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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2019년 상반기 영화 Best 20, 간단평 포함 (스포 있습니다)



아무런 자격이나 권위는 없지만
영화 감상을 무척 즐기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2019년 상반기 영화 Best 20"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국내외 영화를 아울러서 함께 순위를 정했고
상반기의 기준은 국내 개봉 시점으로
2018년 12월 20일부터
2019년 6월 19일 사이에 개봉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겠습니다.
이 기준에 의해 관람한 영화들을 세어보니
100편이 조금 넘는군요.
넷플릭스에서만 릴리스된 영화는 제외했고
예전에 만들어진 영화라도
국내에서 처음 개봉된 경우에는 포함시켰습니다.
순위 선정은 당연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과 판단에 의한 것이므로
그 선정에 못마땅하신 점이 있다 할 지라도
너그럽게 넘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순위는 역순으로 감독을 명시하고
간단평을 첨가하겠습니다.
(간단평은 글 전개의 편의상 경어를 생략하고
11위~20위는 짧게,
1위~10위는 다소 길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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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위) [더 와이프] (비욘 룬게)
아내이자 어머니의 위치에서 포기했던 이름과
아내이자 어머니의 위치에서 숨겨야 했던 재능.
간절히 바라던 꿈이 이루어졌을 때 시작되는 균열.
킹메이커로 머물면서 느낄 수 밖에 없었을
자부심과 수치심을 한 얼굴 속에 담아내고
얼굴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조절하는
글렌 클로즈의 무시무시한 내공이
다소 평범한 플롯에 긴장과 생기를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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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 [사바하] (장재현)
죽음 앞에 비로소 한기를 느끼는 나한의 체온,
자신의 손으로 독을 탄 밥그릇을
다시 발로 차 엎어뜨리는 금화의 회심(回心),
언니의 주검을 안고 흘리는 금화의 눈물,
성탄절이 기쁜 날이 아니라 말하는
박목사의 안타까운 탄식,
오로지 아기만을 위해서 부르는 엄마의 자장가,
통곡처럼 내리는 눈...
어쩌면 신이, 미륵이 강림(降臨)하는 곳은
그 시공간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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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위)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시리아 난민 출신의 소년, 자인 알 라피아는
스스로 영화 속 자인이 되어
레바논 베이루트의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투쟁하고 또 투쟁한다.
자신보다 더 약한 이들을 지키기 위한
그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목도하노라면
그를 위해 흘리는 눈물마저 사치처럼 느껴진다.
연민에서 그치는 연민은 진정한 연민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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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위) [아틱] (조 페나)
유튜버 출신의 조 페나 감독은
과감한 생략의 플롯을 통해
주인공의 생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마침내 생존에 성공한 순간의 카타르시스까지도
이 비범한 영화는 과감하게 소거한다.
그리고 그 생존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움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생존이기에
더욱 벅차고 더욱 고귀하다.
매즈 미켈슨....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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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어벤져스: 엔드게임] (루소 형제)
마블 히어로 무비를 설렘과 흥분으로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역사를 암기해야 하는 건
오히려 고통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의 인물들을 정성스레 조명하고
그들의 사연과 추억을 하나하나 보듬는
이 웅장하고 장엄한 이별 이야기엔
가슴 가득 뭉클한 감동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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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라스트 미션] (클린트 이스트우드)
백합의 꽃말은 순결,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
배우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저는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당신의 영화를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설혹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의 마지막 만남이라 할 지라도,
이 영화에서 마주한 당신의 모습이
눈물나게 야위고 주름 가득했다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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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어스] (조던 필)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이 호러스릴러에서
트럼프 시대 미국의 치부가 민낯을 드러낸다.
영화 속 가득한 메타포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과시적인 카메라워킹이 현기증을 유발하지만
러닝타임을 이끌어 나가는
호흡의 완급과 집중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가장 훌륭한 건 마이클 아벨스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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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위) [더 길티] (구스타브 몰러)
감독 스스로 설정한 제약에서 벗어나지 않음에도
시종 답답함은 느껴지지 않고
자승자박의 모순에 빠지지도 않는다.
자신의 판단이 전지전능하다 믿었던 오만,
악을 스스로 단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
그 오만이 야기했던 끔찍한 편견,
오만과 편견이 끝내 직면하게 된 무력감 앞에서
아스게르는 자신의 유죄를 인정한다.
영화의 힘은 우선적으로 각본에서 비롯되며
훌륭한 각본을 가능하게 하는 건
인간에 대한 심오한 탐구와 통찰임을 증명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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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위) [서스페리아] (루카 구아다니노)
다리오 아르젠토의 클래식 [서스페리아]를
이름과 골격을 제외한 채 다시 해석한다.
불안과 불편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마녀집단의 광기와 횡포 속에는
나치를 비롯한 유럽의 그늘진 현대사와
다음 세대에게 가해진 이전 세대의 죄악들이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대체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몇몇 기괴한 숏들과
과잉된 메시지를 감당하기 버겁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이미지와 색감이 안겨주는,
점점 스며드는 공포의 역설은 실로 감탄스럽다.
마지막 30분은 그야말로 폭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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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블랙클랜스맨] (스파이크 리)
백인우월주의를 상대로 한,
여전히 유효한 투쟁에 대하여.
페이크다큐로 현실과 영화를 연결시키며 시작해
실제 다큐멘타리 영상을 보여주며 끝난다.
잘못된 수단이 올바른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성공한 흑인으로서 흑백갈등의 경계에 선 론과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유대인인 필립을 통해
스파이크 리는 혐오와 증오의 시대를 향해
무수한 잽을 날린다.
그리곤 엔딩에서의 그 묵직한 훅 한 방.
이 영화의 아카데미 각색상 수상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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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논-픽션] (올리비에 아사야스)
국내 개봉시 제목은 [논-픽션]이었지만
영화의 원제 그대로 [두 개의 삶],
또는 [이중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유형출판물의 삶과 무형출판물의 삶,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일상생활로 영위하는 삶,
픽션같은 삶과 논픽션의 삶이 절묘하게 대비되니.
그리고 그 두 개의 삶 속에서
책도, 사랑도, 사람도 머뭇거리며 서성인다.
그 두 개의 삶이 양립가능한 것인지,
하나가 성할 때 다른 하나는 쇠할 수 밖에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정치와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한
인물들 간의 토론은 지적이며 유쾌하다.
적절한 유머에 진한 휴머니즘까지 바닥에 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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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그린 북] (피터 패럴리)
인종적 약자인 셜리와 계급적 약자인 토니의
갈등, 충돌, 이해, 포용,
그리고 우정과 연대로 이어지는,
뻔한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처음부터 예상된다.
그러나 그 뻔한 과정과 결말을
전혀 뻔하지 않은 작법과 화술로 그려 나감이
이 영화의 황홀하고도 압도적인 매력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죠."
(It takes courage to change people's mind.)
셜리의 진심어린 용기가 토니를 바꾼다.
토니의 진심어린 수용이 셜리를 바꾼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는 
삶의 위엄과 품위(dignity)를 만든다.
다만, 영화의 수준에 비추어 과한 상복에
언젠가부터 이 영화가 미워지는, 이상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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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시대를 얼룩지게 만들었던
15년 냉전의 세월을 관통했던 사랑의 이야기.
멈추라고 말하는 사랑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억압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사랑은 더 결속된다.
멈추라는 말이 잦아들 때, 억압이 점점 사라질 때
사랑은 오히려 주춤하며 당황한다.
그게 바로 사랑의 비극적 아이러니.
영원의 시간 속에서 영원을 갈망하던 사랑,
그 누구도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던 사랑,
너무도 사랑하지만 토해내고 싶었던 사랑은
그들을 옥죄던 정사각형의 프레임을 벗어나
영겁의 시간으로 향한다.
아무런 억압이 없는 그 곳으로,
바람소리가 부르는 그 곳으로,
풍경이 더 좋은 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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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요르고스 란티모스)
콤플렉스로 가득한 절대권력자를 가운데에 두고
욕망으로 가득한 두 여인이 벌이는 암투의 역사.
권력을 미끼로 사랑을 갈구하는 앤,
사랑을 미끼로 권력을 갈구하는 애비게일,
권력과 사랑의 우위를 자만한 사라.
눈을 호강시키는 미장센과 의상 속의 인물들은
광각렌즈의 왜곡된 화면 속에서
오히려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인다.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권력의 힘을 실감하고
진정한 사랑을 잃는 순간
앤은 무심한 권력자로 다시 태어난다.
애비게일을 무릎 꿇리고 머리채를 휘어 잡은 채.
엠마 스톤의 매력을 무색케 하는 레이첼 와이즈.
그런 레이첼 와이즈 위에 우뚝 선 올리비아 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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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강변호텔] (홍상수)
전작 [풀잎들]의 기본적인 정조를 이어받지만,
조금은 충격적인 몇 가지 변화와 함께
그의 영화는 또 다른 지점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느껴지는 주된 감정들은
덧없는 쓸쓸함과 애틋한 간절함.
[강변호텔]은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단락을 끝내는 마침표로 느껴진다.
자신의 죽음으로 스스로를 단죄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틋한 당부를 남겼으며
관객들에게 절절한 다짐까지 담아냈으니...
감히 예상컨대, 홍상수 감독은 이제
자신에게 가해진 비난의 화살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채,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죄책감을 조금은 내려놓은 채
자신의 예술, 다음 장(章)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하늘을 느끼며, 길바닥을 걸으며...
그리하여 [풀잎들] 리뷰의 마지막에 썼던 글을
그대로 인용할 수 밖에 없으니.
"그의 영화를 아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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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로제타] (다르덴 형제)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진 이면과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정직한 카메라로 묵묵히 조명해 온 다르덴 형제의
20년 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언제나 그랬듯
선악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경계한다.
인물들에게 함부로 개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인물이 직면한 삶의 현실을 낱낱이 보여줄 뿐.
그리고 그들의 영화는 벨기에 사회를 바꾸었다.
죽고 싶다는 말보다 더 절망적인 건 살고 싶다는 말...
밀가루 포대보다, 가스통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어깨와 등에 짊어진 채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발을 장화로 이겨내며
살고 싶다고 외치는, 그저 평범함을 원하는,
우리의 로제타들, 우리의 리케들...
이제 우리가 쓰러져 울고있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이다. 연대의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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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퍼스트 리폼드] (폴 슈레이더)
오염에 의해 잠식되는 지구와
질병에 의해 잠식되는 톨러의 몸은 완벽히 같다.
영화 [퍼스트 리폼드]가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 영화를 그 메시지로만 읽는 것은
너무 협소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자신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들이
그가 만든 세상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킴에도
침묵으로 방치하는 신(神)에 대한 원망.
자신을 유일하게 지켜주던 신앙에 대한 회의로
순교의 길을 선택하는 한 성직자의 이야기.
신앙 속에서 구원을 찾았지만 끝내 실패한
한 목사의 이야기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충격적 반전의 엔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역시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
"절망의 답은 용기"라는 톨러의 극중 대사에
해석의 단서를 찾고 싶다.
성경의 구절들, 일기를 통한 신과의 대화 속에서
희망과 구원을 찾았지만
끝내 절망만을 마주한 성직자.
스스로에 대한 단죄와
세상의 악에 대한 대속을 위해 순교를 택한 성직자.
그를 구원한 건, 세속의 사랑을 향한 용기였다고.
그런 그를 신은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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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아사코] (하마구치 류스케)
외모는 똑같지만 성격은 반대인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
과연 그럴까?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이
일본인들에게 안겨준 트라우마를
세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에 투영함으로써
재난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 지를 말하고자 하는,
깊고 깊은 속내를 감춘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자연을 하나하나 정복함으로써 문명을 일으켰고
자본주의의 시스템 안에서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자연이 안기는 재난에 여전히 무력한 인간들.
더욱이, 일본인들이 겪은 재난이
그들만의 고난과 상처가 아님을 감안하자면,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전개 속,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다루는 테마를 품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가 훨씬 더 큰,
그런 영화로 읽어내는 것이 옳다.
아사코와 료헤이는 새 집 베란다에 나란히 서서
폭풍으로 불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료헤이는 더럽다고, 아사코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료헤이는 언제라도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아사코라는 지진을 늘 불안해 하면서
다시 그녀를 사랑할 것이고,
아사코는 바쿠라는 존재가 남긴 여진 속에
다시 찾아올지 모를 또 다른 지진을 불안해 하며
료헤이 곁에 다시 머무를 것이다.
그 선택은 잘못일까? 잘못은 없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이고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숙명일 지도 모를 테니.
두 번의 반복에도 똑같은 선택을 할 그들 앞을,
더럽고도 아름다운 강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그 둘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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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살인마 잭의 집] (라스 폰 트리에)
이 영화는 8년 전의 설화(舌禍)에 대한
라스 폰 트리에의 궁극적 답변으로 읽힌다.
이게 뒤끝이라면 정말 무시무시한 뒤끝.
심지어 잭을 지옥으로 이끄는 버지역을
그는 브루노 강쯔에게 맡긴다.
그가 누구인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의 다미엘 천사이자
[다운폴]에서의 아돌프 히틀러...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잭은 버지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잭의 궤변에 가까운 논리와 그에 대한 버지의 반박.
대화의 주제는 기본적으로
'살인이 예술일 수 있는가,
즉, 예술에 도덕과 윤리가 개입해야 하는가'이지만,
종교,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각종 레퍼런스들을 거의 가지고 논다.
심지어 자신의 전작 영화들까지.
영화에서 경찰들은 한결같이 무능하고 무력하다.
현실의 악(惡)에 대한 공권력의 무력,
더 나아가 사회규범과 법률의 무력.
피살자의 피가 도로에 선명하게 남겨진 순간엔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그 자국을 깨끗이 없앤다.
이 빌어먹을 아이러니.
결국, 악에 대한 세상의 무력...
잭 스스로 자신이 지은 집에
지옥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단죄하는 것 외에
세상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창작자의 고통으로 완성되는 예술과
타자(他者)의 고통으로 완성되는 살인,
창조와 파괴, 자학과 가학, 자조(自嘲)와 냉소,
자아도취와 자기모멸, 유머와 우울, 직설과 은유,
클로즈업의 핸드헬드캠과 관조적 스테디캠,
중도퇴장과 기립박수, 환멸과 극찬...
이 엄청난 콘트라스트들로 가득찬 걸작.
그 누구에게 함부로 추천할 수 없기에
혼자만의 가슴 속에 영원히 봉인해야 할 걸작.
너 미친 거 아니야? 소리를 들을 지라도
최소한 나는 이 영화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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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기생충] (봉준호)
이미 각본부터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훌륭하다.
희비의 쌍곡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각각의 상황을 가장 적절한 대사로 포진시킨다.
그리고 훌륭한 각본의 든든한 기반 위에
영화의 미장센들이 완벽히 구축되어 있다.
기생(寄生)이라는 관점에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는 다를 게 없다.
계급상승의 욕망은 기택 가족이 더 크겠지만,
계급투쟁이나 계급전복의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같다.
문제는 얼마든지 함께 기생을 할 수 있었던 그들이
기생의 자격을 전유(專有)하려 했다는 점.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두 가족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문광 부부는 지극히 체제순응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유산계급을 상대로 한 무산계급의 투쟁이 아니라
무산계급끼리의 투쟁이 참극을 잉태함이
이 영화의 비극적 아이러니.
같은 계급끼리는 너무 익숙해져 맡을 수 없는,
그러나 가진 자들에게는
비 온 뒤 지하철 냄새로 단순화되는 냄새가 선을 넘는다.
'계획'이란 단어 역시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며
기우의 치밀함을 칭찬하던 기택 본인에게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기택에게 삶의 계획들이 없었을 리는 없다.
다만, 반복적으로 어그러지는 계획들을 보며
기택이 자조적으로 터득한 나름의 삶의 진실이다.
계획을 세울 희망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바로 그것이 봉준호 감독이 인식한
지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엔딩,
기우가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이제 자신과 가족들은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싶은 듯.
영화로써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은
감독의 오판이자 오만일 수 있다.
다만, 위대한 영화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한 각성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계급 간의 대립과 충돌도 모자라
같은 계급끼리 서로 반목하며 이전투구를 하는,
그럼으로써 어느새 같은 냄새를 풍기며
모멸의 손가락질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마는,
또는 그 반대로...
그 냄새에 기어이 보란 듯이 코를 막음으로써
모멸의 비웃음을 노출시키고마는,
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기생의 시대에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이라는 희망은
요원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봉준호 감독의 영화열차가
황금종려상을 싣고 당도한 곳은 '절망역'...
아, 이토록 완벽한 절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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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영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믿겨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네요.
2019년 하반기에도 훌륭한 영화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며 긴 글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더위에 무탈하고 평안하시길...
댓글
  • flythew 2019/06/20 01:20

    오잉? 요즘 글을 자주 쓰셨네요.
    선추후정독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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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비만땅 2019/06/20 01:21

    그린북 미워하신다는부분이 잼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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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01:23

    flythew// 안녕하셨죠? 넘 오랜만입니다. 한달 가까이 게으름 부리다가 기생충 보고 정신차리고 그 후엔 그래도 일주일에 두 편씩은 썼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지금까지 글 중 가장 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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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스틴에넹 2019/06/20 01:23

    일단 추천,스크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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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01:25

    갈비만땅// 아카데미 시상식때부터... 작품상은 로마에게서 뺏어가고 각본상은 퍼스트리폼드에게서 뺏어가고... ㅠㅠ

    (5mqMF3)

  • 혁명전야 2019/06/20 01:26

    쥐스틴에넹// 추천도 스크랩도 둘 다 고맙습니다.

    (5mqMF3)

  • 박수무당 2019/06/20 01:31

    어떤 일 하시는 분이세요? 웬만한 평론가들 뺨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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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01:33

    박수무당// 그냥 근근이 먹고삽니다. 영화나 평론이나 글쓰기랑은 암 관계없구요. 불펜에서 거의 3년간 영화글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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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타 2019/06/20 15:06

    더 페이버릿 저에겐 최고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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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버피닉스 2019/06/20 15:14

    굿! 좋은 영화 소개글 감사합니다.
    퍼스트 리폼드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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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niri 2019/06/20 15:44

    헐.. 혁명전야님 영화를 정말 많이 보시는 군요. 대단하십니다.
    '살인마 잭의 집'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시는 군요.
    사실 전 라스폰 트리에 필모 중 최악의 영화라 생각했거든요.
    세트촬영이나 인공조명, CG등을 의도적으로 사용해서 감독 스스로를 풍자하는 거 같은데 그 상징의 의미가 너무 드러나는 거 같아서 아쉬웠어요. 다만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니 훗날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요.
    추천해 주신 영화중 나머지 영화는 찾아서 함 봐야겠네요.
    서스페리아는 다리오 아르젠토 버전만 봤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네요.

    (5mqMF3)

  • 맛이갔어요 2019/06/20 16:16

    같은 메세지를 설국열차는 직접적으로 던졌고,
    기생충은 관객이 스스로 고민하도록 매우 세련되게 유도한 것 같다...
    라고 느꼈네요.

    (5mqMF3)

  • Mortensen 2019/06/20 16:51

    이스트우드형님(아빠나 할배라고 해야하나?)은 건강하시답니다.
    이번 영화에 특히 좀 나이들어 보였고, 허리도 구부정해 보였는데... 다 설정이고 연기였다네요.
    아직도 꼿꼿한 허리와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데, 일부러 구부정하게 연기하셨다고... 그 이야기 듣고 저도 안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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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증은내꺼 2019/06/20 16:52

    항상 감사합니다.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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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16:57

    몰타// 매우 훌륭했죠. 다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전작들 땜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주 살짝 아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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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16:58

    리버피닉스// 퍼스트 리폼드 넘넘 훌륭하답니다. 에단 호크 연기 경이롭구요. 의미있는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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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16:59

    koniri// 본문 말미에 썼듯, 호불호가 이리 극명하게 갈릴 영화는 없을 것 같네요. 트리에는 이제 그걸 즐기는 경지에 이른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안티크라이스트 다음으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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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17:01

    koniri// 설국열차는 계급투쟁에 더하여 인류의 진화, 문명의 발전단계까지 영화 속에 녹이느라 상징과 메시지가 넘 과한 부분이 있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지점으로 돌아와서 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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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17:04

    Mortensen// 동림옹이 1930년생이시죠. 허리 구부정한 건 둘째 치고 얼굴이 너무 야위어서 가슴아팠습니다. 물론,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분임을 알기에 건강하게 100세 넘기시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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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17:04

    인증은내꺼// 무탈하시죠? 고맙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이겨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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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6/20 18:37

    짝짝짝!!!
    상반기 영화 순위 이번해엔 웬지 안올려주시는거 아닌가 나름 걱정하면서도 애타게 기달렸습니다!!
    비록 순위권에 있는 영화들 중 4편 밖에(이것도 님게서 적극 추천해주신 영화들!!) 못봤지만
    이 네편을 다시 읽어도 아주 저 당시 영화를 보고 읽었을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네요
    이런게 넘넘 좋습니다
    대망의 1위는 제발 기생충이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역시 1위의 기생충!!!
    기분이 정말 넘 좋네요!!^^
    낼 기생충은 3회차 관람 출동할려고요~~~^^
    무려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 중 님께서 추천해주신 7편의 영화들을 따운 받아놓은 상태네요 ㅎㅎ
    저또한 넘나 게으르기에...아직도 안보고 보관만 하고 있네요 ㅋㅋㅋㅋ
    어서 차분하게 봐야겠습니다!!
    블랙클랜스맨은 바로 넷플릭스에서 찜목록 해놓았어요..
    비록 엊그제인가 보다 피곤해서 잠들었지만 요것부터 시작해야 될거 같습니다
    다시한번 상반기 최고의 영화들의 정성스런 리뷰들 넘나 감사드리고
    곧 돌아올 주말 행복한 주말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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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21:25

    안녕요정// 그래도 계속 해왔던 이벤트이니 꼭 해야죠.^^ 요정님이 네 편 밖에 안 보시다닛. 허리 때문입니다. ㅠㅠ (남자는 모다? 허리!!!) 보신 영화 네 편이 사바하, 라스트미션, 그린북, 기생충일 듯^^ 무섭죠? 쪽집게죠? ㅋㅋㅋ 다른 영화들 모두 강추인 작품이니 서서히 하나하나 보시도록 하세여. 시간 참 빨라요. 벌써 주말이니... 편안하게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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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21:26

    방탕승// 맞습니다. 별기대 없이 보았는데 되려 조난영화 중 최고더군요. 가버나움 후유증이 좀 심한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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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6/20 22:56

    혁명전야//넵..진짜 넘넘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영화관에서 본 저 네편!!!^^ 빵 터졌습니다
    가버나움, 아틱, 더길티, 아사코, 로제타, 살인마 잭의 집, 어스, 더 페이버릿은 넘 아쉽지만 따운으로 받아놓은 상태고요!!!
    근데 그중에서도 다운 리스트에 없는 퍼스트 리폼드도 엄청 땡기고요
    넵...서서히 하나씩 정말이지....더 무더워지기 전에 차근차근 봐야 될거 같아요!!
    까딱하면 이것도 또 미뤄서 가을에 보는 사태가 올거 같기도하고요..ㅎㅎ
    본문의 마지막 문단에 있는...대한민국의 영화가 칸 종려상을 받았다라는 믿기지 않는 기적!!
    이걸로 마무리 해주신거 넘넘 고맙습니다!!!
    비록 천만은 좀 어려운 상황인거 같은데 갠적으로 천만넘고 관객이 많이 들어도 영화가 맘에 안들면 다 소용없는거라 생각하기에...그게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기생충은 진짜 살추처럼 수십수백번을 볼거 같아요..아주 행복하게요!!
    넵...혁명전야님도 하시는 일 모두가 다 잘풀리고~~항상 좋은 일들만 일어나시고 행복하셔요!!!!
    굿밤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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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자 2019/06/20 23:12

    오 올해는 영화에 더 꽂혀서 상반기 끌리는 영화들 꽤 본편이었는데 이중 13개나 봤네요ㅎㅎ
    엔드게임(팬심) 그린북 더페이버릿 특히 취향이었고 블랙클랜스맨 기생충 아사코 논픽션 가버나움도 재밌게 봤습니다
    아사코 같은경우는 뒤늦게 근처 극장에 없어서 리뷰글 올라온거보고 멀리까지 보고온결과 만족했구요!
    본 작품들 리뷰글 기대했다가 안보셨나하고 시무룩했었는데 100편을 넘게보셨으니 다 못쓰실만도 했군요ㄷㄷ
    개인적으로 빠진 영화중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알리타, 스탈린이 죽었다, 호텔 뭄바이 좋았고 알라딘, RBG, 러브리스도 괜찮았습니다
    취향이 다른건 퍼스트 리폼드, 어스랑 콜드워ㅠ 그래도 본 영화들이 많아 기대했던 이번글은 더더욱 반가운마음이 크네요ㅎㅎ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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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1덕주 2019/06/20 23:28

    14개는 본 거네요. 개중에는 제겐 워낙 별로였던 영화도 있고, 반대로 정말정말 공감 가는 영화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영화들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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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23:28

    안녕요정// 네 요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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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23:33

    라이자// 위 20개 영화 외에 라이자님께서 언급하신 영화들도 다 보았답니다. 때로는 귀차니즘에, 때로는 바빠서 다 리뷰 쓰지 못한게 아쉽고 또 죄송하답니다. 더 페이버릿은 초고까지 다 쓰고 스틸컷 다 준비해놓고도 못 썼네요. 어스, 콜드워, 퍼스트리폼드 언급하신 것 보니 아주 미세한 취향 차이가 보이네요^^;;; 제가 쫌 어둡죠? ㅎㅎㅎ 좋은 댓글 넘넘 감사드립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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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6/20 23:34

    No.1덕주// 14개 보셨으면 많이 챙겨보신 편입니다. 안 보신 영화들도 틈틈이 보시도록 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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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자 2019/06/21 00:06

    혁명전야// 죄송하실필요는 없죠ㅠ 올려주시면 감사하게보고있습니다! (더 페이버릿 글은 보고싶네요 으)
    사실 저도 제 취향을 잘모르겠어요ㅋㅋ 가버나움은 좋게본편이니.. 예술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닌거같은데 게중 가끔 취향맞는 영화들 만날때가 있고, 그 재미에 아트하우스 자주가곤 한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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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슨본 2019/06/21 01:01

    매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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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부심벨 2019/06/21 20:47

    13편 챙겨봤는데 다들 좋았네요. 살인마잭의집과 아사코를 안봤는데 나중에 챙겨봐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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