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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차알스 디킨즈에 대한 비판

 


무슨 수를 써서든 이놈의 단대리를 빠져나가자고 아내에게 소리치던 그날 밤엔 영 잠이 오질 않았다. 줄담배질로 밤늦도록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차알스 램과 차알스 디킨즈였다. 나하고는 전혀 인연이 안닿는 땅에서 동떨어진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이 갈마들이로 나를 깨어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점 말고도 그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점이 그렇고, 문학작품을 통해서 빈민가의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쏟은 점이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성(姓)이 각각이듯이 작품을 떠난 실생활에서의 그들은 성격이 딴판이었다 한다. 램이 정신분열증으로 자기 친모를 살해한 누이를 돌보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는 동안 글과 인간이 일치된 삶을 산 반면에, 어린 나이에 구두약공장에서 노동하면서 독학으로 성장한 디킨즈는 훗날 문명을 떨치고 유족한 생활을 하게 되자 동전을 구걸하는 빈민가의 어린이들을 지팡이로 쫓아 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램이 옳다면 디킨즈가 그른 것이고 디킨즈가 옳다면 램이 그르게 된다. 가급적이면 나는 램의 편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디킨즈의 궁둥이를 걷어찰 만큼 나는 떳떳한 기분일 수가 없었다.

나도 그랬다. 내 친구들도 그랬다. 부자는 경멸해도 괜찮은 것이지만 빈자는 절대로 미워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옳은 것으로 알았다. 저 친구는 휴머니스트라고 남들이 나를 불러 주는 건 결코 우정에 금이 가는 대접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정부가 베푸는 제반 시혜가 사회의 밑바닥에까지 고루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와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다방에서 또는 신문지상에서 이미 갈 데까지 다 가버린 막다른 인생을 만날 적마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긁어모으느라고 지금쯤 빨갛게 돈독이 올라 있을 재벌들의 눈을 후벼파는 말들로써 저들의 딱한 사정을 상쇄해 버리려 했다. 저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외면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배운 우리들의 의무이자 과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임을 나는 솔직히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분노란 대개 신문이나 방송에서 발단된 것이며 다방이나 술집 탁자 위에서 들먹이다 끝내는 정도였다. 나는 그랬다. 내 친구들도 그랬다. 껌팔이 아이들을 물리치는 한 방법으로 주머니 속에 비상용 껌 한 두개를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고, 학생복 차림으로 볼펜이나 신문을 파는 아이들을 한목에 싸잡아 가짜 고학생이라고 간단히 단정해 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면서 양주를 마실 날을 꿈꾸고 수십 통의 껌 값을 팁으로 던지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서 택시 합승을, 합승을 하면서는 자가용을 굴릴 날을 기약했다. 램의 가슴을 배반하는 디킨즈의 머리는 매우 완강한 것이었다. 우리의 눈과 귀와, 우리의 입과 손발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괴리는 우리로서는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도리어 나는 그날 밤새껏 램의 궁둥이를 걷어차면서 잠을 온전히 설치고 말았다.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중에서 -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혹은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 '삼포 가는 길'이라면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 바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혹은 박완서 선생님의 몇몇 작품들입니다.

거기에 시를 더하자면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있겠습니다.



전자가 아직 세파에도 다 시들지 않은 제 마음 속의 순수나 인간애를 콕콕 찔러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면

후자는 저에게 스스로의 비겁함이나 노회함에 대한 반성과 때로는 자기경멸을 불러옵니다.



전자를 마주하면 눈물을 흘린 끝에 어딘가 후련해지는, 그야말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후자를 마주하면 죽을 만한 고통은 아니지만 찝찝하기 짝이 없는 혓바늘이나 손거스러미와도 같은 떨쳐버리기 어려운 껄끄러움이 남아 저를 괴롭히고 때로는 불면의 밤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혹은 살아내면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많겠습니다만

하나 뿐인 자기 자신을 맨 밑바닥까지 떨구지 않게 해주는 동앗줄 중 하나가 맹렬한 부끄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부끄러움을 마주할 용기를 내는 순간, 그것은 어쩌면 이미 비겁하고 이미 때가 묻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몸부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 flythew 2019/11/21 02:33

    오늘 새벽반 글 주제가 다양하니 좋네요.
    자신을 사랑하는 몸부림 더욱 더 많이 치시기를 바라면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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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02:35

    flythew// 수업 준비하다가 윤흥길의 문장들이 저를 너무 많이 찔러대서 그만...정말 수십 어쩌면 수백 번 읽은 문장들인데 읽을 때마다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대가의 글이 갖는 힘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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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상트 2019/11/21 02:37

    와 그냥 어떤분이 생각나서 무심코 클릭했는데 ㅋㅋ 윤흥길님 글은 폐부를 찌르네요..요즘말로 팩폭 ㅠㅠ처음 보는글아고 옛날 어투인데 그냥 단숨에 읽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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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9/11/21 02:37

    베레타// 저는 윤흥길 작품중에 '장마' 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지금 본문을 두번째 읽는 중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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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우테키 2019/11/21 02:38

    진실된 자신과 마주하는 것 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도 없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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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02:41

    데상트// 윤흥길 선생님 작품 훌륭한 것 많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 번씩 읽어보셔도 아마도 시간낭비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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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02:42

    flythew// 저는 '장마'는 읽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 내용이 제 외가랑 참 많이 유사한 부분들이 있어서 어머니의 고통스런 유년기를 떠올리게 되거든요.
    윤흥길 선생 작품은 쉬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거의 없죠.
    그러나 대부분 걸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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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02:42

    로우테키// 네, 정말 어려운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이런 명대사가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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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트 2019/11/21 02:43

    저도 디킨스 하면 떠오르는 다른 사람 때문에 식겁해서 클릭을..... ㅎㄷㄷㄷ 윤흥길의 글은 처음 접해보는데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네요.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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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02:47

    엘트// 70년대의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기를 다룬 걸작이 '난쏘공', '삼포 가는 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하자면 '우리 동네'.
    각각 저널리스트가 쓴 판타지 리얼리즘, 노동을 경험한 자의 인간성에 대한 순애보, 독재보다 더 독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논파, 해학과 풍자라는 전통을 계승한 웃픈 시대상의 화보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박근혜 집권기에 출제되지 않을 것 같다고 찍어 준 작품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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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과영하 2019/11/21 13:43

    인간이 부끄러움을 마주할 용기를 내는 순간, 그것은 어쩌면 이미 비겁하고 이미 때가 묻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몸부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멋진 글 담아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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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영 2019/11/21 14:11

    덕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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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swns 2019/11/21 14:24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박완서님의 몇몇 작품들이 반성 또는 자기경멸을 불러온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찝찝하고 껄끄러움..저역시..
    베레타님이 올리시는 글들이 좋아서 찾아 읽기도 합니다만, 댓글은 처음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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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닭 2019/11/21 14:41

    엘지팬분들중에 베레타님과 혁명전야님 글을 제일 좋아합니다.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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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achK 2019/11/21 15:52

    교과서에서 읽은 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김용택 님, 박완서 님의 『그 여자네 집』
    곽재구 님의 『사평역에서』
    윤흥길 님의 『장마』
    이규보 님의 『차마설』 등등
    그리고 이 글도 기억에 남습니다. 찰스 램과 찰스 디킨스를 비교한 이 글...... 다만 저는 수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소설의 한 구절이었군요. 덕분에 고등학생 때 기억의 한 자락을 새삼 가다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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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이옵니까 2019/11/21 15:58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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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우리 2019/11/21 16:54

    토착중궈 누가 생각나서 저도 흠칫... 하지만 잘 읽고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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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18:01

    새벽반에 종종 올리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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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jra 2019/11/21 19:40

    저도 누구생각나서 클릭했는데 부끄럽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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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판사판 2019/11/21 19:41

    저도 고등학교 때 문학숙제로 윤흥길의 단편집 포함한 여러 권을 샀던 기억이 있네요. 김승옥, 전상국 등등. 그때 저를 미친듯이 때렸던 건 김승옥이었네요.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느꼈던 전율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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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19:48

    이판사판// 김승옥의 작품은 처음 읽을 때 문체의 세련됨에 놀라다 못해 거의 질렸던 기억이 납니다.
    진짜 모던한 스타일리스트.
    개인적으로는 이상의 계보를 잇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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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우기 2019/11/21 20:45

    찰스 디킨스가 어릴때 가난했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대문호로 성공한 후에 구걸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렸다는 사실은 첨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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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볼 2019/11/21 22:22

    자기위안 합리화일지 모르겠지만 힘없는 어른이
    되었음에 가끔 안도합니다 뒤늦게 좋은글 읽게되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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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몰츠용수 2019/11/21 23:21

    다 좋은데, 찰스 디킨스에 관한 그릇된 정보가 너무 여과없이 실려 있군요.
    디킨스가 성공한 뒤 표변해서 빈자들을 박대했다는 건 낭설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선병원 설립에 거금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모금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죠.
    그는 성공한 후에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의 죽음이 언론에 발표된 날 앙글랜드 전역의 펍에서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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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몰츠용수 2019/11/21 23:25

    [리플수정]여기서 이상한 사람이 닉으로 삼은 것도 짜증났는데, 님까지 디킨스에 관한 그릇된 정보가 담긴 글을 그냥 올리시다니...
    멋진 글을 쓰고 멋진 삶을 살았던 위대한 문호가 불펜에서 너무 고생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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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9/11/21 23:31

    스몰츠용수// 교과서에 실린 윤흥길 선생의 소설을 그대로 긁어서 올린 것인데 내용상의 오류가 있는 지는 저는 몰랐습니다.
    아마도 윤흥길 선생이 저 소설을 쓰던 무렵에는 저와 같은 내용으로 알려져 있었던가 봅니다.
    오류가 있다면 대문호의 명예를 위해서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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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몰츠용수 2019/11/21 23:36

    베레타// 네 윤흥길 선생이 오류 있는 글을 쓰셨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이 활동하던 시대는 그런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힘든 때였으니까요.
    베레타님은 설마 교과서에 실린 글에 그런 큰 오류가 있을 줄은 모르셨겠죠.
    애먼 디킨스만 가엾게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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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achK 2019/11/22 01:12

    스몰츠용수// 교과서에서 봤던 저 글이 정말 인상깊어서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산 램, 글과 반대되는 삶을 산 디킨스로 딱 나눠서 이해하고 10여년을 살았는데 대문호가 그런 존재였군요. 진짜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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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빈스미스 2019/11/22 02:02

    이 글은 스몰츠용수님 댓글로 완성되었네요. 몰랐던 것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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