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사진 왼쪽, 아래 사진 중앙의 인물이 쉬친셴.
1989년, 중국의 천안문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던 날.
5월 17일, 당시 38군장이었던 쉬친셴 장군은 베이징군구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베이징군구 부사령관 리라이주는 시위대를 강경진압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전달하고
즉시 의사를 표시하라고 요구.
다른 장군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을때 쉬친셴 장군은 혼자 일어서서
"그런 구두 명령은 집행할 수 없다. 서면으로 명령하라." 라고 요구.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명령을 서면으로 하면 증거가 남아서 구두로 명령.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가 하는 논란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것도 이런 맥락.)
"오늘은 서면 명령서가 없다. 다음에 주겠다. 전쟁시에는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다."
라고 대답을 듣자 이에 쉬친셴 장군은
"지금은 분명히 전쟁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구두 명령은 집행할 수 없고, 진압 작전에도 참가하지 않겠다."
라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림.
쉬친셴 장군은 당시 지인들에게
"목이 잘릴지언정 역사의 죄인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이후 쉬친셴 장군은 항명죄로 5년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공산당 당적도 박탈.
(서방언론에서는 사형당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
이후 허베이성 스좌좡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음.
22년뒤 홍콩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쉬친셴 장군은
“후회할 일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 후회도 없다”
"비록 역사의 공신은 못됐지만, 역사의 죄인은 되지 않았다"
라고 당시의 일을 회상.
금수가 아닌 사람으로 남은 분이군요 ㄷㄷ
이 사진 천안문사태 아님.
우리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만약 저때 구두 명령을 이행헀으면, 천안문의 모든 책임을 장군 개인의 일탈로 떠넘겨서 죽였겠죠.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똑같은 상황이었던거죠.
명령을 구두로 하지 말고 운동화로 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진짜 518을 숨기려고 하는 세력이나 개인은
중국 공산당이나 다름없네요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는거야
멋있네요.
비록 역사의 공신은 못됐지만, 역사의 죄인은 되지 않았다.
전자는 타의로, 후자는 자의로.
천안문 사태가 천안문 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될 날은 언제 오게될까요
크흐~~~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명언이네
"공신은 되지 않았지만 죄인은 되지 않았다".. 뼈에 박히는말이다...
참된 중국인이구나
자기 도망갈때 다리 폭파하라는 구두명령을 내린 이승만은 이후 서울수복후에 다리폭파담당자를 찾아 처형해버림.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의 민주화쟁취는 정말 대단한 것이죠
중국은 어떤 면에선 그래도 대단한 게,
2차 천안문 사태 이후에 미국을 비롯해서 서방국가들이 민주화탄압 한다고 경제제재를 걸었는데도 오히려 경제활력을 준거마냥 역대급 성장을 기록했음.
(사실 한국도 그랬음. 박정희 유신독재가 시작되자 미국은 한국한테 경제제재 걸어서 어디가서 차관 빌리기도 힘들었는데 경제성장은 역대급)
덩샤오핑 말대로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게 증명된마냥.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다시 한번 폭발하고..
중국의 이런 공산당 일당독재 시스템이 지속가능한지는 세계의 큰 관심사.
근데 견제가 없는 정치체재는 늘 부패하고 멸망하는 결말이 인류 역사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