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안녕,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선 자기소개부터 할게.
나는 지금 40대 중반, 서울에서 중견기업을 다니고 있는 회사원이야.
아내도 있고, 슬하에 딸도 둘이 있어. 그리고 큰딸보다 나이가 많은 시츄도 한 마리 있고.
뭐 필요 이상으로 개인정보를 여기에 올릴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그런 아저씨의 이야기라고 알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래.
후우, 그래, 근데 정말 이걸 어떻게 시작을 하지.
일단, 이 이야기는 거의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야.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지방에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다가 몇 번인가 물을 먹은 뒤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또 스펙이라도 쌓아야겠다 싶어서 결심했던 게 일본 워킹홀리데이였어.
영어는 워낙에 울렁증이 있었던 터라, 일단 가까운 일본으로 가기로 했지. 일본어는 워낙에 옛날부터 일본 문화에 흥미가 있기도 했고,
뭐 주로 만화 쪽이나 게임 쪽이었지만, 일단 읽고 쓰는 건 잘 못해도 어찌저찌 말하고 듣는 건 되더라고.
아무튼, 정말로 사전조사도 제대로 없이 무대포로 시작한 일본 워홀이었는데, 뭐랄까 운이 잘 따라줬다고 해야 할까,
일본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처음으로 일할 곳을 찾을 수 있었어. 그리고 내 워킹홀리데이의 모든 기간을 난 거기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왔지. 정말로 일 할만한 곳이었어. 시급도 나쁘지 않았고, 일 자체가 저녁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거라,
체력이 허락되는 날이면 잠깐 쪽 잠자고 어디 낮에 놀러 다니는 것도 가능했고, 사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지.
장소는 오오쿠보역 근처에 있는 작은 선술집. 뭐랄까 젊은 애들이 오는 장소라기보다는 정말로 동네에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동네 마실 나와서 한잔 하는 뭐 이런 분위기의 선술집이었는데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 작은 테이블 네 개에 카운터 테이블 두 개 정도 되는 작은 규모?
직원이라고 해봐야 주방장 겸 사장님 한 분. 그리고 서빙이랑 주방 잡무 도와주시는 아저씨 한 분, 그리고 가끔씩 나와서 도와주는 사장님 딸.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사람은 이 사장님 딸이야. 이름은..
아니야, 이름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이름은 넘어가도록 할게.
그 선술집이, 가게 규모는 작았지만, 일이 적지는 않았어. 일단 기본적으로 가게에 손님들이 들어오면, 정말 별의 별 사소한 것까지 서비스를 다 해야 했거든. 이를테면 사와.
사와라는건 쉽게 말하면 과일이 섞인 탄산음료가 들어간 칵테일 같은 거야.
츄하이(사와랑 똑같은데 탄산 없는거)랑 사와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기계가 있었는데, 주문에 따라서 그걸 받아간 다음에 손님이 주문한 해당 과일을 눈 앞에서 직접 즙을 짜내서 그 컵 안에 타서 넣어줘야 하는 그런 거?
근데 그게 요령이 없으면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막 일 끝나고 나면 팔이 후들 후들거렸던 기억이 나.
아무튼, 그렇다보니, 가끔가다가 주말이라거나 아니면 평일이라도 손님이 몰리는 날이면 이 사장님 딸이 도와주러 나오곤 했어.
그 당시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는 진학할 의사가 없어서 당분간 집에서 앞으로의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뭐 그런 상황의 아이였는데, 가게에서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뭐 그래 봐야 본인 아버지랑 아저씨지만, 나랑은 나이차이가 적었던 탓인지 가끔씩은 농담 따먹기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
아무튼,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어, 정말로 무지막지하게 더웠던 날이라 손님들이 다들 집에 있기 싫었는지, 가게에 와서 술만 진창 시켜대는,
그런 날이었는데 그날도 쌔가 빠져라 사와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날 도와주겠답시고 나서서 기계에서 술은 자기가 내리고 나는 열심히 과일 즙만 짜내게 해주었지.
..덕분에 그날 팔 바스러지는 줄 알았어. 아무튼 그러던 와중에 사고가 터진거야, 너무 과도하게 일을 시켰는지, 사와를 만드는 기계가 터져버렸거든,
다행히 사람이 다치는 폭발 뭐 이런 건 아니었는데, 실린더 안에 있던 탄산이랑, 소츄랑 섞여서 온 주방안에 뿌려지기 시작한거야.
나는 다행이 그때 홀에 나가있어서 괜찮았는데, 그 딸아이는 뭐, 온몸에 직격으로 물벼락, 아니 술벼락을 맞았지.
주방에서 갑자기 그 난리가 나니까, 일단 나도 어떻게 수습은 해야겠다 싶어서, 재빨리 짜던 과즙 마저짜고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는데, 일단 어찌저찌해서 실린더를 기계에서 분리해내고 나니까 직격으로 맞은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꼴이 말이 아니더라, 그래서 일단 끈적한 술이라도 닦아내야겠다 싶어서, 가게 뒤쪽에 있는 직원용 화장실로 부랴부랴 들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거지.
나보다 더 홀라당 젖어있었던 그 딸아이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어, 온몸이 홀딱 젖은 사람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어디겠어.
화장실이겠지, 씻어야 하니까.
아무튼 직원용 화장실이라 잠금장치도 제대로 안되어있던 곳이라, 내가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 아이는 뭐 어떻게 대비할 수도 없는 상태였고,
뭐, 다들 예상했겠지만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어,
…
[다음화에 계속]
농담이야, 워낙에 무거운 글을 쓰려다 보니까 별 희한한 짓을 다 하게 되네.
뭐 상의를 탈의 했다고는 하지만 속옷은 입고 있는 상태였고, 그 아이, 많이 놀라긴 했지만 자기만큼은 아니라도 홀라당 젖은 내 꼴을 봤는지,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많이 부끄러워하더라.
그래서 나한테 등을 확 돌리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봤어.
날개가 하나 뿐인 나비 문신.
뭐랄까 정말 화려한 호랑나비 같은 느낌이었는데, 좀 낮 선 파란색의 날개를 가진.
허리보다는 조금 위에, 어깻죽지보다는 조금 낮은 곳에, 그렇게 참 잘 새겨진 나비문신이 있더라.
그날은 정말 뭐랄까 경황이 없어서 그냥 보고 놀라고 말았는데, 나중에, 한 두어달 시간이 지난 다음에 둘이서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을 때 물어보니, 고등학교 졸업한 기념으로 새긴거라더라.
왜 날개가 하나뿐이냐고 했더니, 원래는 날개가 두 개여야 되는 게 맞는데, 문신 새기다 보니까 너무 아파서 다음날 마저 한다고 일단 집에 왔는데, 아버지한테 문신한 게 걸려서 정말 죽을 만큼 혼났나 봐, 그래서 마저 끝내는 건 꿈도 못 꾸고 그렇게 남아버렸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이야기를 하더라.
사실 우리 사장님, 무섭기는 했거든, 평소에는 뭐랄까 묵묵히 잘 챙겨주는데, 한번 화났다 하면 물불 안 가리는 그런 타입. 가끔가다가 나한테 농담으로 자기 딸한테 수작 걸면 포를 떠다가 치라시 스시를 만들어 주마 뭐 이런 농담 같은 것도 하곤 했는데 그게 농담으로 안 들릴 정도였으니 뭐 말 다했지.
아무튼, 이야기가 자꾸 다른 쪽으로 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냥 그렇게 그 아이와는 별다른 사건사고없이, 내 워홀의 마지막까지 지낼 수 있었어.
사실 문제가 있었던 건 사장님 쪽이었지.
아니 정확히는 나랑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장님 본인의 문제.
나는 잘 몰랐는데, 이 사장님이 생각보다 도박을 좋아 했나 봐. 가끔씩 경마방송 라디오로 듣고 뭐하고 하는 건 봤지만 뭐 그냥 그건 취미인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그게 조금씩 조금씩 더 심해졌는지, 나중에 나 한국 들어갈 때 즈음에는 내 임금이 밀릴 정도?
그게 절정으로 치 닫은게 나 출국하기 일주일 전. 못 받은 돈이 대충 한 3만엔 조금 넘는 상황이었는데, 사장님이 가게 문을 닫고 안 나오기 시작을 했어. 뭐 당연히 전화를 한다고 받는 상황도 아니니까, 나는 출근시간이 되서 가게 앞에서 멍때리다가 집에 가고, 뭐 이런 상황이랄까?
그러다가, 그 사장님 딸아이한테서 연락이 왔어. 아무래도 이 사장님,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거지. 야쿠자한테 사채까지 끌어다가 도박을 했나봐.
그게 금액이 얼마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 아이가 나한테 울면서, 미안하다고 근데 정말로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임금 밀린 거 자기가 나중에 어떻게 던 나한테 보내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줄 수 없겠냐고 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더라.
아버지가 사채 빚 얻어다가 도박을 한 와중에 가게 직원 3만엔 돈 못 준거 걱정 하는거 보면, 일본 사람들 참 대단하긴 해, 아무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알겠다고 하고 내 이메일 주소랑 한국에 있는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일단 귀국을 했어.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났고.
한국에 돌아온지 대충 반년쯤 됐을까, 통장에 돈이 입금이 됐어.
처음에는 잊고 있었던 돈이라 이거 도대체 뭐야? 라는 느낌이었는데, 왜, 그 외국에서 송금한 돈이다보니 한국 돈으로 보면 돈 단위가 좀 이상하잖아, 금액이 이쁘게 딱 안떨어지고 십원단위까지 나오는 뭐 그런거.
그제서야 아 이게 그때 못 받은 돈이구나 싶어서, 당시에는 잘 들어가지도 않던, 내가 그 아이에게 주었던 이메일을 들어가봤어. 그랬더니, 참 장문의 이 메일이 하나 와 있더라.
아무래도, 내가 떠난 이후 사정이 더 안 좋아졌던 모양이야, 아저씨가 벌인 도박판에 집도 가게도 다 날아가고 그러고도 빚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
그래도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마련한 돈, 나한테 보내는 거라고, 나한테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늦었지만 그래도 받아달라고 하는 뭐 그런 내용이 써있는데, 뭐랄까.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과, 어떤 의미에서는 참 안쓰럽더라.
그리고 답장은..
안했어.
뭐랄까, 인연을 끊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사실 조금 무서웠다고 해야 할까?
야쿠자니 사채니, 사실 일반 사람들이 겪는 그런 일은 아니잖아.
아무튼 그렇게 돈을 받고, 기억의 한편으로 사라져간 그런 아이가 한명 있었어.
..
그리고, 오늘 그 아이를 성인사이트에서 찾았어.
정확히는 그 아이의 동영상을.
아내나 딸들한테는 걸려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만, 그 나는 가끔가다가 ㅇ동을 봐. 오늘도 아내랑 딸들이 다 쇼핑간 틈을 타, 몰래 거실 컴퓨터로 그냥 별 생각 없이 늘 가던 사이트에 접속을 했는데.
..
추천 동영상 썸네일에서 그 나비를 봤어.
날개가 하나 뿐인 그 나비.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건가 싶어서 그 동영상을 클릭을 해 봤는데, 내 착각이 아니었어.
내가 잊고 있었던, 그 아이가 20년전 모습으로 그 영상 안에 나오더라. 그런데, 동영상 화질도, 그리고 촬영 기술도, 요즘의 그것이 아니었어.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정말로 20년정도 된.. 그런 동영상.
연출이었는지 아니면 실제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지만 그 동영상은 싫다는 그 아이한테 몹쓸 짓을 하는 그런 동영상이었어.
처음에 그 영상을 봤을 때는, 정말로 머리를 망치로 한대 맞은 거 같은 기분이더라.
야쿠자에게 빚을 진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딸.
잠깐만 생각을 해봐도, 그 딸이 무슨 꼴을 당할 수 있을 까는 상상이 가능하잖아.
근데 사실, 무서운 건 거기가 끝이 아니었어.
사실 거기까지만 봤으면 오늘 내 하루는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하루였을지도 몰라.
내가 가는 그 사이트에는, 영상 한편이 끝나면, 해당 업로더가 올린 다른 관련 동영상이 옆에 떠.
거기에, 정말로, 시리즈로 존재하더라, 그 아이의 영상이. 심지어는 스크롤 크기도 작아져서 클릭이 제대로 안될 만큼 그 숫자가 많더라.
정말, 다 클릭해보지는 못했지만, 그 썸네일 만으로도 난 화장실에 가서 구역질을 해야만 했어.
정말 너무 혐오스럽고, 역겨워서 글로도 적기가 싫은 그런 장면들.
그래도 하나만 말해주자면, 내가 제일 무서웠던, 내가 클릭할 수밖에 없었던, 동영상이.. 가장 최근에 올라온 그 동영상이 2년이 채 안됐다는 거야.
그리고, 더 이상은 아이가 아닌, 그 아이의 등 뒤의 나비는 더 이상, 나비로 보이지 않았어.
정말, 무슨 영화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지.
…
후우..
내가 지난 20년동안, 내 인생을 설계하고, 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이렇게 살고 있었던 동안, 나와 1년을 같은 공간에서 인생의 교차점을 찍었던 그 아이는,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았던 걸까.
나이 먹은 아저씨의 꼰대 질이라고 해도 좋아.
너희들, 도박만은 하지 마라, 그리고 사채 따위도 꿈도 제발 꾸지 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성인사이트에 들어가거들랑..
혹시나 너희가 아는 사람인거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호기심에서라도 눌러보지마.
나는 아마, 어제의 나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후..
안되겠다.
담배나 한 갑 사러 가야지.
소설이겠지만 저 여자 넘 불쌍해요 같은여자로써 생각할때 성적으로 고통받는게 최악인거 같아요.
예전에 망한사이트에서 누가 일본가서 만난 츠자사진 올렸는데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오는 AV 품번이 돌았었죠.
%주의 : 당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인데 이야기 진행이 딱 일본스럽기도하고
레딧스럽기도 하네요 ㅎㅎ
찜찜하고 입맛 씁쓸한 이야기네요
레딧 '포ㅇ노에서 아는 여자애를 봤어요' 번역글이 떠올랐어요. 모티프가 같아서 그런지 문체가 레딧타입(?)이라 그런지 떠올라서 같이 읽었어요... 저쪽은 잔인함이 더하고 소름끼치는데, 이 얘기는 더 구체적이고 소설적이고 개연성있고.. 현실감과 애잔함과 무서운 서글픔이 더한거같아요...ㅠㅜ
와 레딧에 2CH에 한국적 문체가 골고루 잘 섞인 찝찝한 비빔밥 먹는 느낌.....참 긔하군여..
블로그에 보면 자작글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