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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운석의 주인

[ 현재 운석의 예상 충돌 시기는 약 1년 뒤, 피해는 지구 생물 90%의 멸종입니다. 나사에서도 그동안 전혀 확인되지 않았던 운석의 출현에 당황하고 있으며-, 혹자는 신의 심판을 들먹이며-. . . ]

갑작스러운 운석 충돌 소식은 인류를 놀랍다 못해 어이없게 만들었다. 지구가 이렇게 허망하게 멸망할 줄이야?

당장에 전 세계적 대책위원회가 설립되어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방법들을 구상했지만, 인류가 기대하는 소식은 쉽사리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예상했던 만큼의 무법천지 세상이 펼쳐지진 않았다. 약탈 강O 방화 따위의 소설적 시나리오는 당장 코앞에 닥친 멸망에서의 이야기였다. 
오히려 전쟁과 분쟁 같은 무의미한 일들이 사라졌고, 전 세계의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기적 같은 구원이 펼쳐지기를 기원하고 응원했다. 

물론, 사회적 파장이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대표적인 말 하나로 압축할 수 있었다.

" 1년 뒤에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하던 사람들, 모욕을 참아가며 굽신거리던 사람들, 현실에 부딪혀 하기 싫은 일을 하던 사람들, 모두가 그만뒀다. 여행을 떠나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물가가 치솟았지만, 그만큼 사람의 가치도 치솟았다. 일하는 사람 만큼 귀한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쌓아둔 걸 놓을 수 없었던 기업들은 어떻게든 기업을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 예전과 같은 대우로는 절대 사람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직원을 하늘같이 여기며 모셔야 할 지경이었다. 
서비스직도 마찬가지, 

" 내가 이딴 을 취급을 당하면서 이 일을 왜 해? 안 해! "

공부만 죽어라 시키던 부모들도, 당장 아이들과의 시간을 늘리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학교를 아예 안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성공만을 쫓으며 인간 같지 않은 삶을 살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있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욕망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무슨 일이 있어도 살겠다고 지하 벙커를 만드는 사람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더 지독하게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음모라며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등등... 

한데 그중에서도,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 긴급 뉴스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구를 향하던 운석의 '위치'가 변했다고 합니다! ]

" 저게 무슨 말이야?? "

사람들은 기대했다. 혹시 지구를 비켜 나갈까? 
하지만 운석의 충돌은 그대로였다. 다만, 운석이 날아오던 방향이 바뀌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분명 서쪽 우주에서 날아오던 운석이 갑자기 동쪽에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똑같은 운석인데!

여러 가지 가설들이 펼쳐졌다.

" 처음부터 운석은 조작이라고 했잖아! 위치를 바꾸는 운석이 어딨냐?! "
" 관측 기기의 오류 아니야? 누가 해킹을 했다던가! "
" 운석이 아니라, 혹시 우주선 아니야?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운석이 어딨어? "

그에 대한 나사의 공식 발표는,

[ 그동안에도 운석의 위치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됐습니다. 어쩌면, '조종'이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많은 걸 의미하고 있는 발표였다. 이 운석 충돌이 의도적인 멸망이라는 것 아닌가? 

" 어떤 외계 종족의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건가?! "
" 신이다! 신께서 노하신 것이다! "
" 지구 근처에서 멈춰설지도 몰라! 외계인의 우주선이고, 관광을 오고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 "

제기되는 수많은 가능성에서 티끌만 한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애쓰던 그때,


'김남우'는 SNS에 글을 하나 올리고 있었다.

[ 아 썅! 가족들이랑 보내려고 귀국했더니, 이젠 운석 예상 목적지가 한국이라네 ㅋㅋㅋ ]

운석 예상 목적지! 1년 뒤에 운석이 어디에 떨어질까 하는 예상지였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돌던 소문이었지만, 그동안은 아르헨티나에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SNS를 올릴 때까지만 해도 김남우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유머로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의 호응도 많이 받았다.
한데,

[ 운석의 위치가 또다시 크게 변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된 이 미스터리한 사태는-. . . ]

" 잉? 뭐야? "

두 번이나 이어진 우연에, 김남우는 SNS에 올릴만한 사건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 헐 대박ㅋㅋㅋ 운석이 날 따라다니나? 가족들이랑 유럽 여행 왔더니, 이번엔 또 운석 예상 목적지가 여기라네ㅋㅋㅋ ]

[ ㅋㅋㅋ님 다시 한국으로 와보세요 ㅋㅋㅋ 또 한국에 오는지ㅋㅋㅋ ]

[ 예 ㅋㅋㅋ 며칠 뒤에 귀국하는데 그때도 따라다니나 봐야겠네요 ㅋㅋㅋ ]

이때까지는 누구도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데,

[ 운석의 위치가 두 번째 위치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로써 3번째 대변경이 이루어진 운석은-. . . ]

또다시 운석의 예상 충돌 지점이 한국으로 변했다. 김남우가 한국으로 귀국한 날에 맞춰서 말이다. 

김남우의 SNS는 순식간에 성지가 되었다.

[ 대박! 성지순례! ]
[ 이거 진짜 아니야? 저 사람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
[ 이거 농담이 아니라, 진짜 테스트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냐? ]
[ 운석의 남자네 ㄷㄷㄷ ]

김남우는 당황했다. 농담삼아 올렸던 SNS인데,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다니?
이 사건은 당장 뉴스에까지 뜨며, 세계적으로 일이 점점 커졌다. 
그러자 심지어,

" 김남우 씨 되십니까? '
" 예? "

정부기관에서 김남우를 찾아왔다!

" 서, 설마 운석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

불안해하는 김남우에게 그들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 예. 지금 본인이 주목받고 계신 건 아시죠? 사실, 정부에서도 골치입니다. 이런 괴소문이 자꾸 퍼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서.. "
" 아 예에... "
" 그래서 말인데, 테스트를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비용은 정부에서 부담하겠습니다. 본인 입장에서도 이 관심을 빨리 없애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 아! 예. "

김남우는 쉽게 승낙했다. 안 그래도 자신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괴담들이 부담스러운 마당이었다. 

[ 운석의 남자! 오늘 밤 미국행! 운석은 과연 이동할 것인가?? ]

놀랍게도, 김남우의 테스트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희망적인 실마리에 목말라 있었다.

" 하~ 참나 별... "

김남우는 오늘 밤만 지나면 이 우스운 사태가 끝나리라 생각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데,

" 이, 이게 무슨...?? "

[ 놀라운 뉴스입니다! 운석의 위치가-, 변했습니다!! 운석은, 운석의 남자 김남우 씨를 따라다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

김남우는 충격으로 할 말을 잃었고, 그를 수행했던 정부기관들도 난리가 났다! 
전 세계적 지구대책위원회도 모든 손을 놓고, 당장 김남우와 컨택에 들어갔다.

김남우는 다시 한번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사실을 확정 지었고, 전 세계 언론이 운석의 남자를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인류는 기대했다!

" 이거, 어쩌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 저 사람만 쫓아다니면 저 사람을 지구에서 내쫓으면 되는 거 아니야! "
" 살 수 있는 거야? 우리 정말로 살 수 있는 거야?? "

희망을 찾았단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생길 지경이었다. 
반면, 김남우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공포심을 느꼈다.
지구대책위원회에서 내놓은 가장 손쉬운 대책이자 가장 확실한 대책은, 하나였다.

[ 김남우 씨를 우주선에 태워서 지구 밖으로 보낸다면, 운석은 지구를 피해갈지도 모릅니다. 당장 발사 준비가 가능한 기지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 . ]

김남우는 지구에서 가장 엄격한 관리대상이 되었다. 세계적 보호 시설에서 극한의 보안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남우를 설득했다.

" 김남우 씨의 희생으로 전 인류의 목숨을 구할 수-... "
" 김남우 씨의 희생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남겨져-. . . "
"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해보신다면, 그들을 위해서-. . . "
" 어마어마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고, 김남우 씨의 이름은 역사에 남겨져-. . . "

" ... "

이미 김남우의 희생은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김남우가 거절한다고 해도, 강제로 우주선에 태워질 상황이었다.
아니 그렇겠는가? 김남우 하나로 전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인데!

김남우는 매일 밤 울었다. 왜 하필 자신인가? 억울하다고 소리 지르고, 죽기 싫다고 화를 냈다. 그렇지만 운명은 거슬러질 수 없었다.
가족들의 면회도 김남우가 동의한 뒤에야 허락되었다.

부모님은 김남우의 손을 잡고 울었다.

" 아이구 남우야! 아이고 남우야 안 된다! "
" ... "

서로가 울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면회가 끝나고, 김남우는 우주 비행 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남우는 건성이었다. 어차피 죽으러 가는데 훈련은 무슨? 
김남우의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바쳐야 하는 게 맞을까? 누구라도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걸까?

" ... "

김남우는 몰랐다. 모르겠지만, 그의 귓가에 세상 사람들의 바람은 들려왔다.

" 도대체 로켓은 언제 출발하는 거야?! 운석이 다가오고 있다고! "
" 아니지! 급하게 보내려다가 로켓이 폭발하기라도 해봐! 김남우는 꼭 우주 멀리 가야 한다고! "
" 근데 김남우는 왜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어?! 미리미리 좀 가 있지! "
" 김남우를 죽이면 운석이 멈출지도 모른다! 일단 김남우를 죽인 뒤에, 안 되면 그 시체를 우주로 보내도 늦지 않다! "
" 저 새끼는 왜 하필 운석을 몰고 다녀서 지구를 위기로 만들어?! "

" ... "

로켓 발사가 확정된 후,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람들이 김남우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영웅의 연설이었다. 
하지만 김남우는 단 한마디 물음만을 던졌다.


"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게 정당합니까? "


" ...... "

김남우의 표정은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그 얼굴에 대고 변명을 주절거릴 사람도 없었다. 

3일 뒤. 전 인류가 주목하는 가운데 로켓 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7!

사람들인 긴장한 얼굴로 뚫어져라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6! 5! 4! 3!

제발 안전하게 우주 멀리 떠나주길 바랐다.

2! 1! 0! 발사!

모두가 심장이 멎을 정도로 숨죽인 그 순간, 로켓은 무사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 와아아-! "

사람들은 환호했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얼싸안고 소리 질렀다! 

[ 성공입니다! 로켓이 성층권을 통과해, 지구를 벗어났습니다-!! ]

" 으아아아-!! "

인류는 만세를 질렀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환호했다. 모든 것이 환호였다. 운석의 방향이 변해간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또 환호했고, 위대한 희생자 김남우를 기리며 또 환호했다.

왕복 계획이 없었던 김남우의 로켓은 쭉쭉 뻗어나갔다. 환호로 시끄러운 지구에서 최대한 멀리,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끝없이 뻗어 나갔다.
그곳은 조용한 곳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김남우도 조용했다.

" ... "

실로 고독한 항해였다.

.
.
.

[ 기,긴급 속보입니다! 지구가...! 지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방향은-! ]

지구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떠나간 행성의 주인을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고독한 항해사를 따라서.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4/09 23:59

    요즘 뼈저리게 느낍니다. 양보단 질인데, 자꾸 양만 늘리고 있다는 것을요.
    긴 고민이 들어가고 정성이 들어가고, 초창기 처럼 그런 기발함이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방향을 어서 되찾고 싶네요..

    (ADhF0R)

  • 꿈빙 2017/04/10 01:11

    아 이건
    지구에서 김남우씨를 죽여야 되는건가요...

    (ADhF0R)

  • 혼자걷는인생 2017/04/10 01:26

    이번편도 재밌습니다 ^0^ 잘보고가여~

    (ADhF0R)

  • 복날은간다 2017/04/10 01:44

    지금도 다시 가서 초기 이야기들을 보고 오니, 지금 제 이야기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느낍니다..
    무언가 겉멋이 든 것인지 뭔지... 골치 아프네요. 왜 이렇게 이야기들이 평범해지고 몰입도가 떨어질까요?
    시간은 더 많아졌는데 오히려 더 질이 떨어지는 현상은 도대체... 어휴!

    (ADhF0R)

  • 오리엄마 2017/04/10 08:28

    왜 추천조작이 의심되어 추천이 안 되는지
    ㅠㅠ
    재미있게 읽었는데
    제 한 작가에 꽂히면 그 작가 책 다 찾아 읽는데
    복날님 이야기도 참 좋아요 ㅎ
    다 찾아서 읽고있어요
    늘 재미있는 이야기 고마워요^^

    (ADhF0R)

(ADhF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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