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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흔한 이순신 사생팬

 


정조.png

 

 


 정조 5년 7월 11일 

임진년389) 남해(南海)에서의 승첩(勝捷)은 이순신(李舜臣)이 실로

 원훈(元勳)이고, 사력(死力)을 다하여 마음을 함께 해서 도와서 공적을 

이루게 한 데에는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의 힘이 많았습니다. 

정운이 서서 죽은 것 또한 이순신과 똑같은데, 이순신의 자손은 대대로 드러내어 기용하고 있으니, 조가(朝家)에서 보답한 것이 극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독 정운의 후손은 해서(海西)로 유락(流落)되어 하나도 드러나게 기용된 사람이 없습니다. 

 

- 이순신 자손만 우대 하지 말고 다른 공신들 자손도 신경써달라고 신하가 건의함


 정조 7년 10월 2일 

오늘날의 만호(萬戶)나 첨정(僉正) 속에 있어서라도 이순신과 조헌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인지 어찌 알 일이겠습니까? 반드시 소원(疏遠)한 속과 비미(卑微)한 곳에서 인재를 찾아내는 일을 깊이 성명(聖明)께 바라는 바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참 좋은 말이다."

- 요즘에도 찾아보면 이순신같은 인재 있지 않겠냐


 정조 10년 10월 4일

연해안의 전선(戰船) 체제가 매우 커서 배를 정박한 곳에 물이 빠지면 계속 육지에 있게되니, 앞으로는 전선을 새로 건조할 때엔 애써 가볍고 빠르게 만들고 정박한 곳 중 물이 없는 곳은 물이 있는 포구로 옮겨 설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전선의 체제의 척수(尺數)를 줄이는 것에 대해 전후 갑론 을박(甲論乙駁)이 한두 번뿐만이 아니었으나, 필경 옛날 체제대로 하기로 한 것은 대체로 이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남긴 제도로서 충무공이 적군을 깨뜨린 공이 대부분 큰 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더구나 조선(漕船)과 상선(商船)은 모두 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데 옛날의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박할 곳을 옮겨 설치하는 건은 전에 이미 각도의 수영에 알리어 편리에 따라 포구를 파라고 하였으니, 지금 다시 논할 것은 없습니다

- 이순신이 한 방법이 최고니까 그대로 따라가 


정조 15년 3월 19일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직계 후손으로서 쓸 만한 자를 찾아서 아뢰도록 하였다

- 이순신 후손중에 쓸만한애 없냐?


정조 19년 5월 11일

상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의 탁월한 공적과 충절을 생각하여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친히 지었다. 그리고 송(宋)나라 부필(富弼)의 묘비(墓碑) 제목을 전자(篆字)로 썼던 예를 본따 그 비의 제목을 전자로 써서 ‘상충 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라고 하고, 내각에 명하여 안진경(顔眞卿)의 가묘(家廟)의 비(碑)에서 글자를 모아 쓰게 하였다. 그리고는 호남의 도백(道伯) 이형원(李亨元)에게 명하여 돌을 캐내어 그 묘에 세우게 하였는데, 갑인년에 그 일이 마무리되었다. 이 때에 이르러 내각이 탑본(榻本)을 바치자 다섯 군데의 사고(史庫) 및 관각(館閣)과 태학(太學)에 나누어 보관토록 명하였다.

- 왕이 보니까 이순신이 너무 쩔어서 직접 글을 지었으니까 다들 읽어보도록

 

정조 19년 9월 14일

충무공이순신전서(忠武公李舜臣全書)》를 발간하였다.

이에 앞서 내각에 명하여 이순신의 옛날 행적 및 유고(遺稿)를 모아 한 책으로 만들도록 명하였는데, 이 때에 와서 편찬해 올리니, 하교하기를,

- 이왕 글쓴거 그냥 책으로 엮었어

 

정조 20년 7월 22일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毅愍公) 이억기(李億祺) 집안의 예에 따라 선전 관청에 자급을 뛰어올려 천거하고 우선 권점을 더하라. 그리하여 이 세 집안을 한결같이 보아 혹 취사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를 해당 관청의 수교(受敎)에 기록하라. 또 정익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길일을 잡아 치제하라."

- 이순신 집안에 해택좀 더 줘라

 

정조 22년   3월 19일

무장인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 충숙공(忠肅公) 조정익(趙廷翼)의 후손들에게 북영(北營)으로 가서 유엽전(柳葉箭)을 시험하게 하여 초시(初試) 합격을 내리고 인하여 북원(北苑)으로 가서는 친히 시험하여 사제(賜第)하고서, 특별히 무오 식년의 방방(放榜)에 붙이도록 하였다

- 이순신 후손보고 북방에 가서 무과시험좀 감독하게 해라


정조 22년 12월 19일

매번 정사를 할 때마다 특별히 유시하여 충신의 자손을 등용하라고 했었는데도 종이장 위의 빈말이 됨을 면치 못했었다.

직급이 낮은 이한두(李漢斗)에 이르러서도 충무공(忠武公)537) 의 서손(庶孫)이라는 이유로 충무공이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섰던 발포진 장(鉢浦鎭將)으로 삼았으니, 말이 족히 들을 만하고 명분 역시 실질에 부합된다.

- 니들 이순신 후손좀 등용하라니까 왜 말을 안듣냐? 이한두라는 애가 지금 직급이 낮으니까 승진 시켜줘


행장

《이충무전서(李忠武全書)》를 편찬하였다. 왕은 충절을 높이고 공로를 보답하는 길이라면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지만 유독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에 대해서는 그를 최고로 여겨 그들의 유문(遺文)과 유사(遺事)를 편집하고 충무공은 《전서(全書)》, 충민공은 《실기(實紀)》라 하여 인행(印行)하였다.

 - 정조 사후 신하들이 평하기를 왕은 대단한 이순신 빠돌이였다.

댓글
  • 옥타비아♬ 2019/03/26 10:20

    "왕은 어찌하여 이순신만 좋아하는가!"라고하기엔 엄청난 무공이었다

  • (*)(*) 2019/03/26 10:22

    죽은 뒤에서야 받는 충의의 대가

  • 나연이조아 2019/03/26 10:21

    흠 아버지를 닮은거 같기도하네
    사도세자가 무술을 되게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던데
    정조대왕이 무술 좋아하는건 모르겠지만 이순신 좋아하는건 잘 알겠다 ㄷ

  • 봉완미 2019/03/26 10:24

    정조도 몸을 단련했다는 말이 있긴한데. 확실히는 모르겠음

  • 모모씨(某々氏) 2019/03/26 10:27

    선조: ㅎㅎㅋㅋㅈㅅ ^^

  • 옥타비아♬ 2019/03/26 10:20

    "왕은 어찌하여 이순신만 좋아하는가!"라고하기엔 엄청난 무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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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연이조아 2019/03/26 10:21

    흠 아버지를 닮은거 같기도하네
    사도세자가 무술을 되게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던데
    정조대왕이 무술 좋아하는건 모르겠지만 이순신 좋아하는건 잘 알겠다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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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완미 2019/03/26 10:24

    정조도 몸을 단련했다는 말이 있긴한데. 확실히는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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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리웹-3744361097 2019/03/26 10:28

    활은 잘쐈다는데(일부러 49발씩맞추고는 자만하지말아야지~할정도) 다른 무예도 능통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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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완미 2019/03/26 10:29

    여러번 암살 위협을 당했으니 스스로 몸을 단련했을거라고 추측할수있긴한데... 그걸 내가 다른 책에서 본게 아니라 박시백의 만화에서만 본내용이라 확신을 못하겠다. 활잘쐇다는건 여러글에서 보이는거라 맞을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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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개마왕 2019/03/26 10:30

    정조 몸단련한거 맞음
    내가 영화로 다봤음
    현빈 몸보니까 쩔더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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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마블🔥 2019/03/26 10:31

    무예도보통지도 정조때 임금명으로 만들어진
    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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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안개비I 2019/03/26 10:31

    무예도보통지가 정조의 명령으로 제작된거고 백동수를 중용하기도 했으니 무술에 관심 많았던거 맞을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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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설화향 2019/03/26 10:42

    유교에서 활은 선비의 덕목중 하나라
    무예를 봏아하는게 아닐지라도 선비라면 활을 기본으로 다뤄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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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nDa96 2019/03/26 10:48

    부자가 다들 더쿠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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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uminis 2019/03/26 10:49

    암살 위협때문에 낮에는 무술, 밤에는 공부 하면서 늘 암살 위협에 경계했다고 들었음. 그러니 문무 빠요엔이 탄생하였지만 불규칙한 수면과 식습관 때문에 단명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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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ㅡ_-]す~ 2019/03/26 10:51

    무술도 잘했다고함
    공부잘하고 몸도 좋아서 무예도 잘하고 술도 잘먹고 완벽한 엄친아였음
    수원 화성 행차할때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갔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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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9/03/26 10:22

    죽은 뒤에서야 받는 충의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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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씨(某々氏) 2019/03/26 10:27

    선조: ㅎㅎㅋㅋㅈ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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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의군사 2019/03/26 10:30

    모자이크 해야하는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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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벨네드베드 2019/03/26 10:37

    이연 썩을 버뤄쥐 색꾸이 원균 집안은 이연 무덤에 극진히 제사 지내야 한다. 이연놈만 아니었어도 원균 집안은 멸문해도 이상하지 않을 집안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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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리크 2019/03/26 10:44

    원균이 싼 똥이 워낙 커서 그렇지 친척이나 원균 동생 원연은 훌륭한 사람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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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uttleNeck 2019/03/26 10:50

    원균 동생은 돌연변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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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gineer0623 2019/03/26 10:51

    근데 원균때문에 +/-해도 상쇄가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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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행행2 2019/03/26 10:51

    원균가문도 그렇고 이완용가문도 그렇고 분상투자를 한 균형의 수호자들이였는데 똥싼닝겐들이 워낙 쩔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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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전에 양치질 2019/03/26 10:27

    시대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강직한 충절을 중요시한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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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완미 2019/03/26 10:28

    그것도 영향이 있긴했을거지만 정조 본인부터가 이순신의 열렬한 추종자였던건 확실한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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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호4 2019/03/26 10:30

    근데 어차피 정조대까지 가면 이순신을 존경하는건 사대부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개인 빠심이 훨씬 크다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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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작두 2019/03/26 10:29

    정조 : 그러니까 너희도 충무공처럼 까라면 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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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람쥐 2019/03/26 10:29

    그놈의 종기만 아니었어도...
    독살루머도 있지만
    영조만큼 살았을시 조선의 마지막 기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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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nha} 2019/03/26 10:29

    쵸큼 안쓰러운게 후손 친인척들 죄다 무과로 강제 전직 당하지 않았나.
    그리고 다른무장들은 이순신은 이러이러해서 해냈는데 니들은 왜못해 이런식으로 쿠사리도 당하고...
    결론은 이순신이 넘모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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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전에 양치질 2019/03/26 10:30

    한사람이 잘해봤자 시스템이 바뀌지않으면 소용없다고 이국종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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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완미 2019/03/26 10:31

    그뿐만 아니라.... 이순신의 후손이라는 타이틀이 엄청난 부담이 됬을듯함.
    뭐 실수라도 하면 어디 감히 충무공의 후손이 저런짓을!!! 하고 더 까였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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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ceSaga 2019/03/26 10:34

    군인이 된다는 조건으로 면천된 이순신 서자 출신들도 진짜 이순신 씨 맞냐고 욕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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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설화향 2019/03/26 10:44

    입에서 번숨 안나오면 의심가는 거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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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행행2 2019/03/26 10:59

    더 안쓰러운건 결국 직계후손이 안남아있단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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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p 2019/03/26 10:35

    당대왕이였던 선조는 이순신이 부담스러웠다 치더라도 후대왕은 평가절하할 이유가 없지...
    오히려 충신 of 충신인데... 왕이 잘못해서 신하 거의 죽일뻔했는데도 신하가 다시 왕과 나라를 위해서 싸우러 나갔다? 이만큼 왕 입장에서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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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완미 2019/03/26 10:36

    ㅇㅇ 당장 광해군부터 이순신 신격화에 들어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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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옾높 Iㆆ운lY 2019/03/26 10:36

    정조 미남아님?
    저렇게 생겼어?
    내가 아는 정조가 그 정조가 아닌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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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리크 2019/03/26 10:45

    장비처럼 생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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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완미 2019/03/26 10:54

    정조의 정식 어진은 남은게 없고, 곱상하게 나온 그림들은 전부 상상화.
    위에 그림은 그나마 조선시대 책에 올라가있는 그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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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라이더X 2019/03/26 10:36

    고종때 강화도에 일본이 쳐들왔을때 대원군이 충무공8대후손 만나서 뭔 방법 없냐고 농으로 물으니 나도 충무공 8대손이지만 의기도 없고 어리석은데 쳐들어온 가토 기요마사의 8대손 구로다 기요타카도 그렇지 않겠냐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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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수번호279935495 2019/03/26 10:37

    이순신 후손 : 아 난 문과인데... 강제 무과 전직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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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2001 2019/03/26 10:39

    아니 한국인중에 이순신 싫어하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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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의사 2019/03/26 10:43

    정조때 이순신 직계후손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길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지 않았나?
    전에 박지원인지 박제가인지 문집에서 읽은 기억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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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토리아 2019/03/26 10:54

    무공도 대단하셔 식성도 대단하셔 정력도 아주... 역시 충무공이 최고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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