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에서 내시부 수장이자 판내시부사으로 등장하는 조치겸(전광렬 분). 그는 조선 세조 때 내시이자 공신이 된 전균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정치 내시로 묘사된다.
SBS 드라마 에서 내관 조치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볼 땐, 내시들은 임금 옆에서 종처럼 따라다니며, 쉰 목소리로 ‘네네’거릴 것만 같은데, 치겸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임금을 독살할 정도로 자기 정치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과연, 조선의 내시들은 드라마처럼 막강한 힘을 가졌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권력의 문고리 역할을 한 내시들이 아무런 힘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내시들 본연의 임무는 왕실 가족의 총무 역할이다. 이런 임무는 그들의 직책에서도 확인된다. 내시부의 수장인 상선(종이품)은 본래 임금의 수라상을 감독하는 일을 했고, 그 다음 상온(정삼품 당상관)은 임금의 술 시중을 담당한 내시다. 상다(종삼품)는 차를 내놓는 일을, 상약(종삼품)은 내의원과 연계하여 의약을 담당했고, 종 4품의 상전은 대전 내관으로서 임금의 명을 승정원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왕과 왕비의 바로 옆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한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기도 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연산군의 내시였던 김자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연산군은 왕권을 강화하면서 내시부에 힘을 실어주고 사대부들을 견제한다. 김자원은 연산의 뜻대로 김일손 일파를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왕을 보호하던 내시들
원래, 내시들은 종처럼 왕실의 잡일을 도맡던 것이 주 임무였지만 보조적인 임무로는 왕을 보호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내시들의 과제 중에는 왕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도록 고문을 이겨내는 훈련도 받아야 했다. 또, 왕을 업고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체력도 쌓아놓아야 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 궁궐의 비밀통로를 통해 민가로 탈출했는데, 이런 탈출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승전 내시가 광해를 등에 업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유사시에 안전가옥으로 국왕을 대피시키는 메뉴얼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조선왕조는 법적으로 내시들의 정치참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환관과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은 환관(내시)들의 정치참여(사찰과 형옥을 담당)를 암묵적으로 인정했지만, 조선에서는 이를 금했다. 어디까지나 임금의 의중에 따라, 내시들의 존재감이 커지기도 했고 작아지기도 했던 것이다. 조선 14대 왕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을 시종한 내시와 마부들에게 호성공신의 칭호와 함께 봉군호를 부여했는데, 이는 전래가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미천하기 짝이 없는 이들에게 공신 자격을 주는 것에 반대했지만, 어명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용력이 출중했던 선조의 호위 내시, 임우
임진왜란 당시 전쟁터에 내려와 왜적과 싸웠던 내시 임우는 용력이 대단했던 장사였다. 그의 묘지명엔 왜군 수천명의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검술도 능했다. 원래 그는 울진 임씨의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사고로 인해 내시가 되어 궁으로 들어온 것 같다. 무예를 숭상했던 임우는 날이 갈수록, 문약해져 가던 세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왜란이 터지고 방어선이 무너지자 몇 안 되는 신하들과 선조 임금을 의주로 피난시켰다.자신의 가족들도 임금 곁에 붙여 놓고선 말이다.
우왕좌왕하던 피난길에서 임금의 거처인 행재소를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임우의 공로였다. 이처럼, 왕을 정성껏 모신 임우는 전란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던 1597년에 손수 자원하여 전쟁터로 달려갔다. 유성룡의 진영에 있다가 다시 남쪽으로 말고삐를 내달려 경상좌도 방어사로 있던 곽재우 진영으로 합류한다. 임우는 여기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그의 묘지명에서도 확인된다.
“나라 사람들 모두가 왜인(倭人 : 일본인)들이 신의(信義)를 저버리고 남의 나라를 침략(侵略)한 일을 마음 아파하니, 공(公:임우)은 스스로 전장(戰場)에 나아가 검(劍)을 잡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적의 목을 벤 것이 몇천 명인지 알 수 없다. 번방(藩邦 : 제후국 조선을 지칭)에 황제(皇帝)의 위엄(威嚴)이 떨쳤고, 다시 종묘사직(宗廟社稷)과 이름난 관서(官署)를 회복하게 되었다...”(호성공신 울릉군 종일품 숭록대부 임우 묘지명 중)
임우의 초상화, 그는 수염없는 내시였지만 칼을 잡고 남쪽으로 내려가 왜군 수천명의 목을 벤 천하장사였다.
부인과 양자를 들여 집안을 이어왔지만, 사라진 내시 가문
조선은 유교 윤리가 지배한 사회였다. 남녀가 혼인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기르는 것이 나라의 법도였다. 내시도 그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내시들은 생산능력이 없었으므로, 가까운 인척이나 고자 아이들을 입양해 자식으로 길렀다. 유력 내시집안 경우, 양자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여 가문을 잇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재산을 물려주어 자신의 제사를 주관하도록 했다.
내시 김새신의 초상화, 그는 임우와 똑같이 수염이 없다. 김새신은 선조 임금을 호종하여 호성공신이 되었다. 그의 집안은 조선후기 유력 내시 가문 가운데 하나였다.
몇몇 내시 집안은 막대한 재산을 불리고 지역유지로 군림하며 대대로 가문을 이어 왔다. 내시 가문은 주로 관동파와 자하동파로 양분되는데, 관동파는 지금의 서울 창동에 세거했고, 자하동파는 경기도 양주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어느 내시 가문은 구한말까지도 수만 평의 토지에 만석꾼을 행세하며 떵떵거리며 살았다.
하지만,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자 이들도 더 이상 명맥을 잇지 못했다.(공식적으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내시부가 폐지되었지만, 이후에도 궁내부에서는 내시 업무가 지속되었다.) 왕이 사라지자, 내시제도는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왜정시대엔 주위의 시선도 긍정적이지 못했다. 환관 집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많았다. 남성을 잃어버린 선조에 대한 부끄러움과 성씨가 달라 혈연관계가 끈끈하지 못했던 후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들의 존재는 우리 역사에서 점점 사라졌던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코믹 캐릭터 지만 사실 최측근 보디가드들이라서. 그리고 내시들도 다 제사 지내줄 자식들 입적 했죠.
없어도 저 정돈데,
있었으면...ㅋ
오늘은 특히 더 좋네요.
👏👏👏👏
저정도 무력인데 개한테 고추 뜯기다니 샹크스인가
[리플수정]놔드리겠쑤// 넵 맞습니다! 내시들의 출신성분은 평민이지만, 교양과 학식을 가지고 있었고 체력도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유교적 관습에 의해 제사를 지낼 사람이 필요했고 양자를 입적해 대대로 가문을 이어왔다고 합니다. 아직도 경기도 양주에 가면 내시집안이 존재한다고 하네용! 감사합니다!
데뽀롱// ㅎㅎ 정말 그렇죠? 항상 고맙습니다!
flythew// 감사합니다!
키자루// 고맙습니다!
오오신기하네요 ㅋㅋ 오랜만에 역사툰으로 뵈어서 반갑습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잘봤습니다 추천!
역시 재밌네요.몰입도가 상당합니다.ㅎ
언제나처럼 추천과 감사의 댓글을 남깁니다.
[리플수정]반갑습니다.
알고 보니 힘이 좋은 내시들도 의외로 많았나 봐요.
https://namu.wiki/w/%ED%99%98%EA%B4%80
저 시대에 평민의 신분을 상승시켜 준 선조는 대단한 결단을 한 거네요.
선조는 통찰력 정치력 현실감각 인재운용 등등이 만렙이었지만, 책임감이 ㅈ도 없는 군주였다 - 그리폰(은하작가)
내시면 남성호르몬이 적게 나왔을 것 같은데 힘이 장사인게 신기하네요
선조는.참....
천하장사 내시라니, 처음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임우는 말년에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궁금하네요.
개조심 해야 겠네요. ㄷㄷㄷㄷ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중국에 동방불패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임우가 있군요.
이런글은 항상 추천 해야죠 좋은 글 그림 감사 합니다
선추천 후감상
자르고도 저정도면..안잘렸으면 항우급..ㅎㄷㄷ
선조가 근데 신하복이 참 나라가 어려워 더 빛을 내는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냈던건지도 머르지만요
추천
선조 시절에 훌륭한 장군,신하,선비들이 많이 나온게 선조가 인재보는 눈이 있어서이기도 합니다.다만 의심이 많고 열등감?같은게 심해서 신하들은 견제하고 그래서 문제죠.아마 전쟁 같은 국난시기가 아니라 평상시에 집권했으면 성군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봅니다.
DB이상범// 감사합니다!
EulersN// 고맙습니다...
책더미// 정말 감사합니다!
cuv13// 헤헤..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베레타// 베레타님! 항상 감사합니다.
[리플수정]놀러왔어용// 넵. 환관제도를 운용했던 중국 역사에서도 내시이면서 장사였던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선조는 정치9단이라 자기사람들 확실히 잘 챙겼던 거 같아요. 신분에 관계없이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잎새바람//넵, 맞습니다. 제가 선조를 카툰에서는 희화화하지만 사실은 두뇌도 명석하고 정치력도 탁월하고 예술적 기질도 컸죠...
[리플수정]abcmart// 저도 이게 신기합니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될 수 있는 건지...가끔가다가 내시 가운데서 '되사리'라고 남성성을 회복하는 고자들도 있었다고는 합니다.
하늘천둥// 감사합니다.
그린블루//저도 임우를 통해서 내시에 관해 많이 알았던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리플수정]로또콩등// 임우는 선조-광해-인조(능양)까지 3명의 임금을 섬겼고요. 이괄의 난때도 인조를 공주까지 안전하게 모신 공로로 종일품 숭록대부에 말 한필을 하사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후 몇년 더 살다가 70살에 죽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sigulda// 감사합니다!
A.Ethier// 고맙습니다...
박명은// 넵 맞습니다!
사라스// 감사합니다!!
사도숙희// 사도숙희님! 항상 고맙습니다.
꼬마니체// 네 맞습니다.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르는 거니깐요! 감사합니다.
Vajra// 네 저두 같은 생각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Vajra 님...
천상병// 감사합니다!
[리플수정]송우기// 선조의 개인능력은 무척 뛰어났던 거 같아요.... 글씨도 잘쓰고 통찰력도 있고요! 서자출신 왕이 혈통좋은 사대부들을 이리저리 잘 굴리는 걸 볼땐 정치력도 만렙이었던거 같습니다!
와 장수찬님 감사합니다
늘 올리시는거 알았는데 제가 무식나부랭이라 공부하는거 같아서 안보다가 오늘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너무 재밌어요
날더운데 좋은 하루 되세요 또 올려주세요
최고의 글입니다.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선조가 진짜 인복은 타고난듯 ㅠㅠ.. 아.. 자식복은 ㅠㅠ..
곰슬기// 아...정말 힘이 나네요!!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네 곰슬기님두 좋은 하루 되세용~
wayno// 정말 감사합니다.ㅜ.ㅜ
푸른사자왕//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선조 자식복은..ㅠㅠ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조선의 내시에게도 이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오늘도 하나 배워갑니다.
잘 봤습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잼있어요 ㅋㅋㅋ
저때는 개가 혀로 항문을 핥아먹는 식으로 어린아이 똥을 닦아주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가끔씩 개가 불알까지 뜯어먹어서 고자가 되곤 했다고 하죠
진짜로 그랬는지 그런 일이 생겼답시고 핑계를 댄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왜군 수천명을 목을 베었다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네요!
척준경이 환생해도 절대 그렇게 불가능하고 화기가 발달한
임진왜란 전투에서 무예가 출중한 개인이 수백명의 목을
베는게 거의 불가능하죠.
선조는 자기를 의주까지 호송한 내시들에게 매우 후하게
보상했는데 그런 것도 감안해야 할 겁니다.
보면서 예전 TVN예능인 렛츠고 시간탐험대가 생각났습니다. 거기서 내시의 삶이 나왔는데 만화처럼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랐죠. 참 잘 봤습니다.
추천
긴글 안읽는 편인데..
보다보니 끝까지 다 봤습니다
임우가 왜란 후, 가장 큰상을 받고 이순신은 이아무개로 표현하는 등.전쟁 후 논공행상에서 가장 잘못된 케이스로 기억합니다. 한편으로는 임우도 공이 있었단 사실이 놀랍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