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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사랑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104)

 


  10



 시간이나 때울 생각이었다.


 술집여자처럼 행동하면 나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다. 별 다른 걸 기대하진 않았다. 그냥 재미있는 역할극이라 생각했다. 다시 커피를 타서 내게 가져다준 그가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수표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100만 원짜리 수표였다. 



 “뭐죠”


 “월세라며?”


 “아~ 어쩌죠. 잔돈이 없는데.”


 “남는 건 가져”



 역시 재미있었다. 여태 신사적으로 행동하던 그가 반말을 했다. 몸 파는 여자에게 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이상 하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수표를 만지작거리다 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미안해요. 오늘은 영업하지 않아요.”


 “.......출장은 더 비싼가?”


 “꼭 쉬어야 하는 날이 있어요.”


 “아.......”



 그가 꽤나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가 내민 수표를 받지 않았다. 뭔가 고민하고 갈등하는 듯싶더니 다시 말했다.



 “살살할 게”


 “그런 게 아니에요. 설명하기 곤란한데, 치료를 받고 있어요.”


 “아.......병 같은 거야?”


 “......”



 대답하지 않았더니, 그가 입맛을 다시며 수표를 받았다. 병에 걸린 거라고 대답했어도 거짓말은 아니겠다. 신체적 질환이라기보다 정신적 질환에 가깝겠지만, 병은 병이다. 그가 수표를 지갑에 넣으려다 말고 다시 말했다. 



 “그럼 혹시 입으로.......아. 입으로도 감염이.......그럼 손으로는 얼마야?”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간혹 내 욕구가 남자들 못지않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의 남자들에게 사죄해야겠다. 그는 내 웃음에 꽤나 창피해진 모양이지만, 놀랍게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 할게. 나 혼자 할 테니까. 그~ 있잖아. 스트립쇼 같은 거 해줄 수 있어? 그건 얼마야?”


 “다시 미안해요. 사실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이 동네를 좀 다니다 보니까, 그런 분들이 좀 보이기에 따라해 보고 싶었어요. 역할극이라고 아세요?”


 “뭐? 아니. 무슨 그런. 진짜 아니야?”


 “아니에요. 근처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다가 시간이 좀 남았어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뭐 이런 장난을 치나”


 “아저씨가 험상궂게 생겼거나 위험해 보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저를 처음보자마자 반한 것처럼 행동하는 게 신기해서 장난을 치고 싶어졌어요.”


 “......아가씨 보고 반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닐 거잖아”


 “제가 이런 장난을 치는 것도 처음은 아니에요.”


 “하....... 어이. 아니, 아가씨. 그러지 마.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아”


 “마음 가지고 장난을 친 걸까요? 당신의 욕구를 가지고 장난을 친 걸까요? 조금 전까지 아저씨는 저를 돈으로 사려고 했어요.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어떻게든 욕구를 풀 방법만 생각했잖아요. 그래도 충분히 당당하신가요?”


 “아니! 그거야 당신이 그런 여자처럼 행동했잖아! 장사할 것처럼 간판 불을 켜놨으면서 내부수리중이라는 건 잘하는 거야? 난 물이라도 좀 달라고 한 거야. 아니! 내가 찾아왔어? 좀 전에 아가씨가 한 행동은! 방문판매원이 초인종 눌러서 열어줬더니, 팔지 않겠데! 뭐야 이게? 아니, 자긴 사실 세일즈맨도 아니래! 말하다보니까 열 받네. 젊은 여자가 겁도 없나?”


 “......그러네요.”


 “그러네요. 그러네요? 와~ 사람이! 아니. 진짜 죽이고 싶네. 썅!”


 “재미없었나 보군요.”


 “야~ 이. 이기적인 여자야. 재미? 장난해? 나가. 나가!”



 사실 그가 화를 내기 시작할 무렵부터 약간은 긴장했다. 내가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나를 덮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는 걸 알았겠고, 벗어주기라도 하면 스스로 하겠다는 남자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기대와 걱정을 했다.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욕구에 목마른 사람이라도 지키고 싶은 윤리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는 온통 강O범들과 변태성욕자들로 가득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이기에 세상이 굴러간다. 얼핏 세상은 변절자들과 거짓말쟁이들로 가득해 보이겠지만, 정의와 진실에 굴레에서 견디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내가 그런 여자인줄 알았을 때는 뭐든 하려던 그가, 지금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내 앞에서 스스로 해결하겠다던 사람이 내 장난을 용서하지 못했다. 내가 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그가 씩씩거리며 다시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 그러고 다니다 무슨 꼴을 당할 거 같아? 사람이 왜 죽는지 알아? 객기 부리다 죽는 거야. 아가씨는 이러는 게 재미있었는지 몰라도 말이야. 죽는다고! 알아?”


 “누가 운이 좋은 걸까요.”


 “뭐?”



 시간이나 때우려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는 내가 가려는 줄 알고 내 카디건을 집어주려 했다.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내가 카디건을 놓고 갈까봐 걱정하는 모양이다. 참 아이러니한 윤리방정식이다.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왔다. 그가 카디건을 내게 건넸지만, 난 카디건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기 시작하니까 그가 말했다.



 “뭐 하는 거야?”


 “재미없었다면서요.”


 “꽃뱀이야 변태야?”


 “어느 쪽이든 보기만 하는 거라면 상관없잖아요.”



 난 독약이다. 지금부터 내가 할 행동들은 그에게 독이 될 거라는 걸 이제 안다. 아니, 여태 내가 남자들에게 줬던 것들 모두가 독이 되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 걸 확인시켜준 그에게 작은 선물을 줄 생각이다.


 그가 더 떠들거나 하진 못했다. 이제 난 마지막 남은 속옷을 벗고 있었다. 전라가 되어 서 있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가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썅! 이러면 안 돼! 크흡!”



 기도로 침을 삼켰는지 콜록거리기까지 한 그가,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요즘 남자들 앞에서 벗는 일이 잦아진 것 같다. 그가 간신히 기침을 멈추고 다시 말했다.



 “평생 만나 본 여자들 중에 최고의 여자가 변태라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그가 운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던 내가 우스웠다. 독약을 건네면서 운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잔인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독약을 삼킬 수 있을지 시험하고 싶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그를 향해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보기만 할래요.”


 “에이 썅! 모르겠다. 먹고 죽자!”



 독약을 앞에 둔 사람의 대사로 적절했다. 그가 내 입술을 핥으며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내 몸 이곳저곳을 거칠게 주무르며 핥았다. 나쁘진 않았는데 시작하기 전처럼 좋지는 않았다. 그가 나를 난간으로 밀어붙이고 한쪽 다릴 들어 넣었을 때도 잠깐은 좋았지만, 막상 할 때는 그리 좋지 못했다. 자세가 불편해 뒤로 하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그는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미안”


 “.......괜찮아요.”



 그가 안에 해버리고 미안해하면서도 빼지 않았다. 괜찮은 날이긴 해도 불안함을 지울 수는 없는데, 그는 이왕 안에 했으니 계속 하고 싶은 모양이다. 



 “또 해도 돼?”


 “불편해요.”



 자세가 불편하다는 얘기였다. 내가 난간을 잡고 엎드리니 그가 다시 들어왔다. 건물사이 좁은 골목을 향한 어두운 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창에는 엎드려있는 나와 뒤에 그가 비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제 좀 좋아지는 것 같다.


 좀 전에는 아무 말 없이 행위에만 몰두하던 그가 이번엔 자꾸 좋으냐고 물었다. 간신히 ㅅㅇ을 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내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허릴 붙잡더니 점점 빨라졌다. 



 그가 휴지를 건네주며 물었다.



 “그럼 여긴 정말 왜 온 거야?”


 “.......남자친구 만나러 왔어요.”


 “참나. 살면서 너처럼 예쁜 여자도 처음 봤지만, 너 같은 여자도 처음이다. 같은 건가? 남자친구는 뭐하는데?”


 “.......요 앞에 편의점에서 알바해요. 11시에 끝난다고 했어요.”


 “횡단보도 앞에 편의점? 참나.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시간이나 때우려고요.”



 흘러내리는 걸 닦고 있는데, 그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 다시 안으며 말했다.



 “내가 오래 살진 않았는데, 이런 기회가 또 올 거 같지가 않아.”


 “그렇겠죠.”


 “11시라면 아직 시간은 충분하잖아?”



 또 했다. 그가 가쁘게 숨을 내몰아쉬며 말했다. 



 “하다 죽어도 좋겠다. 진짜 그래. 너라면 그래도 좋겠어. 다시 볼 수 없을까?”


 “다시 볼 사람이라면 제가 이랬을까요.”


 “뭐 어쩌면 되겠어? 너도 좋았잖아? 응? 매달리지 않을게”


 “그럼 위험해져요. 이럴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봐요.”


 “쳇. 죽어도 좋겠다니까? 죽는 것보다 위험한 게 있어?”


 “궁금하면 매달려 봐요. 알 수 있을 테니까.”


 “무섭네. 너 되게 똑똑해 보여서 더 무섭다.”



 천천히 옷을 챙겨 입는데, 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나를 안았다. 또 하려는 줄 알고 시간을 확인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가 옷을 다 입고도 또 나를 안았지만, 그냥 뒀다. 잠시 그를 기다리다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가 다시 하려고 했다면 했겠는데, 이러고 있는 건 싫었다.


 그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뭔가 더 말하려 했고, 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잠긴 문을 여는 중에도 그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잠깐 그를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밤바람이 시원했다. 문을 다시 닫기 전에 그에게 인사했다.



 “차는 여기에 좀 둘게요.”



 대답은 없었지만, 상관없겠지.



 다시 신호등을 건너 유성현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아직도 불은 꺼져 있었다. 유성현에게 전화를 걸려다 민효정이 앉아있던 벤치에 가서 앉았다. 어제오늘 내 미친 행동들에 후회는 없었다. 적당히 지저분해질 수 있어서 차라리 괜찮았다.


 유성현이 돌아오는 걸 기다릴 생각은 아니었다.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난 남자친구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알바가 놀라서 내 뒤를 살피며 말했다.



 “저 사실 렌즈 끼고 있어요. 감기도 자주 걸리는 편이고요. 장이 약해서 밀가루로 된 음식도 잘 못 먹어요.”


 “그 정도면 꽤 건강한 건데”


 “장난이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장난 같긴 한데, 진짜로 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왜 반말해요?”


 “24살이라며. 친구하자고 했잖아. 밥 먹으러 가자.”



 편의점 알바가 교대하길 기다렸다. 방금 도착한 야간 알바는 나를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둘이 뭔가 수군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교대를 마친 알바가 나와서 물었다.



 “어.......진짜 밥 먹으러 가? 나랑?”


 “넌 그냥 계속 존대해라. 사실 내가 더 나이 많아.”


 “네.”


 “밥 먹으러 가자.”



 아까 오후에 들렀던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남자애를 데리고 오는 모습에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프로답게 말했다.



 “국밥 둘?”


 “네.”


 “4000원 더 내야해?”


 “네”



 알바가 뭔가 궁금한 게 아주 많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려고 했는데, 내가 고개를 흔들어 못하게 막았다. 묵묵히 국밥을 기다려 먹을 때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신기했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 안하는 거야?”


 “네.”


 “괜찮아? 이상하지 않아?”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데요. 누나?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아니. 그러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둘이 있을 때는 호칭을 부르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잖아. 그게 어려워?”


 “그러네요. 누나.”


 “.......하지 말라고 했어.”


 “네.”



 난 최대한 국밥을 천천히 먹었다. 이 국밥집은 유성현의 자취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다. 혹시라도 유성현이 지나가게 된다면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국밥을 천천히 먹기도 어려웠다.



 “너 술 마셔?”


 “네.”


 “그럼 마시자.”



 술을 시켜 조금 마시고 있는데, 유성현이 나타났다. 


 어떤 여자애와 함께.






 계속.


댓글
  • 백살 2019/03/07 14:09

    1등이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lz6mCy)

  • NorthWind 2019/03/07 14:11

    백살// 오늘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오늘 넘 바쁘네요

    (lz6mCy)

  • 4Justice 2019/03/07 14:11

    오늘도 감사합니다 ㅎㅎㅎ 스스로 정한 원고 마감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시는 일 없으시길요~ ㅎㅎ

    (lz6mCy)

  • 한량 2019/03/07 14:18

    잘 봤습니다. 시간 구애 받지 말고 편하게 쓰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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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니유니31 2019/03/07 14:20

    13시 11분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기다리다 읽은 재미도 쏠쏠합니다.
    오늘도 잘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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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렐레교관 2019/03/07 14:34

    북풍님도독약이에요.
    가공의인물을향한욕망을심어주고있잖아요! 이게뭐죠? 어딜가야한수진을만날수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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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3/07 14:59

    자신과의 약속이지만 약속을 포기하면 약속이 사라질 것 같아서요. ㅎㅎ
    우리 대신 운 좋은 누군가 독약을 마시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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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쑥쑥이 2019/03/07 15:12

    1편부터 정독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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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불러용 2019/03/07 15:20

    여자애가 누굴지 궁금하네여. 한수진이 모르는 여자라면 선배가 아닐지.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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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란제리 2019/03/07 20:41

    저도 김은진에 한 표! 성현이 저넘 불쌍한 포지션인것 같지만 은진이랑도 하고 수진이랑도 하고 효정이랑도 하고 쏭이랑은 그거 빼고 다하고.. 부러운 넘이였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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