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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랑 북한산, 그러니까 송추로 가는 솔머리 고개 쪽에 섰다. 후배는 뭔가를 들고 있다. 형, 이거를 거기다 갖다 놓아야 합니다. 어디? 따라 와보면 압니다. 후배를 따라 붙었다. 숨은 벽 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르막은 자신이 있다 싶었다. 몸도 잘 따라준다. 후배는 보따리에 싼 그 무엇인가를 들고 날래게 올라간다. 중턱의 어느 바위에 섰다. 바로 위로 숨은 벽의 위용이 우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오르는 바위 길이어야 하는데, 내려가는 릿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보기에도 좀 아찔한 바위 능선 길이었다. 후배가 걱정이 됐다. 손에 뭘 들고있는 상태라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원해야, 단디해라. 후배는 얼굴을 돌려 나를 한번 힐끗 보고는 씩 웃는다. 아이고 행님 걱정마이소. 그리고는 내려간다. 릿지 초입이 보기에 좀 아슬아슬한 곳인데 물 찬 재비처럼 잘 내려간다. 나도 발걸음을 뗐다. 후배 뒤를 어떻게든 따라 붙어야 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멈칫한 느낌이 머리로부터 발 아래로까지 쏵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도무지 발이 떼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내려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 걸음을 겨우 떼 릿지에 붙었지만, 찍 미끌어져 내린다. 도저히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는 벌써 저만치 내려가 계속 아래로 치닫고 있었다. 후배를 불렀다. 원해야, 원해야. 저 아래서 후배가 나를 치어다 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후배는 손을 흔들었다. 나를 두고 혼자 가겠다는 듯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후배에게 손을 흔들어 소리쳤다. 못 가겠다. 못 내려가겠다. 후배는 나를 보고 다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냥 또 아래로 치닫고 있었다. 그 때 숨은 벽이 그 큰 자태로 내 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꼼짝하지도 못한 채 숨은 벽에 압도되고 있었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자에 산을 좀 멀리하고 있다. 아니 오를 수가 없다. 물론 몸 때문이다. 넉달 째 앓고있는 허리가 아직 시원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릎도 좋지 않다. 3주 전에 산성 쪽에서 대남문으로 오르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 일산에 혼자 사는 후배 원해는 일년 중 3분 2 이상을 산에 산다. 매일 산을 오르고 거진 매일 산에서 사는 후배다. 덩치도 좋고 먹성도 좋고 술도 잘 마신다. 어제 어느 밴드에 후배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월요일은 마산서 올라 온 친구와 관악산, 화요일은 북한산, 목요일은 친구와 설악산, 일요일은 노고산... 산 잘 타는 그 후배에게 어떤 시기심이 발동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그런 시기심이 하릴없이 꿈으로 나타난 것일까. 그건 그렇고 후배가 숨은 벽에 갖다 놓아야 한다던, 신주처럼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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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여시기둥서방 2019/03/14 07:52

    일단 로또구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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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석 2019/03/14 07:54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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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 2019/03/14 08:00

    숨은 벽의 압도하는 위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오를 때의 감동은 오른 자만이 알수 있지요.
    릿지의 최고봉!!

    (fu8pqi)

  • 비슈누아 2019/03/14 08:04

    글이 정말 훌륭합니다. 몰입감있게 순식간에 읽었네요... 결론은 이 글을 읽은 모든이들이 각자 생각한 대로 전개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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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다팔아☆화물자게이 2019/03/14 08:06

    난독증 있는 저로선
    저렇게 줄바꿈 없는 글씨는 못읽겠단ㄷㄷ

    (fu8p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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