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ㅡㅡ;"
심온(1375~1418)
조선의 개국공신 심덕부의 아들로
심온의 딸은 충녕대군(세종)과
혼인하여 훗날 소헌왕후가 되었다.
세종이 즉위하자 그는 영의정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듯 했으나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태종은 그를 매우 경계했다.
심온 또한 태종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에게 의심받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빨리 은퇴하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온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두고 태종은
심온이 명나라로 간 사이 '강상인 옥사 사건' 에 연루시켜
이미 처벌을 내린 강상인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고,
강상인이 심온이 주모자였음을 실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돌아오는 즉시 체포하라고 명한다.
사실 위의 사건은 심온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기 전부터
이미 처벌이 내려진 사건이였으나 다시 논의한다며
고문 끝에 자백받은 거라 작정하고 함정을 판 느낌이 없지 않다.
결국 심온은 귀국하자마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끝내 자길 살려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안 것인지
결국 강상인 옥사 사건에 연루되있음을 실토하였고,
사약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온은 태종이 죽은 뒤에도 복권되지 못하다가
문종 대에서야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태종이 자기 대에 맺은 인연들은 세종 대에 물려주지 않으려고 다 쳐냈음. 덕분에 왕권이 강화되서 세종 대 여러 치적들이 생긴거지.
흑흑 당신의 누명덕분에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있썼소
외척이 경계대상 1호지
사돈이 하필 태종 이방원이라...
심온이 쓰는 침대가 심온스 침대? 앜ㅋㅋㅋ
외척이 경계대상 1호지
영조 때 밀풍군은 아무것도 안했는데
이인좌의 난 때 뜬금없이 이인좌가 왕으로 올린다고 언급해서
사약 먹고 죽었다
어쨌든 왕이랑 친척 맺으면 가시밭길임ㅠㅠ
역사가 다 말해줌 후한시대,민비,세도정치,문정왕후
흑흑 당신의 누명덕분에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있썼소
ㅎㅎ 세도정치기 견제받지 않는 외척들의 횡포를 생각하면 죽이길 잘한셈
그냥 은퇴시켜주고 끝내면 안되는거야..?
태종이 자기 대에 맺은 인연들은 세종 대에 물려주지 않으려고 다 쳐냈음. 덕분에 왕권이 강화되서 세종 대 여러 치적들이 생긴거지.
이숙번 부터 시작해서.. 자기 처가 민씨네 3형제 싸그리 깡그리
역사의 아이러니함
근데 그렇게 독하게 쳐냈더니만 둘째 손자놈이 개짓거리에 특대 똥볼을 차서 도로 아미타불
어차피 세조가 깽판 안쳤어도 언젠가는 아미타불 될 체제긴 했음. 물론 세조가 일찍 조져버리긴 했지만.
윗사람 말대로 피를 봐가면서 외척들을 쑥대밭 만들어놔서 세종이 그렇게 업적을 남길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짐
황희: 난 왜
??: 윤허하지 않는다.
살려뒀다개 세도정치 루트로 가면 골때리기에...
김조순도 실제 직책을 받지 않고 뒤에서 움직인걸 보면 은퇴도 소용없음
'사실 위의 사건은 심온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기 전부터
이미 처벌이 내려진 사건이였으나 다시 논의한다며
고문 끝에 자백받은 거라'
현대법에 일사부재리 원칙이 이래서 생긴거구나
개인으로서는 엄청난 비극이지.
'태종'
사돈이 하필 태종 이방원이라...
심온이 쓰는 침대가 심온스 침대? 앜ㅋㅋㅋ
난 이런거 조아!
그럼 손 잡고 딴데 가!!
그래서 심씨 집안에서는 이씨랑 결혼 금지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음
이씨가 아니고 당시 나서서 국문했던 박씨랑 결혼하지 말라고 한거. 물론 야사긴 한데.
그거 이 씨가 아니고 박 씨랑 결혼하지 마라는건데,
심온이랑 견원지간이였던 박은이 심온 숙청하는데
앞장서서 생긴 말이지만 어디까지나 야사라서 정확하진 않음.
내가 잘못 알았군 정정 감사
정정 감사
실제로 조선에서는 이후에도 심씨 왕후들이 꽤 있었음. 그리고 야사긴 해도 진짜 집안에서 그런 이야기가 전해오긴 하더라.
...내가 심씬데 어릴때 집안 어른들이 박씨들은 독하다 뭐 이런 얘기하는걸 들은적은 있어. 그게 이런 이유때문이었나?;;;
아 빨리 사퇴해야지
명나라만 갔다오면 사퇴할거야!
조선시대 사망플래그
개인으로선 비극 역사적으론 호재
아이러니의 극치
크킹에 심취한다면 외척의 숙청은 합리적이며 필수적인 국정운영의 필수요소임을 알 수 있다.
외척은 상속셔틀일뿐 써걱써걱
자리가 중요한게 아니라 권력을 쥐어야지..
불쌍하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심하게 처낸게 오히려
왕실 주변 외척이 씨가 마르게 되어버렸고
수양이 반란을 일으킬때
단종 주변엔 보호해줄 가족한명이 없었음
문종이 일찍 부인을 잃어버린 것도 한몫 했지.
ㅇㅇ 단종이 클때까지 기댈만한
왕실어른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수양이 그렇게 반란을 저지르지도 못했을텐데
생각해보니 그러네
문종이 재혼을 안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죽은게 가장 큰 불행이었음
방원이가 있어서 세종이 있었던거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방원이가 쉽~새~퀴가 아닌건 아님....
조선시대에는 저걸 전통으로 만들어야 했어
그럼 누가 왕이랑 결혼하러 들겠어...
진담은 아니고 조선이 후기에 외가쪽이 ㅄ짓 한거 생각하면 ㅂㄷㅂㄷ
민비 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비 전부터 그랬음 영정조 때 외척 오지게 키워준 결과가 순헌철 3대 이어지는 미친 세도정치시기인걸
민제는 일찍 죽어서 불행을 피할수 있었고 김한로는 사위가 폐세자 되어서 말년을 편안하게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