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일화
어느날 태종이 말 타다가 말에서 떨어짐.
창피하고 쪽팔렸는지 사관 부름
태종(취미: 칼춤): 사관아.
사관: 네.
태종(취미: 숙청): 나 말에 떨어진 거 너 기록했지?
사관: 네.
태종(특기: 칼춤): 그거 쓰지마라
사관: 슥슥슥-
태종(특기: 숙청): 너 또 뭐 쓰냐?
사관: 말에서 떨어진 거 쓰지 말라고 하신 걸 썼습니다.
태종한테도 저러는 사관들임.
그 사관들이 세종대왕이 글을 만들었다고 함.
저 시대 사관이 그렇다면 그런거임
태종 : 꺼흑 시바 저걸 죽이면 죽였다고 또 졸렬하다고 쓸거 아냐
....생각해보니 사관들 이방원이 뭔짓을 했는지 다 봤을텐데 저러는거보면... 보통사람들이 아냐
ㄹㅇ 기록 성애자라 기록 왜곡되는걸 제일 극혐해서
왕이 내 기록 보자고 해도 뒤져도 안됨 ㅇㅇ 이러면서 저 왕이 기록좀 보자했음 하고 기록해두는 사람들
세종대왕을 옳은 소리 하겠다고 따박따박 말하는 신하들에게
논리랑 팩트로 따박따박 관광 태우던 왕임.
왜냐면 세종대왕보다 똑똑한 신하는 없었거든...
직업에 대한 신념 쩌네 ㅋㅋㅋㅋ
....생각해보니 사관들 이방원이 뭔짓을 했는지 다 봤을텐데 저러는거보면... 보통사람들이 아냐
태종 : 꺼흑 시바 저걸 죽이면 죽였다고 또 졸렬하다고 쓸거 아냐
너님이 만든 제도자나영 왜 이제와서 쓰지말라는거에영?
대소신료들이 사관제도 폐지하자고 난리칠 때도 막아준 왕이 태종임.
忠이란 왕 앞에서 옳은 소리 따박따박하는 거라고 배운 조선 선비들 답다
세종대왕을 옳은 소리 하겠다고 따박따박 말하는 신하들에게
논리랑 팩트로 따박따박 관광 태우던 왕임.
왜냐면 세종대왕보다 똑똑한 신하는 없었거든...
책 더읽으려고 숙직을하는 미친 학문광 신숙주를 기겁하게 만든 희대의 학문 대마왕,,
직업에 대한 신념 쩌네 ㅋㅋㅋㅋ
ㄹㅇ 기록 성애자라 기록 왜곡되는걸 제일 극혐해서
왕이 내 기록 보자고 해도 뒤져도 안됨 ㅇㅇ 이러면서 저 왕이 기록좀 보자했음 하고 기록해두는 사람들
일단 사관들이 맨정신이나 제정신으로 일하지는 않았을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 일하고 살겠나..
ㄹㅇ 목숨내놓고 하는 직업
당파싸움 심해지고나서부턴 그리 꼭 객관적이지만은 않음
자기 소속당파 아니면 개까고 자기소속이면 좋게써주고 그런거 꽤 많음
태종시대에 과연 당파가 있었을까... ㅎ
"야, 나 사냥 나온 거 사관이 아냐 모르냐?"
"전하께서 내관에게 '당직사관이 사냥 나간거 아느냐'고 물으셨다."
세조 때도 한명회 불러서 개인적인 이야기 하려고
사관 보고 들어오지마 했는데 그것까지 적어둔게 사관이다
연산군: 어떤 개XX가 조의제문 실었어!?
이건 역사서에 자기 사감 잔뜩 실린 소리 실었던 양반 잘못이 맞다던데.
세조가 잘못한게 맞긴 하지만.
사초야뭐 저럴수 잇는데 뒤에 실록 편찬한 사람들 입깊도 들가니깐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안햇다는 말은 아님
그게 뭔소리임?
뒤에 수정할지도 모른다 그런말 하는거면 걱정안해도 되는게 당파싸움이 극에 달했을때 적대 당파가 실록을 지 입맛대로 썼을때도 감히 수정은 못하고 새로 썼음. 그래서 실록이 3개던 시절도 있었어.
수정은 아예 못하고 기록은 실시간이라 그런건 걱정안해도 됨
실록에 잇는게 꼭 믿을만 하다는건 아니다는말임 역사란게 쓰는사람 사상이 들어가는거잖아 조선왕조실록도 정권 바뀌면서 이미 쓴거 다시쓰는 경우도 있었을걸?
말했듯 수정은 불가능함 폐기도 불가능함.
세종때의 초중기, 특히 세종때의 극초기 때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기록을 했고 실록에 손대는건 중화천자가 와도 못했음
그래서 기록도 야사도 안남은 뇌피셜도 정설로 쳐주자 이건가? ㅋㅋㅋ
있었을걸? 하는 순간 이미 글러먹은 거임
걍 뭐했을수도 있음 ㅇㅇ 저거 못믿음 ㅇㅇ 이렇게 할거면 역사학자들이 왜 존재함, 역사 기록은 왜 하고 역사는 왜 배움
어차피 다 구라일 수도 있는 내용들인데
적어도 기록된 내용에 대한 반박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기록을 갖고와서 반박을 해야됨
이랬을수도 있음, 아닐수도 있음 하고 뇌피셜로 뇌내망상하는게 아니라
저런 덕에 조선 역사는 배우는게 많어...
기록된게 많아서 그만큼 까이는게 많다고 봄. 고구려나 백제도 조선실록만큼 기록 많았으면 까일것도 많았을거임. 물론 조선이 까이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 말기 상황이 대한민국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영향끼친게 크지만...
숙종때와 영조때는 어땠나요?
근데 저 사관이 사관 중에서도 진짜 철거머리급 스토커였음.
한때는 병풍 뒤에 숨어가지고 태종 대화를 기록하고 있었을 정도.
말 타는거 ㅈㄴ 잘했다더라.
어느 왕인가 사냥 나와서 사관이 쫓아오지 못하게 말을 매우 격하게 몰면서 도망쳤는데 뒤에서 사관이 미칠듯한 기세로 쫓아와서 결국 따돌리지 못했다지...
연산군 전에 사관들은 대단했지 ㅋㅋ
지 목에 칼 들어와도 있는 일은 다 적었어 ㅋㅋ
근데 저 그림은 누가 그렸냐 조선시대 어진 한번 쳐다보기만하고 자기맘대로 그린거 같은 솜씬데
세종(학문좋아함):신하님들
황희(노예):네?
세종(고기좋아함):울아빠 실록좀보자
황희(취미 사직서):네??
세종(음악싫어하는데 절대음감): 할아버지껀 편찬하며 봤자나. 이것도 참고 좀 하자
황희(몇십년일했는데 승진없음): 할아버지땐 님 없었고 기록한사람도 지금 없지만 아빠땐 님이 다봐서 주관도 끼어들고 그거 쓴사람도 있는데요?
세종(업적덕후): 쓰읍 어쩔수없지
왕이 보자해도 못보게해서 연산군빼고는 본사람이 없음.
저거도 조선초기에나 그랬지
중후반가면 사관들이 왕 빨아주는글도 많고 아예 누락시킨거도 많음.
우리나라 지금도 사관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청화대에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태종 4년 2월 8일 기묘 4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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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한 넘들 ㅋ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태종도 세종 못지않게 똑똑한 양반이라(군사적 능력보면 오히려 세종보다 더한 먼치킨일 수도) 신하들이 뭐라하면 '나도 과거 급제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신하들이 따지는 부분을 유교적 논리로 눌렀던 양반임. 즉 태종~세종 시절 신하들이 2대에 걸쳐서 왕들에게 갈굼받고 지낸건데 그런 유교에 정통한 양반이라 사관이 저러는걸 관대히 넘긴걸 수도 있음
취미, 특기 : 칼춤, 숙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킬방원이 냉혹한 사람이긴하지만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고 뜻도 있는 양반이었음. 그래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운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사관이 스토커새끼마냥 저래도 걍 내비둿음. 킬방원이 진짜 문제라거 생각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거 죽이는 양반인점을 생각하면 사관의 행동이 옳은 행동이라는점 알았단거지. 사실 아들 사랑이 너무 지극한 양반인지라 첫째가 개차반새끼처럼 돌아다닐때도 속상해하고 결국 세자에서 폐위시킬때도 울었다는 기록도 있고 세종까지 가게되면서 진짜 세종의 왕위를 위해 자기 손에 피를 다묻힌거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죽이는 양반은 아니었으니..태종이 세종을 얼마나 사랑했냐면 세종이 정종 죽어서 고기를 안먹으니까 '주상이 고기를 안드시다니 ㅠㅠ 이렇게 기쁠수가 ㅠㅠ'하고 '주상은 운동좀 하셔야함 넘 살쪄서 걱정임'(물론 이건 지가 사냥좋아해서 억지로 같이 끌고가려는 핑계임)
그리거 자기 죽을때도 '내 상중엔 주상이 고기 드시게해라..'하던 양반임. 세종은 태종이 그렇게 왕권을 초특급강화를 시켜주고 서열정리를 깔끔하게 해준 덕에 적장자가 아님에도 엄청난 왕권을 행사할수있었고 위러 있는 두 형님도 천수 누리다가 죽음.
저건 정확히 말하자면... 떨어진 후에 태종이 일어서면서 사관 없지? 휴 이거 갖고 말 나오게 하지 마라. 이건데 사관이 어떻게 몰래 왔는지, 들었는지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