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 "
나는 저 멀리 버스 정거장의 막차를 발견하고 뛰었다!
빌어먹을! 독서실에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만약 저 막차를 놓친다면 1시간은 걸어가야 했다.
나는 전력을 다해서 달리다가, 조금 안도하며 긴장을 풀었다. 출발하지 않고 있는 버스는 명백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 감사합니다! "
버스에 오른 내 입에서 저절로 인사가 튀어나왔다. 기사님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많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매번 이 시간대의 종점 버스를 모시나?
나는 조금 차오른 숨을 진정시키며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여기가 책을 펴놓고 보기에 가장 좋은 자리였다.
이 시간대의 막차는 적막하여, 나 말고 다른 손님은, 가장 뒷자리 구석에 앉아 졸고 있는 여학생 하나뿐이었다.
교복을 보아하니, 근처 명문 고등학교의 학생 같았다.
저 아이도 나랑 같은 처지일까? 이 시간까지 부지런히 공부하다가, 너무 지쳐 잠이 든 걸까?
씁쓸했다. 공부가 뭐라고...
왜 우린 이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이렇게 공부에 목숨 걸고 살아야 하는 걸까?
" ... "
부질없는 생각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집중했다.
한데, 세 정거장쯤 지났을 때-,
" 저기-, 손님? "
" 예? "
갑자기 들려온 기사님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기사님은 뒤를 힐끔 한 번 보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저 뒤에 여학생 말입니다.. "
" 예? "
기사님의 조심스러운 말투에, 나도 모르게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님의 말에, 내 눈이 커졌다!
" 저 여학생...지금 숨 쉬나요? "
" 예?? "
숨을 쉬냐니? 무슨 말이지 그게?
" 손님이 타기 훨씬 전부터...저 여학생이 전혀 움직이질 않는 것 같아서.. "
" 예에...? "
기사님의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심상치 않은 눈초리로, 여학생을 자세히 보았다.
뭐, 뭐지? 왜 저렇게 미동도 없는 거야? 사람이 저렇게 조용히 자던가 원래?
아니 근데, 숨을 안 쉬냐고...? 그럼 그 말은, 저 여학생이 시체라는 거야 뭐야??
" 저 여학생이 처음에, 무섭게 생긴 남자랑 같이 탔는데 말입니다... 뒷자리 구석에서 한동안 둘이 딱 붙어 있더니, 어느 순간 남자만 내리고, 여학생이 혼자 계속 저렇게... "
" 으음.. "
" 벌써 1시간째 조금도 움직이질 않고 있는데... 잠든 거겠죠? 그렇죠? "
" ... "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눈을 좁히며 뚫어져라 관찰해보았지만, 버스의 흔들림 때문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죽은 듯이 자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정말로 숨을 안 쉬는 것도 같고...
" 어떻습니까..? 자는 거 맞나요...? "
" 그, 글쎄요...? "
내 애매한 대답에, 기사님의 뒷모습이 경직되었다. 뒤이은 침묵에서 오는 공포심이, 내게도 전염될 지경이었다.
잠시 뒤,
" 저기...! 소, 손님이 한번 가서 보고 오면 안 되겠습니까...? "
" 네?! "
싫었다. 무서웠다. 난 태어나서 시체를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그냥 호, 혹시나!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혹시나 해서! 예? 가서 한 번만 확인해보고 오면 안 되겠습니까..? "
" 아니, 그건 좀... "
" 제가 확인해보고 싶은데, 제가 운전 때문에... 부탁드립니다. "
" 으음... "
부탁이라는 말까지 하니 거절하기가 애매했다. 아까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려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결국, 나는 찜찜한 얼굴로 의자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거울로 마주친 기사님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 으흠... "
나 역시 긴장한 눈으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뒷좌석이 가까워질수록, 내 걸음이 느려졌다. 너무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조용한 것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너무 조용하다.
멈춰 서 힐끔 뒤를 돌아보니, 정류장에서 속도를 줄이던 기사님이 어느새 뒤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앞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런가, 근처까지 와도 정확한 판단이 안 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얼굴을 여학생의 얼굴 가까이 향했다.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 ...휴으~! "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고 기사님을 향해 웃으며 오케이를 그렸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보고 있던 기사님의 얼굴도, 무너지듯 미소가 지어졌다.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기사님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 아이고호호. .이거 참 민망합니다. 요즘 이상한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참..하하 "
" 저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뭘~! 어휴! 정말 10년 감수했습니다. "
" 하이고~ 다시 생각해도 참...난 영락없이 시체 태우고 종점까지 가게 되는 줄 알고 말입니다 하하하 "
" 하하하하 "
긴장이 풀려버린 기사님은 내가 내릴 때까지 주절주절 수다를 걸어왔고, 나도 마찬가지로 공부할 집중력이 아니었기에, 책을 가방에 넣고 수다를 떨었다.
매일매일 공부만 하던 삶에서 오랜만에 맛본 긴장감 때문인지, 집에 돌아와서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휴~! 다시 생각해도 정말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엮일 뻔했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데 말이야!
노인이 메인인 이야기를 쓰다가 진행이 막혀서 조금 쉴 생각으로 다른 이야기를 써본다는 게 그만...완성까지...! 아뿔사!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헐.. 설마 뒤쪽여학생은 진짜 죽어있던 상황인데..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엮일까봐' 모르는척 한건가요?
소름...ㄷㄷㄷ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소름돋고 가요ㅋㅋㅋㅋㅋ
운전때문에 확인 못한다던 기사가 차를 멈춰서 보는중 = 기사가 범인 & 여자가 죽은 걸 알아채면 죽이려고.
맞나요?
저는 남자가 여자죽인거라고 뒤집어씌우려고 뒷자리가서 확인해달라한줄 알았네요
지문이라도 묻히려구..
여학생은 죽은게 아니라 자고있는거였지만,
여학생이 죽지 않아서 다행인게 아니라 남 때문에
내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되서 다행이라는 주인공의 마음이 소름돋는다는 내용인것 같아요
아 저는 죽은 여학생을 보고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엮이기 싫어서 모르는 척 한 줄 알앗는데....
기사 : 학생도 뒤에 여학생이 보여...?
자기 시간 뺐기긴 싫다는 거구나...
그것도 능청스럽게 연기까지 해가면서...
유명한 댓글시인 제페토님의 시중에서도 저런 내용이 있어요...
친구가 사고로 죽어서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가 걘 몇등이었니...? 라고 물어봤다고...
실제 기사에 댓글로 시를 쓰는분인데, 시집도 나왔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울렸던 시는 '그 쇳물 쓰지 마라.' 였습니다ㅜㅜ 시집 제목이기도 하구요ㅜㅜ
음 전 화자가 저 여학생을 죽인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버스를 타서 저 여학생을 죽이고 다른 교통편으로 독서실로 돌아와서 짐을 챙겨 나오느라 평소보다 늦었고...
하필 그 버스를 다시 타게 되서 운전자 얼굴이 많이 익숙한거고..
그래서 복선으로 공부에 목숨까지 걸어야하나라는 내용이 있는거고..
화자는 여학생이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고 시간낭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거라고...........
너무 나간 생각인듯 싶음.. ㅠㅠ
항상 재밌게 보고 있네요. 문체가 익숙해서 기억해봤더니 유령의 공포문학 카페(이종호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였던가요?)에서도 작품을 봤었던 것 같습니다. 건필하세요!
살인을 하고온 선생님한테
수업언제하냐고 했던 학생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복날님의 소설은 독자들이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데 요새 그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