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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 연애가 생각나.

이제 스물여덟인 내게 6년이란 시간은 참 길었나보다.

네가 어떻게 사는지 가끔은 궁금하지만
막 네가 보고싶다거나, 네가 그립다거나,
너와 다시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네 손을 잡고 싶다거나하는 생각이 들진 않아.

솔직히 얘기하자면

너랑 너무 더럽게 헤어져서
네 생각하기 정말 싫어. 

덕분에 난 비혼주의자가 되었고,
사람한테 실망하지 않는 법도 배웠어.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안 하게 되더라고.

여튼

스팸 한 통 까서 도마위에 올려놓은 것 마냥
볼품없던 네 몸뚱아리를 다시 보는 것도 그닥 달갑지 않을거고

일부러 상처받으라고
싸울 때 마다 아무 말이나 틱틱 뱉던 네 혓바닥도

날 보고 웃던 네 모습도
이젠 생각하기도 싫은데

진짜 짜증나지만
가끔 그 연애가 생각나.

둘다 돈이 없어서
닭갈비집 들어가서 볶음밥 두개만 시켜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좋아하던 내 모습이라던가.

카페에서 둘 다 노트북 켜놓고
각자 몇 시간동안 얘기도 안하고 다른 일 하다
다 했어? 나도 다 했어라며 
널 보고 웃던 내 모습이라던가.

취업 후, 군산에서 일하느라
매 주 일요일 저녁마다 헤어지던 고속터미널
가기 싫다고 울었던 기억이라던가.

2011년 12월 31일에서
2012년 01월 01일로 바뀌던 그 때,
주안역 지하상가에서 만나
한 해의 끝과 새해를 같이 맞이했다고 감동했던 그 떄의 내 모습이라던가.

부산 남포동 세정.
메추리알이 화룡점정이라고 얘기하며
소주 두 잔을 연거푸 원샷하던 내 모습이라던가.


늘 얘기했잖아.
내 나이가 40이 넘고, 50이 넘어도
정말 늙어서 쭈글쭈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남편이랑은 사랑해서, 정말로 사랑해서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너와의 연애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 까닭이,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정말 감정 하나만으로 연애하던 
그 때의 내 모습이. 그게 그리워서.

그래서 가끔 그 연애가 생각나.
댓글
  • 대바리얌 2017/03/07 10:54

    이거 진짜 엄청 공감가네요...
    그 때의 내 모습이. 그게 그리워서.
    진짜 사무치는 말이네요.
    살다보면 또 엄청 좋은 사람이 나타날겁니다.
    행복하세요!!

    (JDb8Pu)

  • 샤레 2017/03/07 18:07

    지금 와이프와 유치원 동창입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이혼위기도 많았지만
    지금 까지 사랑하며 살아갈수 있는건
    내 젊은날의 찬란함과 아름다움을
    그사람이 기억해준다는거
    그리고 사랑보다 우정이 더 크다는거..

    (JDb8Pu)

  • babpul 2017/03/07 18:45

    과거의 내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그 때 정말 힘들었단 사실 역시 알기에
    뒷 모습만 슬쩍 그리워 해 볼랍니다.
    좋은 것만 기억하기에도 벅찬 세상입니다.

    (JDb8Pu)

  • 똥의흐름 2017/03/07 19:10

    .

    (JDb8Pu)

  • 꼽이 2017/03/07 19:26

    추억은 사람을 행복하게도하고
    슬프게도 하는거 같네요
    그사람생각이 아닌 그사람과의 추억이죠 뭐
    덕분에 저도 생각에 잠기는시간이었네요

    (JDb8Pu)

  • 안개처럼 2017/03/07 20:29

    정말 공감가요.
    저도 작성자님처럼 길게 연애했고 또 끝이 그닥 좋지않아서 그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단 생각은 전혀안들지만
    그래도 그 연애가 기억나요
    감정하나로 연애하구 또 그만큼 순수했던 시절같아서.. 그게 참 그리울때가있네요

    (JDb8Pu)

  • seo2h 2017/03/07 20:59

    동네에서 만났단 글 있어서 크흑..저도 예전기억들 곱씹어요 ㅜ

    (JDb8Pu)

  • 갯강구 2017/03/07 20:59

    군산에서 뜨끔 했네요
    장거리 연애를 하는 저도 속마음으로만 하던 몇번의 이별을 견딜 수 있게 해줬던건 추억이었던것 같습니다

    (JDb8Pu)

  • 프리스트리퍼 2017/03/07 21:06

    기대한다는 것은
    상대의 의사 혹은 현실과는 상관 없이 내가 만들어 내는 부당한 바람입니다.
    깨어난 현실은 아플테죠.
    힘들었던 사랑 맘속부터 떠나보내시고 나를 잊을 수 있을만큼 사랑하는 사람 만나시길..

    (JDb8Pu)

  • 꼬덴네 2017/03/07 21:24

    얼마전에 이별한 사람으로서 한구절 한구절 다 공감이 가네요. 다시 시작하고싶은 마음도 보고싶은 마음도 없지만 가끔 그사람이 궁금하고, 가난한 연애였지만 가난한 연애라서 기억에 더 남는것도 있고 또 그사람의 조건이나 안좋은 상황들에도 그냥 사랑에 빠져서 웃고 있었던 내 모습들이 그립네요

    (JDb8Pu)

  • 고민고민노농 2017/03/07 21:28

    그 젊은 날의 감정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6년이나 사귀고 바람난 여친ㄴ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네요

    (JDb8Pu)

  • 중리동김씨 2017/03/07 22:13

    저도.. ㅋ 이제 그사람은 짧은 노랫말이나 되겠지만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7년간 열심히 연애했던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애썼다싶은게 짠해서 자주 생각해요.

    (JDb8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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