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1090693

[타] 스냅 - R-D1편

예전 글에 올린 사진 중에 엡슨 R-D1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전무후무한 아날로그 감성의 레인지파인더 디카로, 여전히 마니아층에게는 인기를 모으고 있어
생산 종료시의 가격에 비해 지금의 중고 가격이 2배 이상 비싸게 형성된 바디이기도 합니다.
인기의 비결은 역시 CCD의 진득한 색감과 필름 카메라로 찍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줘서
아날로그 감성에 호소한 것이 먹혀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종된 지금, 바늘로 표시하는 배터리양이나 촬영 가능 장수, 화질 선택 부분이 고장나면...ㄷㄷㄷㄷ)
3세대인 R-D1x에서는 고정식 액정으로 변경하면서 액정 화소수를 올리는 대신
후면 액정 자체를 돌려서 완전히 필름 카메라처럼 보이게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사진은 여전히 1, 2세대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01.JPG
좌 : 도쿄, 신바시
우 : 도쿄, 신주쿠 교엔
ISO는 200, 400, 800, 1600의 네 종류밖에 설정할 수 없고, 800만 되더라도 상당한 노이즈가 올라오지만
흑백에서는 그 노이즈 패턴이 필름 그레인처럼 보이기도 해서 일부러 ISO를 올려서 찍기도 했죠.
이렇게 찍은 ISO 1600의 흑백 사진이 이전 글에 올린 사진입니다.

장소 불명
600만 화소밖에 되지 않고, 명부/암부는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DR이라는 개념이 디카에 적용되기 전 세대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설정할 수도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죠.
장면에 따라서는 둘 다 포기해야 하기도 합니다. -_-;;;
시작 ISO가 200이고, 셔터 스피드는 1/1000이 한계이기 때문에 명부에 특히 취약합니다.
그냥 포지티브 필름이라고 생각하고 찍으면 포기하기 쉽습니다.
레인지파인더 형식이라 파인더에서 보는 프레임과 실제 찍히는 이미지에 오차가 발생합니다.
거리가 가까울 수록 오차는 커지고요. (이를 시차차: Parallax difference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중상 합치형 카메라의 파인더를 보면 파인더 바로 앞쪽의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에
실제 사진이 찍히는 범위가 그려진 프레임 가이드가 보이고, 초점링을 움직이면
시차차를 보정하기 위해서 프레임 가이드가 이동합니다.
라이카 M렌즈의 경우 마운트쪽에 그 렌즈가 몇미리 화각에 해당하는가를 표시하는 돌기가 있고
라이카 바디는 이 돌기를 통해 자동으로 파인더의 프레임 가이드가 전환됩니다만
R-D1은 바디 상단의 초점 거리 셀렉터 레버를 수동으로 움직여서 프레임 가이드를 변경해야 합니다.
렌즈를 교환하면서 프레임 변경을 깜빡하거나 가방 안에서 뭔가에 걸려 레버가 움직인 경우
실제와는 다른 프레임 가이드를 보면서 사진을 찍게 됩니다 ㄷㄷㄷ
R-D1은 베이스가 된 베사R 바디의 취약점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중상 합치 부분의 브라이트 스크린이 잘 안보이게 되거나 이중상이 틀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단종되어 AS 자체가 없기 때문에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직접 고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ㄷㄷㄷ
한 장 찍고 나면 셔터막 장전 레버를 감아야 하기 때문에 연사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버퍼가 작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마냥 즐겁습니다.
정말로 필름 카메라로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일부러 액정을 뒤집어서 보이지 않게 해 두고, 그 날의 촬영이 끝난 후에 한꺼번에 확인하기도 합니다.
물론, 생각한 대로 찍히지 않아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대로 찍혔을 때의 쾌감은
그 때까지의 좌절감을 한방에 날려 버립니다.

도쿄, 우에노 시노바즈노 이케
갑자기 비둘기가 날아올라 얼굴까지 카메라를 들어올리지도 못하고
반사적으로 초점링을 돌리면서 셔터를 눌렀는데, 조리개를 조여둔 덕에
인상적인 장면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기계적인 면에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러가 없고 셔터스피드를 1/1000으로 제한하여 셔터 쇼크가 작다 보니
저속 셔터에서도 흔들림이 덜합니다.
1/2초 핸드헬드에서도 손떨방 없이 선방할 수 있습니다.

양수리, 두물머리
ISO 800에서 이정도 노이즈가 나옵니다 ㄷㄷㄷㄷㄷ
1/2초 핸드헬드...참 쉽쥬?
그런데, ISO 1600에서도 광량만 확보되면 노이즈 없이 깨끗한 이미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도쿄, 신카와
그 와중에 주차 구획선과 자전거 휠 부분은 하얗게 날아갔네요 ㄷㄷㄷ
측광 방식은 중앙 중점 측광밖에 없습니다. 패턴 측광? 스팟 측광? 그런거 안키웁니다.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곳은 오직 파인더 한가운데의 이중상 합치 부분밖에 없습니다.
파인더 창은 그저 뚫려있는 창에 프레임 가이드와 이중상 합치 부분, 노출계만 표시해 줍니다.
주 피사체를 주변부에 배치하고 싶을 때는 초점의 코사인 오차와
위에서 말씀 드린 시차차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심도 낮은 사진을 찍고 싶은 경우 더더욱 실패한 사진이 나올 확률이 올라갑니다.
디지털 M 바디의 경우 EVF를 장착할 수 있게 진화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만
R-D1은 그런거 없습니다. 필름 카메라와 완전 동일합니다.
결국 팬포커스로 찍거나 렌즈의 거리계 표시를 이용한 목측식 촬영 기술이 단련됩니다. ㄷㄷㄷ
노출계를 믿기 어려울 때는 손바닥이나 아스팔트를 측광해서 매뉴얼 노출로 찍게 됩니다.
# 참고로 인종과 상관없이 사람의 손바닥과 아스팔트는 18% 그레이와 거의 비슷한 노출값을 측광할 수 있습니다.
# 라이브 뷰나 EVF로 바로 측광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거나, 멀티 패턴 측광을 거의 기본으로 탑재하게 된 지금은
# 크게 유용하지 않지만, 필름 카메라로 찍으실 때 찍고자 하는 장면의 노출값 계산이 어려운 경우
# 중간 값으로 설정하고 싶은 정도의 빛이 있는 곳에서 손바닥이나 아스팔트를 측광하시면
#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ㄷㄷㄷ
잠시 CCD센서와 프린터/스캐너/프로젝터 메이커로서 색상에 대해 잔뼈가 굵은 엡슨이 보여주는
JPG의 색감을 몇 장 살펴볼까 합니다.

파주, 프로방스
개장 초기의 프로방스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에는 거의 모든 건물이
파스텔톤으로 칠해져 있었네요.
새로 칠한 파스텔톤 페인트, 비가 온 날, CCD, 엡슨, G Biogon 28mm 렌즈의 진득한 색감이
모두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두 사진 모두 암부가 날아갔군요 ㅠㅠ
08.JPG
고양시, 중남미 문화원
이날은 맑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하는 식으로
날씨 변화가 큰 날이었습니다.
위의 프로방스 사진과 마찬가지로, 환경과 맞물리면서 색감 뿜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카나가와, 에노시마
에노시마에는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어 고양이섬 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괴해 가는 일도 발생하고 하여
예전에 비해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ㅠㅠ

도쿄, 신카와
벽과 자전거...왠지 모르게 찍게 되는 피사체중 하나입니다.
미니벨로의 하늘색이 깜찍한 포인트가 되네요.

도쿄, 미타카노모리 지브리 미술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지브리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
입장권은 완전 예약제입니다.
매달 10일에 다음달 입장권 판매를 시작하고, 날짜와 시간을 지정하여 예매해야 합니다.
지브리 관련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원화나 작업 장면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옥상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로봇 병사의 동상도 있죠.
미술관 내에서 정해진 시간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기도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의 경우 파인더의 프레임과 실제 찍히는 이미지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의 이중상 합치 부분에서만 초점이 맞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면의 끝 부분에 있는 물체 혹은 인물에 초점을 맞춘 후 원하는 프레임으로 카메라를 옮기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들어오거나 원하던 부분이 잘릴 수도 있고
심도가 낮은 경우 코사인 오차에 의해 초점면이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리개를 적절히 조이고 거리계 눈금을 이용한 초점 범위 설정 혹은 목측으로 인한
사진을 많이 찍게 됩니다.
이 점이 스냅에는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파인더를 보더라도 실제 프레임보다 넓은 부분이 보이고, R-D1의 경우 파인더의 배율이 1:1이라서
# 즉, 프레임이나 노출 표시 이외에는 그저 유리를 통해 보는게 되겠네요.
양 눈을 뜨고 주변 상황을 살피면서 찍기 좋습니다.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이동하는 물체나 사람을
예측하기 쉽죠.
아예 파인더를 보지 않고 미리 초점 영역을 설정해 둔 다음 노파인더샷을 날리기도 좋습니다.
셔터 소리가 작아 주위 사람이 눈치채지 않게 찍을 수도 있습니다.
# 정말로 띡! 소리밖에 안납니다. -_-;;;

도쿄, 신카와
보라색 우산을 쓴 사람이 오는게 보여서 미리 초점 범위를 맞춰두고
셔터 스피드를 조금 느리게 설정하여 파인더를 보지 않고 찍었습니다.

장소 불명
절의 향로 앞에서 기념촬영중인 관광객입니다.

도쿄, 하라주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1/15초 정도로 찍었습니다.
사람이 끊긴 사이에 있는 두 분의 아주머니께 딱 걸렸네요.
그 두 분만 움직임이 멈춰 있는 것도 포인트입니다 ㅋ
흑백을 선호하고 실제로도 흑백으로 찍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만
R-D1으로 찍을 때는 컬러도 정말 많이 찍었네요.
그만큼 R-D1의 컬러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풍경 사진에서도 R-D1 특유의 색감은 활약을 해 줬네요.

장소 불명
600만 화소밖에 되지 않는 센서라고 하기에는 이런 미묘한 파문을 표현할 만큼의 디테일도 보여 주고
DR이 좁지만 혀용된 관용도 내에서라면 놀랄 만큼의 계조를 보여줍니다.

서울, 올림픽대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 부분과 아래쪽의 수풀 부분은 완전히 날아갔지만
그 이외의 부분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제주, 섭지코지
참 좋쥬?

도쿄, 오다이바
감도를 올릴 수 없으면 일몰도 전체를 실루엣으로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ㄷㄷㄷ
------------------------------------
다시 봐도 R-D1은 R-D1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네요.
기회만 된다면 다시 입양하고 싶습니다만...과연 기회가 있을지.. ㄷㄷㄷㄷ
두번째에 올린 나무 사진이 R-D1으로 찍은 흑백 사진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습니다만
컬러 사진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길었던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 주시고 사진들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나가와, 에노시마
댓글
  • ART공간 2019/07/17 16:49

    사진 정말 좋습니다 감성이 뚝뚝 떨어지네요...

    (qHrTDE)

  • vahma 2019/07/17 16:58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qHrTDE)

  • 두아들과주인님 2019/07/17 16:52

    오늘도 좋은 사진 감사히보고 갑니다^^
    학창시절 필카들고 사진찍으러 가던시절이 생각나요

    (qHrTDE)

  • vahma 2019/07/17 17:0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저도 글을 올리면서 사람들 한가운데 들어가서 찍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확실히 레인지 파인더에는 레인지 파인더만의 장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

    (qHrTDE)

  • webbper™[리부트] 2019/07/17 17:21

    제가 들이고싶었던 놈이였습니다.엡슨 디카를 좋아했더랬죠 ㅠㅠ

    (qHrTDE)

  • vahma 2019/07/17 17:24

    아날로그 감성에 색감 뿜뿜에 흑백까지 좋아버리니...
    너무나 매력적인 녀석이었죠 ㅠㅠ

    (qHrTDE)

  • seoul drawings 2019/07/17 17:40

    지금 보는 오래된 기기의 리뷰가 상당히 느낌 있습니다. 잘 봤습니다.

    (qHrTDE)

  • vahma 2019/07/17 17:49

    감사합니다 ^^
    요새 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가, 옛날 사진을 자꾸 들여다 보게 되네요.
    옛날 사진 보다가 갑자기 삘받아서 쓰게 됐습니다 ㄷㄷㄷ

    (qHrTDE)

  • sntlatldk 2019/07/17 17:59

    가장 기억에 남는 카메라
    전 21mm 화각이 좋았어요
    사진 멋지네요~

    (qHrTDE)

  • vahma 2019/07/17 18:03

    감사합니다 ^^
    두고두고 생각나는 카메라네요.
    저는 콘탁스 G 마운트의 28mm 비오곤을 M마운트로 개조한 렌즈와
    포익트랜더 15미리로 찍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이카 렌즈들도 좋았지만 이 두 렌즈가 가장 인상깊었네요 ㅋ

    (qHrTDE)

  • 비밀리에(˚∀˚) 2019/07/17 18:33

    사진들이 엄청납니다 ㅠ
    바디 궁금해서 찾아보니 진짜 가격도 꽤 나가네요..
    디자인도 왠지 있어보이고 ㅎㅎ
    감도 800에 흑백사진 느낌이 너무 좋은데요 ㅎㅎ

    (qHrTDE)

(qHrT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