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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오후 후기(有) ㄷㄷㄷㄷㄷㄷ
비 내리는 광복절, 집 근처 극장 가서 보고 왔네유...
‘국뽕이다’ ‘국뽕 아니다’ 말이 좀 있던데... 갠적으론 국뽕 맞는 것 같았습 ㄷㄷㄷㄷㄷ
유해진과 류준열이 주연이긴 하지만 총알과 파편들이 날아다니는 전장 속에서 둘만 멀쩡히 뛰어다니는 것도 그렇고...
극중 중간 중간의 슬로우 모션들도... 뭐랄까? 너무 감성에 기대는 듯했던...
봉오동전투가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전투임에 틀림없지만 제대로 살리긴 쉽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암튼 그랬네유 ㄷㄷ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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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취한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봐주신것만 해도 된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그.. 그런가유? ㄷㄷㄷㄷㄷㄷㄷ
기록이 없어서 인가요?
지 맘대로 재연..
나름 <독립신문>에 기록돼있긴 한데 그게 좀 영상으로 담기가 수월친 않았을 듯해유..
유해진 큰 칼 들고 총 든 일본군들에게 뛰어 들어 막 베어 넘기던 ㅋ~~~~ 주모~~
엌ㅋㅋㅋ
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 장면도 좀....
무척 좋았네요
ㄷㄷㄷㄷㄷㄷㄷㄷ 글쿤여..
전완전 쓰레기... 같은 영화였어요
광복절을 겨냥한 국뽕
음.. 완전히 ㄷ ㄷ ㄷ ㄷ ㄷ
차라리 이영화 말고 엄복동을 보세요 그게 더 가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물 김복동 말씀하시는 거쥬? ㄷ ㄷ ㄸ ㄷ ㄷ ㄷ
그건 너무 나간거죠.
엄복동 따위를 ㄷㄷㄷ
웃으면 되는거죠.?
이 영화 천년기념물인가? 자연 훼손한거 때문에... 좀 그렇더라구요
천연기념물 아니랍니다. 그냥 할미꽃이라고....
학계에서 정확하지 않다고 밝혀진 독립신문을 근거로 만들어서 고증이 개떡같다는...
국뽕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네요.
봉오동전투에서의 일본군 전사자는 1명이다(...)
지휘관 1명 일본인 나머지는 일본에 붙은 조선인들인가보죠.
간도특설대처럼?
전사자는 2등졸 호리이 시게쿠니
봉오동 전투(鳳梧洞戰鬪)는 1920년 6월 6일~6월 7일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洪範圖), 최진동(崔振東, 일명 최명록(崔明錄)), 안무 등이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 한경세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 남양수비대 예하 1개 중대와 싸운 전투이다. 병력은 교전 당시 대한북로독군부 소속 한국인 독립군은 천 2백여 명이었고, 일본군은 5백여 명 정도였다.
삼둔자 전투에서의 패전 이후 일본군 제19사단은 병력을 출병하여 간도 내의 독립군단 토벌에 나선다. 1920년 6월 7일 북로 제1군 사령부(간도국민대) 부장 홍범도는 군무 도독부군, 국민회 독립군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고 봉오동 골짜기 인근에 포위진을 짜고 제3소대 분대장[3] 이화일을 시켜 일본군을 유인해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소나기가 내리쳤고, 일본군 부대는 선봉으로 올라가던 일본군 부대를 독립군으로 오인하여 사격을 가하면서 교전했다. 고지 꼭대기까지 올라간 홍범도 부대는 이를 내려다보고 남은 일본군에게 사격을 가했다.
6월 7일 오후 1시쯤, 일본군이 봉오동 상동(上洞) 남쪽 300m 지점 갈림길까지 들어오자 홍범도는 신호탄을 올렸다.[4] 삼면 고지에 매복한 독립군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봉오동 전투는 3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사상자가 늘자 월강추격대대는 도주하기 시작했는데, 강상모(姜尙模)가 2중대를 이끌고 쫓아가 다시 큰 타격을 입혔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무부는 봉오동 승첩에서 일본군은 157명이 전사한 반면 아군은 불과 4명만 전사했다고 발표했다.[4] 상해임시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 측 피해는 전사자 157, 중상 200, 경상 100명이며 독립군 측 피해는 전사자 4, 중상 2명에 불과했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 북로독군부군은 청산리로 옮겨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하여 청산리 전투를 전개해 나간다.
국뽕 감성팔이 신파 인가요?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