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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바람의나라 역관광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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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내가 쬐마난 초등학생 때였으니, 꽤 옛날 일이다. 바람의나라 무료화도 되기 전이니 약 2000년도 초반이겠다. 

그 때 내 아이디가 '렙삼십' 이었다.

아마 요금제 결제를 하지 않으면 레벨 30까지 키울 수 있었으니 아이디가 '렙삼십'이었나 보다.

(여담이지만 그 때 부모님한테 바람의나라 정액제(요금제) 결제 해달라고 '정액 해주세요! 정액! 정액!' 하면서 졸랐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미쳐버릴 것 같다. 부모님은 다 잊어버리셨겠지.............)

아무튼 그 캐릭터한테 월정액까지 넣어가면서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레벨99, 즉 '지존' 찍는 게, 내 지상과제였다.

지존에 미쳐 있었다. 매일 사냥 다니고, 굽신거리는 모션 하면서 구걸도 많이 했고...

그렇게 사냥을 마치고 부여성에서 파티원 구하고 있는데, 그 때 사기꾼을 만났다.

 

그 사기꾼은 레벨 99만 착용 가능한 아이템을 두르고 있었다. 정화의 방패(하얀 방패)나 산신의 정령인가 하는 파란 도복... 투구도 왕관처럼 생긴 금 투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녀석은 부여성에서 '부주 쩔 해드립니다' 하고 외쳐대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계정 대리를 해준다는 건데, '본주'가 없을 때 대신 접속해서 사냥을 하거나 여러 활동을 하면서 계정을 키워준다는 거였다.

어린 나조차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내가 처음에 '부주가 뭔가요?' 하고 물어봤을 때 친절하게 잘 알려줬고, 갖고 있는 아이템들도 동경의 대상이었던지라... 내게 콩깍지가 씌였던 게 분명하다. 게다가 바보같이 '이거 사기 아니죠?' 하고 물어봤다.

그럼 사기꾼이 '네 저는 사기꾼입니다^^' 할까보냐. 당연히 '물론 사기 아닙니다' 하고 입털지.

 

결국 난 그 녀석에게 내 캐릭터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내가 없을 때 부주 쩔 해달라면서.

그렇게 게임을 끝내고, 다음 날 학교를 다녀와서 바람의나라 로그인을 하는데...

접속이 안 되는 것이다. 자꾸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떴다.

그 때서야 나는 '당했다' 싶었다. 내 손으로 그놈한테 내 계정을 넘겨준 꼴이었다.

눈물까진 안 나오는데 가슴이 먹먹한 게 답답하더라.

물론 캐릭터를 다시 찾고 싶었다. 그래서 넥슨 홈페이지를 뒤졌다.

캐릭터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두 시간 정도 넥슨 홈페이지를 뒤졌었다. 그 땐 아마 범용으로 쓸 수 있는 포털 사이트 이메일이 아니라, '넥슨클럽' 이라는 넥슨 용 이메일을 계정과 연동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메일을 입력하면 계정의 비밀번호를 찾을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캐릭터의 비밀번호를 찾았는데, 역시 비밀번호는 내가 듣도보도 못한 비밀번호였다.

아마 지금 대부분의 게임은 캐릭터의 비밀번호를 찾으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변경시키도록 할 텐데, 2000년도 초반이던 그 땐 아직 서비스가 미흡해서였는지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알려줬다.

그 비밀번호를 적어두고 캐릭터에게 접속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속옷 차림인 것이다. 아이템은 버릴 수 없는 건 다 빼고 증발돼 있고... 그 녀석이 내 계정을 알맹이만 먹고 버린 것이다.

그 때서야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라. 모든 것을 잃은 기분...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니지만, 초딩 때 내가 애지중지 키웠던 계정이 털린 그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속옷만 입고 있는 캐릭터가 어디 맵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이란.

난 비밀번호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바람의나라를 접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으면 그건 추억이 아니었겠지.

넥슨의 미흡한 서비스는 내게 열쇠가 되어줬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에겐 안 좋은 버릇이 있단 말이다. 아이디가 여러 개여도, 비밀번호는 동일한 걸로 돌려쓰는 버릇이...

즉, '내 아이디의 바뀐 비밀번호가, '그 녀석의 본 계정에 쓰인 비밀번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어린 꼬맹이가!

그리곸ㅋㅋㅋㅋㅋㅋ 내 예상이 맞았닼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그 비번으로 접속해보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 접속이 되넼ㅋㅋㅋㅋㅋㅋㅋ 개꿀ㅋㅋㅋㅋㅋㅋㅋㅋ

난 부자얔ㅋㅋㅋㅋㅋ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녀석의 계정엔 요금제가 없더라. 즉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혹은 소액으로 요금 넣어두고 플레이 하는 녀석이었다.

접속하자마자 계정 시간이 다 됐다면서 메세지가 떴으니까 말야.

그 때 밤은 깊어 있었고, 어린 나는 그 시간에 PC방을 간다고는 말 못해서 그냥 그대로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PC방에 가서 그 녀석의 아이템들을 모조리 가져와 부자가 된다는 생각에, 또 무엇보다 나를 속여먹은 녀석에게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준다는 생각에 기뻐서 잠이 안 왔다.

지존도 못 찍은 초딩이 갖고 있는 아이템 몇 푼과, 지존은 물론이고 대표적인 고가 아이템까지 다 갖고 있었던 그 녀석의 격차는 어마어마했으니까.

그 때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안 온다'는 걸 처음 경험해봤다. 새벽 2시가 넘도록 못 잤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PC방에 가서 붙어 있는 두 자리를 결제하고, 컴퓨터 하나에는 내 아이디, 다른 하나에는 그 녀석의 아이디로 접속했다.

그 동안에 '만약 그 녀석이 도중에 접속이라도 해서, 뭔가 낌새를 느끼면 어떻게 하지?' 싶어 너무 촉박했다.

와, 접속해보니까, 정화의 방패, 산신의 정령, 타라의 옷(반은 어깨를 드러낸 남캐 옷. 성능과 패션을 동시에 쥔 좋은 아이템이었다.), 기타 등등 고가의 아이템들, 심지어 부채(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하얀 부채가 아니라, 초록색의 반짝이는 고급 부채였다.)까지 있었다. 내가 만져보지도 못한 아이템들, 그리고 내 캐릭터가 갖고 있었을 게 분명한 일부 아이템들까지...

난 그 아이템들을 전부 내 캐릭터로 옮겨놓고 접속을 종료했다. 그리고 귀신같이 빠르게 PC방을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난 그 자본을 이용해서 월아검(이름이 정확히 기억 안 난다. 휘두르면 가끔 높은 데미지의 특수 공격이 떠서 몹이 죽어나갔다. 대신 수리가 불가능했고. 내구도가 곧 가격이었던 아이템.) 같은 아이템도 구입했고, 결국 그렇게 원하던 '지존'도 찍어보고, 초록색의 갑옷(해골 갑옷 비슷한 아이템)도 입어보면서 아주 재밌게 바람의나라를 즐겼다.

그런 역관광, 다시는 없을 거야...

지금은 다 끝난 일이지만...

댓글
  • 윤한량 2017/02/11 18:27

    복붙입니다!
    너무 관심이 없어서...

  • ✨온프라인✨ 2017/02/11 18:23

    기승전 역전승 축하드립니다

  • Yog☆Sothoth 2017/02/11 18:23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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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프라인✨ 2017/02/11 18:23

    기승전 역전승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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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GodOf잉여 2017/02/11 18:23

    캬 인실뿅뿅 개꿀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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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다크한군인 2017/02/11 18:24

    아까 똑같은글을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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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한량 2017/02/11 18:27

    복붙입니다!
    너무 관심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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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다크한군인 2017/02/11 18:28

    아하 미안요 추천하고 갈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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