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똥을 싸다가 문득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락을 했다.
문자를 보냈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중학생 이후로 왕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내가 왜 갑자기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를 만나 대답을 들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도 잘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원주는 추웠다. 아버지는 원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앞에서 만났다. 중학교 시절에 멈춰 있는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차는 언제까지나 하얀색 엑셀이었는데
다른 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만남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둘 다 이런 종류의 만남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이 만남에 대해 내심 꽤 감동하고 있으며,
내게도 같은 종류의 감동이 전해지길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뜨거운 화해를 하러 거기 간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전공분야에 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어색하고 거대한 구멍을 메우기 위한 용도였지만,
놀랍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군대를 전역한 뒤 돈이 없어서 복학을 하지 못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다가 탈진을 해서 쓰러진 날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시원 앞에서 소주 두 병을 억지로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정말 피가 났다.
도움을 구걸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백기를 들고 전화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그 와중에 소주는 알코올이니까 이 상처가 소독이 되어서 덧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자녀 학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나중에 전부 갚을 테니까
제발 등록금을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월세와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다, 당장 등록금만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예상되는 상대의 답변이 있을 때 나는 그 답변을 듣기 싫어서
최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등록금도 갚고 효도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등록금과 효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그날 원주의 사무실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식을 부양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왜 등록금마저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 후회하고 있다 ”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후회하고 있다, 는 말은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왜 내가 아버지에게 미움 받아야 하는지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학교에서 공짜로 나오는 학비 지원금마저
주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웠는지 하는 것 따위 말이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반평생 슬프고 창피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의 눈치 보면 지는 거라고 위악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쿨병’이니 뭐니 안 좋은 말이 쌓여갔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남에게 결코, 다시는 꼴사납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버텨 살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후회하고 있다는 말로 내게는 충분했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정말 태아처럼 안도했다.
아버지가 “ 그래도 네가 그렇게 어렵게 산 덕분에
독립심이 강한 어른이 되어서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행 ”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연락이 몇 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친구 같은 부모 자식 사이가 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아, 자신이 원하는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살다 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3루에서 태어난 것도 3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그건 그렇고, 다스베이더는 누구 소유입니까?!!!”
“아휴...질문 좀 살살 허지웅...”
정말 많은것들이 저와
소름돋게 똑같아서.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겪은 동료이자
앞서 겪은 선배시다는 생각드네요.
저도 이걸보기전에도
비슷한생각을 하고있고
(아버지께 연락하지 않고 산다는것빼고는
정말 다 비슷합니다)
나중에 연락하게되도 너무나도
예측되는 (그러기에 하지못하는)
비슷한 ..아버지와의 만남.
거기에 이어지는 생각까지 보니..
너무 놀랍네요
다스베이더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지만 보고싶다는 말이 씁쓸하고도 슬프네요...
저도 비슷한 처지라서...
허지웅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글재주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런 글이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네요.
다스베이더까지 똑같아서 ㅎㅎ 읽으면서 참 착찹하고 반성하게 되네요.
저보다는 훨씬 똑똑하고 객관적으로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보고 계신것 같아서 배워야겠다 생각도 드네요.
저는 아직도 보고싶다는 걸 인정하는게 힘들어요 ㅎㅎ
상처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제 경우 상처는 말그대로 그냥 상처였어요.
좋은 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으면 모를까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흉터를 남기더라구요.
시간이 많이 지나도 정도의 차이일뿐
여전히 흉터를 보면 아프고 싫습니다.
나는 아직도 아픈데 가해자는 그 흉터 덕분에
내가 지금 독립적으로 잘 자랐다고 말하니
겨우 아물어가는 흉터 위에 새로운 상처를
만드는 꼴이네요.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참.. 글 속에서 많은 감정들이 묻어나네요..
20년 본 친구들이 그동안 상관 안 하다가,
자기들이 아버지가 되니까 거슬리는지,
"아버지 미워하지 마라." 라고 하더라고요.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그 분의 업적을 한 시간정도 말했어요.
친구들은 다 듣고도 아무 말 안 하더라고요.
"그나마 너희니까 말 할 수 있는게 이 정도다. 너희에게도 말 못 할 일이 훨씬 많아."
라고 했어요.
지금 병상에 10년째 계신데...
90년대에 연봉 4000만을 받았으면서,
집에 돈 만원 안 가져 오신 분이..
병을 앓고는 엄마의 허리와 자식들 청춘으로 목숨 연명하고 계신 분이..
그럼에도
"니들이 변변치 못 하니까
내가 이런 병을 앓고 이런 병원에 누워있지."
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얼마전에 저에게
"미안하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다음 말이
"우리 아들 군대가면 힘들텐데..." 여서
내년에 마흔인 저는
아버지가 치매가 심하네. 하고 넘어갔습니다.
음... 오늘은 스타워즈를 한 번 봐야겠네요.
아이고.. 저걸보는 어머니 마음은 ㅠㅠ
허지웅의 아쉬운 개인사를 떠나
필력 정말 부럽네요
저와도 비슷한 내용이라 공감이 갑니다..
50 60년대 아버지들은 지금의 아들들과는 정말, 정말 많이 떨어져있고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문제는, 이런게 건강하지 못한 인격이나 가치관을 가져올 수 있다는거죠...
완쾌하시길 바랍니다.
대부운의 상처는 그냥 놔두면 낫습니다
그런데 모든 상처가 그런가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유 안된 마음의 상처는 죽을 때까지 벌어진 상태
아픈 상태로 살아갑니다
이를 깨닫고 비로소
70이 다 되신 아버지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보이더군요
맏이로 배가 세번이나 다른 고모들과 열살 차이가 나는 저의 할머니 ...
그런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며 받은 상처들...
저역시 무뚝뚝한 성격이라 그런 아버지를 따뜻하게 안아드리지는 못하지만 이따금씩 잔인할 정도로 매정하게 행동하시는 걸 이해할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저런 애비가 되지 말아야지..
허지웅 씨는 자기변명과 궤변이 많다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의 인생이 그래도 후회가 적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중3때 나와서 자취시작 고1에 교통사고로 1년간 목발에 통원치료
2학년부터 하루 두끼 먹고 하루 16시간씩 이악물고 입시준비
서울 두 곳, 지방국립대 한 곳 합격하고 돈없어 장학금받고 일단 국립대로
생활비며 책값 버느라 밤엔 일하고 낮엔 학교가고 항상 피곤
고시준비하러 상경 오전엔 알바하고 오후엔 시험준비
먹고사는게 급해 방송사취업 몇 년일하고 퇴사 후 사업시작
사업정리하고 땅사고 집짓고 귀농 땅도 이제 얼추 1만평에 평생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없어짐
중학교 이후로 아버지 만나본게 손에 꼽을정도 내 인생 더럽게 빡셌어도 단 한 번도 원망 해본적없음
물론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가 날 찾는다면 내가 싫음 당신 인생 온전히 당신 뜻대로 사셨으니 마지막도 당신 책임이라고 할 거
한가로이 남탓 누구탓 할 겨를도 없었고 어쨌든 내 인생은 내껀데 누구한테 하소연 하겠나 싶었고
다만 홀로 고생만 죽어라한 엄마한테는 미안해서 1년에 열흘이상 해외 여행 보내드림 물론 장가가서 손주보여드리는게 최고이긴한데
오유를 하고 있네 내가.........
이글이 뼈에 사무치게 와닫네요.
70년대 국가장학생으로 영국유학을 갔다올정도의 아버지 사립학교 선생이였던 아버지를 두었고. 집에만 오면 그렇게 가족들을 개패듯 패던 아버지.
저의 학생시절 용돈 하루 500원.
집에가면 피에얼룩져있는 가구들.
부모님이 19살에 이혼후. 17년간 연락한적없지만. 20살말에 나의 정신병으로 집에서 오랬동안 나오지못할때. 어머님이 마지못해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했었답니다. 답변은 잘살고있는데 왜 쓸데없이 자꾸 전화질이냐며 화내며 전화를 끈었다는말. 어쩌면 비슷한부분이 많은것같아. 한참을 담배를 피고 또 피며 생각하고 보고 생각했네요.
저는 지금도 용서가 안돼요. 고모가 그런말을 했어요 너도 크면 니애비가 그리워지고 이해할때가 올꺼다.
저는 36살이 돼어 생각해보니 더 이해가 안돼고 이해못하겠어요.
네 결혼도 못하고있습니다. 여자친구를 만나 사귀다 싸우게 돼는날이 오면 머리속으로 아버지가 우리에게 했던 그것들이 떠오르기때문에. 못하겠어요.
이젠 연애도 못할꺼같아요. 저는 그래요.. 너무 슬픈글이네요..
아버지라는 인간이
교회 다니면서 밖에서는 그저 좋은 사람..
집에서는 처자식에게 개차반... 그래놓고
이제와서는 나는 떳떳하게 살아왔다
눈꼽만큼도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입모양을 보고있으면
욕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으면서도
막상 그러지는 못하고
내 모든얘길 들어줄 것 같은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니네아버지 진짜 좆같다라고
갑자기 우리아버지 욕할까봐 말도 못 하며 살아왔네요..
참 이상해요... 나는 아버지라는 인간 미워 죽겠는데
우리아버지 누가 욕하는건... 싫은가봐요....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라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요.
잘 알지도 못하는 새끼들이,
그래도 부모인데. 그래도 아버지인데.
그래도 떠나시고 나면 후회한다.
이따위로 지껄이지 좀 말았으면 좋겠어요. X발새끼들.
댓글들 천천히 읽으면서 내려오니..
다들 참 많은 상처를 가지고. 그렇게들 열심히 살아와준거 같아서- 맘이 뭉클하고 무겁네요..
저도 참 많은 일이있었어요.
가족한테 받은 상처는 평생 아물지 못하는건가봐요.
다들 너무 수고했어요
한분한분 안아드리고 토닥여드리고 싶네요..
힘내세요. 우리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