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왜 김충선의 일본에서의 행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중 한 가지는 본인 스스로가 일본에서 자신이 어떠한 무사였는지, 어떠한 가문을 섬겼는지를
철저히 함구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혹여 자신이 투항했다는 사실이 일본군의 귀에 들어가 자신의 가족들이 연좌제로 모두 처벌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으로 보인다.
각 가문간의 싸움에서 무사가 반대편에 항복하는 경우야 전국시대 당시에 그럭저럭 흔한 일이었으나 임진왜란은 결국 조선과 일본의 국가간 전쟁이었고
일본의 사실상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격도 일반적인 센고쿠 다이묘들과는 판이하게 달랐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김충선의 일본에서의 이름이나 행적을 자세히 유추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가 않다.
다만 그가 조선군의 조총 대량무장에 적극 활약했다는 점, 조총에 능통했다는 점 때문에 사이카슈 출신이라는 가설이 사실상 크게 늘어났다.
사이카슈는 전국 시대 당시 일본의 사이카에 둥지를 튼 독립 무장 집단이었는데 조총 무장 비율이 높았으며 히데요시에게 반기를 들다가 토벌당했다.
김충선이 이 집단의 무사였기에, 히데요시에 의해 침략군으로 조선에 파견된 것에 불만을 품고 항복했다는 가설이다.
만약 사이카슈라면 김충선은 그 사이카슈의 누구인가? 현재에 이르러선 스즈키 요시유키라는 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충선의 자는 선지(善之)인데, 사이카슈의 무사 스즈키 요시유키의 요시유키(善之)가 바로 선지와 한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가 없으므로 아직 완전한 속단은 이르다.
어쨌든, 김충선은 임진왜란 시기 항왜로서 조선에 투항하여 이후 이어진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등에 모두 참전함으로서
가히 조선 제일의 충신중 한 명으로 꼽히기에 두말 할 여지가 없는 인물이 되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시기 항왜로서 조선에 투항하여 이후 이어진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등에 모두 참전함
굵직한 역사적인 일들에 참전ㄷㄷ
이 사람이 조선에 투항한 계기가 늙은 부모를 업고 강을 건너는 사람을 보고 저런 백성을 어찌 죽이냐고 탄복해서였던가
전장의 화신같은 사람이구만
좀 수준이 아니라 추정상 거의 만단위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
전장의 화신같은 사람이구만
김충선은 임진왜란 시기 항왜로서 조선에 투항하여 이후 이어진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등에 모두 참전함
굵직한 역사적인 일들에 참전ㄷㄷ
베테랑중의 베테랑;
항왜 저분말고 좀 있었자너
좀 수준이 아니라 추정상 거의 만단위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
생각보다 많네
당시 조선은 오버가 아니라 왜인들의 우상인 나라였으니
(조선통신사가 일본에가면 글자하나만써달라는 요청이 끊이질않아서 그러지말라는 공문이 붙을정도)
전쟁하다가 밀려서 항복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왜군이 이기고 있었는데도
항복해서 조선에 귀순한 항왜들이 2만명에 달했다고하니...
부대단위로 투항한 애들도 있었음ㅇㅇ
ㅇㅇ 여여문이라고 선조한테 꽤 총애받았던 항왜 출신인 인물이 있음.
파새 : ㅎㅎ ㅈㅅ
ㅅㅂ 아직도 여여문이라하면 명나라 봄버맨 생각나네
hq팀 개색기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사람이 조선에 투항한 계기가 늙은 부모를 업고 강을 건너는 사람을 보고 저런 백성을 어찌 죽이냐고 탄복해서였던가
이괄 빠는 사람들에 대해서 반례로 드는 인물 중 하나
임진왜란을 이괄 혼자 격은거 아닌데 이괄편 안 든 전공자 많음
이괄이 그짓거리만 안했어도 북방군 상당수가 멀쩡했을거니까....
항왜들 전부 귀신같이 잘싸웠다고 전해지지
특히 이괄의 난이 초기 진압이 힘들었던게 항왜들 때문ㅇㅇ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잔당을 처리한것도 김충선을 비롯한 항왜들.....
일본인 검객들이 보기에 조선의 살수들은 실력이 애새끼 수준이었다고 하니.
해군은 이순신이라는 넘사벽이 존재햇지만
육군은 권율/김시민 말고도 승병 및 항왜들의 활약도 있어서 다행히 안묻혓더라
단병접전에서 만큼은 동북아에서 왜군에 대항할만한 병력이 없었음
만력제 지원군조차도 왜구만 때려잡으려고 만든 스페셜리스트들이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