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십니까 지구인 여러분! ]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한 그 외계인은 놀랍게도, '사기꾼'이었다.
그는 곧바로 인류 대표단과의 자리를 마련해주길 요청했고,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최초 외계인 회담'이 열렸다.
회담이 시작하자마자 그는 말했다.
[ 지금 지구를 향해 대규모 우주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 뭐얏?! "
" 침략인가?! "
그는 깜짝 놀라는 대표들을 진정시키며,
[ 침략이라뇨~ 아이고 그런 구시대적인 말씀을! 아직 우주에 진출하지 못해서 우주법이 얼마나 철저한지 모르시나 본데, 이 우주에 전쟁은 없습니다! 마지막 행성 간 전쟁이 1억 년 전이었다면 믿으실까요? 걱정하지 마십쇼. 그들은 모두 '무역선'입니다. ]
" 무역선? "
[ 예. 우주를 순방하는 무역 회사의 무역선이지요. 그들은 단지 지구의 특산물을 수입하고 싶어서 방문하는 것입니다. 절대 우주법에 묶여있기 때문에 어떤 범법행위도 저지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
대표단은 뜻밖의 이야기에 웅성거리며 토론을 한 뒤에, 물었다.
" 그럼, 당신은 그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까? "
[ 아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제가 이렇게 온 진짜 목적은 말입니다... ]
그는 이제부터 본론이라는 듯, 길다란 허리를 숙여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 그들 무역선은 수많은 행성을 순회하기 때문에, 각 행성에서 단 하나의 특산품만을 수입합니다. 그 행성에서 가장 귀한 것을 수입해 가는데...사실, 지구처럼 우주에 진출하지 못한 순진한 행성의 경우에는 가격을 후려칩니다. 당연하겠죠? ]
" 으음! "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기업이라면 당연히 이윤을 쫓을 테니.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어차피 그렇게 당할 거라면 지구 쪽에서도 마땅한 대응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겁니다. ]
" 그게 무슨...? "
[ 지구인 여러분이 지금부터, 가장 쓸모없는 특산물을 가장 귀한 것처럼 대하시는 겁니다! ]
" 음? "
[ 저는 그들이 수입할 특산물을 선정하는 기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각 행성의 인류가 무엇을 애지중지하는지 몰래 염탐한 다음, 그것을 수입하려 들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들이 올 때까지 가짜로 연기하는 겁니다. ]
" 연기? 그 말은 지금, 사기를 치라는 말씀이십니까? "
[ 어차피 그들도 가격을 후려칠 겁니다! 시세를 모르니 흥정할 수도 없죠! 그렇게 당하기만 할 겁니까? 지구의 귀한 특산품을? ]
" 으음... "
[ 만약에 거래를 할 마음이 있다면, 사기를 칩시다. 성공한다면, 제 몫은 딱! 3할만 받겠습니다. ]
" ... "
인류는 고민했지만,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의 다음 말 때문이었다.
[ 그들 무역선이 지구를 방문한 이상, 적어도 10년 안에는 이 지구도 우주 시대에 돌입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미리 우주 화폐를 준비해두는 것이 유리할 텐데, 이왕이면 불필요한 것을 팔아서 구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또 그것이 일단 지구의 특산품으로 고정된다면, 이후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고 말입니다. ]
인류는 따로 표결을 나눈 뒤, 그 사기꾼 외계인의 제안에 동의했고, 특산품의 선정에서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
[ 거래는 무게를 기준으로 잡기 때문에 너무 작은 것은 안 됩니다. 땅바닥에 널려있어서 아무나 주워서 쓸 수 있는 것도 안 되고요. 일단은, 집집마다 모셔다 놓고 애지중지할 수 있는 게 좋겠습니다. 고급 상점에서 진열해놓고 팔아야 하고, 학교에서는 상으로 아이들에게 지급해줘야 합니다. 귀한 자리에서 선물로 사용되고, 누구라도 욕심을 내야 합니다. ]
" 음... "
기준에 부합하는 쓸모없는 것을 찾던 인류는 최고로 부합하는 것을 찾아냈다.
" 플라스틱! 플라스틱 쓰레기야말로 가장 쓸모없는 것이오! "
" 오오오 그렇지! "
물건이 정해지자, 전 인류에게 행동지침이 떨어졌다.
가장 먼저 플라스틱을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금지됐다.
거리나 쓰레기통에서는 전혀 플라스틱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대신에 상점가와 선물 가게에서 '플라스틱 큐브'로 만나 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 큐브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모아서 세척을 거친 후 일정한 규격의 큐브형으로 압착한 것이었는데, 그 묵직한 무게감이 제법 만족스러워, 특산품이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 큐브형 플라스틱들을 집집마다 모셔놓고 귀하게 여겼다. 테이블 위에 전시하거나, 자기 전에 머리맡에 두고, TV를 볼 때 옆에 끼고 있기도 했다.
사실, 인류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렇게 협동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우주에 다른 종이 존재한다면, 결국 지구인은 뭉쳐야 한다는 애국심 아닌 애구심(?)이 발휘된 것이었을까?
혹은 단순히, 플라스틱 수출이 성공했을 경우에 소지하고 있던 플라스틱의 이익과 권리를 인정해준다고 해서 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힘을 합친 인류의 사기는 그럴듯했다.
모든 행사 경품에 플라스틱 큐브가 들어갔고, TV 방송에서도 플라스틱 큐브를 귀하게 선전했다. 집들이 선물, 돌잔치, 결혼식, 각종 기념일, 이벤트 상품 등등... 플라스틱 큐브는 마치 범용성 좋은 보석처럼 취급됐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플라스틱 큐브에 진짜 경제적 가치가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러기 전에, 외계인의 거대한 우주 무역선이 지구에 도착했다.
대륙 하나만 한 녹색의 그 거대한 우주선은 인류에게 경외심을 느끼게 했다.
그 우주선이 지구를 방문한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인류는, 모두 다 밖으로 나와 우주선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 와아아~! "
무역선에서 분리된 작은 우주선이 하강하며 외계인 무리가 지상으로 내렸고, 급히 준비된 인류의 대표단이 그들을 환영했다. 그리고 인류의 대표로 사기꾼 외계인이 앞으로 나섰다.
[ ~~~ ~~ ~~~ ~~ ]
[ ~~~~ ~~~~ ]
전 인류가 긴장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두 외계인이 알 수 없는 말을 나누던 와중, 갑자기 '플라스틱 큐브'의 영상이 허공에 띄워졌다.
' 됐다! '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기꾼 외계인은 무슨 흥정을 하는 듯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최종적으로 악수를 했다.
[ 플라스틱 큐브를 눈여겨보았다더군요. 계약했습니다. 플라스틱 큐브를 수입해가겠답니다. ]
" 오오! 그럼, 지금 당장 플라스틱 큐브들을 가져와야...? "
[ 아~아! 큐브를 판매할 사람들은 모두 밖에 꺼내놓으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알아서 가져갈 겁니다. 그동안 일단, 지구식으로 지면 계약서를 작성하겠습니다. 인류 대표분은 이리로, ]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되었고, 역사에 남을 만한 외계인과의 첫 악수 장면을 뒤로하며 계약이 완료되었다.
무역선 우주인들이 모두 우주선으로 돌아가고, 사기꾼 외계인마저 그들을 따라간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우와...! "
지구에 흩어져있던 플라스틱 큐브들이 모두 거대한 우주선을 향해 날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졌다!
그 장관은 거의 이틀간 계속되었고, 그 어떤 불꽃놀이보다도 더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한데 모든 플라스틱 큐브가 사라진 뒤, 인류는 당황했다.
" 이런? 돈은?? "
거대한 우주선이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설마 사기를 당했나 싶어 당황하던 그때, 사기꾼 외계인이 돌아왔다.
[ 지금 막 대금을 받아왔습니다. 약속대로 30%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
" 으음... "
인류는 막상 30%라는 수수료가 조금 아까웠지만,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했다.
곧, 전 지구적으로 수백 개의 우주선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우주선들은 각각 지상에 산덩이만큼 무언가를 쌓아놓은 뒤 사라졌다.
" 이, 이것이 우주 화폐...? "
예상외로 그것은 찰흙과도 같은 질감의 정형화되지 않은 덩어리였는데, 신비한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화폐에 대한 의문은 외계인이 풀어주었다.
[ 뭐 지구식으로 치자면, 같은 무게의 금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겁니다. 그럼, 분배는 알아서 하시길! 전 이만! ]
" 뭐요?? "
외계인은 산처럼 쌓아둔 우주 화폐들을 버려두고, 무책임하게 떠나가 버렸다.
인류는 난리가 났다. 저마다 소유권을 주장하며 우주 화폐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 우리 집에서 큐브가 몇 개가 사라졌는지 알아?! 이 정도는 가져가야 한다고! "
" 이런 씨! 내 큐브는 백 개도 넘었다고! "
" 증명할 수 있다니까?! 결혼식 기록 보면 안다고! "
점토처럼 쉽게 떼어낼 수 있었던 그것은, 누구든지 달려들어 훔쳐갈 수 있었고, 각국 정부의 초기 대응이 불가능했던 그 짧은 순간에 어마어마하게 손실되고 말았다.
뒤늦게 정부가 개입했지만,
[ 어차피 일반인이 우주 화폐를 사용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차라리 모두 정부의 관리하에 두었다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가져가신 분들은 모두 반납해주시길 바랍니다. ]
턱도 없었다.
전혀 쓸모 없더라도 언젠가를 생각하며 집안 깊숙이 꼭꼭 숨겨 놓는 게 인간이었다.
비난하고, 억울해하고, 소송하고, 시위하고, 온갖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또 다른 현상도 벌어졌는데, 바로 플라스틱의 가격 상승이었다.
" 진짜로 수출이 될 줄이야? 10년 안에 우주시대가 온다면, 이거 플라스틱 좀 모아둬야 하는 거 아니야? "
지구 대표 수출품으로 가치가 달라진 플라스틱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없었다. 기업들도 플라스틱 사용을 피했고, 심지어는 세계적인 대기업이 이런 발표를 하기까지 했다.
[ 우리 기업은 지구의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 섬'을 청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그마저도 다른 국가와 기업들이 태클을 걸고 달려들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를 서로 욕심낼 날이 올 줄이야?
지구에서 그러고들 있는 사이, 사기꾼 외계인은 녹색의 거대한 우주선에 올라타 있었다.
우주선의 책임자가 놀라 물었다.
[ 이 플라스틱 자원이 다 선물이란 말이오? ]
사기꾼 외계인은 웃으며 말했다.
[ 예. 지구인들은 원체 선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환영인파들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원체 그런 종족입니다. ]
우주선의 책임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 흠. 참으로 이상한 종족이구려. 어딜 가도 우리 같은 '똥차'를 환영해주는 곳은 없었는데...이렇게 싼 가격에 '분뇨처리 계약'도 맺어주고 말이오. 요즘 그런 별이 흔치 않은데. ]
[ 하하하 별마다 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것이지요. 쓰레기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별도 있는 거고, 그렇지 않은 별도 있는 거고.. ]
이야기가 너무 촌스러워서, 그냥 삭제할까 말까 고민 중입니닷...!
행복하세요~!
선댓 후감 늘 감사합니다!
삭제하지 마셔요!!!!!!!!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가끔 지난글도 봐요 그니까 지우지 마세요ㅜㅜ
음.... 무지개똥...... 역시 외계인!
잘봣습니다!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시리즈 같은 느낌이네요
공포는 아니고 꽁트 같은 느낌?!
재밌네요ㅋ
쇼트쇼트 소설들 되게 좋아하는데
많이 읽고 싶습니다.
많이 써주세요.
어릴때 들은 말이 떠오르네요.
그래 니똥 칼라다!
아 이런 느낌의 스토리 너무 좋아요ㅎㅎ 일정기간이 지난뒤 무지개빛 덩어리에서 지구 사람들이 인식하는 진짜 똥으로 바뀌면 웃기겠어요ㅋㅋㅋ
의외로 사로서로 윈윈 거래인듯ㅋㅋㅋㅋ
덕뷴에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어들고 ㅋㅋㅋ
아치와 씨팍
외계인 똥 칼라파워!!!
어엌ㅋ 이런 내용도 좋아용!!
애구심보단 애성심이 더 맞지 않을까요?
아무튼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