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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1986년 8월 14일 밤 10시 강남구 역삼동 서진회관(서진룸살롱)에 모두 모인 그들의 운명은 ..... 그들은 이 20분간의 액션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 짖게 된다. 화려한 룸에서 술을 마시는 그들에게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들은 이순간 알고 있었을까
자신들에게 닥쳐올앞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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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당시 강남 역삼동의 서진빌딩의 서진회관 모습
암울했던 80년대 그당시 조폭간의 칼부림 사건은 흔한일이었을 정도로 유흥가 주변에는 칼부림 사건이 많았고 조폭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어려운 삶에 칼을 휘두르고 살인을 저지르는 등 칼로인한 살인사건이 연일 신문에 안나올 때가 없을 정도로 사회의 질서도
문란 했었다.
폭력조직 간의 조직의 칼부림 뿐만 아니라 인근 고등학교 중학교등 학원가에서도 패싸움으로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심지어는 칼로 상대를 죽이는 사건들도 많았고 동내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조폭을 흉내낸 패싸움은 자주 일어났고 많이 보았던 시절이었다.
이당시의 사회관념은 말그대로 폭력이라는게 곧 힘이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했었다. 우리나라이딜가도 사람을 안패는 곳은 드물었다.
군대는 더 말할 나위 없고학교의 선생들도 마찮가지였다. 일선 초중고의 학교 선생들도 죽도나 당구 큐대를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체벌 이상의 폭력을 휘들러 학생에게 상해를 입히는 경우는 아주 너무나 흔한 일들이었다.
말그대로 폭력 지상주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군사정권의 잔혹한 폭력에 억눌렸던 감정이 국민들에게 "위도 그런데 우리가 좀 폭력 좀 쓰면 어떠냐"는 식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사회의 정의가 되버린 시절이었다.
그당시 폭력수준을 현재와 비교한다면 그당시는 그래도 현재의 학원에서단체 폭행,괴롭힘 같은비굴한 짖거리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당시의 사회의 폭력 수위는 현재의 10배 이상이었다고 생각된다.
생각해 보아라 일반적인 거리에서 학생들이 패싸움해서 도망가고 쫒아오는 패거리들이 차도를 넘어서 쓰러진 상대 고등학생을 4차선 도로 위에서 야구방망이로 치는 광경을 이런 광경은 그 당시 너무도흔했다.
정말 이런일은 너무 흔했던 시절이라 파출소 가서도 훈방 정도로 끝날 정도였다. 이게 비정상적인 사회상을 단편적으로 드러내주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선생은 학생의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학생을 주먹과 발로 패서 이빨이 부러지고 뼈가 부러지는 상해는 지금 처럼 신고도 못했다.
이런 폭력 지상만능주의 사회가 그 당시 80년대 전두환 군사폭력 정권시절의 사회 상황이었다.
이렇게 혼란의 시기에......
그날밤 이곳에서 일어난 칼부림 살인사건은 그 수위가 극에 달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의 시작
1986년 강남 역삼동 서진빌딩(현재는 영남빌딩으로 개칭) 지하의 서진회관에서는 여름밤의 흥을 돋구기 위해 한가로이 술꾼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다음날이 8.15광복절 이기에 손님들은 많았다.
그날밤 목포파 일당들은 8시30분경에 조직원 전체가 서진룸살롱에서 2개의 룸을 얻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12호실에는 목포파의 큰형님이라는 정요섭과 3명이 옆 호실에는 20호실에는 장진석외 8명이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서방파 계열의 오재홍(별명 맘보)이 이끄는 맘보파는고용수 출소 축하를 위해 총 7명이 9시 40분경에 서진회관 17호실로 들어왔었다. 이들은 이미 1차를 다른곳에서 하고 2차로 이 룸살롱으로 들어왔다. 조직의 재건과 단합을 위해 모인자리이기도 하였다.
1986년 8월 14일 밤 10시 30분경 서진룸살롱 20호실에서는 정요섭, 장진석, 고금석, 김동술 등 일명 ‘서울목포파’ 12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같은 시각 17호실에서는 조원섭, 고용수, 송재익 등 이른바 ‘목포맘보파’ 7명이 동료의 출감을 축하하며 술잔을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룸에서 술자리를 갖던 이들은 모두 전남 목포 출신으로 평소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화장실을 오가며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양측 일행 간에 사소한 시비가 벌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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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쳐다보냐.” “똘마니 주제에….” “너 많이 컸다.”
17호실의 맘보파 중 오재홍은 들어와서 잠시있다가 강남근방에 서방파 두목 김태춘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서진룸살롱을 나갔다.
이후 17호실에선 6명이 남아서 있던중에
20분이 지나도 술이 나오지 안자 이왕규가 카운터로 가보겠다고하면서 17호실을 빠져나와 카운터로 갔고 조원섭도 화장실에 같이 가자면서 나가는중에 웨이터를 불러서 룸이 좁으니 다른호실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웨이터는 자리가 없다며양해를 구했으나 조원섭은 자신을 무시한다며 웨이터를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순간 웨이터는 얼굴이 피투성이가되어 평소 자신과 안면이 있던 장진석 패거리가있는 16호실로 들어가서 구원을 청했다.
이에 김승길 고금석이 어떤놈이야 하면서 달려나갔고당시 목포중학교 선배 조원섭이 김승길을 알아보고는 김승길도 인사하고 좋게 끝날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문제는 조원섭의 안하무인격의성격으로 김승길 옆에 식씩거리고 서있던고금석을 향해
"뭘쌍아지없게 쳐다보야 똘마니주제에 놈아"
하면서 주먹으로 고금석의 얼굴을 후려치며 따귀를 서너대 날린다. 이소리를 듣고 17호실에 있던 맘보파 일행들이 나오면서 고금석을 단체로 구타하자 이에 김승길도 16호살로 달려가서일행들에게 알리고 장진석은 콜라병을 들고 목포파 전체에게 다 죽여버려하고 소리질렀습니다.
이때 상황은 밤 10시가 좀 못된 시간으로 두패들은 서로 복도에서 대치하고 있었고 인원은 목포파의 인원이 수적으로 훨씬 많았었다.
앞에있던 김동술과 김승길은 발목에 차고 있던 생선회칼과 대검을 뽑아들었고 조원섭을 향해 씩씩거렸습니다.
이에 조원섭은 "그래 그럼 어디한번 찔러봐 "하고 소리 치자마자
김동술이 잽싸게 달려들어 조원섭의 왼팔을 잡고 대검으로 아래로 내려치자 조원섭의 팔복이 거의잘려 나갈 지경이 되어 덜렁거렸고조원섭은 비명을 질렀다.이때 옆에 있던 고금석은 지니고 있던 대검으로 조원섭의 허벅지를 찔렀다.
이광경에 놀란 맘보파 차권은 미리 17호실 앞의 악사대기실로 미리 들어가 숨었고 나마지 송재익,고용수,장경식 등 3명은 조원섭을 데리고같이 17호실로 황급히 들어가 문을 잠궛다.
문밖에서 문열어 하면서 소리치면서 서진룸살롱은 말그대로 죽음의 공포의 장소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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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8월15일 촬영된 서진룸살롱17호실의 처참한모습
(당시 기자들의 말에 의하면 피로인하여 마치 지옥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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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 기자들이 촬영한 서진회관 17호실 앞복도 피가 바닥에 낭자해 있다.
이때 밖에 있던 김동술은 막내였던 권모군에게 차에서 칼과 야구방망이등을 가져오라 지시 합니다.
권군은 차에서 야구방망이와 칼을 2자루 더 가져오고 목포파 이들은 `17호실 문을 박살내고 들어가자마자 겁에질린 그들을 향해서 김동술 고금석 김승길이 중심이 되어 칼로 4명의 다리와 팔 등을 난자하고 뒤에 있던 일당들도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등으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가격했다.
회칼과 흉기를 이용한 이 살인적 폭력은 10여분 동안 계속 되었다.말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사람을 계속적으로 찌르고 야구방망이로 가격하는 잔인무도한 살인행각을 벌인 것이다.
1986년 8월 14일 여름밤 장마철이 시작 된 그 시기에 서진회관에서 벌어진 회칼에 의해서 피의 살육을 저지른 이 대형범죄 사건은....
향후 25년 동안 우리나라의
10대 강력사건으로 그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때 장진석은 마대자루를 들고 상대가 도망을 못가게 문앞 복도에서 지키고 있었다고 신문상과 진술상에는 전해진다.
카운터에서 흥정을 하고있던 이왕규는 이광경을 목격하고 바로 도망치고 20분이 흘러서야 17호실에서의 칼부림과 흉기질은 끝이나고 4명은 말그대로 피범벅이되어 문앞 화장실 바닥 쇼파 바닥에 모두 쓰러진 시체가 되어 있었다. 말그대로 홀안과 복도는 사방이 피로 지옥과도 같은 장소가 되버렸다.
잠깐 여기서 조원섭과 맘보파 조직원의 애기를하자면
조원섭은 전국에서 주먹으로 당할 자가 없었던 싸움꾼이라는 말이있을 정도로 싸움실력이 출중했고 같이 피살당한 고용수,송재익도 서방파에서 알아주는 주먹으로 그 이름을 새긴 자들이지만 좁은 룸에서 칼과 야구방망이로 죽일려고 달려드는 그들 앞에서는 손쓸겨를도 없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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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스틸컷은 영화의 한장면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때 까지 죽지 않았음을 확인한 장진석 일당들은 이들을 어깨에 둘러매고 룸싸롱 뒷문에 있는 로얄살롱 승용차와 프라이드에 피해자들을 트렁크 등에 나누어실고 김동술은 이때 온몸이 피가 튀어 피법벅이된 손에 피가 떨어지는 회칼을 든채로 나오더니 칼을 들이데면서 가게안 종업원과 영업전무를 불러서 신고하면 다시와 죽여버린다고 협박한 뒤에 피가 흐르는 칼을 들이데며 협박했다. 홀안의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할것 없이 너무도 큰 충격에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17호실에 있었던 7명중3명은 화를 면하고송재익씨,고용수씨,조원섭씨,장경식씨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당시 피해자였던 이들의 사진은 유족들을 위해 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당동 정정형외과에 시체를 버리고 달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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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석, 김동술 등은 4구의 시체를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싣고 현장으로부터 약 8㎞ 떨어진 사당동의 정정형외과에 버리고 달아났다.
이들의 일당인 홍성규라는 조직원이 당시 이병원에 입원해 있었기에 이들은 이병원으로 왔었다고 한다. 이들은 호성규에게도 도망가라고 애기 한뒤 서둘러 뛰어 나갔다고 한다. 홍성규는 목발을 짚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서 나왔다.
당시 목격자와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이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자 4명을 들쳐업고 정형외과에 뛰어들어와 2명은 1층 계단에, 나머지 2명은 2층 수술실 앞에 던져놓고 “교통사고 환자”라고 외친 뒤 사라졌다고 한다.
(이당시 부검 결과 한명은 40회 이상을 찔렸다고 한다,)
댓글
  • 은빛달그림자 2017/03/11 19:58

    중간중간의 기사일지 혹은 사견일지가 좀 거슬리네요
    충분히 죽을만한 짓을했고 나이도 20살이 넘어 사리분별이 충분하 가능한 나인데
    비극이라느니 안타깝다느니 하는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흉악범죄는 강결한 처벌을 했으면 좋겠네요 특히 밀양 집단 성폭O과 같은 경우는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로 2~3년 형이 아닌 수십년 형을 떄리는게 정당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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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主希 2017/03/11 20:58

    악마에게 동정은 필요없음.
    사람이 굶어서 엇나갈 수 있어도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사회탓으로 조폭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처벌받는다 하면 누구라도 눈물 흘릴 수 있고
    감옥에서 빨리 내보내준다 하면 누구라도 모범수 연기 할 수 있음.
    얼척없는 감상 말고 제발 악인은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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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랑말랑 2017/03/11 21:15

    저는 윗댓글분 말에도 동의하고 동시에 사견일지?등에서 비극이라 하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강력범죄...당연히 처벌해야 합니다.
    지금보다도 더 준엄하게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습게 여기니까 식별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법을 속여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범죄를 생각하는 거겠죠.
    그러나 동시에 저러한 사건들은 그 자체로 비극입니다.
    전쟁이 비극이듯 모든 폭력은 비극입니다.
    사소한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든, '그럴만한' 사유에서든 어찌되었건 그것들이 비극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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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설공주부 2017/03/11 23:41

    저 사건 기억나요. 정정형외과 우리가족 단골 병원이었는데 당시 병원에는 야간 당직 간호사 혼자있었다네요.
    무섭지 않았냐니까 왠 무식한 깡패들 무섭지않았다고..
    신문사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기자들이 찍은 사건사고 사진들을 모아두셨던 기억 나네요.
    신문에 실리지않은 시신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잊혀지지않네요. 그냥 고기 던지듯 던져놓고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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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린셀 2017/03/12 02:17

    대학 이름을 바꿔버린 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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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원한다면 2017/03/12 02:35

    80년대 후반 폭력 정말 난무하던 시대  맞습니다. 지방 중소도시에 살았는데 시내나 심지어 학교내에서조차 10~20대 피흘리는 각목 패싸움은 정말 쉽게 볼수있었고  ㅅㅁ파,ㅈㅇ파, 학교내 폭력서클이
    흔한 시대였네요. 성인 폭력클럽에 중고등학생도 가입했고.  중대한폭행이나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학생도 주변에 있었지요.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군사정권 영향을 크게 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서진룸살롱 사건은 당시 가장크게 이슈가된 폭력사건 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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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rp 2017/03/12 22:58

    저때는 초등생(국민학생)들도 형이나 동네형 친구들 따라 무리지어 다녔었지요.
    그 때 친했던 놈 하나가 껌을 씹고 있길래 쳐다보니...
    '너 이껌 뭔지 알아?' 하면서,
    '하아~' 했는데, 본드 냄새 나더군요..
    뭐 높은 옥상에 올라가면 여기 저기 그 보다 낮은 옥상에서 검은 비닐 열심히 불고 있는
    중고딩 형님 누님들 수시로 볼 수 있던 때니...
    산 속에서 강가에서도 검은 비닐과 부탄가스 불던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았지요.
    하남시 사는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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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냐옹이는냐옹 2017/03/13 09:58

    조폭의 현실을 알고 싶으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세요. 얼마나 철 없고 찌질하고 얍삽한 것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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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끼늑대 2017/03/13 10:08

    유도를 전공했다는 놈들이 사시미를 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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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걍^^ 2017/03/13 10:16

    그나마 다행인건 사형제도가 시행되었을때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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