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ohabe.com/sisa/2305717
올림푸스 카메라, 사진
(사진의 주인공은 99 아트컴퍼니 소속 전문 무용수 이승아씨입니다.
E-M1 Mark3 + 올림푸스 60mm 매크로로 촬영했습니다)
제가 마이크로포서드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2017년으로 소니 크롭 캠코더를 사용하던 공연기록영상용 카메라를 약 6년만에 교체하면서 파나소닉의 GH5s로 변경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에는 이 규격을 순전히 영상용으로만 사용할 계획이었고, 렌즈도 기록 영상용 줌 렌즈 하나만 마련했었구요. 다만 GH5s가 여전히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다 보니 조금 사용해 봤는데 흑백 사진 빼고 컬러 사진은 전혀 맘에 안 들더라구요. 사실 파나소닉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 컬러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깊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역시나였던거죠. 당시 생각은 아주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 센서가 작은데 별 수 있나' 라고 말이죠.
그러나 기왕에 새 규격을 마련하고 보니 같은 규격인 올림푸스의 아담하고 예쁘장한, 심지어 연식이 오래된 것들은 중고값이 미칠듯이 저렴한 기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품귀현상 때문에 가격이 많이 올라서 그렇게는 안 되지만 당시에는 좀 인기있는 렌즈를 하나 사려고 하면 때때로 오래된 바디 하나가 무려 렌즈 뒷캡(!) 대신 수준으로 딸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손에 넣은 사진용 바디가 단돈 2만원(!)에 얻다시피 한 올림푸스 E-PM2 였지요.
사실 당시의 저 역시 기술적인 부분의 집착이 강했던 시대라 사진 품질은 전혀 기대는 안 했고 폰카메라보다만 잘나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로 사진을 찍어 보니 파나소닉과는 완전 딴판으로 컬러까지도 상당히 잘 나오더라 이겁니다. 당시 저는 업무용 카메라로 니콘의 최상급 DSLR 풀세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100% 확대로는 사실 비교하기가 뭐하지만 암튼 잘 완성해서 일반적인 감상 사이즈인 2000-3000픽셀 언더로 만들어 놓으면 그리 큰 문제가 안 됩니다. DR이 좀 아쉽긴 하지만 작은 센서에서 나오는 표현 특성인 DR이 조금 부족하면서 살짝 열화된 해상력 느낌이면서도 선명한 부분은 충분히 선명해서 의외로 따스한 질감이 나오더라는거죠. 최신의 고화질 고선명 카메라로는 후보정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로맨틱한 질감이 있더라 이겁니다. 근래의 최신형 카메라들은 기술적으로 너무나도 뛰어난 나머지 너무 선명하고 깨끗하게 나와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사진이라는 영역은 분명히 하이테크를 배경으로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술이라서 기술적 우월함은 결과의 우월함에 도움은 되지만 바로 연결되진 않습니다. 하이테크는 단순히 결과물의 시녀에 불과합니다. 예술이란 사람들의 과거의 어떠한 익숙함에 아주 많은 부분 소구하는 분야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로맨틱한 질감을 위해 일부러 더 불편하기 짝이 없고 그냥 쓰기만 하는 것으로도 돈이 훨씬 많이 드는 필름 카메라도 일부러 사용하는 시대입니다. 저는 올림푸스 카메라들을 우선 보조용으로 제 작업의 언저리 촬영(메이킹 필름) 용도로 사용해 봤는데, 마이크로포서드가 가장 취약해지는 어두운 조명 투성이인 공연장 백스테이지 등에서 막 ISO 3200-6400에 내장 디지털 텔레컨버터까지 마구 사용해서 미칠듯이 노이즈도 많고 거친 표현도 많고 그랬지만 사진의 화질에 아무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펙에 드러나지 않는 올림푸스 카메라의 아주 특별한 장점이 하나 있는데, 라이브 뷰를 표시할때 무조건 실제로 조리개를 조여서 표시하지 않고 일종의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제대로 보려면 심도 미리보기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이 문제로 인해 하나의 단점이 생기는데 기본적으로는 라이브 뷰가 촬영 결과물과 비슷한 그림을 보여주지만 조정 범위를 어느 이상 벗어나면 결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러나 이걸 통해서 얻는 매우 큰 장점이 있습니다. 저조도에서도 전자 파인더/라이브뷰의 프레임 드롭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파나소닉의 경우 저조도에서 프레임 드롭이 아주 환장할 지경입니다. 소니의 경우는 프레임 드롭은 많이 개선되었는데 도저히 그림을 제대로 보기 힘들 만큼 미칠듯이 자글거리는 저화질을 보여줄 때도 있습니다. 미러리스가 DSLR대비 라이브 뷰의 프레임이 어떻게 해도 물리적으로 100% 실시간은 아니라는 점은 가장 문제가 되는 아킬레스건인데 올림푸스는 비록 단점을 만들었지만 나름의 보완을 해 두었고, 이것이 불편할 대도 많지만 포착이라는 관점에서는 확실히 두드러지는 편리함입니다.
이렇게 써본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야, 그런데서 왜 그걸 써? 라는 핀잔이 돌아오곤 했죠. 근데 사진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 거친 느낌이 더 분위기를 살리고 매력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더구나 카메라가 작고 예쁘다 보니 사람들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찍히는 이들에게 부담이 거의 없었습니다. (모니터를 펼쳐 보여주기 전에는 요즘 거의 무조건 환영받는 필름 카메라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찍는 주요 주인공들은 대학에서 무용예술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이거나 20대 중후반의 여자 전문 무용수들입니다. 스스로가 단 1이라도 못생기게 나오는 걸 극히 싫어하는 까다로운 사람들이란 뜻이죠. 남자들도 있지만 수가 아주 적구요. 남자들도 당연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자면 적어도 한국에서 마이크로포서드 카메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컬러 사진의 경우 파나소닉보다는 올림푸스가 전반적으로 훨씬 좋구요, 기본 컬러도 컬러지만 내장된 컬러 조정 기능이 올림푸스쪽이 훨씬 쓰기 좋기 때문입니다. (파나소닉을 올림푸스랑 똑같이 써 볼 수 있냐고 누가 물어보면 저는 아무런 고민 없이 자신없다고 하겠습니다) 거의 없는 것보다 나은 수준인 파나소닉의 먼지털이 기능보다는 올림푸스의 그것이 강력해서 막 쓰기도 훨씬 좋구요. 아참, 파나소닉은 렌즈만큼은 아주 뛰어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모든 카메라 제조사들 중 폰과 와이파이 연결이 제일 잘 되고 쉬운 회사는 올림푸스일겁니다. 전송속도는 다소 느리다 싶지만요. 제가 니콘을 그렇게 오래 썼음에도 스냅브리지 같은 경우 정말 욕할 한바가지 해주고 싶은 수준입니다. 아주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무언가를 기본적으로 내장하고 있는 기능이지요.
마이크로포서드는 기본적으로 카메라와 렌즈 시스템이 작아서 더 큰 장비 가방을 사지 않아도 이미 쓰던 가방의 구석 공간에 예비 카메라까지 담아갈 수 있습니다. 외관도 전반적으로 더 로맨틱하기에 대하는 입장에서 더욱 인기가 좋습니다. 심지어 여자 모델들의 촬영 소품으로도 너무나도 유용합니다. 개인적으로 외모도 외모지만 카메라가 가진 헤리티지라는 관점에서 라이카보다도 오히려 올림푸스가 적어도 여자 모델들의 카메라 소품으로는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니콘은... 제가 니콘을 아주 오래 썼지만 FM 시리즈나 최근의 Zfc 같은 걸 가져와도 여전히 올림푸스만큼은 안 어울리는 듯 합니다. 아주 미묘한 컨셉의 차이에서 나오는 부분인데, 제가 보기에 니콘 카메라는 아무리 모아 놔도 사치품처럼은 안 보이는데, 올림푸스 카메라들은 비슷하게 모아 두면 어딘가 사치품의 스멜을 풍깁니다.
사진의 기술적인 퀄리티 또한 아무리 사골센서니 어쩌니 해도 2010년대 초중반 이후 소니 센서 채용 기종이면 캐주얼한 상업사진 용도에 한정한다면 고객에게 전혀 클레임을 받지 않을 충분히 문제없는 기술적 퀄을 뽑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드웨어적으로는 같은 부품인진 몰라도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달라진 것이 굉장히 많아서 절대 모양만 달라진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물론 업무적으로는 고화질 장비는 당연히 필요하고 이 기종으로 모든 걸 다 해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올림푸스-마이크로포서드 카메라만의 표현적 개성이나 질감의 많은 부분은 더 고성능의 다른 카메라로도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부분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근래의 대중적 상업 사진 취향은 고화질 고품질이 아니라 사진에 담긴 느낌과 설득력입니다. 즉,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잘 활용하면 되는 시대이고 그를 기반으로 여전히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거죠. 개성의 차원에서 충분히 유용성이 있는 이 카메라를 애초에 풀프레임 고화질 카메라와 1:1 대등한 용도로 쓰겠다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면 취약하다는 고감도 노이즈 억제력 문제나 심도 표현도 실 사용에서 전혀라고 할 정도로 문제가 안 됩니다. 애초에 1:1 대응이라는 것이 터무니없는 이유가 일단 가격대만 생각해봐도 당연한거죠.
다만 번들 줌 렌즈 외에 조금만 더 좋은 렌즈들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며, 필드 사진에서는 빛을 조금 더 예민하게 읽어서 조금 더 나은 노출을 얻을 수 있는 곳, 혹은 더 나은 대비를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성격상 대부분의 기종에서 큰 줌렌즈보다는 작은 단렌즈가 더 적합합니다. 번들 줌 렌즈 또한 아주 무난하고 좋지만 기본 조리개가 다소 어두워서 좋은 표현이 발휘되는 구간이 좁습니다. 그 때문에 카메라가 저평가될 수 있지요. 보기에는 입문자용 스타일이지만 실 사용에서는 상급자용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로포서드용 렌즈들은 신품가가 비싼 듯 하지만 퀄리티가 굉장히 좋은데 그 증거는 거의 10년 전의 올림푸스 단렌즈들과 동시대의 소니 미러리스용 단렌즈들의 표현 퀄 차이를 비교해 보면 됩니다. 올림푸스의 단렌즈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신형 기종에서도 딱히 리뉴얼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그림이 잘 나오지만 비슷한 시대의 소니 렌즈들은 리뉴얼의 필요성이 느껴지니까요. 물론 기본 화소가 다르지만 16-20MP 화소는 기술적으로 초고화질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 다음에는 여전히 상업사진용으로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필름 카메라보다는 훨씬 편리하면서도 성능이 좋고, 폰 카메라와 비교하면 사진 안 찍고 그냥 들고 다닐 때의 약간의 편의성 외에는 일단 들어올려 찍기 시작하면 전용 기기 특유의 훨씬 나은 조작성을 비롯해 표현력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좋습니다.
폰 카메라가 이렇게 대중적인 이유도 결국 대중은 기술적 초고화질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초고화질은 줄이면 더 고화질이 되지만 기본적인 워크플로우의 효율을 생각해보면 작업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무리만 없으면 절약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소니 A7R4같이 60MP 넘는 카메라도 사용하지만 그 고화소를 돈을 더 받고 쓸 수 있는 환경은 대중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 무거운 카메라를 답답하지 않게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메모리 카드 한 장에 수십만원씩 주고 사다 쓰고 하드디스크를 계속 사들이는 것이 사진을 사는 고객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원하거나 신경쓰는 일은 아니라는 거죠.
올림푸스 카메라를 보조용으로, 혹은 때때로 작업의 주력의 한 부분으로도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고객들에게 카메라를 왜 그런 거 써요? 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 그 이쁜 카메라 얼마 정도면 살 수 있어요?라는 문의는 무지하게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 새 걸로는 안 판다는 이야기도 함께 많이 했지요) 지난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장난감 같은 카메라로 장난감 같은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즐거운 일입니다. 용도에 잘 맞는 장비를 나름 개성의 한 부분으로 잘 다듬어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인 듯 합니다. 마이크로포서드-올림푸스 카메라가 지난 개성은 그런 바탕에서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소니 모든 제품 박스에 씰이 있나용? [4]
- bewise | 2022/01/10 14:29 | 1672
- 한국과 일본의 프랑스산 와인 마시는법 [16]
- 十八子爲王 | 2022/01/10 13:39 | 655
- 용사와 마왕이 존나게 한 만화 [25]
- 이븐 알-하이삼 | 2022/01/10 11:44 | 1191
- 자전거의 위험 [15]
- mssql | 2022/01/10 09:45 | 311
- 안죽고 살아있는 게 신기한 성룡 본인 스턴트씬 레전드.GIF [30]
- 일루마나티 | 2022/01/09 23:18 | 1433
- 탕 쿠쿠를 그려봤습니다. [4]
- 슈퍼스타당 중앙위원 | 2022/01/09 21:36 | 1718
- 오늘도 평화로운 유게 렉카 .JPG [11]
- 검은투구 | 2022/01/09 19:56 | 1374
- ??? : 신라면은 있는데 백제면이나 고구려면은 없음? [22]
- 이젤론 | 2022/01/09 18:20 | 343
- 대한민국 건물주님의 직업 ㄷㄷㄷ [21]
- 꽁치드릴 | 2022/01/09 16:35 | 1114
- 오늘의 지름 신고 [10]
- 칠백이.™ | 2022/01/10 14:25 | 301
m5m3은 좋긴 한데 이전 버전들에 비해 모양이 너무 남성적이라서 그닥 맘에 안 들더라구요.
저는 오리지널 m5의 날렵한 어깨선을 사랑합니다 ㅎㅎ
m1m3은 AF성능이 너무 좋다보니.. m5m3은 그에 비교하면 어떨지 궁금하긴 합니다.
M1m2 로는 저의 주요 목표물(!)들을 못 따라잡더라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