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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쉬 쉬었다

나쁜.피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답글이 안되어 새글로 올리는 사진이라
본문 내용이 좀 쌩뚱 맞습니다;;
벌써 9년전 사진이네요.
한참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회의가 오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진들 중에 하나입니다.
혼자 삼천포에서 어슬렁 대며 걷다가 무를 뽑아 집으로 가시던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잠시 쉬는 중이라고 하시기에 늘 하던대로 촬영 허락을 받고 총 다섯장을 찍었고,
아마 첫번째 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사실 이날 제가 느낀 할머니의 정서가 첫번째 사진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제가 어떻게 길가다 스친 할머니의 정서를 한 두마디 나누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꼭 할머니의 정서를 제가 사진으로 표현해야 합니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좀 영향을 많이 받은 형님 따라 저 역시도 이무렵 사진을 찍는 주된 목적은,
적당한 크기로 인화해서 집 벽에 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찍은 사진들 중 과연 벽에 걸어 둘만한 사진은 또 무엇이 있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시골에서 여행도 아닌 출사를 다니다 잠시 만난 할머니의 사진을
그러니까 아무런 추억도 없고 그저 5분 남짓 잠시 머물고 대화하며 남긴 그 사진을
내 집 거실 벽에 걸어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죠.
얼마전 필포의 고수님들의 댓글 대화중에 참 기억에 남는 글이,
모 회원님의 동의를 받지 않고 옮기자면 "진작부터 과정만을 즐기는 풍류객일뿐 입니다"
저는 이 말이 상당히 용기가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와,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진이 많은데 내가 굳이 한 장 더 할필요가 있는가,
그냥 가족사진이나 찍자했던 마음의 짐을 저 댓글로 좀 덜었다고나 할까요.
이야기가 또 곁가지로 흘러서 이만 줄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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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kton 35mm F1.4 (S.C) | TMY

댓글
  • 안자 2017/04/20 11:01

    시골출신인 제눈에는 일상에서 늘보아왔던 우리들의 어머니모습인데,굵은 손마디에 세월의풍상을
    고이간직한 주름살, 이렇게 흑백사진 으로보니 가슴한구석에 애잔한 그뭔가가 올라옵니다..
    바라보는 시선저쪽에 누가있을까?
    백설같이 새하얀 양말이 도드라져 보이네요.
    사진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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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립 2017/04/20 11:50

    촬영한 저보다 더 많은 것을 보시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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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 2017/04/20 11:06

    아하 글 속의 주인공이시군요...
    그래도 그 사람과 잠시라도 마음을 나누고
    교감을 하며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용기를 마음에
    갖고 있는것으로도 사진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진에 관한 심오한 생각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습니다..그런 마음도 없이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제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네요...감사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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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립 2017/04/20 11:52

    제가 겉멋이 들어서 그런가봅니다.
    일전에도 수술님께 여쭤봤었지만,
    늘 사진에 생각을 담으시는 것이 부럽습니다.
    수술님 사진을 볼 때마다 삼각대 사용을 고민해보곤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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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피 2017/04/20 11:15

    아 말씀하신 댓글의 사진이 요기 있었군요
    저는 프립님의 고민이 너무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복잡다단한 것들을 떠나서 제 생각에 그런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이 얼마나 컸으면 사진 촬영에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찍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얻는 것들이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셔서 그런지
    제 눈엔 그런 고민이 사진에 역력하게 드러나있어 보여요.
    찍는 중간 심지어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에도 왠지모를 프립님의 혼란스러운 복잡한 생각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약간의 위축된 프립님의 모습까지.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위축이란 단어에 혹여나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죄송하구요 제가 쓰는 글 지금까지 보시면 기분 안좋으시라고 적은 뉘앙스의 단어가 아님을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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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립 2017/04/20 11:54

    필포의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해오셨을 고민이고, 여기에 사진을 올리시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극복하신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도 올리면서 누군가 조언을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나쁜.피님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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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ON] 2017/04/20 12:15

    진지하게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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