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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달나라에 사는 여인]을 보고.. 이런 사랑도 있다... (스포 포함)
니콜 가르시아 감독의 2016년작
[달나라에 사는 여인]을 다시 보았습니다.
2016년,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처음 감상했던 영화였는데,
그 당시 하루에 서너 편씩 영화들을 보느라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죠.
2019년 12월 19일, 드디어 공식으로 개봉했지만
불과 25명의 관객만을 동원한 채 VOD로 풀렸네요.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영화이기에
2020년의 첫 리뷰로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Mal de Pierres].
신장결석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영화의 주인공이 이 지병을 앓고 있습니다.
영어 제목은 [From the Land of the Moon].
이것을 [달나라에 사는 여인]으로 번역했는데
세 개의 제목들 중 가장 마음에 드네요.
이탈리아 작가, 밀레나 아구스의 동명 원작소설을
니콜 가르시아 감독과 자크 피에쉬가 각색했으며,
2006년 출간된 소설은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두 달 전, [트루 시크릿] 리뷰에서 언급한 적 있는
니콜 가르시아 감독은
이야기의 화자를 주인공의 손자로부터
주인공 자신으로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 시골이 영화의 배경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 여동생과 함께 살고있는
가브리엘은 이 집의 유일한 골칫거리입니다.
정신착란내지 과대망.상의 증상을 갖고있는 그녀는
성적인 욕망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짝사랑이 거부당할 땐 분노를 자제할 수 없고
남성들 앞에서 벌거벗은 몸을 노출시키죠.
통신 강의를 하는 선생에게 빌린 [폭풍의 언덕],
그 주인공인 캐서린의 불같은 사랑을 꿈꾸는 그녀는
2차 대전 후의 고지식한 관습과 질서에 갇히기엔
너무도 거칠고 뜨겁습니다.
그녀가 교회 십자가에서 주목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벌거벗은 몸입니다.
세상은 그녀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고
부모는 그녀를 사르데냐 출신의 무일푼 노동자,
호세(알렉스 브렌데뮬)에게 결혼을 미끼로 떠넘기죠.
이렇게 시작된 가브리엘과 호세의 결혼엔
사랑도, O스도 부재합니다.
유일했던 O스로 임신한 아기를 결석으로 유산한 후
가브리엘은 6주 간의 치료를 위해
산 속의 고급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고,
남편과의 별거가 오히려 기쁜 가브리엘은 그 곳에서
전쟁 중 부상을 당해 같은 병원에 입원한 젊은 장교,
앙드레(루이 가렐)를 만나 평생의 사랑에 빠집니다.
마리옹 꼬띠아르가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이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 영화는 특별해집니다.
2년 전, 배우 리뷰에서 세 번째로 포스팅한 그녀는
배우의 얼굴이 영화 자체인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전세계 몇 안되는 배우들 중 하나로서
국내외 40대 여배우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죠.
클래식한 우아함...
이 영화에서 그녀는 그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는
불안하고 광기 가득하면서도
자신을 얽매는 시선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자유롭고 격정적인 영혼 속으로 진입합니다.
6주의 시간이 흘러 퇴원을 하게 되면서
앙드레와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한 후
점점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드러낼 때의 그녀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매일마다 앙드레에게 보내는 편지,
그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한 번에 반송된 편지들의 묶음을 받고는
바로 남편 앞에서 하염없이 무너지는 가브리엘은
쉽게 공감하기 힘든 인물을 끝내 납득시킵니다.
알렉스 브렌데뮬.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란 듯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 옆에서도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호세를 연기합니다.
그의 과묵한 사랑은 비극적이지만 숭고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37b 6월의 뱃노래.
(The Seasons Op. 37b June-Barcarole)
극 중 여러 인물들에 의해 연주되는 이 곡은
프랑스 시골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영화의 중심을 잡으면서
벌써 겨울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갈라쇼 배경음악으로도 쓰인 버전을
링크로 걸어둘 테니 잠시 감상해 보시죠.
(Van Cliburn - Tchaikovsky:The Seasons, Op. 37b:Barcarolle)' 보기
https://youtu.be/O4YJ1vetHjA)
이 영화는 아주 중요한 반전을 내포합니다.
세월이 흘러...
호세는 아들의 피아노 콩쿠르 참여를 위해
가브리엘과 함께 리옹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정이 영화의 맨 처음과 후반부에 위치하면서
영화의 분기점을 이룹니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들...
영화 전반부의 부드럽고 느린 전개에 비해
갑자기 빨라지는 후반부의 전개가
편집의 균형을 깨는 부분이 다소 아쉽지만
이 영화의 반전과 엔딩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며
긴 여운을 남길 겁니다.
달의 뒷면은 지구에서 볼 수 없다죠.
달의 자전주기와 지구를 도는 달의 공전주기가
서로 같기 때문입니다.
앙드레가 눈에 보이는 달의 앞면에 존재했다면
호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에 머물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호세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바로 옆에 사랑이 존재함에도
우리는 가끔 먼 곳의 사랑을 꿈꾸기도 합니다.
사랑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행복도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 바보같은 꿈을 꿀 때도,
그 바보같은 꿈에서 깨어날 때도
늘 한결같이 옆에서 묵묵히 머무는 사랑...
가브리엘이 호세에게 묻습니다.
"왜 아무 말 안했어?"
호세가 답합니다.
"당신을 살리려고..."
잠시 후 해가 뜨면
달나라에 살던 여인은 지구로 돌아올 겁니다.
남편의 고향, 사르데냐 섬으로 함께 떠나는 부부.
더 들뜬 사람은 호세가 아니라 가브리엘입니다.
앞서가는 가브리엘, 따라가는 호세.
가브리엘이 처음으로, 처음으로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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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반 클리번 (이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만) 에 관련된 짧은 글을 포스팅한 적 있고, 또 몇 달전에 저도 차이콥스키의 계절들 중 6월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마침 이 연주자의, 이 곡이 쓰였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고 싶네요^^ 올 한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Seasons 첫 번째 부분 오타 있습니다.)
풍데쿠// 관객수 달랑 25명.. 아무도 보지 않았을 거라 느껴지는 영화에 풍테쿠님께서 리플을 주셨네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맞습니다. 음악과 풍광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랍니다. 그런데 오타가 왜 제 눈엔 안보일까요? ^^;;
풍데쿠// 앗 발견!!! 수정하겠습니다.^^
마리옹 꼬띠아르 영화네요. 챙겨봐야겠네요.
영화평이 무슨 시같네요. 소질 있으신듯.
처음 듣는 영화지만, 포스터의 여배우 얼굴이 범상치가 않군요.
영화 좋네요, 덕분에 잘 봤습니다.^^
지엽적이긴한데, 한가지 이해가 안 가는 거는 남자 주인공 호세는 영화에서 카탈루니아 출신으로 스페인 내전을 겪고 프랑스로 온 걸로 묘사되는데 고향은 또 이태리 사르디니아 섬이네요. 물론 이태리 사람이 하필 스페인 내전때 스페인에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Jose 라는 이름은 이태리보다는 스페인일 확률이 더 커서 말이죠 (영화 내내 프랑스식 발음으로 "조세"라고 불리는게 재밌었습니다, 실제 프랑스 사람들, 영어든 뭐든 자기식으로, 자기 편한대로 부르거든요 ㅋ). 이태리 사람중에도 호세 Jose 라는 이름이 있을 수 있지만, Jose 의 이태리식 이름으로 쥬세페 Giuseppe 가 따로 있고, 같은 이름이 독일계열일 때 요세프 Joseph 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라, 소설에는 더 자세한 Jose의 인생 역정이 나올수도 있겠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바뀐 걸 수도 있겠고, 암튼 그렇네요.
Nadal//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볼 가치 충분한 영화죠. 즐감하세요
그냥해// 영화가 시같아서 리뷰도 시처럼 써볼려고 나름 노력했네요
Triend// 제가 개인적으로 국내외 40대 모든 여배우들 중 가장 좋아하는 배우랍니다
.
풍데쿠// 영화가 잔잔한 흐름이어서 걱정했는데 즐감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 역시 풍테쿠님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이유들로 스페인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탈리아 사람이더군요. 원작까지 찾아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서...^^;; 다음주 활기차게 시작하시길 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