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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잡설] 음악과 정치(1) - 역사적 현장의 음악들

 

음악과 정치(1) - 역사적 현장의 음악들

 

베토벤이 귀족의 하인에서 고귀한 예술가로 음악가의 신분 상승을 이루어 낸 이후 음악가들은 음악은 지저분하고 복잡한 정치와는 동떨어진 고귀한 존재가 되는 걸 이상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은 법.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매우 좋은 수단이고 따라서 음악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매우 활발히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곡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로 흔히 국민악파라고 불리는 음악성향을 가진 작곡가들이 많습니다.

국민악파는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프랑스)가 아닌 지금까지 음악적으로 영향력이 적었던 지역(주로 동유럽, 북유럽 쪽)의 그 나라 고유한 음악을 베이스로 한 클래식 작품을 쓴 작곡가들을 칭하는 단어입니다.

19세기 ~ 20세기 초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유행하던 시절 클래식 음악의 변방이었던 지역에서 뛰어난 음악가가 나왔으니 신생국가의 자랑거리로 쓰기 좋은 이유죠.

둘째로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큰 스케일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애절한 멜로디가 많이 쓰입니다. 대편성 관현악과 합창까지 동원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심지어 원래 합창곡이 아닌데도!)

그 말인즉슨, 매우 귀에 잘 꽂히면서 들으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곡들이라는 뜻입니다. 불페너 여러분들도 멜로디를 들어보면 한 번 쯤 들어봤다 싶을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용된 몇 가지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해도 이 곡들은 모두 그런 이유로 저평가할 곡들이 아닌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명곡들입니다. 단순히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나쁘게 볼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에게 제 2의 국가 취급을 받을 만큼 사랑받는 곡들이 많습니다.

순서는 작곡 년도 순입니다. 곡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도 같이 적어놓았습니다.

 


1.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작곡년도: 1842년 / 관련사건: 이탈리아 독립 전쟁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는 클래식 음악가들 중에 가장 많은 오페라 히트작들을 가지고 있는 대작곡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곡을 작곡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인생의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황이었습니다.

첫 오페라가 나름 괜찮은 흥행을 기록한 베르디는 이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 4년 만에 두 아이 모두 사망하고 아내까지 죽습니다.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작곡한 다음 오페라마저 실패하자 베르디는 자살 생각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베르디는 포기하지 않고 새 오페라를 작곡하는데 그 오페라가 〈나부코〉입니다. 이 오페라는 대성공을 하게 되고 베르디는 드디어 고난의 길을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이 오페라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의 저항을 다룬 내용입니다.


이 오페라가 흥행에 성공하게 된 데에는 물론 작품성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역사적인 요인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로 분열된 상태로 오스트리아 왕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오스트리아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물론 총칼로 억압한다고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는 없는 법. 독립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던 시기에 이 오페라가 나오면서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의 이탈리아 국민들이 이 오페라의 스토리에 공감을 느끼며 대박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사르데나 왕국 주도의 통일전쟁을 치르고 통일을 이루어 냅니다. 베르디 역시 이후 승승장구 하며 수많은 오페라 히트작들을 내고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작곡가가 됩니다.

한창 통일전쟁을 할 당시 베르디의 오페라를 공연하면 청중들이 외치던 단어가 “Viva VERDI!” 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단어는 Viva Vittorio Emanuele Re D' Italia(이탈리아의 왕 에마누엘레 만세)의 두문자어로 사르데나의 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국왕의 통일을 지지한다는 두 가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오페라 나부코의 대표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2. 시벨리우스 교향시 〈핀란디아〉

작곡년도: 1899년 / 관련사건: 핀란드 독립운동

시벨리우스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반의 핀란드 작곡가입니다. 당대에 최신 음악들이 점점 난해해져 가던 시기에 당대 트랜드를 따라가지 않은 곡을 작곡하면서도 큰 인지도를 얻은 몇 안 되는 작곡가죠.

이 곡에 얽힌 스토리는 위의 베르디의 스토리와 여러모로 유사합니다.

이번에 나올 나쁜 나라(...)는 러시아로 핀란드 역시 19세기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디아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있던 핀란드인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명곡이었고 시벨리우스는 러시아 지배 아래에 있던 핀란드의 자랑이 됩니다. 이 곡 역시 핀란드인들의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곡으로 등극합니다.

8분정도 하는 이 곡은 전반부는 러시아의 압제를 연상시키는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다 나중에는 화려하고 장엄하게 장식하며 끝이 납니다. 마치 핀란드의 광복을 예견하는 듯이...

핀란드는 오랜 독립운동 끝에 1917년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됩니다.(하지만 러시아와는 이후로도 끝없는 고난의 길...ㅠㅠ)

시벨리우스는 이후로도 많은 명곡들을 작곡해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월클 작곡가의 위치에 오르고 핀란드 정부로부터 연금까지 받으며 국가의 자랑으로 명예로운 삶을 보냅니다.

 

(헬싱키 뮤직홀 개관 연주회. 이 곡은 원래 합창이 들어가지 않는 관현악곡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행사가 있으면(특히 핀란드에서) 합창을 넣어서 연주하는 일이 많습니다.)

 

 

3.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작곡년도: 1901년 / 관련사건: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영국은 위에서 언급한 가시밭길의 역사를 가진 나라들과는 달리 단 한 번도 타국의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는 영광의 역사를 가진 세계 초강대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음악계에서는 헨델의 사후(이분은 심지어 독일에서 귀화한 작곡가)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변변한 작곡가가 없던 별 볼일 없는 국가였습니다.

그러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정말 간만에 자랑할 만한 음악가가 나옵니다.

그 분이 바로 에드워드 엘가인데 〈사랑의 인사〉라는 소품곡과 이 위풍당당 행진곡은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곡입니다.

이 곡은 5번까지 있는 곡이지만 1번을 제외한 곡들은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이 곡도 원래는 핀란디아처럼 합창이 없는 관현악곡이지만 1901년 1번곡을 들은 신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는 이 곡에 가사를 붙여 자신의 대관식에 연주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엘가는 1902년에 그 요청대로 가사를 붙여 〈희망과 영광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살짝 편곡해 발표했는데 영국인들의 애국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곡은 엄청난 히트를 치고 영국 제2 의 국가 취급을 받으며 영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가 있으면 자주 연주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졸업식이나 결혼식 등...) 더불어 이전까지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던 엘가는 단숨에 영국 국민 작곡가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영국 BBC Proms 연주회. 관객석을 가득 채운 유니언 잭을 보십시오. 이 곡이 영국 국민들에게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영국 국민들에게 이제는 지나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 제국 리즈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4.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작곡년도: 1942년 / 관련사건: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中 레닌그라드 전투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초~중반 활동을 한 러시아~소련의 작곡가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젊은 시절부터 유명한 작곡가였고 당시 공산주의 소련의 최고 작곡가로 국가적인 대우를 받습니다.(사실 예술에 엄격한 검열을 하는 소련, 특히 스탈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영예보다는 고난의 길에 더 가까웠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30대 중반이던 41년 독일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핀란드에서는 가해자였던 소련이 이번에는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영국을 뺀 유럽을 싹 쓸어버린 히틀러가 이젠 소련 땅에 욕심을 내고 총공격을 시작한 겁니다.

레닌그라드는 이후 독일군에 완전히 포위당한 체 끊임없는 공습과 식량부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됩니다. 그 봉쇄는 거의 900일에 달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전쟁 당시 이 도시에 거주중이였는데 레닌그라드가 전쟁터가 되자 의용 소방대원으로 복무를 합니다. (국가적인 인재였던 만큼 전쟁터로 끌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교향곡 작곡을 위해서 후방 지역으로 빼돌려졌음.)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의용 소방대원 쇼스타코비치)

 

이후 쇼스타코비치가 완성한 교향곡 7번은 나치에 대항하는 소련과 연합국의 저항과 의지라는 평을 받으며 연합국들에서 인기를 얻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독일에 포위당한 체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레닌그라드 도시에 이 곡을 헌정합니다.

이 곡이 연합국에서 한창 인기를 모으던 중 이 교향곡을 헌정받은 레닌그라드에서도 연주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소련 정부는 선전용으로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속히 진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물론 이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레닌그라드는 먹을 것도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는 데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전선에 끌려가서 연주자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 교향곡은 엄청나게 긴 데다 거대한 편성에 상당한 연습을 요하는 어려운 곡이었습니다.

해결책으로 소련 정부는 징집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일단 전선에서 빼온 뒤 연주회를 준비시켰습니다. 당연히 오랜 시간을 쫄쫄 굶은 데다 한동안 악기를 잡아본 적도 없던 단원들이 이런 난곡을 연주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리허설 중에 기아로 죽어버리는 단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곡은 레닌그라드에서 연주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굶어 죽은 사람이 즐비한 극한의 상황에 도저히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을 듯 싶지만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연주회장에 옵니다. 이 연주회는 도시 곳곳에 송출이 되어 시민들의 저항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포위한 독일군에게도 확성기로 송출함으로서 독일군의 사기까지 꺾어놓았습니다.

 

(이 곡은 시대상 현대음악에 속하는 곡으로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듣기에는 어려운 곡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대중음악에도 쓰인 적이 있는데 이 곡의 4악장 중에 한 부분을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Sixth Sense'와 현대카드 광고 음악의 모티브로 가져다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영상의 5:06초 부분입니다.)

 

 

덧1: 제2차 세계대전이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이 곡 말고도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작품들도 있습니다.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애가〉 등의 작품들이 특히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미 2차대전 관련 곡을 소개했는데다 저 곡들은 레닌그라드 교향곡 이상으로 난해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덧2: 아직도 언급해야 할 곡들이 여럿 있는데...쓰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1,2부로 나누어 글을 써야 할 듯싶습니다. ㅠㅠ

2부는 정치적 이유로 연주가 금지되거나 되었던 곡들을 다루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댓글
  • 배리 본즈 2021/02/15 07:14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이야기와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에피소드는 처음 알았네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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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리 본즈 2021/02/15 07:16

    본문 내용과는 별개이지만 영국은 사실 음악가가 나올만한 상황 자체가 없는 나라이긴 했습니다.
    대대로 금수저 집안에 먹고 살만한 사람들인데 굳이 음악, 미술을 했을것 같지가 않아서 입니다.^^
    독일출신 브람스도 영국에서 귀화를 시킬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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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언커티스 2021/02/15 07:17

    20세기의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음악 뿐만 아니라 삶의 측면에서도 참 고단했던, 그리고 가장 야만적인 시대를 살다간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 진영으로부터 상이한 평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들 입맛에 맞게 그를 이용했을 뿐이죠. 그 혼돈의 틈에서 그가 음악을 통해 드러낸 해학과 슬픔, 그 정도만 기억하려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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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차니스트 2021/02/15 07:21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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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07:24

    배리 본즈// 댓글 감사합니다. 하이든도 헨델처럼 영국에 귀화할 뻔 했죠.
    브람스도 귀화시키려고 했는 건 처음 알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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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07:30

    이언커티스//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이 있지만 이 회고록의 신빙성도 계속 의심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진실한 건 음악 뿐...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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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룩킹삼진 2021/02/15 10:02

    3번 저의 최애영상입니다. 뭉클하죠.
    예전에 tv에서 얼핏보고 뒤지고 뒤져서 dvd 겨우 소장했는데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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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리 본즈 2021/02/15 10:35

    영국이 하이든에게도 마수를...ㅋㅋ
    하여튼 영국이 고전음악에 대한 무한한 컴플렉스때문에 많은 일을 저질렀네요.
    엘가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엘가 없었으면 진짜...
    지들은 항상 비틀즈를 내세우는 이유가 고전음악에 대한 컴플렉스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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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시계 2021/02/15 11:08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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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잠 2021/02/15 12:45

    기대를 어긋나지 않는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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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13:20

    룩킹삼진// 사실 위풍당당 행진곡을 찾아 들은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이 곡과 영상을 찾아들으니 저도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애국심 고취시키는 용도로는 정말 최적인 듯 싶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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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13:31

    귀차니스트, 벽시계, 겨울잠// 저도 늘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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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lverglass1 2021/02/15 14:12

    [리플수정]클레식음악 무식쟁이입니다 얼마전 와이프한테 영국의 클레식컴플렉스랑 엘가얘기해줬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이런글 너무좋아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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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피오네 2021/02/15 15:37

    와 참 의미 있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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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한옥마을 2021/02/15 16:37

    좋은 글 감사합니다..스크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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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왔어용 2021/02/15 16:42

    그리고 보면 독일이 클래식뿐만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현대음악도 종주국이네요.
    심지어 대중음악도, 테크노 쪽은 독일이 종주국 대접받는 거 같더라고요. 크라프트베르크가 독일 밴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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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왔어용 2021/02/15 16:58

    글을 읽다 보니 아이다가 생각나서 찾아보니 이것도 베르디 작품이었네요. 망국의 공주와 이집트 장군의 비운의 사랑 이야기인데, 지배받는 민족의 한을 다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네요.
    https://namu.wiki/w/%EC%95%84%EC%9D%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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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왔어용 2021/02/15 17:25

    배리 본즈// 근데, 그 비틀즈도 사실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죠. 미국 대중음악은 흑인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작년에 롤링스톤지가 새로 선정한 500대 명반에서 마빈 게이가 비틀즈를 제치고 1위를 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싶네요. 물론 세대로 치면 비틀즈가 더 먼저겠지만, 마빈 게이가 흑인이니 사실상 성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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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무지무지 2021/02/15 18:08

    [리플수정]쇼스타코비치와 교향곡 7번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흥미 만점입니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에 자세히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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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왔어용 2021/02/15 18:26

    나무위키에 정리된 내용을 읽어 보니, 레닌그라드 저 곡 쓰기 이전에도 스탈린에 찍혔다고 나오네요. 원래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사람도 아니었다는데, 대체 뭣 때문에 반동분자로 취급을 받았던 걸까요?
    그리고 한때, 우리나라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전곡이 금지된 적도 있었다는데, 정작 서방 세계 음악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우리나라에 와서 그의 작품을 지휘했다 하니, 같은 자유 진영 안에서도 이렇게 손발이 안 맞았을 수가 있었나 싶네요.
    이러니 좌파 진영에서 우파=억압이라는 식으로 선동이 가능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https://namu.wiki/w/%EB%93%9C%EB%AF%B8%ED%8A%B8%EB%A6%AC%20%EC%87%BC%EC%8A%A4%ED%83%80%EC%BD%94%EB%B9%84%EC%B9%98?from=%EC%87%BC%EC%8A%A4%ED%83%80%EC%BD%94%EB%B9%84%EC%B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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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18:30

    [리플수정]놀러왔어용// 일종의 예술가들 길들이기겠죠. 스탈린식 공포정치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 작품이 금지된 것도 우리나라가 당시는 엄격한 반공독제국가였기 때문인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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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18:31

    무지무지무지// 저도 이 쇼스타코비치 글 쓰면서 인터넷에 있던 그 책의 내용을 참조했습니다ㅎㅎ. 나중에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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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왔어용 2021/02/15 18:37

    양자론// 그야말로 극과 극은 통한다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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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ghfsb 2021/02/15 19:00

    훌륭한 글입니다 꼭 출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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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어보자 2021/02/15 19:02

    선추천 후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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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5 23:58

    yghfsb// ㅠㅠ그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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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덕구스 2021/02/16 00:29

    글 잘보았습니다. 이 시리즈 계속 하실꺼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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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자론 2021/02/16 01:08

    덕덕구스// 감사합니다. 계속 쓸 생각이긴 하지만 3월부터는 바빠져서 업로드 간격이 길어질 듯 싶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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