산이 나온다.
호르스트 푸어만 [ 중세로의 초대 ]
그래서 그 몽골의 벌처급 기동성에 탈탈 털림..
4만5천평...
11세기 중에는 중 한명이 말 5~10마리보다 더 비쌌답니다.
칼은....비싸서....창들고 다닌건....이야기에 들어가지도 않는....ㅋㅋ
역시 중세 고증쩐다는 킹덤컴도 결국 게임이었군
하긴 평민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갑옷 파밍하는거 부터 말이 안되네
저기다 더 해서 기사는 움직일 때 기사만 가는게 아니라 종자가 따라 붙어야죠.
갑옷입혀주고, 무기 관리하고, 밥타주고, 물떠주고, 말 먹이고, 말 관리하고 등등 모든 일을 해 줄 종자와 그 종자 밑에 딸린 노예까지..
다 기사가 부담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말굽 신발보다 싼집 이라는 간판 있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