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7학번이다. 나는 풍물패를 했어서 학생운동에 많이 참여했지만 97년의 학생운동은 이전만큼 치열하진 않았다. 선배들의 피로 얻어낸 결과였다. 그래서 학생운동의 주는 학원자율화운동이었다.
그래도 97년의 학생운동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한양대 한총련출범식이었다.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단체로 찍혀서 공중분해된 그 한총련이다. 풍물패였던 나는 출범식 문화공연 지원을 위해 한양대에 들어가 있었는데 조중동에선 우리가 북한을 찬양한다고 연일 보도를 쏟아내고 있었다. 결국 프락치사건과 전경사망등의 흑역사를 남기며 한총련이 공중분해되는것으로 마무리된 사건이다.
이 한총련사건을 겪고난후 선배들은 우리편이 될수 있는 언론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학생회단위로 5부씩 구독하고 우리 풍물패에서도 회비로 5부를 구독하는 등 한겨레의 비상을 위해 전폭적 지원을 하게된다. 내 자신도 한겨레의 학생기자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다양한 IT관련 기사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겨레가 노무현대통령을 공격할때도 권력에 대한 견제의 역할을 하는 깨어있는 언론이라고 스스로 이해시키며 넘겼고 이명박근혜에 침묵할때도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인지부조화급의 이해심을 발휘했다.
지금와서 느끼는건....우리가 괴물을 키웠구나 하는 생각이다.
슬슬 누군가가 이 괴물들을 등에 업고 괴물은 누군가를 숙주삼아 다시.. 조만간 나타납니다..
근래 확실히 느끼는건 한경오는 지금의 문재인대통령 및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성향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결국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관련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9학번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할말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그래서 저도 어용시민이 되기로
언제나 괴물은 퇴치하는건 사람이죠
저는 99학번입니다,
학생운동을 한건 아니었지만, 그쪽의 친한 형/친구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나름 신방과였고
대학에 가서야 조중동의 문제에 대해 겨우 알아가고있던 중.
당시 등장한 인터넷이라는 신문물(!!!)로인해
종이신문, 주간지등의 구독료가 줄어 영세 언론사들이 재정위험이 시작되고 있다는걸 들었고
-당시엔 구독료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에 형/친구들과 교내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운동을 했었습니다,
뭐 운동이라봐야 출력물 배포하고, 정문 옆 게시판에 붙이고, 화장실에 붙이고 정도였는데
지금 돌아보니.. 저도 괴물을 키우는데 일조를 했었나 하는 생각이드네요
대학때 한겨례를 몰아서봐야한다면서 구독하고 사설꼬박꼬박 읽고 그랬던 기억이 .. 노무현정권 이후 한겨례는 제사용 전붙일때도 바닥에 깔아주는 용도로도 안씁니다.
한겨레 망했으면
좋은 의도로 싹을틔워 정성껏 길렀지만
시간이 흘러 지잘난맛에 저렇게 맛탱이가 간 것까지 글쓴분의 책임은 아닙니다...
93 입니다. 선배들 협박에 못이겨 등록금 투쟁 이나 끌려나가고 다른 학우들 시위하는 모습보며 카페에서 거피나 찌끄리던 청춘이었습니다. 그런 부끄럼움이 진보를 키워야 된다는 죄책감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정기구독은 아니었지만 나름 뿌듯해 하기도 했었고요 정의당 비례 주고 주변인들에게 진보도 키워야 한다고 깨인 지식인 인양 떠들어 대었는데 지난 시간 정말 무서운 괴물을 키우는데 동참해왔네요. 그러면서 내 대통령 죽어가는것도 보질 못하고 아니 모른척 했구요 에이...기분 더럽네
그것보다 초심을 잃어버리고
변질된거죠..
단체로 구독해지 하던지
광고주들 압박이 필요한듯싶네요..
그냥넘어가다간 힘떨어지는
4,5년차에는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광고주들 지원이없으면 알아서
힘빠질듯합니다..
저도 97학번 풍물패 출신인데 반갑습니다.
딱 그때까지 화염병에 쇠파이프 들었었죠.
최루가스 마이 마셨었눈데...
94입니다. 대학시절내내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을 등교길 지하철에서 읽었고 씨네21이 처음나왔을때 학과방에서 동기들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20대의 한부분이었는데 오늘 사건은 참으로 씁쓸합니다.
뜨아... 오유 평균연령의 상태가
02학번 전남대학 교 풍물패 전풍연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