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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정이 그런 것이 아닝게".jpg

전 사진을 찍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일입니다.

국내에서 유명하다는 곳은 거의 다 가봤죠.

그런데 유독 전라도에서 참 좋은 기억들이 많습니다.



1.

아직 차가 없던  시절, 강진 다산초당을 찍고 돌아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질 않더군요.

한 시간 반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섰습니다.


"저짝에서 지나가다 봤는데 버스를 여태 못 타신 모양이네.

어디까진지는 몰라도 모셔 드릴랑게 타세요."


읍사무소 공무원이셨던 그 분은 저 뿐만 아니라

저 앞에 가던 할머니 몇 분을 더 태우고 강진 시내(?)에 도착을 했더랬지요.




2.

아직 해남이 유명 관광지가 아니었던 시절

종점인 토말(땅끝)에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앞이 훤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버스 기사 아저씨가 제 앞쪽으로 헤드라이트를 켜 놓고 계시더군요.

눈이 마주치니 손도 흔들어주시고요.




3.

여수의 새벽시장인 교동시장에 촬영을 갔던 겨울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좌판에서 생선을 팔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촬영을 해도 될런지 여쭤보자

"예쁘게만 찍어주쇼잉" 하시고는 활짝 웃으시더군요.

그리고는 커피를 한 잔 시켜서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괜찮다고 해도 한사코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그 커피를 마시면서 할머니와 잠깐이나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커피도 잘 마시고 촬영도 잘 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일어서려는데

할머니께서 차가운 손으로 대뜸 제 손목을 잡으시더니

주머니 속에서 오천 원을 꺼내 단단히 쥐어주시더군요.

"손자 생각이 나서 그랑게 받아두쇼.

우리 손자도 딱 그 나이라서 그랑게, 암말 말고 받아두쇼잉?"




한 지역에 좋은 사람들만 살고 있지 않다는 건

아마 제가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그동안 제가 만났던

전라도의 좋은 분들이 유독 많이 떠오르는 날입니다.


제가 그 분들께 신세를 져,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이나 할 때마다

그 분들께서 거의 비슷하게 하셨던 말씀들이 바로

"사람 사는 정이 그런 것이 아닝게"였거든요.


그 사람 사는 정이 무엇인지, 오늘 목포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이나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목포 시민 여러분.





댓글
  • 메밀차 2017/03/29 20:57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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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만 2017/03/29 20:58

    아,, 사진 보고 짠하네요. ㅠㅠ
    작은 정이 모여 살만한 세상이 되네요.
    참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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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ho2 2017/03/29 20:58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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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현 2017/03/29 20:58

    그래서 세상이 살 맛 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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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동♡ 2017/03/29 20:58

    따뜻한 글이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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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변이있나 2017/03/29 20:58

    ㅎ 글이 아주 간결하면서도 내용이
    잘 담겨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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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co 2017/03/29 20:58

    저 사진 보고 안그래도 뭉클하더라구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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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월영 2017/03/29 20:58

    정이 그런거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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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IPIO 2017/03/29 20:59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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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우유 2017/03/29 21:00

    사진보고 소름돋았습니다 추천드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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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삭 2017/03/29 21:01

    목포 시민인데 되려 제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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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포네 2017/03/29 21:17

    사진 멋집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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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란사람 2017/03/29 21:17

    다른걸 떠나 누가 재난을 당하던 그에따른 안전과 구조를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에 대비를 못해 비난을 받더라도 수습이라도 잘하는 나라 가 되야겠죠 이번 일로 바다뿐만 아니라 모든 곳의 안전점검 재난점검을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합니다 언제 어느때 내가 당하질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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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쉬=3 2017/03/29 21:23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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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스홀드 2017/03/30 07:20

    무사하시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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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cadian 2017/03/30 11:54

    글 읽어보니 별의별 사람 다 만나보셨을듯 합니다
    그중에도 유독 따뜻한 기억만 소중하게 기억하시는건 글쓴분 인성도 좋아서 그러신거같아요
    사람사는 정이 그런것이 아닝게 ^^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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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elise 2017/03/30 13:24

    arcadian// 진짜 그러네요^^
    인성이 좋으시니 더욱 기억하시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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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7/03/30 17:09

    동생 군대에 가 있던 시절, 어머니랑 시장에 갔다가 휴가 나온 군인들 보고 아들 생각이 난다며 굳이 붕어빵 한 봉지 사서 건네시던 제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내 아들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하니 활짝 웃으며 붕어빵 봉지 받아들고 멋지게 거수 경례 붙여주며,
    "사랑합니다, 어머니. 충성!"하고 받아주던 청년들이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휴가 나온 동생 부대까지 태워주고 나오다가 국도변을 터덜터덜 걷던 휴가병 태워서 시외버스 정류장 태워주던 기억도 나고요.
    그래요,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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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bosco 2017/03/30 17:21

    전라도.. 역사적으로 아픔도 많고 핍박도 많았고 그런 곳이지요. 위태위태한 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세우는 성지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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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인업 2017/03/30 17:45

    호준아 진짜 정은 이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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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페로치노 2017/03/30 18:03

    뭔가 코끝이 찡하네요... 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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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심이 2017/03/30 18:08

    대구 출신인 저로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전라도에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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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lcldjc1 2017/03/30 19:08

    추천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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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utch_Chu 2017/03/30 19:43

    글이 참 따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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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웬수탱이 2017/03/30 20:03

    그래도 아직 이 사회에는 따뜻한 사람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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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분좋은날 2017/03/30 20:05

    따스한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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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c05 2017/03/30 20:46

    글 읽다가 사진을 본 순간 울컥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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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뱅입니다 2017/03/30 20:50

    국민들은 이렇게 훌륭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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