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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아틱]을 보고.. 그에게 절실했던 것은 생존, 그리고 인간다움 (스포 포함)


'조 페나' 감독의 [아틱(Arctic)]을 보았습니다.
본 시점이 열흘을 넘었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매즈 미켈슨'의 배우 포스팅에서의
짧은 언급으로 대신하려 했는데,
영화의 여운이 잦아지지 않고 더 짙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기에
이렇게 별개의 리뷰를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1987년생 아이슬란드 국적,
유튜버 출신 감독의 데뷔작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이 훌륭한 조난영화는
장르의 전형적인 도식을 따르면서도
절묘한 차이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입히는 데 성공합니다.
무엇보다 영화 [아틱]은
북극이란 극한의 환경에 놓여진 '오버가드'가
어떤 이유로 조난을 당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모든 묘사와 설명을 생략하죠.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 넘칠 수 있는 부분을
감독 스스로 포기한 셈입니다.
오버가드란 인물의 개인사도 언급되지 않구요.
플래시백은 한 번도 이용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의 신분증을 통해서
그가 항공사 승무원이란 사실만 제공됩니다.
눈 위에 표시해 둔 구조신호를 확인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전을 치며,
북극의 지형을 조사하고,
얼음을 깨 송어를 잡아 일부를 저장하면서
죽은 동료의 무덤에 가서 인사를 하는,
그의 일상 속으로 영화는 곧바로 진입합니다.
조 페나 감독은 과감한 생략의 플롯을 통해
오로지 오버가드의 생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었던 같네요.
그러나, 추락한 헬기 속에서 오버가드가
또 다른 생존자를 발견하면서
영화는 속에 품었던 또 하나의 메시지를 드러내죠.
생존자는 동양계 여성(마리아 델마 스마라도티르).
복부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그녀를
오버가드는 헌신적으로 간호합니다.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그녀 옆에 놓아두고
자신의 손을 쥐게 시킴으로써
그녀가 의식을 잃지 않게 배려하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You're not alone.)
괜찮아요.(It's okay)."
그 위로는 오버가드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생존을 위한 이유와 희망이 됩니다.
자신이 힘들게 구축한 안전지대인 비행기 안에서
마냥 수동적으로 구조를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오버가드는 썰매에 그녀를 싣고
지도상의 안전지대를 향해
성공의 기약이 없는 모험에 나서죠.
조금은 더 안전하게 혼자 떠날 수 있었음에도
몇 배의 위험을 감수하고 함께 떠난다는 사실은
오버가드가 원했던 것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명이었음을 웅변합니다.
그러나 삶의 시련과 죽음의 공포는
끊임없이 오버가드를 위협하고
자신이 구해야 할 생명은 점점 짐처럼 느껴지죠.
그녀와 나누던 온기는 점점 식어가고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마침내 그녀가 생명을 다한 것으로 판단됐을 때
어쩌면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크레바스에 빠진 오버가드...
부상을 입은 채 간신히 크레바스에서 빠져나온 후
그는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갑니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하죠.
"Hello..."
그리도 의연했던, 그리도 강했던 오버가드는
끝내 뜨거운 사죄의 눈물을 쏟아냅니다.
'매즈 미켈슨.'
불과 며칠 전 배우 포스팅에서 밝혔듯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사랑하지만,
이 영화 속 그는 실로 경이롭고 숭고하더군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겪는 모든 고통,
처절하디 처절한 생존의지, 뜨거운 인간애를
스크린 밖으로 고스란히 전염시킵니다.
손가락 끝 하나까지 이용해 온 몸으로,
심연의 감정까지 다 끌어내 가슴으로 연기합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3년 걸작,
[그래비티] 리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공포,
무한한 침묵의 공간에서의 절대적 고독과 성찰,
가장 현실적인 SF이면서 가장 집요한 심리 드라마,
지구의 중력과 관계의 중력이라는
황홀한 아이러니를 갖춘 걸작.
한 줄로도 요약할 수 있는 스토리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풀어 나가는 연출의 밀도란..."
이 코멘트를 [아틱]에 그대로 옮기고 싶습니다.
지구와 관계의 중력으로부터 도피하던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에게
삶의 이유와 의지를 각성시킨 존재가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인간다움이었듯,
이제 오버가드는 반드시 살아야 하고
반드시 그녀를 살려야 합니다.
천신만고의 사투 끝에 발견한 구조요원들...
신호탄을 터뜨리고
생명과도 같았던 핏빛 코트마저 태우죠.
그녀를 안아 일으키고는 절규합니다.
"이 분, 살아계세요. 이 분, 여기 계세요..."
저도 덩달아 마음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외칩니다.
저들을 보라고, 저들을 구해달라고, 제발...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채 떠나는 그들.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지만
오버가드는 마치 주문처럼
괜찮을 거라며 그녀를 위로합니다.
절망만이 남은 설원에 서로의 손을 꼭 쥐고
누운 두 사람...
그리고는 기적처럼, 구원처럼...
구조헬기가 그들 등 뒤로 내려앉습니다.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고통을 공유하면서도
끝까지 조난영화를 지켜보는 이유는
마침내 생존에 성공한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라고 말해도 지나치진 않을 겁니다.
이 비범한 영화는 그 감격까지 소거합니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말할 지도 모르겠네요.
엔딩, 헬기의 착륙은 오버가드의 상상일 거라고.
그러나 동의하지 않습니다.
크레바스에 빠졌음이 그에게 주어진 벌이었다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한 후
끝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생면부지, 타인의 생명을 살리려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회복한 그에게
생존의 축복과 영혼의 구원을 돌려주어야 함은,
차라리 감독의 의무,
더 나아가 만약 이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그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생각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들도
이 차갑고 엄혹한 세상을
다 괜찮을 거라는 희망과
타인과 함께 나누는 온기의 연대로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야비한 이기심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릴 때,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질 때,
무너지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영화는 다시 제게 찾아올 것 같습니다...
댓글
  • Narcolepsy 2019/04/15 07:18

    로버트레드포드가 나왔던..올이즈로스트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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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락시 2019/04/15 08:18

    저도 정말 재밌게 봤고 여운도 길게 남았던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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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길리스 2019/04/15 08:23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야외상영으로 봤는데 좌석지정이 없으니
    첫빠따로 달려가 자리잡고 기다리다.. 거의 네시간 정도 벌벌 떨면서 봤네요.. 관객도 엄청 많고 야외다보니
    흡사 스포츠경기장에서나 볼법한 마지막 한순간 동시에 터져나오는 관객들 반응이 좋은영화와 맞물려 더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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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미무메모 2019/04/15 08:26

    영화도 궁금하지만
    리뷰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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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베르박 2019/04/15 08:28

    갠적으로 '간지'나는 미켈슨은 동의가 안되는데 연기할때 '아우라'가 있는 배우는 맞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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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장 2019/04/15 09:00

    이 영화 볼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리뷰 읽고나니 봐야겠단 확신이 서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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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자리bean 2019/04/15 09:20

    아 시간대 안 맞아 못 봤는데 극장 상영은 끝났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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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2

    Narcolepsy// 올 이즈 로스트도 상당히 빼어난 조난영화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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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3

    락시// 참 이상하게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네요. 이제 리뷰 썼으니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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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5

    유길리스// 저도 부국제 야외상영 참석하신 분께 비슷한 이야기 들었답니다. 그렇게 추웠다죠? 가뜩이나 영화도 추운데 ㅋㅋ 말씀하시는 바로 그런 점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아야 제 맛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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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6

    마미무메모//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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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6

    누베르박// 제겐 그 특유의 피로한 섹시함이 간지로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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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7

    피장// 네 꼭 보셨음 좋겠네요. 러닝타임도 98분, 딱 좋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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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0:58

    CL자리bean// 아직 상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대부분 내렸죠.ㅠㅠ VOD로 풀린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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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ythew 2019/04/15 13:11

    늘 그렇듯이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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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읭플레이어 2019/04/15 15:27

    리뷰를 보고 중반부까지는 영화 '터널'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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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5:46

    flythew// 늘 그렇듯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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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5 15:47

    읭플레이어// 초중반부에서는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후반부는 전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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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4/15 19:14

    와~~배우 열전을 통해 본 오틱이란 영화..
    그당시 당연 리뷰는 안읽었지만 극래서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는데
    이게 조난 영화였군요!!!
    댓글들 중에서 올이즈 로스트란 영화도 진짜 잼나게 봤는데 이 영화도 놓치면 안될 듯 싶네요!!!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다행스럽게도 영화관에서 아직 내리지 않았고 충분히 오랫동안 하네요!!
    유투버 출신의 감독이라니...와~~재능이 정말 장난 아닌거 같네요..이게 첫 작품 같더라구요
    늦게라도 꼭 필람해야겠습니다!!
    좋은 영화 추천 진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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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요정 2019/04/15 20:35

    아~넘 급하게 쓰는 바람에..ㅎㅎ
    뭔가 제목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오틱이라 썼네요..ㅎㅎ
    암튼 완전 저에게 딱 맞는 영화같은데 과연 어떤식으로 조난에 대해 풀어나갈지 기대가 크네요!!!
    굿밤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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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4/16 00:56

    안녕요정// 올 이즈 로스트보다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조난영화 장르 좋아하신다면 꼭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지켜보는 감정이 그야말로 폭발한답니다. 이번 한 주도 보람되고 편안하게 보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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